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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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이후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연수의 장편이 나왔다. ‘읽Go 듣Go 달린다’라는 작고 예쁜 산문집까지 선물로 달고서 내 품안으로 단숨에 뛰어들어 왔다. 하지만 난 알았어야 했다. 나를 주눅 들게 만들던 그 작가의 새로운 장편이 그리 만만치 않은 녀석임을… 하지만 두 번의 읽기로 이토록 내 마음을 꽉 차게 만들 줄도 또한 몰랐었다. 점점 밝아지는 수많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우연과 운명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 모두 진정한 ‘나’ 그리고 ‘내 존재’를 향한 노력이고 외침이리라. 그것은 그 어떤 이유에서든 ‘살아남으리라’는 나와 우리 세대, 아니 모든 세대, 모든 이의 외침이리라.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수많은 이야기가 시대별로, 인물별로 차근차근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펼쳐내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이야기라서 단번에 확 내 손안에 다 잡아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나’를 바로 이 장편에서 두 번의 독서로 찾아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화자인 나와 내 애인 정민의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로부터 작품은 시작된다. 때는 90년대 초, 민주화를 이루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학교와 사회는 난폭함과 독재가 판을 치고 학생운동도 여느 때보다 더 격렬한 때였다. 그 가운데 둘은 학생운동을 ‘남들처럼’ 하면서 또 남들처럼 ‘자연스러운’ 연애도 한다. 이렇게 보면 그 당시 세태를 다룬 세태소설 같다. 아니,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야기는 당시로서는 그 입수 과정도 이해하기 힘든 입체누드 사진을 갖고 있던 나의 할아버지, 공황장애를 겪고 결국 미쳐 자살한 정민의 삼촌 그리고 나룻배를 타고 성당에 나가던 정민의 외할머니,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헬무트 베르크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야기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그곳에서 보게 된 이길용의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 비디오 테이프, 불이농촌의 일본인 여식 레이와 강시우, 그에 얽힌 이상희와 붐붐 그리고 안기부와 프락치, 인도식당의 찬드리카, 피에르 루이스의 사진과 ‘빌리티스의 노래’… 또한 ‘내’가 추리해낸 각각의 인물들의 연관 관계, 우연일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이길용 가족의 히로뽕에 얽힌 이야기에서 밀항하려던 정민의 삼촌 이야기로 이어지며 모든 이야기들이 회오리처럼 선회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이야기가 여러 줄기의 강물에서 하나로 흘러드는 바다처럼 모이고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거대한 대양을 이루고야 만다.

결국 작품에 등장하는 그들의 세계는 각각 여럿이고 모두인 동시에 또 결국엔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같은 모습이면서 다른 모습이듯이, 우리가 조금씩 달라진 우리와 우리의 세계를 살듯이 나, 또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면서 여럿이고 결국엔 내가 사는 하나의 세상인 것이다. 그 어디에도 우연만, 필연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떤 한 가지는 거짓이고 또 한 가지는 진실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두가 들어있는 장편다운 장편, 진정한 장편이 바로 이 작품이다.

차근차근 시작했던 옴니버스의 단순한 이야기의 시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끔은 꼬리에 머리가 붙으며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한 번 읽으며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어, 한 세대를 다루면서도 전혀 세태소설로 머물지 않는 소설적 기법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그 구성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였다. 두 번째로 읽으며 그 이야기들이 꽉 들어찬 것을 느끼자마자, 장대한 물줄기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거대한 물줄기 같은 장편, 그것이 바로 허투루 읽을 수 없는 이 작품의 매력이다. 정말 정독하지 않는다면, 한 번으로 끝내선 그 매력을 놓칠 수밖에 없다. 세 번, 네 번 읽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수없이 접은 페이지마다, 수없이 그은 밑줄마다 작가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 ‘우리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울 수 있게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을 읽는 내내 내가 손에서 놓지 않던 이 책을 훑어보며 “왜 이렇게 접은 데가 많아?”라고 물은 친구에 대한 내 대답이기도 하다. 이제야 김연수라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할까. 이젠 주눅 들며 짝사랑하지 않고 작가 김연수, 그를 당당하게 사랑하겠다. 당분간은 그와 함께 밥 먹고 생각하고 산책하리란 예감이 든다. 그와 함께.    

‘개인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는 마르크스로부터도 그것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 공간을 향한 것인지, 어쩌면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아름다워 그와 같은 세상은 단 하나뿐이라는 유한한 우주를 향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온몸으로 부딪쳐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겪고 난 후에 내가 결국 살아있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우연만이 아니고 필연이라는 것을 나 자신이 깨달아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한 인간에게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건, ‘사랑하는 이의 작은 온기’, 그것이면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또한 알게 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말이다.     

덧붙임: 산더미 같이 밀린 일에도 불구하고 고적하고 외로운 이 저녁 시간을 세 시간에 걸친 사랑고백을 하고 났더니, 너무 흥분한 바람에 밤 11시, 친구에게 문자 보냈다가 “자다가 깼다”는 핀잔을 들었다. 허나~! 내 흥분에 비하면 그깟 핀잔쯤이야~! ^^;; “친구, 미안… 하지만 지금 내 흥분을 이해할 사람은 자네뿐이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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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10-1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는 낯선 작가랍니다.
님의 넘치는 사랑고백을 들으니 저도 함께 느껴보고 싶은 맘이 팍팍 생겨요.

진달래 2007-10-11 08:42   좋아요 0 | URL
김연수, 첨부터 쉽게 접근한 작가는 아니었어요. ^^;;

이 작품부터 시작하시려면 좀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허술한 데가 없는 진짜 장편이어서 저도 한번 읽곤
다 잡아내질 못했었거든요.

그래도 강추하는 작가예요. ^^

프레이야 2007-10-1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군요.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진달래 2007-10-11 08:43   좋아요 0 | URL
네~ 장편입니다. 정말 읽어볼만 해요. ^^;;
신작을 연달아 두번 읽기는 참 오랜만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