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아닌 선택
디오도어 루빈 지음, 안정효 옮김 / 나무생각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좋아하는 한 친구가 젊은 시절,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에서 읽고 “인생의 특별한 책”으로 꼽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절망 대신에 선택을 하라, 또는 절망에 빠진 당신, 이 책을 읽어라... 등의 암시를 주는 제목부터 멋지다. 원제는 <Compassion and self-hate>인데 한글 제목이 더 근사하다. 목적의식을 확연히 드러내주지 않는가. 누군가 절망에, 우울에 또는 슬픔에 빠졌다면 한번쯤 들여다보고 싶을 것 같은 책이다.

맞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젊은 시절, 자신에 대해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을 때,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될 때,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속수무책일 때 또는 세상의 태클에 맞서 어떻게든 이 세상을 즐겁고 유쾌하게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를 때... 그런 때 읽으면 딱인 책이다.

사실 지금 내 나이에 읽기에는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난 이미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세상 앞에서 엄청나게 자빠지며 깨져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헤매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황당한 새로운 케이스나 세상의 태클엔 어이가 없고 엄청 속상하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충분한 애정과 관대함이 있기에 그 무엇도 무섭지는 않다. 머리가 특히 좋은 것도 아니고, 재벌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쭉쭉빵빵 착한 몸매에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만한 예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 평범한 나를 사랑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많은 예의 자기증오를 나는 정말 심하게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일에 있어선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나 경우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아무리 너그럽자고 해도 잘 안 된다. 최근에 정말 재밌게 읽고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받아들였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으나,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철학적인 면에서 풀어낸 ‘인간적인 책’이라면, 이 책은 좀 더 실용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사랑과 결혼’이나 ‘나이 먹기’ 등등에 관한 부분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눈여겨보면 정말 좋을 부분이었다.

이 책이 독자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려고 애쓰고 또 설득하려는 바는 바로 개나 소나 널려있는 누구나처럼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당신을 사랑할 줄 알게 만드는 법이다. 그렇다고 위에서 열거한 총명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나, 재벌집 자식이나, 김태희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어떤 이유로든 절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은 없기에 어떤 순간에든지 인간은 절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 완벽하고, 모든 이들에게 완벽하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좋은 인간성에 실수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에 이르지 못하면 우리는 자기증오에 빠진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예를 보면 다양한 자기증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내 모습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직, 간접적인 자기 증오의 예시를 제시한 저자는 많은 부분을 자신에게 어떻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우리의 인간적인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교묘한 계획을 세우고, 공상도 한다. 그들은 전체적인 인간의 조건을 혐오하고, 그들 자신이 지닌 인간성의 증거는 견디기 힘든 역겨움을 자극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인 만큼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인간성의 증거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착하기만 한 것은 인간적인 특성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된 듯한 느낌의 뒤에 깔린 전능함의 환상과 자기를 희생시키는 순교의 환상은 둘 다 똑같이 화려하고, 둘 다 실질적인 자아와 인간적인 조건과 인간의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양상을 지닌다.’ 또한 인간이기에 힘든 세상을 산다. ‘인생은 고달프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복잡한 정도 이상의 어떤 존재다. 또한 우리들은 세상에서 가장 민감하고, 상처받기 쉽고, 의식을 많이 하는 동물이다.’

결국은 인간으로서 일상을 사는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들 대부분이 취하는 가장 용감한 행동은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삶이 우리들을 위해 준비해놓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삶과 세상이 얼마나 예측하기 힘들고 고생스러운가 하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리 억제가 되었다고 해도, 어느 만큼이나마 우리들이 간직하고 있는 의식과, 우리들의 약점과, 우리들의 민감성과, 우리들의 감정을 고려해보면, 이것은 절대로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절망에 대한 대처법으로 생각하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저자의 의견도 너무 솔직한 진실이라 받아들이기 싫지만, 진실인 걸 어쩌랴. ‘사랑은 의사 소통과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사랑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광범위한 환상의 집중과 기대는, 그나마 이렇듯 제한되었지만 가치 있는 가능성들을 파괴하는, 냉소적이고 괴로운 시각을 유발한다. (...) 결혼은 가장 보람차고 풍요하게 살아가는 길이 될 가능성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변신을 이루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에도 변함없이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직도 개인적인 욕구와, 포부와, 기본적인 관념과, 고민거리들을 간직한 개인들 그대로이다. 결혼생활은 그 자체의 기쁨과 고민거리도 역시 내포한다.’ 간혹 친구가 “저 사람이 저래도 결혼하면 바뀔 거야...” 등의 말은 결국 자신을 위로하려는 말임을 안다. 자신도 자신을 바꿀 수 없는데, 타인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저자가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우리도 이렇게 되도록 노력한다면, 아니 적어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결코 절망에 빠진다거나, 인생을 포기하는 일 따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대하듯 나 자신을 대한다. 그를 존중함으로써 나는 인간의 조건이 지닌 모든 양상에 존엄성을 부여한다. 그를 관찰함에 있어서 나는 그가 인간적인 많은 면모를 과시하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 그가 인간이고, 그의 존재 전체가 인간이어야만 하고, 나는 인간다운 면을 존중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는 그에게 어떤 가혹한 심판도 내리지 않으리라. 존재하는 그대로의 그를 모든 면에서 받아들인다면, 그는 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하고, 나는 그를 해치지 않을 터이며, 그를 해칠 수가 없다.’

‘나는 나다.’

덧붙임: 2004년에 나온 개정증보판, 460여쪽의 책으로 읽었는데, 책값이 19,800원이었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땐 워낙 두꺼워보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펴보니 한 쪽에 겨우 22줄이었고 누렇게 변한 종이가 마치 옛날 전집류 책을 연상케 해, 책값이 비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말해준 이유가 완전히 납득이 가진 않았으나, 자신이 만든 책이 아니었음에도(그리고 기분 나쁘라고 한 얘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빴을 텐데도...), 성실한 답변을 주신 나무생각 편집부 김팀장님께 감사말씀 드린다. 좋은 책이고 또 옮긴이의 말씀처럼, 누군가에게 ‘자살’을 막아줄 정도의 역할을 한다면 그깟 몇 천원쯤이야... 안 그렇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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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2007-05-0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 한켠에 고이 모셔 놓은 책이랍니다...^^
읽어야겠네요...

진달래 2007-05-0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셨구나... ^^ 책은... 좋았어요. (가격만 빼고 다~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