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풀빛 청소년 문학 5
도나 조 나폴리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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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는 열세 살이었다. 베네치아에 살고 있고 아버지는 곤돌라를 몬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참 낭만적이다. 낭만이 흘러넘치는 물의 도시에서 흔들흔들 여유자적하는 아버지의 곤돌라를 얻어 탈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로베르토가 살던 때는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였다. 무솔리니도 함께 대전을 치르고 있었으니, 이탈리아 자체가 격전장은 아니었지만 어디에나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공포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로베르토는 친구 메모와 유대인 친구 사무엘 그리고 형과 함께 미국 서부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영화를 보는 도중 극장에 갑자기 불이 들어오고 아이들은 모두 독일군에 의해 기차에 타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아이 셋이 기차에서 독일군의 총에 맞아 둑는다. 이런 비인도적인 일이~! 하며 분노가 일어나지만 전쟁 때이고 상대는 총을 든 외국병사들이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다행히 로베르토는 친구 사무엘, 유대인이라는 게 발각될까 봐 이름을 바꾼 엔조와 함께 멀리 외국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저기에서 끌려온 아이들이 하는 일은 길을 닦고 비행장을 만드는 것이다.

먹을 것도 모자라고 추위로 고생을 하면서도 로베르토는 한 아이에게 유대인이라는 게 들켜 먹을 것을 뺏기는 엔조와 자신이 먹기에도 모자라는 빵을 나눠먹으며 수용소 생활을 버틴다. 자세히는 몰라도 유대인을 학살한다는 히틀러의 방침을 어렴풋이 아는데도 아이들은 자신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는 유대인 소녀 자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준다.

“난 여자아이와 동생이 살아 있도록 도울 거야. 우리만의 특별한 권리가 생겼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그렇다. 그건 두 아이의 특별한 권리였다. 고마움의 표시로 소녀에게 돌 하나를 받고 행복해하는 로베르토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먹을 것이 모자라 몰래 달걀을 훔치다 로베르토는 적발되고 일부러 얻어맞을 짓을 한 엔조와 함께 기차를 타고 더 멀리 우크라이나까지 끌려가게 된다. 더운 지방인 베네치아에서 그대로 끌려온 아이들은 춥디추운 우크라이나의 수용소에서 둑어가고 둑은 이들의 옷이나 장화를 뺏기 위해 잠자는 동안 친구들을 심하게 때리기도 한다. 그 결과 배고픔과 추위에도 불구하고 늘 로베르토에게 이야기를 해주며 희망을 주던 엔조는 운명을 달리한다. “살아남아 너하고 같이 이 전쟁이 끝나는 걸 보고 싶어.”라고 말하던 엔조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 로베르토에게 ‘마음으로 싸우라’는 말을 남긴다.

친구를 그 차디찬 땅의 눈 속에 묻고 로베르토는 둑을 각오로 길을 나선다. 따뜻한 자신의 나라를 향해, 말도 안 통하고 먹을 것도 없어 눈을 먹으며 군인들의 눈을 피해 남쪽으로 향한다. 열세 살 로베르토가 혼자서 온몸으로 겪는 전쟁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인간을 인간 이하이게 만드는 전쟁은 로베르토로 하여금 유대인 소녀에게 받은 돌의 의미를 새기게 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압제자들에게 반대하려는 마음을 먹게 한다. 하지만 로베르토의 그 마음은 남하고 싸우고 남을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를 세우는 주춧돌이 되려는 생명의 창조와 희망적인 미래였다.

분명 로베르토는 자신이 치러야 할 전쟁을 이겼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새로운 세상을 이루었을 것이다. 꼽추 소년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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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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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이후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연수의 장편이 나왔다. ‘읽Go 듣Go 달린다’라는 작고 예쁜 산문집까지 선물로 달고서 내 품안으로 단숨에 뛰어들어 왔다. 하지만 난 알았어야 했다. 나를 주눅 들게 만들던 그 작가의 새로운 장편이 그리 만만치 않은 녀석임을… 하지만 두 번의 읽기로 이토록 내 마음을 꽉 차게 만들 줄도 또한 몰랐었다. 점점 밝아지는 수많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우연과 운명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 모두 진정한 ‘나’ 그리고 ‘내 존재’를 향한 노력이고 외침이리라. 그것은 그 어떤 이유에서든 ‘살아남으리라’는 나와 우리 세대, 아니 모든 세대, 모든 이의 외침이리라.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수많은 이야기가 시대별로, 인물별로 차근차근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펼쳐내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이야기라서 단번에 확 내 손안에 다 잡아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나’를 바로 이 장편에서 두 번의 독서로 찾아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화자인 나와 내 애인 정민의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로부터 작품은 시작된다. 때는 90년대 초, 민주화를 이루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학교와 사회는 난폭함과 독재가 판을 치고 학생운동도 여느 때보다 더 격렬한 때였다. 그 가운데 둘은 학생운동을 ‘남들처럼’ 하면서 또 남들처럼 ‘자연스러운’ 연애도 한다. 이렇게 보면 그 당시 세태를 다룬 세태소설 같다. 아니,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야기는 당시로서는 그 입수 과정도 이해하기 힘든 입체누드 사진을 갖고 있던 나의 할아버지, 공황장애를 겪고 결국 미쳐 자살한 정민의 삼촌 그리고 나룻배를 타고 성당에 나가던 정민의 외할머니,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헬무트 베르크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야기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그곳에서 보게 된 이길용의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 비디오 테이프, 불이농촌의 일본인 여식 레이와 강시우, 그에 얽힌 이상희와 붐붐 그리고 안기부와 프락치, 인도식당의 찬드리카, 피에르 루이스의 사진과 ‘빌리티스의 노래’… 또한 ‘내’가 추리해낸 각각의 인물들의 연관 관계, 우연일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이길용 가족의 히로뽕에 얽힌 이야기에서 밀항하려던 정민의 삼촌 이야기로 이어지며 모든 이야기들이 회오리처럼 선회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이야기가 여러 줄기의 강물에서 하나로 흘러드는 바다처럼 모이고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거대한 대양을 이루고야 만다.

결국 작품에 등장하는 그들의 세계는 각각 여럿이고 모두인 동시에 또 결국엔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같은 모습이면서 다른 모습이듯이, 우리가 조금씩 달라진 우리와 우리의 세계를 살듯이 나, 또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면서 여럿이고 결국엔 내가 사는 하나의 세상인 것이다. 그 어디에도 우연만, 필연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떤 한 가지는 거짓이고 또 한 가지는 진실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두가 들어있는 장편다운 장편, 진정한 장편이 바로 이 작품이다.

차근차근 시작했던 옴니버스의 단순한 이야기의 시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끔은 꼬리에 머리가 붙으며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한 번 읽으며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어, 한 세대를 다루면서도 전혀 세태소설로 머물지 않는 소설적 기법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그 구성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였다. 두 번째로 읽으며 그 이야기들이 꽉 들어찬 것을 느끼자마자, 장대한 물줄기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거대한 물줄기 같은 장편, 그것이 바로 허투루 읽을 수 없는 이 작품의 매력이다. 정말 정독하지 않는다면, 한 번으로 끝내선 그 매력을 놓칠 수밖에 없다. 세 번, 네 번 읽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수없이 접은 페이지마다, 수없이 그은 밑줄마다 작가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 ‘우리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울 수 있게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을 읽는 내내 내가 손에서 놓지 않던 이 책을 훑어보며 “왜 이렇게 접은 데가 많아?”라고 물은 친구에 대한 내 대답이기도 하다. 이제야 김연수라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할까. 이젠 주눅 들며 짝사랑하지 않고 작가 김연수, 그를 당당하게 사랑하겠다. 당분간은 그와 함께 밥 먹고 생각하고 산책하리란 예감이 든다. 그와 함께.    

‘개인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는 마르크스로부터도 그것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 공간을 향한 것인지, 어쩌면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아름다워 그와 같은 세상은 단 하나뿐이라는 유한한 우주를 향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온몸으로 부딪쳐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겪고 난 후에 내가 결국 살아있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우연만이 아니고 필연이라는 것을 나 자신이 깨달아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한 인간에게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건, ‘사랑하는 이의 작은 온기’, 그것이면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또한 알게 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말이다.     

덧붙임: 산더미 같이 밀린 일에도 불구하고 고적하고 외로운 이 저녁 시간을 세 시간에 걸친 사랑고백을 하고 났더니, 너무 흥분한 바람에 밤 11시, 친구에게 문자 보냈다가 “자다가 깼다”는 핀잔을 들었다. 허나~! 내 흥분에 비하면 그깟 핀잔쯤이야~! ^^;; “친구, 미안… 하지만 지금 내 흥분을 이해할 사람은 자네뿐이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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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10-1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는 낯선 작가랍니다.
님의 넘치는 사랑고백을 들으니 저도 함께 느껴보고 싶은 맘이 팍팍 생겨요.

진달래 2007-10-11 08:42   좋아요 0 | URL
김연수, 첨부터 쉽게 접근한 작가는 아니었어요. ^^;;

이 작품부터 시작하시려면 좀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허술한 데가 없는 진짜 장편이어서 저도 한번 읽곤
다 잡아내질 못했었거든요.

그래도 강추하는 작가예요. ^^

프레이야 2007-10-1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군요.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진달래 2007-10-11 08:43   좋아요 0 | URL
네~ 장편입니다. 정말 읽어볼만 해요. ^^;;
신작을 연달아 두번 읽기는 참 오랜만이었어요. ^^
 
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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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문학 기행을 갔을 때, 은희경 작가와 황석영 작가와 함께 나와 사회를 봤던 작가가 바로 백가흠 작가였다. 느리고 어눌한 말솜씨가 의외로(!) 남자다워, 여성스러운 은희경 작가와는 무척 잘 어울렸는데, 성질 급한 황석영 작가에겐 구박을 받기도 해서 억울해했던 작가, 정말 착해 보이는 멋진(외모도!) 작가였다. 그런 자리에서도 후배를 추켜 세워주려는 은희경 작가는 사회를 보던 백가흠 작가와 윤성희 작가를 배려했었다. 그래서 호감을 갖게 된 작가였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라니. 하나같이 어둡고 암울하고 변태스럽고… 기가 막혔다. 예전 작품들에 비해 그나마 이 작품집이 많이 착해진 거라고 하니 이 또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역시 작가의 겉모습과 속은 다른 것인가 보다. 아무튼 읽는 내내 불편했고 마음 한 구석이 괜히 찔렸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인간 누구나 갖고 있지만 교육이나 예절 또는 위선의 가면으로 가리는 인간 내면의 가장 저급하고 저질스러운 심성을 제일 잘 그리는 김기덕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렇.다.고. 작품들이 별로였느냐? 그건 아니었다. 작품들은 한 쪽에 치우치긴 했지만 나름대로 우리 일상을 모두 특색 있고, 새롭고, 자연스럽게 잘 그리고 있었다. 백가흠이 그린 세상이 아무리 음울하고 어둡다 할지라도 그것 또한 우리의 일상이고 세상일 터이니까. 평화롭고 조용하고 행복해 보이는 삶에 가려 보이지 않는, 아니 우리가 보기를 거부하는 괴롭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세상, 바로 그 세상을 그리는 작품집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세상을 힘겹고 고독하고 우울하게 사는 이들을 밝은 빛으로 끌어낸 백가흠이야말로 진정 착한 작가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집엔 <장밋빗 발톱>, <웰컴, 베이비!>, <웰컴, 마미>, <매일 기다려>, <조대리의 트렁크>, <로망의 법칙>, <루시의 연인>, <사랑의 후방낙법>과 <굿바이 투 로맨스> 등 모두 9편의 작품이 들어있다.

제일 마음에 든 건 타이틀로 잡힌 <조대리의 트렁크>였다. 저 대리가 생각했던 그 대리가 아니고 트렁크도 그 트렁크가 아니어서 배신을 당한 순간, 버럭~! 했지만 예상을 뒤엎는 감각 또한 작가의 능력일 터였다. 왜 제일 마음에 들었느냐 하면, 그건 꿀꿀한 인생의 긍정적인 측면 때문이었다. 그래, 내 인생이 남들 보기엔 별 거 아니지만 적어도 트렁크 안에 든 노인을 업고 갈 힘은 있지 않아? 그럼, 된 거다. “조대리는 노인을 업고 집으로 뛰기 시작한다. 뛰면서 자기 엄마보다도 더 가벼운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근데 ‘삘구’는 무슨 뜻일까? 바보란 뜻인가?

어이없는 상술에 걸리기도 하고 남의 목욕 장면을 애타게 훔쳐보는 <장밋빛 발톱>은 여자와 남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간만에 ‘너구리’를 먹고 싶었다. 헤어진 옛 연인이 다 용서했다고 하자, 이 남자는 생각한다. ‘무엇을 용서한 것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뭘 얼마나 그녀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좋은 추억이고, 나쁜 기억이고 다 잊어 가물거렸다.’ 역시 남자란…

<웰컴 베이비>에선 신선한 말투와 그런 말투를 뱉게하는 사고를 가진 임산부 아내가 아주 맘에 들었다. “뭔 일이시대? (...) 모르셔요, 나도. (...) 아이, 시방 짜증나셔. (...) 개자식님, 꼭 이런 일은 날 시키셔요.” 돼먹지 못한 존대가 왜 그렇게 웃기던지. 퇴락한 여관의 미스터 홍의 인간적인 모습엔 마음이 찡해지기도 한다.

<웰컴, 마미>는 이 작품집 가운데 제일 끔찍한 작품이었다. 비틀린 세상에 비틀린 사람들, 비틀린 짐승까지.

<매일 기다려>는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이 인간을 얼마나 약하게 하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노인은 서운하고 아쉬워서 주책없이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 노인은 리어카를 끌고 뛰다시피 골목을 내려갔다. 따뜻한 날씨가 고마웠다. 전철역도 있고 지하도도 있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노인의 집은 여전히 많았다.”

<로망의 법칙>에서 작가가 가르쳐주는 건 바로 이거다. “넌 어때? 그토록 갈망하던 민주화를 이루고 투쟁에서 승리한 기분이. 승리? 그게 왜 나의 승리냐. 나 그런 거 바란 적 없다. 니가 오해한 거지. 그건 순전히 다른 사람들의 몫이지. 내 것이 아냐. 진정으로 그런 것을 갈망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다… 로망이었던 거지. 로망은 현실이 되면 물거품이 되잖아. 로망의 법칙인 거지.”

<루시의 연인>은… 정말 할 말 없다. 다만 해병대 간 조카 녀석이 무지 걱정되었다. 에휴~

<사랑의 낙법>에선 나이에 관한 글귀 하나만 기억하고 넘어간다. “유진은 올해 서른살이다. 운동선수에게 서른살은 치명적인 나이이지만 여자에겐 아직도 많은 것이 아름다운 나이이다.”

<굿바이 투 로맨스>는 읽으면서 제일 짜증났던 작품이다. 이게 말이 되냐구요? 여자 둘이 한 남자에게 붙잡혀서 쎅스를 당하고 사랑(쳇!)을 당해야 하냐구요? 책을 읽으면서 살의를 느껴보기도 처음인 것 같다. 맹렬히 불타오르는 살의였다. 그거, 사랑이라고 포장할 생각 마시길. 게다가 두 여자의 주변부는 전혀 설명이 되지 못한 것도 흠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고 백가흠의 전작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그의 다음 작품이 조금만 더 착해지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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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10-0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럼 이 작가의 책이 더 착해질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ㅎㅎㅎ

진달래 2007-10-1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뇨... 이 책도 괜찮아요. 제가 괜히 엄살을 부린 거예요. ^^;;
 

116. <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저, 오득주 옮김, 미디어 2.0
117. <마이 프렌치 라이프>, 비키 아처 저, 김종돈 역, 칼라 컬슨 사진, 북노마드
118.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저, 이문재, 김명희 공역, 문학동네
119.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문학동네
120-121. <바다의 성당> 1, 2, 일데폰소 팔꼬네스 저, 정창 역, 대교베텔스만
122. <포옹>, 정호승 저, 창비 
123. <내 생애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문학동네
124. <동정 없는 세상>, 박현욱, 문학동네
125. <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문학동네 
126. <경성기담>, 전봉관, 살림출판사
127. <짜장면 불어요>, 이현 글, 윤정주 그림, 창비
128.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문학동네 

이번 달엔 압도적으로 문학동네 책이 많다. 지난번에 한국문학 책들 사면 무슨 이벤트에서 경품 준다고 이벤트 하길래 마구 사놓았던 책들인데, 흥, 경품은커녕이었다~! 어쨌든 문학동네와 창비에서 나오는 한국문학 책들은 모두 구비하는 것이 목표라 어차피 살 책들이었지만, 뭐, 한번 이벤트에 뽑아주면 어디 덧나나? 쳇~! 이번에 알라딘에서 하는 문학동네 이벤트를 위해 또 많이 샀는데, 안 뽑아주기만 해봐랏~! (그럼 어쩔 건데? 음... 생각 중... 문학동네 앞에 가서 데모를... ㅋㅋ)

다른 달에 비해 한, 두 권 더 읽긴 했는데, 어째 리뷰 쓴 책이 3권밖에 안 된다. 에휴~ 쓰자, 써. 리뷰… 사실 기차 안에서, 침대나 소파에 늘어져서 책 읽기는 좋은데, 리뷰를 쓰려면 작정하고 책상에 앉아야 하니 그게 귀찮단 말씀이다. 정말…

<하이 피델리티>는 좋아하는 친구가 이 책 함께 읽고 친구하자는 제안(!)과 또 한 친구의 웃기는 그림 포스트에 힘입어 구입한 책이었는데, <어바웃 어 보이>의 디비디가 딸려와서 일단 기분 좋았다. 극장에서 본 거긴 하지만 잔잔한 영화라 또 본다 해도 맘에 들 것 같기 때문이다. 책 내용은… 좋았다. 음악을 좀 더 많이 알았다면 정말 더 재밌었을 책이지만 현실을 거부(!)하는 피터팬들의 이야기에 묘하게 공감이 갔다. 리뷰, 꼭 쓸 거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예전에 누가 한국 여류작가 중에 전경린이 제일 좋다고 해서 고른 책이었는데, 그게 <밀애>의 원작일 줄이야~! 영화가 너무 원작에 충실해서인지 책을 읽는데, 다 본 느낌이라 별로였으니 말이다. 만약 책만 봤다면 정말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밑줄 그은 대목 많다. 하지만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이 의사였는데, 책에선 우체국장이다. 참… 깬다, 그 느낌.
 
<동정 없는 세상><아내가 결혼했다>보다 먼저 읽으려고 잡은 책인데, 난 저 동정이 그 동정인지 몰랐다. 그 나이를 지나온 작가에게, 아니 모든 남자들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겠지만 그런 문제를 겪지 않은 내겐 쫌… 별로였다~! 하지만 정말 자주 등장하는 “한번 하자”는 말은 정말 느낌이 야하다. 실제로 읽다 보면 야하다기보다 더 잘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표현이 되긴 했지만~! 

<타인에게 말걸기>는 역시 은희경이란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다. 다 읽고 덮으면서 “역시 은희경이야. 맘에 들어.”라는 말에 옆에 있던 작은 언니는 “야, 너, 너무 편애가 심한 거 아냐?” 그런다. 물론 책을 읽을 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읽긴 하지만 전혀 아닌 책을 괜찮다고 할 정도로 내가 배려심이 깊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 괜찮은 작품집이다.

<경성기담>은 앞부분이 무척 새롭고 흥미로웠는데 점점 갈수록 신선도가 좀 떨어졌다. 지난번 1+1일 때 구입했던 건데, 암튼 새 작품을 읽어볼 정도로는 괜찮았다.

<짜장면 불어요>는 몰랐는데, <우리들의 스캔들> 리뷰를 올렸을 때, 창비에서 이벤트를 했었나 보다. 그래서 당첨되어서 받은 거다. 이런 식으로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 선물 받은 건 거의 첨이지 싶다. 암튼 “창비, 고마워요~ ^^*” 창비 청소년 시리즈 생각보다 괜찮다.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재밌고 어른들이 읽어도 전혀 무리 없는 좋은 책들이다. 꾸준히 읽어볼 생각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연수의 장편이다. 받자마자 식음을 전폐…까진 아니고 암튼 열심히 읽었는데, 느낌은 뭐랄까. 일단 한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20세기를 어우르는 세대간 얘기를 개인과 가족사를 통해 전해주고 있는데, 일단 내용은 무척 새롭기도 하고 재밌다. 그 한 부분을 함께 살았던, 살지 않았던 내용은 얼마든지 공감 가는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특정 시대를 그렇게 새로운 시선으로 또 보편적으로 끌면서 재밌고 흥미롭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약간 긴 장편이지만 계속 뒤를 궁금해 하며, 앞을 다시 들춰보며 읽었다. 리뷰는 아마 다시 한번 읽고 나서 올리게 될 것 같다. 김연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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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못하는향기로운 2007-10-0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정말 다독하시네요^^;; 정말 부러워요~ 저는 9월에도 겨우 다섯권뿐이에요..ㅠㅠ;; 오랜만에 뵈어요. 진달래님~ 몸은 괜찮으신거죠? 조금 더 시원해진 가을날이에요. 하늘은 높고 푸르고.. 마음도 높고 푸르는.. 그런 날^^*

진달래 2007-10-04 09:10   좋아요 0 | URL
권수가 중요한가요. 질이 더 중요하겠죠. ^^;; 요즘은 무작정 읽어대고만 있는 제가 가끔 짜증나요. ㅋㅋ 가을도 좋으네요. ^^ 향기로운님도 즐거운 독서하시고 행복하세요~ ^^*

쥬베이 2007-10-0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궁금하네요.
김연수 신작도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빨리 읽어야지 ㅋㅋ

진달래 2007-10-04 09:12   좋아요 0 | URL
음... 김영하에겐 이상하게 태클을 잘 걸어요, 제가...
책 자체는 괜찮은데, 설정 자체가 공감도가 좀 떨어졌어요. 그게 좀 아쉽죠.
김연수 신작은 한번으로 잘 잡히지가 않아서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 처음보다 훨씬 낫네요. 재밌게 두 번째로 읽고 있습니다. ^^
 
바다의 성당 1
일데폰소 팔꼬네스 지음, 정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게 이 세상을 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 먹을 자유, 사랑할 자유, 내 의견을 말할 자유, 결혼하지 않을 자유, 심지어는 스스로 둑음을 선택하는 자유까지… 하지만 그 옛날, 몇 세기 전만 해도, 아니 지금 지구 어떤 곳에서는 그런 자유가 없다. 소수이기 때문에, 머니가 없기 때문에 또는 다르기 때문에 당하는 수많은 핍박과 억압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있다. 여기 우리에게 그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 있다. 스페인에 수세기 전에 민중들이 그들의 피와 땀으로 세운 <바다의 성당>, 그 성당은 민중의 외침을 간직하고 있었다…  

중세기 스페인 땅에서는 민중의 고통의 외침이 있었다. 즐겁고 행복해야할 젊은이들의 결혼식 날, 초야권을 갖는다는 영주가 나타나 모두의 운명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소작농이긴 했지만 열심히 땅을 일궈 결혼까지 하게 된 베르나뜨는 결혼식날 일로 견딜 수 없는 침묵에 아내를 뺏기지만 아들만은 그의 아들이었음에 안도한다. 하지만 스페인 땅은 그런 그의 소박한 권리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조상 대대로 지키던 그 땅을 거의 둑어가던 아들만을 데리고 자유의 땅이라는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중세기 스페인 땅에서는 노예한테 인간의 권리란 없었다. 여동생을 찾아간 베르나뜨는 이미 부자가 된 처남의 집에서 거의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아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서 자신이 당하는 모든 부당함과 어려움을 이겨나간다. 귀족에게 당하는 핍박과 억울함은 어디 호소할 데도 없다. 한 군데, 민중들이 그들의 피땀 흘려 모은 헌금으로, 돌을 하나하나 어깨에 져 나르는 짐꾼들의 땀으로 짓는 성당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바다의 성당>이었다. 그곳의 성모마리아만이 베르나뜨의 아들, 아르나우가 기대고 사랑을 찾는 곳이었다. 

“얘야, 난 네가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나는 내 땅을 버렸다. 오랜 세대를 두고 내려온 에스따뇰 가문의 땅을 말이다. 그건 그 누구도 그들이 내게 했던 짓을 너에게만큼은 못하게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 아버지에게 했던, 내 조부에게 했던, 내 조부의 조부에게 했던 짓을…. 지금 우리는 조상들과 똑같이 귀족이라는 자들의 변덕 앞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란다. 얘야,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 힘겹게 노력해서 얻은 자유를,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려라. 따라서 모든 것은 너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다.”

중세기 스페인 땅에서는 열정이 살아있었다. 자유롭게 자신의 사랑을, 연인을 선택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아르나우는 결혼을 허락받지 못하고 가슴 설레며 바라만 보던 여인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다. 서로 다른 배우자를 두고서, 들키면 맞아 둑는 위험한 짓이었지만 그들은 열정을 불태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과 병과 둑음과 함께 얽히는 운명…  

하지만 중세기 스페인 땅에서는 운명도 넘어선 자유와 사랑에의 갈망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신을 지켜주던 아버지가 빵을 구하고 자유를 구하다 둑어가자, 아르나우는 어린 몸으로 운명에 맞선다.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등에 피땀이 어리면서도 성당에 놓을 돌을 져 나르고, 시대의 이단이었던 유대인의 목숨을 살리고 그 가족과 우정을 나누다 사업에 성공한다. 아르나우에게 모함과 증오를 일삼던 귀족에게 복수까지 하고 사회의 명사가 되어 공정한 업무를 보지만, 그 성공과 자유는 언제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 아르나우는 (...) 천명하거늘, 이 순간까지 적용되었던 내 영지의 오용된 관례들을 불허한다… (...) 모든 그대들에게 자유를 천명하노라!”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시절에, 영주와 귀족, 성직자와 왕권이 민중에게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시절에, 한 남자가 자유롭고 평화롭고 자애롭게 살기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물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사랑과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 어릴 적부터 그를 지켜준, 그리고 그가 지켜낸 <바다의 성당>과 함께…

“저기 바다를 보세요. 바다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우리에게 절대 과거를 얘기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저기, 별들도, 달도 우리를 비춰주고 있어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다 한들 따지지 않아요. 그저 우리와 함께하고, 그것으로 행복한 거예요. 저기 반짝이는 게 보여요? 혹시 떨고 있는 걸까요? 만일 하느님이 우리에게 벌을 내리고 싶었으면 폭풍우라도 몰아쳐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 세상에는 우리 두 사람, 당신과 나뿐이에요. 과거도, 기억도, 잘못도 우리의 사랑에 끼어들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과 함께 한 세기를 열심히 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여정이었는지… 하지만 사랑에 대한 열정과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격을 지키려는 그 알 수 없는 힘에, 함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함께 눈물짓기도 했다. 민중과 함께 살아낸 <바다의 성당>에서 이제는 그들의 속삭임이 된 외침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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