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10주년 기념 <레터스 라이브 letter's live> 행사  마지막 무대에 선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가 신문 <더 타임스>에 보낸 서한을 생전 버나드 쇼의 목소리와  제스쳐로  청중들이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재현 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지난 10년 동안 '편지 쓰기'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며 한 해 끝자락에  공개적인 행사 무대에 서서 여러 인물들의 편지를 낭독하며 글자와 종이로 소통하며 마음을 표현하는 유희를 예술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

정복의 야심으로 무장했던 정복 왕 나폴레옹은 살아 생전 총 4만 여 통에 가까운 편지를 썼고 현재 남아 있는 편지는 총 3만 3천 여 통이다.

이 양은 수시로 트윗을 날리는 세계 제 1일의 부자 머스크와 재선 준비를 하고 있는 전직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양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집트 파라오 시대 사람들은  파피루스에 상형 문자를 적어 소통했을 정도로   인류 문화 유산 중에 편지가 남긴 흔적은 방대하다.

편지의 전성기는 중세 시기인 서기 500년 부터 1930년 전화기가 널리 보급 되기 전 까지다.

1990년대 휴대 전화와 인터넷 망이 보급 되면서 편지 발행 횟수도 줄었고 우편 발송량도 줄었다.

문자와 사진, 이미지로 소식을 주고 받는 시대에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펜을 쥐고 종이에 편지를 쓰는 일은 좀처럼 없다.

편지 뿐만 아니라 하루 일정 관리, 업무 계획, 간략한 메모까지 손으로 종이에 쓰는 경우도 거의 없다.

빠르게 저장하고 복사하고 빛의 속도로 타자를 치는 시대에 펜과 종이는 서랍 속에서 먼지가 쌓여 가고 있다.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펜들을 모조리 꺼내 놓았지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 조차 낯설게 느껴 질 뿐만 아니라  이메일 주소와 SNS계정만 알고 있으니 써도 보낼 주소를 적지 못한다.

발신인과 수신인이 존재 해야 보낼 수 있는 편지는 최첨단 기기로 소통 할 수 있는 시대에 미련하게 시간을 낭비하거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 시키는 거라 생각 할 수 있다.

지난 시절 기숙사를 나와서 하우스에서 살기 시작 할 때부터 처음 만나는 이들로 부터 편지와 엽서를 받는 동안 낯설면서도 따스한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주고 받았던 편지는  다른 도시, 다른 국가에서 살 때도 이어져서 서로 축하하고 기뻐하고 애도 하는 순간에도 주고 받았다.

특히 곤경에 처했거나 도움이 필요 할 때 긴 세월 편지를 주고 받았던 이들이 가까운 지인들 보다 더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1941년 3월 28일, 버지니아 울프는 오전 마지막 산책을 나가기 전 남편 레너드 앞으로 편지 한 장을 남긴다.

주머니에 돌을 집어넣은 버지니아는  우즈 강물 속으로 뛰어 든다.

물에 흠뻑 젖은 채 구조 된 버지니아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 바늘은 11시 45분에 멈췄다.

스스로를 처벌하기 위해,자유롭게 항해하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 가버린 아내가 남긴 마지막 편지

남편 레너드는  마지막 아내의 숨결이 남아 있는 편지 위에 눈물을 쏟아 낸다.

"당신은 최대한으로 가능한 행복을 내게 줬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에게 내 인생이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점이에요."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손으로 눌러 쓴 편지만큼 가장 진솔하고 진실한 글은 없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편지는 후대인들에게 읽혀 지고 있다.

 한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흔적이자 인생의 이력과 같은 편지처럼 영장류 중에서 오로지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만이 문자로 소통하고 기록 하고 생의 흔적을 남긴다.

쓰는 행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 유일한 예술적인 활동일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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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4살 짜리 아기가 영어유치원을 들어가기 위해, 7살 짜리 아이가 유명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고시와 같은 시험을 치르는 현상을 놓고 해외에서는 한국 부모들의 극성으로 아동에 대한 정신적 학대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기 교육에 목숨 거는  극성스러운 부모들이  한국에만 존재 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 역사상 최고의 조기 교육열에 불타올랐던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걸음마를 시작 할 때 부터 아들 모차르트 손에 바이올린 활을 쥐게 만들었고 눈을 뜨면 반드시 피아노 앞에 앉게 훈련을 시켰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악보를 펼쳐 놓고 음표를 읽고 음의 리듬을 입으로 발성 하는 훈련을 시켰고 손에 쥐는 힘이 생겼을 때 유명 작곡가들의 악보를 펼쳐 놓고 필사하게 했다.

악보를 필사 하는 과정은 단순히 음표 하나를 오선지에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소나타 곡을 필사 했다면 그 곡을 연주 할 수 있을 정도로 암기 해야 했다. 

 걷기 시작 할 때 부터 아버지에게  음악 조기 교육을 받았던 모차르트는 3살 때 부터 하프시코드로 정확하게 피아노 소나타 작품을 쳤고 5살 때 바이올린으로 소나타를 연주 하는 경지에 올라 섰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한 번 들은 곡은 완벽하게 암보 할 수 있도록 연주가 열리는 곳 마다 데리고 다녔고 연주가 끝나고 나서 아들에게 빈 오선지를 던져 주고 암보한 것을 고대로 써내게  하는 훈련을 시켰다.

 맹렬한 조기 교육 과정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모차르트가 5살 무렵에 '미뉴에트 G장조'를 작곡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신동이라는 걸 확신하고  6살 생일을 맞이한 아들을 데리고  유럽 전역 궁정을 돌며 연주 여행을 시작했다.  

어린 모차르트에게 이 연주 여행은 엄청난 부담을 주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안겨 주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해 고향  잘츠부르크의   궁정 음악가로 임명 되자 이 시기 부터    그는 아들이 연주 연습을 할 때면 직접 연주 참관을 하지 않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  오페라 하우스 인근 커피 하우스'토마셀리'(Café Tomaselli)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즐겨 찾았던  카페 '토마셀리'(Café Tomaselli)는  1703년에 오픈 한  유서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1683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가  오스만  터키 군에  완전히 포위되어 곧 함락될 위기에 처해 있던 시기에 터키군의 감시망을 뚫고 이웃 국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건너간 게오르크 콜쉬츠키는 용감하게 구원군을 이끌고 빈의 함락을 막아내며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이 된다.

당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통치자 였던 페르디난트 1세가 그에게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하자 게오르크 콜쉬츠키는 터키 군이 퇴각하면서 챙겨 가지 않은  커피 원두 몇 포대와 커피 추출기기를 달라고 요청한다.

 게오르크는 상인으로 몇 년 동안 오스만의 수도 이스탄불에 체류 한 적이 있어서 그곳의 음식과 문화에 대해 해박했다.

터키군이 퇴각 한 후 평화가 찾아 온 빈에 게오르크 콜쉬츠키는 한 상점에서 원두콩을 볶아 커피를 추출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빈에서 카페가 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유행을 쫓아 잘츠부르크에 가장 처음 문을 연 커피 하우스가 '토마셀리'(Café Tomaselli)로 지금까지도  옛 전통 방식 대로 커피를 추출하고 케이크를 굽고 있다.

이곳의 케이크 주문 방법은 독특한데 계산대에서 주문을 받지 않고  잘츠부르크 전통 의상을 입은 직원이 쟁반에 다양한 케이크를 들고 돌아다니면 자리에서 직접 주문한 후 돈을 지급하면 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

대신 비엔나에는 ‘아인슈패너(Einspanner)’라는 커피가 있다.

아인슈패너는 ‘마차를 모는 마부’라는 뜻으로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 마차를 몰던 마부가  달리는 마차에서도 커피가 넘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커피 위에 생크림을 얹어  만든 커피에서 유래 했다.

오스트리아엔 '카페파우제'(Kaffeepause) 시간이 있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커피를 즐기는 시간으로 햇살이 가장 좋은 8월이면 빈과 잘츠부르크 커피 하우스 거리 마다 커피 잔을 쥐고 있는 이들로 가득 차 있다.


7월 1일 수요일, 몽글 몽글 크림이 듬뿍 올라간 아인 슈패너 한잔을 앞에 놓고 4세 고시, 7세 고시를 전혀 치르지 않고도 세계적인 연주가가 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연주에 푹 빠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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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한 아름다운 성에서 자란 캉디드는  자신의 철학 스승인 팡글로스의 가르침을 따라 순진하게 낙관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남작의 딸인 퀴네공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성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후 그는 독일에서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을 거쳐 남아메리카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파라과이까지 항해하고 이상향 엘도라도에 도달한 후 다시 수리남을 거쳐 프랑스, 영국, 베네치아로 세계 곳곳을 유랑하며 종교 재판, 노예 제도, 갖가지 위선과 편견, 인간이 만든 악습 등 이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악과 부조리를 마주하게 된다.

캉디드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불가리아 군대에 붙잡혀 죽도록 곤장을 맞고 간신히 빠져나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지진과 폭풍, 전쟁과 온갖 질병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불행을 겪던 중에  엄청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수리남에 도착하지만 사기 당한다.

마침내 그는 베네치아에 가는 배에 올라타 그곳에서 아내에게 쫓겨나고 아들에게 매 맞는 마르탱이란 노인과 동행하게 된다. 

“마르탱씨는 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세상 사람들의 내면에는 마귀가 도사 리고 있지요. 나는 이 세상에서 이웃 도시를 멸망 시키려 하지 않는 도시를 본 적 없고, 다른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 가정을 본 적이 없소. 약자란 항상 강자 앞에선 굽실거리면서도 강자를 증오하고, 강자는 약자를 짐승처럼 취급하기 마련이지요.”

“그러면 이 세상은 왜, 어떤 목적으로 생겨났을까요? ”

“우릴 못 살게 굴기 위해서 지요.”

-볼테르의 '캉디드' 중에서

 볼테르가 살았던 시절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과학 기술 혁명으로 평균 수명은 몇 배로 늘어났지만 삶의 질은 그 시절보다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공존 하는 신 인류 시대에도 자연의 약육강식의 법칙은 예외 없이 모든 곳에서 통하고 있다.

기도하지 않는다. 

신에게 간구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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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독특한 시각 체험 전시<어둠 속의 대화> 전시장에 입장하기 전 모든 물품들을 로커에 보관 해야 한다.

전시장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없다.

전시장을 안내하는 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두컴컴한 공간 사이 사이 촉각, 미각,청각을 맛보는 동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둠 속에서 마셨던 주스가 오렌지가 아닌 망고 주스라는 것도 눈으로 보지 않고 맛으로만 느꼈을 때 맛과 향을 구분하지 못한다.

시각으로 먼저 오렌지 색이라는 걸 알고 마셨을 때와 보지 않고 마셨을 때 맛과 향의 경계가 흐려진다.


암흑 속에서 빛과 색을 감지 하는 능력이 사라지니 인간의 원초적 감각은 부정확하고 제한적이게 되어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눈멂과 봄, 어둠과 밝음 사이에서 인간의 두 눈은  세상을 온전하게 볼 수 없게 되었다.

설사 두 눈의 완벽한 시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 보고 있는 것이 그 모든 실체까지 온전하게 볼 수 없고 빛이 사라지면 시간 감각도 사라져 버리고 맛과 향의 경계도 희미해지고 신체의 모든 감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70-80퍼센트를 차지 하고 있는 시각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생태계에서 종족을 보존하고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 남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보는 것이 곧 지식이요, 보지 못하는 것은 곧 무지”라는 말을 남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과 시인들은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이나 오만함, 무지 모두 제대로 세상을 보지 못했기에 초래된 결과라 생각했다.

어둠과 빛이 공존 하는  세상 속에서 맨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  세상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초 정밀 현미경으로도 관찰 할 수 없는 세상 .....

보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어둠과 밝음 사이에 놓인 드넓은 세상에서 

현재 우리 눈 앞에  보여지는 이 사회의  참된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봅니다.” 

-고린도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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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병 때문에 출생과 동시에 시력을 잃기 시작했던 보르헤스는 나이 55세 무렵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놀랍게도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꿈속에서 84살이 된 치아가 빠져버린 노인 보르헤스를 만난다. 

'대체 내가 꾸는 꿈에 왜 내 모습이 보이지 자네도 내 꿈을 꾸고 있는 거야? '

꿈속에 또 다른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보르헤스는 일상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꿈속의 환영처럼 희미해져서 지워지지 않을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지식은 단지 회상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긴 플라톤의 말처럼 태초 이래로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어쩌면 ‘영원히’라는 말은 지구 상의 인간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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