요트
서하진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파란 강물이 구불구불 흐르고 형형색색의 요트가 바람결에 흐르고 “요트”라는 글씨까지 멋을 한껏 부린 표지라서 내심 밝고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작은 책을 펼쳤다. 그런데 자잘하고 섬세한 필치로 일상을 그려내긴 했지만 밝은 얘기들만은 아니었다.

<요트> <비망록, 비망록> <농담> <꿈> <퍼즐> <시간이 흘러가도> 등 여섯 편이 묶인 단편집이다. 특이한 점은 한편을 빼곤 모두 부부의 관계를 그렸다는 점이다. 한 그릇 안의 다른 두 밀가루 덩어리처럼, 소통부재가 가져올 수 있는 부부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 믿음에 대한 배신, 다른 사람을 만나 문제가 생겨 해결 과정에서 의외의 결정을 내리는 남편, 변한 남편이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야 하는가의 고민 등... 정답은 없다. 하지만 지금 당신 곁의 그 사람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여전히’ 그 사람인지 한번 생각해 볼만 하겠다. 그래서 계속 또는 영원히 함께 살 것인가, 아닌가... 그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모두 일상을 어느 정도는 무덤덤하게 또 어느 한편으론 꿀꿀하게 그리고 있지만 서하진은 일상의 환상보다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자신의 상처의 흔적들을 소설로 엮으면서 독자들에게 위로를 받으라니... 이런 어폐가 없다. 하지만 다 읽고 가만히 책을 쓰다듬으며, 접었던 대목을 다시 펼치며 작가가 내게 바란 위로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건 어쩌면 인생에 선물은 없다는 것, 일상에 환상은 없다는 것, 우리가 꿀꿀하게 살아가는 것, 그 사실을 일깨우려 했던 것이 바로 작가가 말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찌 됐든 상처는 끊임없이 생길 것이고 그 상처 또한 시간이 흐르면 일상 속에서 치유되고 또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또 다른 상처에 맞설 수 있지 않겠는가.  

<요트>에서는 집값이 오르자 집을 팔아 작은 데로 옮기고 나머지 돈으로 요트를 사서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남편, 그 남편을 포기시키려는 아내. 그러다 집을 나간 아이를 구슬리는 방편이 되는 요트. 남편을 꼬드기지 말라고 요트 여행을 부추기는 남편 친구를 만난 아내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꿈에 사로잡힌 한때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저의 꿈이란, 종이작업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작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제법 문청 소리를 들었거든요. (...) 왜 포기했는가. (...) 매일 단어가 그 많은 책들이 담고 있는 언어가, 단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들이 내 나날 속으로 전혀, 한치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스스로 돌연한 영감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헛된 언어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나날이 낡아가는 상상력처럼 그 깨달음도 서서히 왔습니다. (...) 요트 여행, 그 오랜 꿈이 좌절된다면 남편도 허무해지겠지요. 그렇지만 곧 잊고 살아갈 것입니다. 꿈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요.”

<비망록, 비망록>에서는 어머니의 둑음, 집을 나간 아버지의 불륜 연애사가 적혀있는 수첩을 읽는 아들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그 어머니의 지옥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했다. 진실이 고통임을, 정직하다는 것이 씻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보다 그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였다.”

<농담>은 사랑이나 공감 등보다는 현실적인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따져 그럭저럭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을 마치 계획뿐인 일상처럼 하던 커플에게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아내의 작은 반란이 일으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 전개과정과 남자의 행동에 따라 여자가 하는 생각, 의문 등의 심리변화가 흥미롭다.

<퍼즐>에서도 상대를 얕잡아봤던 여자의 생각이 재밌다. “지은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로서는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보다 그가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자신이, 안이하고 미지근하게 대처했던 그 모든 순간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대책을 찾을 것이나, 그 대책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너무도 막막한 것이므로 남편이 결국은 회사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판단, 늘 그랬듯 무리수를 두지 않으리라 여겼던 그 치명적 실수. 언제, 어떻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던 것일까. 이 일이 자신의 인생 최대의 실수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밀려들었다.”

<시간이 흘러가도>에서도 비슷하다. “언제쯤이었을까. 남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나는 이제 지쳤어, 라고 말했을 때 그건 중대한 신호였지만 나는 깨닫지 못했다. 나는 고래 심줄이 아니야, 라고 했을 때는 내 안의 뭔가가 움찔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무시했다. 나는 두려웠다. 모든 일은 서서히, 내가 방심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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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엔 바쁘기도 하고 정신도 없고,
정말 많이 못 읽었다.

이번 5월엔 다시 화이팅해야지...

61. 비틀거리는 여인, 미시마 유키오, 서커스
62.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정운영, 웅진
63. 프라하의 소녀시대, 요네하라 마리, 이현진 옮김, 마음산책
64.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 이경혜 다듬어 쓰고, 윤석남/윤기언 그리다, 알마
65.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 조병준, 예담
66.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창비
67. 마지막 토론, 짐 레러, 우정엽 옮김, 랜덤하우스
68-69. 에이프릴 풀스데이, 상/하, 브라이스 코트니, 안정희/이정혜옮김, 섬돌
70. 절망이 아닌 선택, 디오도어 루빈, 안정효 옮김, 나무생각
71. 마이너리그, 은희경, 창비
72. 요트, 서하진, 문학동네

제일 좋았던 건 역시 은희경 쌤 책이었다.

그 동안 아끼던 <마이너리그>도 읽었는데, 재미와 냉소, 장난 아니다.

Before and after 를 비교해보는 재미랄까. 근데 이거 지금 1+1이다. 미쳐...

암튼 4월은 "내 사랑, 은희경"의 달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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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아닌 선택
디오도어 루빈 지음, 안정효 옮김 / 나무생각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좋아하는 한 친구가 젊은 시절,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에서 읽고 “인생의 특별한 책”으로 꼽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절망 대신에 선택을 하라, 또는 절망에 빠진 당신, 이 책을 읽어라... 등의 암시를 주는 제목부터 멋지다. 원제는 <Compassion and self-hate>인데 한글 제목이 더 근사하다. 목적의식을 확연히 드러내주지 않는가. 누군가 절망에, 우울에 또는 슬픔에 빠졌다면 한번쯤 들여다보고 싶을 것 같은 책이다.

맞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젊은 시절, 자신에 대해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을 때,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될 때,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속수무책일 때 또는 세상의 태클에 맞서 어떻게든 이 세상을 즐겁고 유쾌하게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를 때... 그런 때 읽으면 딱인 책이다.

사실 지금 내 나이에 읽기에는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난 이미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세상 앞에서 엄청나게 자빠지며 깨져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헤매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황당한 새로운 케이스나 세상의 태클엔 어이가 없고 엄청 속상하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충분한 애정과 관대함이 있기에 그 무엇도 무섭지는 않다. 머리가 특히 좋은 것도 아니고, 재벌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쭉쭉빵빵 착한 몸매에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만한 예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 평범한 나를 사랑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많은 예의 자기증오를 나는 정말 심하게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일에 있어선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나 경우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아무리 너그럽자고 해도 잘 안 된다. 최근에 정말 재밌게 읽고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받아들였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으나,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철학적인 면에서 풀어낸 ‘인간적인 책’이라면, 이 책은 좀 더 실용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사랑과 결혼’이나 ‘나이 먹기’ 등등에 관한 부분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눈여겨보면 정말 좋을 부분이었다.

이 책이 독자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려고 애쓰고 또 설득하려는 바는 바로 개나 소나 널려있는 누구나처럼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당신을 사랑할 줄 알게 만드는 법이다. 그렇다고 위에서 열거한 총명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나, 재벌집 자식이나, 김태희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어떤 이유로든 절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은 없기에 어떤 순간에든지 인간은 절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 완벽하고, 모든 이들에게 완벽하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좋은 인간성에 실수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에 이르지 못하면 우리는 자기증오에 빠진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예를 보면 다양한 자기증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내 모습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직, 간접적인 자기 증오의 예시를 제시한 저자는 많은 부분을 자신에게 어떻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우리의 인간적인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교묘한 계획을 세우고, 공상도 한다. 그들은 전체적인 인간의 조건을 혐오하고, 그들 자신이 지닌 인간성의 증거는 견디기 힘든 역겨움을 자극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인 만큼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인간성의 증거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착하기만 한 것은 인간적인 특성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된 듯한 느낌의 뒤에 깔린 전능함의 환상과 자기를 희생시키는 순교의 환상은 둘 다 똑같이 화려하고, 둘 다 실질적인 자아와 인간적인 조건과 인간의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양상을 지닌다.’ 또한 인간이기에 힘든 세상을 산다. ‘인생은 고달프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복잡한 정도 이상의 어떤 존재다. 또한 우리들은 세상에서 가장 민감하고, 상처받기 쉽고, 의식을 많이 하는 동물이다.’

결국은 인간으로서 일상을 사는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들 대부분이 취하는 가장 용감한 행동은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삶이 우리들을 위해 준비해놓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삶과 세상이 얼마나 예측하기 힘들고 고생스러운가 하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리 억제가 되었다고 해도, 어느 만큼이나마 우리들이 간직하고 있는 의식과, 우리들의 약점과, 우리들의 민감성과, 우리들의 감정을 고려해보면, 이것은 절대로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절망에 대한 대처법으로 생각하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저자의 의견도 너무 솔직한 진실이라 받아들이기 싫지만, 진실인 걸 어쩌랴. ‘사랑은 의사 소통과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사랑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광범위한 환상의 집중과 기대는, 그나마 이렇듯 제한되었지만 가치 있는 가능성들을 파괴하는, 냉소적이고 괴로운 시각을 유발한다. (...) 결혼은 가장 보람차고 풍요하게 살아가는 길이 될 가능성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변신을 이루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에도 변함없이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직도 개인적인 욕구와, 포부와, 기본적인 관념과, 고민거리들을 간직한 개인들 그대로이다. 결혼생활은 그 자체의 기쁨과 고민거리도 역시 내포한다.’ 간혹 친구가 “저 사람이 저래도 결혼하면 바뀔 거야...” 등의 말은 결국 자신을 위로하려는 말임을 안다. 자신도 자신을 바꿀 수 없는데, 타인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저자가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우리도 이렇게 되도록 노력한다면, 아니 적어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결코 절망에 빠진다거나, 인생을 포기하는 일 따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대하듯 나 자신을 대한다. 그를 존중함으로써 나는 인간의 조건이 지닌 모든 양상에 존엄성을 부여한다. 그를 관찰함에 있어서 나는 그가 인간적인 많은 면모를 과시하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 그가 인간이고, 그의 존재 전체가 인간이어야만 하고, 나는 인간다운 면을 존중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는 그에게 어떤 가혹한 심판도 내리지 않으리라. 존재하는 그대로의 그를 모든 면에서 받아들인다면, 그는 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하고, 나는 그를 해치지 않을 터이며, 그를 해칠 수가 없다.’

‘나는 나다.’

덧붙임: 2004년에 나온 개정증보판, 460여쪽의 책으로 읽었는데, 책값이 19,800원이었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땐 워낙 두꺼워보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펴보니 한 쪽에 겨우 22줄이었고 누렇게 변한 종이가 마치 옛날 전집류 책을 연상케 해, 책값이 비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말해준 이유가 완전히 납득이 가진 않았으나, 자신이 만든 책이 아니었음에도(그리고 기분 나쁘라고 한 얘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빴을 텐데도...), 성실한 답변을 주신 나무생각 편집부 김팀장님께 감사말씀 드린다. 좋은 책이고 또 옮긴이의 말씀처럼, 누군가에게 ‘자살’을 막아줄 정도의 역할을 한다면 그깟 몇 천원쯤이야... 안 그렇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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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2007-05-0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 한켠에 고이 모셔 놓은 책이랍니다...^^
읽어야겠네요...

진달래 2007-05-0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셨구나... ^^ 책은... 좋았어요. (가격만 빼고 다~아요.) ^^;;
 

일을 해야 하는 토요일인데, 그리고 만남은 오후 4시일 뿐이데… 아침부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참나… 선보러 나가도 이리 설레진 않겠구만…’ 그래서 괜히 빨래하고 청소하고 커피도 마시며 왔다갔다… 더구나 이번엔 친한 친구들이 은희경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모두 다른 모임 때문에 못 나오니, 혼자 가려는 부담감도 있었다. 그러다 시간을 보고 깜짝 놀라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거울을 보니, 안 하던 마스카라까지 했는데도 평상시보다 안 예쁜 것 같아서 잠시 속상했지만, 그런다고 안 예쁜 얼굴이 예뻐질 것도 아니고… 그리고 뭐, 선생님이 내 얼굴 보나… 그래서 서둘러 나왔다. 지난번에 성석제 선생님 만나러 갈 때는 좀 늦어서 이번엔 미리 미리 서둔 것이다.

떡을 주면 떡(!)하니 나타나겠다는 한 친구의 말을 믿고 떡집에서 떡도 샀다. 6개월째 만원의 행복을 하며 언니들에게 얻어만 먹는 내가 거금을 투자해서 맛난 떡을 산 것이다. 혹시나 그 친구가 안 오면 전날 밤에야 ‘나도 시간 되면 4시에 맞춰갈게’라고 문자를 보내준 친구랑 함께 먹으면 될 터였다. 은희경 선생님한테 사인 받을 책 5권(!)에다 떡, 게다가 요즘 읽는 책, 친구한테 선물할 책까지… 한 짐을 들고 강남역으로 갔다. 지하철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옆 여자가 나를 치면서, “저기요, 저거…” 한다. 악~~~~~~~~~~~~~~~~~ 빌어묵을… 책은 무거워 발밑에 놓았다 강남역이라는 소리에 서둘러 읽던 책까지 쇼핑백에 넣고 나오면서 선반위에 얹은 떡은 떡(!)하니 잊은 것이다. “어머, 어머… 감사합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역시 푼수를 안 떨면 진달래가 아니지…’ 속으로 그런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시간도 많이 남았고 떡도 챙겼으니…


4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의 날씨는 더웠고 강남에 사람들은 무지 많았다. 더구나 떡과 책까지 잔뜩 든 나는 힘이 들 정도였다. 무거워서 땀을 뻘뻘 흘리다, 편의점에서 물도 하나 사서 마시고 교보에 도착했다. 서둘러 지하로 내려가 은희경 선생님과 낭독을 함께할 이병률 시인의 책, “바람의 사생활”도 두 권 샀다. 하나는 친구 주려고. ‘암튼 오지랖도 넓지? 하하하…’ 책값을 계산하려는데, 어떤 아저씨 하나가 쳐다보는 것 같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근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한층 더 내려가려는데, 숨이 탁 막혔다. 은희경 선생님이 바로 앞에…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두리번하고 계셨다. 2시에 서울문고에서 사인회를 하고 오신 것일 거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 그래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어리둥절하시는 선생님을 지나쳐, 곧바로 낭독회장으로 갔다. 벌써 사람들이 와 있다. 아… 아는 분들도 좀 있다. 교보에 아는 분들이… ^^;; 이런저런 인사를 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버스가 막혀 늦게 온다는 친구 땜에 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낭독회장은 금새 꽉 찼다. 곧 이어 은희경 선생님이 들어와 자리를 잡으셨는데, 바로 옆자리에 앉은 분, 바로 내가 “바람의 사생활”을 살 때, 옆에 계셨던 낯익은 분이었다. 책 안의 사진… 그래서 낯이 익었나 보다. ‘혹시나 내가 본인의 책을 사는 걸 보셨을까?’ 궁금해졌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럴 때 시인의 기분은 어떨까… 정말 궁금해진다. 우연히 책방에 들렀는데, 익명의 독자가 자신의 책을 두 권 가슴에 안고 가는 모습을 보면… 나 같음 째지게(^.~) 기분 좋을 것 같지만 말이다. 헤헤…

출판사에서 나오신 분인지 젊고 잘생기고 목소리까지 근사한 ‘오빠’가 사회를 봤다. 요즘은 출판사도 얼굴 보고 뽑나… 앉아서 기다릴 때 왔다 갔다 하는 출판사분들 봤는데, 이사님 한 분, 짱 잘 생겼다. 그러고 보니 출판사 다니는 내 친구…도 아주 귀엽게 생겼다. 이런… 추녀가 미남을 밝힌다는데… 난 추녀가 아니니까 그만하고… 헤헤…

이병률 시인은 참 따뜻하고 진지해 보이는 분이었고, 은희경 선생님은… 목소리가, ‘중성적인 은희경 문학의 매력’에 비해 너무나 달콤했다. 처음엔 두 분의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졌는데, 은희경 선생님은 너무나(!) 여성적인데다 또 질문 끝마다 애교 섞인 말을 한마디씩 덧붙여서 청중들이 즐겁게 웃곤 했다. 난 가슴이 벅차 무슨 말이 오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작가가 바로, 그 동안 <상속> <새의 비밀> <비밀과 거짓말> <마이너리그> 그리고 이번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까지, 나를 단번에 매혹시킨 작가였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그녀가 저 앞에서 조근 조근 얘기를 하고 웃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이 그렇게 아름답다니…






이번 작품은 그 동안의 치열했던 글쓰기와는 다르게 자기 자신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대답이 좀 어렵게 느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은희경 선생님이 “너무 어렵게 말했나요?” 하셔서 깜짝 놀랐다. 저 여자(!)는 어떻게 내 생각까지 미리 읽고 있는 것일까…

은희경이 하나의 브랜드이며 장르라고 평론가들이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은희경 선생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혹시 거짓말이 아닐까요?” 해서 또 다시 청중들이 웃었다. 은희경 선생님은 서정주 시인의 예를 들면서 갈 때까지 갔다가 끝에 가서 작파하는 것, 그것이 난제라고 했다. 경계에서 서성거리다 담을 넘는 게 아니라 거기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선 또한 에피소드나 사소한 것들, 감각 등의 경험이 재료가 되어서 어떤 계기에 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다이어트 문제를 다루었는데, 지방축적을 해야 살아갈 수 있었던 원시인의 삶에서 이젠 문명화 시대가 되면서 인간이 타고난 조건을 반해서 살아야 하는, 즉 살아가는 패턴이 달라진 딜레마에 빠졌다고 설명하셨다. 사생아로 태어난 주인공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거부하는 행위, 그것이 다이어트로 나타난 것이다. 문명 속에서 살지만 결국 인간은 ‘동물의 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단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누군가는 나를 멸시할 수밖에 없듯이, 아름다움을 좇으면 결국 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하는 게 아니겠는가. 어떻게 저렇게 철학적일 수 있을까…

먼저 은희경 선생님이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의 한 대목을 낭독하셨는데, 나직하게 깔리는 음악에 너무나 진지하고 달콤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귓가에 와서 착착 감겼다. 그 대목이 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한편의 시였다!

‘이건 하지 말자…’ 하는 어떤 게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은희경 선생님은 이미 여러 곳에서 밝혔듯이 모범생처럼 살아온 얘길 하셨다. ‘첫눈에 반해본 적이 없다’고 하신 것은 인생을 스스로 늘 너무 긴장하고 삶으로써, 어떤 일이 좀 재미있으려고 하면 해서는 안 되는 일로 못하셨다고 한다. 유일하게 절제를 하기 힘든 것이 술이라고 하시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즉 자기 자신에게서 해방이 되면 마치 숨을 쉬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고.

곧 이어 이어진 이병률 시인의 낭독은 조용하고 고요한 느낌을 주었다. 착한 목소리였고 따뜻하게 해주는 느낌이어서 은희경 선생님의 문학의 그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었다.

원고를 쓰는 장소에 대한 질문에서는 초고를 쓸 때, 익숙한 곳에서는 시작이 어렵고 어디 먼 곳으로 떠나서 소설 쓰기를 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다보면 그 장소를 떠날 때, 한, 두 편의 작품이 완성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그 경험이, 그 공간이 또 다른 소설이 되기도 한다고 하셨다.

작가로서 기쁠 때는, 제대로 썼다고 느낄 때라고 하셨다. <지도중독> 얘기를 하시며 미국에서 곰을 봤을 때, 마치 “곰, 안녕!” 하는 느낌을 받고 그 느낌을 작품에 전하려고 하셨다며, 지도를 전혀 못 보는 사람과 지도 중독에 걸린 사람들을 통해 결국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구나 하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단다.

그런데 한참 이병률 시인과 이런 대담을 하시다가, 앞의 한 남녀 커플을 보시더니, 갑자기 “낯이 익어요. 지난번에 홍대에서 만났을 때, 오셨었죠?” 하시며 자신의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읽기를 권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들으셨다며 걱정을 하셨다. ‘선생님도 오지랖 넓으세요. 별 걱정을 다 하시고…’ 그래도 그건 선생님의 독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신 작품,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은 주인공의 일종의 슬럼프를 상징하는데, 무겁고 답답한 느낌을 그리셨다고 한다. 하지만 “꼭 끝에 변할 것 같지 않나요?” 하고 물으시면서 그런 걸 알아냈으니 알려주자라는 것보다는 ‘이걸 알아보겠다! 왜 어둡고 암울한가!’ 그걸 독자와 함께 알아보자는 것이었다고 하셨다. 제목이 만화 같아서 말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고집한 이유는… ‘마치 그 별을 보고 간다는 느낌이어서’라고 하셨다.

얘기가 다 끝나고 질문 시간이었다. 질문 하실 분, 손을 들라고 하셨는데, 죽 둘러봐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 내가 손을 들었다. 내겐 질문거리가 너무도 많았다… 내가 얼마나 이 시간을 기다렸던가 말이다. 위에 쓴 것처럼, 선생님의 문학을 혼자 읽고 느꼈을 때보다 달콤한 목소리며… 만나서 무지무지무지(!) 반갑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한 첫 질문. “돈은 많이 버셨어요?” 뜨~악 하시는 선생님과 청중들… “이 책, 작가의 말에서 약수터의 네 군데 물줄기 가운데 하나에 가서 서라고 하시니 얼른 돈 줄에 가서 서셨다고 하셨길래…” 그제서야, “아…” 휴~ 다행이다. 예전엔 돈 질문을 받으면 돈이 충분하다고, 많다고 하셨는데, 이젠 더 벌어야겠다고 말씀하신다고… 사실 난 이 말을 제대로 못 들었다. 질문을 한 것에 너무 흥분을 해서 나중에 친구에게, “선생님이 뭐라고 답변하셨냐?”고 물었다.

그리고 곧 이어 “건강과 애정에도 문제없으시죠? (돈 다음에 가서 서신 줄이 건강과 애정이었다!) 근데 사실 선생님만 돈을 버는 게 아니구요. 저도 요즘 선생님 덕에 한 밑천 잡고 있거든요.” 의아해하는 사람들… “책 구매 인터넷 사이트 중에 알라딘이라고 있는데, 거기에선 저희들이 어떤 작품을 읽고 리뷰를 써요. 그럼 그 리뷰를 읽고 도움이 되었다 싶어서 책을 구매할 때, '땡스투'라는 게 있는데, 그걸 누르면 사는 사람, 리뷰를 쓴 사람에게 모두 책값의 1%가 주어집니다. 제가 선생님 작품에 대한 리뷰를 거기에도 올렸는데, 두 번이나 메인에 떴거든요…” 선생님은 제 아이디를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머뭇거렸더니, 알려주기 곤란하냐고 다시 물으시더군요. “아뇨… 그건 아니고 제 아이디가 저하고 좀 안 맞아서요…” 그랬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왜요? 아이디가 <캔디걸> 같은 거예요?” “비슷합니다.” 하하하… <캔디걸>, 진달래와 비슷하죠? (참, 알라딘에선 카페인이고 카페인의 작은 서재랍니다.)

문학적인 질문도 하나 드렸습니다. 출판사에 질문했을 때, 작가에게 직접 묻는 게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날씨와 생활>에서 책을 그렇게 많이 읽고 자신이 무척 똑똑하고 조숙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어린이가 끝에 가서, 결국 아무리 인생의 암호를 책을 통해 많이 깨우쳤다 하더라도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을 다 예측할 수 없는, 어린아이는 어쩔 수 없는 어린아이니까, <아, 그렇게 많은 인생의 암호를 해독했음에도 이 세상에 놀랄 일이란 전혀 없는 걸까.> 대신에 오히려 반대로 <아, 그렇게 많은 인생의 암호를 해독했음에도 이 세상에 놀랄 일이란 얼마나 많은 걸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했더니, 선생님의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답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가 자신이 무척 심각하게 예측했던 대로가 아니고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현실적인 결론을 보면서, 그것은 굉장히 놀랄 일이었고 놀랐지만, 역설적으로 결국 이 세상엔 놀랄 일이란 전혀 없는 것이란 걸 뜻한다고 하셨다.

사실 질문거리가 더 많았지만… 이미 시간이 거의 1시간 30분이 넘어가고 있었고, 다른 분들도 질문을 하셔야 하니까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1940년대에 제일 많았던 이름이 영자이고 2004년엔 서연이가 제일 흔한 이름인 것처럼 이름도 하나의 시대상, 인물상을 반영하는 건데, 왜 굳이 영문 이니셜을 쓰시는지, 왜 그렇게 경음을 고집하시는지, 왜 번역투 문장을 많이 쓰시는지… 냉소적이면서도 멋 부리는 문체도 많이 변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좀 듣고 싶었다… 에휴~ 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지. 이번만이 유일한 기회는 아니니까. 김해에 있더라도 또 은희경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서슴없이 다시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사인회. 이병률 시인께도 사인 받았고, 줄을 길게 늘어선 은희경 선생님 팬들을 보면서 난 사진도 찍고, 갖고 간 책마다 은희경 선생님 사인도 다 받고, 준비해간 책 한권은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끝까지 남아 있다가 친구와 둘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 실컷 떨었다. 친구한테, “야, 아까 내 질문, 넘 유치하지 않았냐? 넘 쪽팔리고 떨리더라…” 했더니, 친구는 평소의 쿨하고 멋진 성격답게, “아냐~ 애정이 듬뿍 담겨있던 걸…”. “음… 그래… 그럼 됐다… 내가 아무리 푼수를 떨었어도 내가 가진 그 애정이 전달됐으면 더 바랄 거 없지, 뭐…”

친구는 리뷰를 정말 잘 쓰는 친구다. 바쁜 와중에도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그리고 읽은 책마다 얼마나 리뷰를 잘 쓰는지 감탄할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처럼 한국문학을 사랑하고 한국문학의 미래를 걱정하고 어떻게 하면 한국문학을 제대로 더 알릴까 고민한다는 것이다. 친구의 리뷰에는 늘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그 마음을 나도 본받고 싶다. 어떤 이의 리뷰를 보면 가끔 드는 생각이, ‘이분은 재미로 소설을 보는 게 아니고, 꼬투리를 잡고 비난하고 판단하려고 책을 읽었나보다’고 생각 드는 것이 있다. 작가들도 완벽하지 못한 인간인데, 그리고 작가마다 모든 작품이 모두 100% 순도를 자랑할 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다. 친구의 책에 대한 사랑, 이해, 공감 그리고 책 안에서 먼저 장점을 보려는 너그러움… 그것이 난 정말 부럽다. 

“짜~아식~! 넌 정말 멋진 넘이야~!”

그날 우리의 탁자에는 많은 요즘 젊은 한국작가들이 올랐다. 은희경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 성석제 윤대녕 김영하 김연수 권여선 박민규 신경숙 공지영 들이었고 신인작가로는 <신기생뎐>의 이현수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의 오현종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캐비닛>의 김언수, <고래>의 누구지? (미치겠다. 작가 이름이 기억 안 난다. 천명관? ㅠ.ㅠ) 등등이었다. 아, 아무튼 우리 한국문학 만세다~! 그 흥분의 여세를 몰아, 집에 가자마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한국문학은 우리가 지키자!” 친구의 답변 문자는, “음하하! 한국문학을 위하여!!! ^^” 그래, 우리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냐. 우린 독수리 2형제다!   

정말 행복한 만남이었다.

“참, 은희경 선생님! 첫눈에 반하는 거요, 그거… 암것도 아니에요… 작품을 통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받으면서도, 제가 선생님께 알려드릴 건 이거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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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4-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황중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리스 2007-04-3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나 자세한 글이라니요.. ^^; 덕분에 마치 현장에 있었던것처럼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7-04-30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잘 보고 글도 잘 읽었습니다.
은희경님 사진보다 떡에 더 눈길이 가는 건 제가 원초적인 인간이라 그런지...-.-

진달래 2007-04-3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감사합니다. 전 예전에 한번 로쟈님의 리뷰보고 낭패를 당했던 적이 있어요. <라캉과 정치>를 읽어볼까 말까... 고민하다 로쟈님의 리뷰를 보고 선뜻 집어들지 않았겠습니까? ^^;; 근데 4분의 3 읽고 던졌어요. 당최 뭔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머리 나쁜 애들은 읽지 말라고 한 마디 좀 써 주시지... 헤헤...
낡은구두님, 감사합니다~ 제가 푼수를 좀 잘 떱니다. 속으로 그게 진솔한 거야... 하며 착각하고 살지요. ^^;;
체셔고양2님, 담엔 오셔서 아는 척 하세요~ 그럼 떡, 드립니다. ^^ 저 떡들, 정말 맜났었어요. ^^;;

로드무비 2007-05-02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신폭신 몰랑몰랑 맛있어 보이는 떡과 상냥하고 예쁜 소설가와
성실하고 멋진 독자 카페인 님께 추천!^^

레인보우 2007-05-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가지 못한 사람들 배아프게 쓰셨네요...^^
그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듯...^^

진달래 2007-05-0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감사합니다~ ^^* 참, 추천(!)해주신 <낯선 사람들> 어제 막 읽었어요. 음... 전 김영현을 잘 몰라서, 대체로 좋았어요. 앞의 작품들도 봐야 비교가 가능하겠지만요. ^^;; 덕분에 읽었네요. ^^
레인보우님, ㅋㅋ 오시지... ^^ 분위기, 정말 좋았어요. 은쌤이요, 넘 여성적이고 똑똑하고 또 애교도 있으시고 목소리도 넘 달콤하고... 암튼... 행복했어요. ^^

프레이야 2007-05-09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보니 은희경님 인상이 참 좋으네요.
자세하게 쓰신 님의 멋진 시간과 느낌, 이제야 맛보고 갑니다.^^
떡도 하나~

진달래 2007-05-09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실제로 뵈면 훨씬 예쁘십니다. 게다가 애교까지... 참 여성적이세요. ^^
떡도 무지 맛있었는데... 헤헤...
 
에이프릴 풀스 데이 - 상 - 데이먼 코트니는 만우절에 떠났다
브라이스 코트니 지음, 안정희.이정혜 옮김 / 섬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조카가 이제 막 14개월을 지났다. 시험관 아기를 몇 번을 하고도 실패한 엄마와 아빠의 결혼 생활 18년 만에 기적적으로 자연임신이 되었고, 나이 40이 넘은 엄마라 비만에, 임신당뇨에 마지막 임신 2개월은 병원에 입원했던 상태로 태어나느라, 우리 가족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관적으로 그렇게 귀하게 태어나는 아기라 우리 가족 모두 아기가 혹시 어떤 장애를 갖고 태어나더라도 어떻게든 키운다는 암묵적인 합의에 도달해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것이 얼마나 무지하고도 무모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을, 얼마나 큰 보살핌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가. 가족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데이먼은 선천적으로 혈우병을 갖고 태어났고 출혈이 일어날 때마다 수혈하던 중에 에이즈에 감염되었다. 더구나 그때는 에이즈라는 병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전문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간호사나 의사들도 적절한 치료법은 차치하고라도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도 모를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먼은 ‘위대한 데이먼’이라 불릴 정도로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살면서도 늘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산다. 데이먼의 병은 가족에게 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축복이었으며 행복의 근원이었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그런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면, 난 어땠을까?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늘 불행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결국엔 나도 가족도 파멸시키지 않았을까. 어쩌면 평범한 많은 가족이 그런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데이먼은 자신의 장애에 대해 불평하거나 그 장애에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더 밝고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았다. 더구나 혈우병 치료제를 통해 에이즈라는 피할 수 없는 둑음의 병까지 얻었으니 그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런데도 데이먼은 위대했던 것이다. <인간시대>에 나왔던 원경이가 생각난다. 선천성 면역 결핍증으로 태어나 엄청난 고통과 매일 싸워야 하는 어린 원경이도 데이먼처럼 늘 둑음을 안고 살아서 그런지 누구보다 더 조숙하고,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데이먼은) 삶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높여주었고 우리에게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 그는 성인은 아니었지만, 우리 너머에 있는 삶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글의 화자는 여럿이다. 데이먼의 아버지가 대부분 글을 쓰고 있지만, 데이먼 본인을 비롯해 엄마, 여자친구, 형들까지 그들의 시선으로 데이먼과 데이먼의 병을 함께 살았던 일을 사랑과 함께 서술하고 있다. 데이먼은 ‘사랑’에 관한 자신의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사랑의 책이다. 그와 가족 여자친구 친구 들에 관한 애정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데이먼의 마지막 6년간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함께했던 셀레스트의 말이다. ‘우리 사이에 이 모든 일은 단지 “그게 다야?”였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근심과 두려움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데이먼은 내게 힘을 주었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만족하게끔 해 주었으며, 심지어는 나의 성장 과정을 자랑스럽게 여기게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가족이 되어,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 데이먼의 엄마가 하는 말이다. ‘그(데이먼)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작은 것을 주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그에게서 받았다. 그가 내 인생에서 가버리고 없는 지금, 그것들은 데이먼이 내게 주고 간 선물이 되었다. 멍투성이에 까치머리를 하고 두 눈을 반짝이던 데이먼. 부목을 한 다리 때문에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뻣뻣하게 걷던 데이먼. 데이먼을 잃은 슬픔이 가실 날이 올까?’

또한 아버지는 만성병을 가진 부모로서 죄의식을 가진 부모가 겪어야 했던 심리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잘 모르는 병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곁들이고 불합리하고 권위만 내세우는 비인간적인 병원제도를 고발한다. 혈우병이나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고 병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 마음도 곳곳에 나타나 있다. ‘부모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고, 너무 빨리 지나간다. 다른 많고도 중요한 일이라는 방해요소들과 뒤섞여서 결국은 우리가 이 시간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조차 의심하게 되니...’ 그리고 데이먼은 말한다. “병이란 것은 우리가 적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속적인 적응이 질병을 얼마만큼 잘 다루는가 하는 측정 수단이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다면,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 사람이 실제로 질병을 더 쉽게 다룰 것입니다. (...) 자신이 아는 것과 배운 모든 것을 이용해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적어도 이것이 제가 원하는 인생이고, 그 인생은 길고 완전합니다.”

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던 위대한 데이먼처럼 우리도 어떤 병이든 사랑과 연민으로 함께 살아가자. “아빠,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에요.”

덧붙임: 오, 탈자 등 자세한 사항은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참고하겠다고 하셨구요. 읽는데 무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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