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 풀스 데이 - 상 - 데이먼 코트니는 만우절에 떠났다
브라이스 코트니 지음, 안정희.이정혜 옮김 / 섬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조카가 이제 막 14개월을 지났다. 시험관 아기를 몇 번을 하고도 실패한 엄마와 아빠의 결혼 생활 18년 만에 기적적으로 자연임신이 되었고, 나이 40이 넘은 엄마라 비만에, 임신당뇨에 마지막 임신 2개월은 병원에 입원했던 상태로 태어나느라, 우리 가족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관적으로 그렇게 귀하게 태어나는 아기라 우리 가족 모두 아기가 혹시 어떤 장애를 갖고 태어나더라도 어떻게든 키운다는 암묵적인 합의에 도달해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것이 얼마나 무지하고도 무모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을, 얼마나 큰 보살핌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가. 가족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데이먼은 선천적으로 혈우병을 갖고 태어났고 출혈이 일어날 때마다 수혈하던 중에 에이즈에 감염되었다. 더구나 그때는 에이즈라는 병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전문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간호사나 의사들도 적절한 치료법은 차치하고라도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도 모를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먼은 ‘위대한 데이먼’이라 불릴 정도로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살면서도 늘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산다. 데이먼의 병은 가족에게 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축복이었으며 행복의 근원이었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그런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면, 난 어땠을까?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늘 불행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결국엔 나도 가족도 파멸시키지 않았을까. 어쩌면 평범한 많은 가족이 그런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데이먼은 자신의 장애에 대해 불평하거나 그 장애에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더 밝고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았다. 더구나 혈우병 치료제를 통해 에이즈라는 피할 수 없는 둑음의 병까지 얻었으니 그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런데도 데이먼은 위대했던 것이다. <인간시대>에 나왔던 원경이가 생각난다. 선천성 면역 결핍증으로 태어나 엄청난 고통과 매일 싸워야 하는 어린 원경이도 데이먼처럼 늘 둑음을 안고 살아서 그런지 누구보다 더 조숙하고,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데이먼은) 삶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높여주었고 우리에게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 그는 성인은 아니었지만, 우리 너머에 있는 삶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글의 화자는 여럿이다. 데이먼의 아버지가 대부분 글을 쓰고 있지만, 데이먼 본인을 비롯해 엄마, 여자친구, 형들까지 그들의 시선으로 데이먼과 데이먼의 병을 함께 살았던 일을 사랑과 함께 서술하고 있다. 데이먼은 ‘사랑’에 관한 자신의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사랑의 책이다. 그와 가족 여자친구 친구 들에 관한 애정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데이먼의 마지막 6년간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함께했던 셀레스트의 말이다. ‘우리 사이에 이 모든 일은 단지 “그게 다야?”였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근심과 두려움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데이먼은 내게 힘을 주었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만족하게끔 해 주었으며, 심지어는 나의 성장 과정을 자랑스럽게 여기게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가족이 되어,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 데이먼의 엄마가 하는 말이다. ‘그(데이먼)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작은 것을 주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그에게서 받았다. 그가 내 인생에서 가버리고 없는 지금, 그것들은 데이먼이 내게 주고 간 선물이 되었다. 멍투성이에 까치머리를 하고 두 눈을 반짝이던 데이먼. 부목을 한 다리 때문에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뻣뻣하게 걷던 데이먼. 데이먼을 잃은 슬픔이 가실 날이 올까?’

또한 아버지는 만성병을 가진 부모로서 죄의식을 가진 부모가 겪어야 했던 심리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잘 모르는 병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곁들이고 불합리하고 권위만 내세우는 비인간적인 병원제도를 고발한다. 혈우병이나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고 병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 마음도 곳곳에 나타나 있다. ‘부모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고, 너무 빨리 지나간다. 다른 많고도 중요한 일이라는 방해요소들과 뒤섞여서 결국은 우리가 이 시간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조차 의심하게 되니...’ 그리고 데이먼은 말한다. “병이란 것은 우리가 적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속적인 적응이 질병을 얼마만큼 잘 다루는가 하는 측정 수단이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다면,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 사람이 실제로 질병을 더 쉽게 다룰 것입니다. (...) 자신이 아는 것과 배운 모든 것을 이용해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적어도 이것이 제가 원하는 인생이고, 그 인생은 길고 완전합니다.”

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던 위대한 데이먼처럼 우리도 어떤 병이든 사랑과 연민으로 함께 살아가자. “아빠,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에요.”

덧붙임: 오, 탈자 등 자세한 사항은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참고하겠다고 하셨구요. 읽는데 무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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