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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나는 구속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라는 프롤로그로 이 작품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이 얼마나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시작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보기에 꽤 두꺼운 이 책이 정말 얼마나 재밌던지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행복해졌다. 인생의 우여곡절이 이보다 더 할소냐. 또한 권선징악을 이렇게 속 시원히 즐겁게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이 우리에게 선배 철학자들의 철학을 통해, 우리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우리에게 그 선의 대가가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도, 우리는 여전히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이렇게 착하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인생이 우리에게 그 대가인 행복을 선물하겠거니 기대하고 산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우린 또 다시 불행에 빠지고 세상을 원망하고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선하게 살다 보면 아무래도 불행한 일보다는 행복한 일이 더 많이 생기지 않는가. 선이란 건 그 결과를 꼭 기대하지 않더라도, 베푼 순간 이미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인도는 양 극단의 나라다. 한편에선 가난과 무지가 다른 한편에서는 수행과 초탈이 최첨단 IT 산업과 함께 공존한다. 또한 카스트 제도로 인한 극과 극 또한 기가 막히고, 대부분의 여자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죄일 정도로 끔찍한 상태에서 산다. 이는 가난한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하면 존재 자체를 위협받게 되는 특이한 나라가 바로 내가 생각하는 인도다.
프롤로그에서 이미 주인공이 퀴즈쇼에서 1000루피짜리 첫 문제부터 10억루피짜리 열세 번째 문제까지 모두 맞춰 우승해서 구속되었다는 건 말했다. 여기부터 의문이 제기된다. 어떻게 가난한 20대의 바텐더가 퀴즈쇼에서 우승하게 되었을까? 천재일까? 하지만 인도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주인공이 천재라고 해서 퀴즈쇼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그럼 왜 잡혀갔을까? 그 이유는 경찰들이 위의 의문들을 우리네 독자와 똑같이 가졌기 때문이고 10억루피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건 쇼의 특성상 그렇게 일찍 우승자가 나오면 광고 등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의문과 이 결과에서부터 이 작품은 시작된다.
‘그들은 내가 끌려가는 이유를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 두 명이 내 오두막을 덮쳤을 때 나조차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이 한치라도 더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하고, 똥을 누려 해도 길게 줄을 서야 하는, 가난에 찌든 도시 변두리에 산다면 경찰에 끌려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구속영장에 이름이 적히고, 경찰차가 붉은 경광등을 번쩍이며 찾아와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자초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퀴즈쇼에 참가한 게 잘못이었다고! 그들은 내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부자와 가난뱅이를 구분 짓는 선을 절대 넘지 말라고 했던 다라비 어른들의 교훈을 일깨워줄 것이다. 결국 빈털터리 웨이터가 두뇌를 겨루는 퀴즈쇼에 참가해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두뇌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이 아니다. 우리는 손발만을 사용해야 하는 천민이다.’
정말 읽어갈수록 기가 막힌다. 주인공은 변호사에게 첫 번째 문제를 맞히게 된 배경과 경위를 설명하는 것으로 얘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는 열세 번째 문제까지 정말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흥미진진한 주인공의 삶과 얽히고설키며 전개된다. 인도라는 나라의 특성, 고아로 버려져 여기저기 떠돌게 되는 주인공의 삶이 파란만장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 이야기는 마치 속도를 제어할 수 없는 초고속 열차처럼 달려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주인공은 쉽게 그냥 세상에 운명을 맡기고 남들처럼(!) 살 수도 있었다. 불의에 눈감고 사랑도 포기하고 우정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면서 말이다. 약간의 머니에 행복해하고 먹고살 수만 있었으면 그냥 수십억 인구의 인도인들이 그렇게 살듯이 현세는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사후 세상을 믿으며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러지 않았다. 주인공은 불의를 참지 못했고, 우정을 소중히 여겼으며, 신의도 지킬 줄 알았고, 사랑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았다. 그래서 운명은 주인공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영웅이란 소리는 아니다. 그는 그저 선하게 살려고 애썼을 뿐이다. 그런 그를 운명은 그리고 세상은 모진 풍파의 파도 속에 휘감아버렸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신념을… 그의 행운은 모두 그의 선(善)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드러나는 진실들은 얽히고설켰던 매듭들이 하나씩 풀어지듯, 처음에 우리가 가졌던 모든 의문들에 대한 답을 준다. 역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특히나 선이 승리할 때에는 더 더욱. 최고의 권선징악의 작품, 이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