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어느 날 밤, 파리 폴리베르제르의 바에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가  손님을 응대 하고 있는 여급 쉬종(suzon)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완성한 마지막 작품 ‘폴리 베르제르 바(A Bar at the Folies-Bergere)’(1882)는 쉬종(Suzon)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쉬종(Suzon)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과 다소 뻣뻣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에 이 그림이 포착하고 있는 공간에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관람객은 쉬종의 시선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거울의 반사가 현실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폴리 베르제르 바’ 작품 정 중앙에 기념비적으로 우뚝 선 여성과 거울을 통해 뒷모습을 보이는 여성, 그리고  왼쪽 상단에 발만 잘린 채 재현된 써커스 곡예사의 다리, 화면 왼쪽에서 피라밋 구조를 형성하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 하는 이 그림이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1881년 제6회 파리 인상주의 전시에서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가 등장 했을 때 평론가들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조각상을 향해 “원숭이가 있어야 할 곳은 (전시장이 아닌)동물원이지 않은가.” 라며 드가를 향해 신랄한 악평을 쏟아 부었습니다.

쏟아지는 악평과 비난에 드가는 작업실 구석 옷장 문을 열고, 조각상을 깊숙이 밀어 넣고는 두 번 다시 세상에 공개 하지 않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발레단에서 보잘 것 없고 빈약하고, 하찮은 존재‘작은 쥐’(Petites Rats) 무리들로 불렸던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수가 되었습니다.2015년 미국 뉴욕 미술 시장 경매에 등장한  ‘누워 있는 나부’(Nu Couché)'의 낙찰 가격은  1억7040만달러(약 2585억원).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상 전체 작품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운 모딜리아니는 세상에서 작품 값이 비싼 화가 대열에 끼여 있지만 그는 예술사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다.” 라는 말을 남긴 모딜리아니 

 술과 마약에 빠져 스스로 파멸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방탕하게 살다 갔지만 그가 남긴 인물들이 품고 있는 예술의 가치는 불멸이 되었습니다.

영상 도입부 부터 펼쳐지는  전경 부터   갤러리 내부 모습과 화가들의 작품 모두 제가 직접 답사 방문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영상을 제작 했습니다.

실사 사진과 촬영해온 영상 그리고 직접 제가 쓴 에세이를 토대로 영상 시퀀스를 기획하고 스크립트를 작성해서 마지막 사운드와 음성 자막을 삽입해서 완성 했습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의 선호도에 맞춰서 영상의 기본 언어 영어와 한국어를 비롯해서  다른 국가의 언어-[ 일본어/러시아어/폴란드어/ 독일어/스페인어/브라질 포르투갈어/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자막 번역 모두  수동 작업으로 했습니다.

모국어 수준으로 능통한 언어들은 제가 직접 번역을 해서 다듬었고 초보 수준의   언어는  다국어 천재 제미나이에게 맡겼습니다.

3분에서 4분을 조금 넘기는  영상이지만 촬영과 자료 수집 그리고 관련 전시와 도록을 읽고 영상을 제작 하기 까지 수 개월이 걸렸고 작업 시작부터 편집까지  영상 한 편 당 한 달이 걸려 완성 했습니다.다.

무엇이든 빨리 감기로 보는 세상에 3-4분의 시간 동안 제가 제작한 영상을 끝까지 시청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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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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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 뉴욕 미술 시장 경매에 등장한  ‘누워 있는 나부’(Nu Couché)'의 낙찰 가격은  1억7040만달러(약 2585억원).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상 전체 작품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운 모딜리아니는 세상에서 작품 값이 비싼 화가대열에 끼여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의문이 든다.

가늘고 긴 얼굴에  동공이 없는 텅 빈 눈 갸우뚱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짖고 있는 모딜리아니 그림에 대체 어떤 특별한 마력이 있는 걸까?

왜 이런 그림이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되짚어봐야 한다.

188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항구 도시 리보르노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모딜리아니 저택에 집행관들이 들이 닥친다.

때마침  모딜리아니 어머니는 진통이 시작되고 하인들은 분주하게 산모가 출산하는 방 침대 머리 맡에 온갖 귀중품들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임산부나 산모의 침대 그리고 침대에 있는 것들은 압류 할 수 없다"는 법 규정 덕분에  모딜리아니가 태어나던 그날 재산의 일부를 지킬 수 있었다.

비극적이고 모순적이 상황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에게 모두들 입을 모아 천사처럼 잘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축복받은 외모와 달리 태생적으로 병약했던 모딜리아니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다 열 네살 고열에 시달리던 중 미술관이 눈 앞에 나오는 환각 증세에 시달린다.

아들이 16살이 되던 해 결핵 진단을 받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눈에 보였던 미술관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로마와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의 유명 미술관을 데리고 다녔다.

 르네상스 시대를 포함한 이탈리아 고전 미술의 정수를 온 몸으로 흡수한 모딜리아니는  1906년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갔다.

당시 파리 화단은 1905년 야수파가 등장한 이후 야수주의와 입체파로 나눠져서 서로 유사한 그림을 전시장에 쏟아내며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밀고 나가는 젊은 화가들 집단인 파리파가 등장한다.

당시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국적인 아프리카의 미술과 조각품, 프랑스 식민지령에서 쏟아져 들어 오는 아시아 불교 미술과, 북아프리카 조각들 그리고 골동품 상들이 들여 온 선사시대와 아르카익기의 그리스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파리에서 미래주의 전시를 준비하는 이탈리아 작가들 그룹에 합류 하지 않았던 모딜리아니는 홀로 고립되어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 시켜 나갔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에 매료 되었던 모딜리아니는 목을 비롯한 신체를 의도적으로 늘려서 인물의 우아함을 연출하고 베네치아 동방 정교회 성화(聖畵)의 기울어진 고개의 인물 구도를 정립해 나갔다.

여기에 더해  고귀한 대상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는 방식에 인류 미(美)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 모딜리아니는 

아프리카 가면의 단순하면서 간결한 선과, 캄보디아의 크메르 부처 석상에서는 부드러운 면(面)의 미학을 합쳐 길쭉한 얼굴, 한 줄로 떨어지는 코, 평면 위에 펼쳐진 인물.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던 모딜리아니만의 화풍을 완성시킨다.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한 1914년 유렵 전역에 몰아닥친 전쟁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을 파괴 했다.

모딜리아니는 그림을 그릴 수록 영원에 대한 갈구가 깊어졌고 삶의 덧없음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갔다.

결핵을 숨기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모딜리아니는 돈이 생기는 데로 술을 마셨고 술을 사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은 작업실에  모델을 밀어 넣고 술과 마약을 던져 주었다.

가난, 폐병, 마약과 술, 여자에 탐닉하며 스스로를 파멸의 구덩이 속으로 몰아 넣었던  모딜리아니가 그린 작품은 놀랍게도  선이 분명한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에 모두 눈동자가 없지만 텅 비어 있지 않다. 

대체 그 눈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모딜리아니는 절친했던 친구이자 화가 카임 수틴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고대의 아름다운 조각처럼 세잔의 인물들은 시선을 지니고 있지 않다네. 하지만 나의 인물들은 시선이 있지. 비록 내가 동공을 그려 넣지는 않았어도 내 인물들은 세상을 볼 수 있다네. 그렇지만 내 인물들의 시선도 세잔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무언의 긍정을 표할 뿐 다른 의미는 없네."

모딜리아니의 작품 모두 모델의 이름이 없다. 

신분도 사연도 식별할 수 없고, 옷차림으로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초상화 모델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걸 중시했던 이전의 서양 초상화 양식과는 전혀 다르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눈으로 마주 하고 있는 인물들의 동공을 그려 넣지 않았지만  우수에 젖어 있는 얼굴을 가까이 바라보면 그들의 속마음을 듣고 싶은 신비로움을 채워 넣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20년까지 모딜리아니는 현재 우리가 아는 작품들을 모두 쏟아 냈고 혼수 상태로 발견되어 사망 한 후 이튿날 그의 약혼녀 잔 에뷔테른은  뱃속의 아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다.” 모딜리아니 

살아생전 술과 마약에 빠져 자멸한 방탕한 인간일지라도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으로 그려낸  얼굴들은 그 누구의 얼굴도 아닌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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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삼촌이 운영 하고 있는 출판사 '보들리 헤드’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한 앨런 레인은 1920년 투병 중인 삼촌을 대신 해서  출판사 운영에 전면으로 나선다.

1918년 부터 잡지에 연재 되기 시작했던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1920년 프랑스 파리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실비아 비치가 작가의 40세 생일을 기념하며 출간하자 매출 하락에 고심했던 앨런 레인이 판권을 사들인다.

보수적인 미국 출판계와 문학계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불온 서적으로 낙인 찍어 버리자 앨런 레인은  <율리시스>를 출판하는 과정에서 이사회와 갈등을 겪게 된다.

1934년 앨런 레인은 이사회를 설득해서 출판 수익에 도움이 될 책들을 출간 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 이자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를 직접 만나 출판을 설득 하고 돌아가는 길에 기차역 서점에 들려서 기차 안에서 읽을 만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기차역 내 서점에 즐비한 책들 중에  읽을 만한 책은 지나치게 비쌌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책은 내용이 허접했다.

이 책 저 책을 집어들던 앨런은   담배 한 갑 가격인 6펜스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가볍고 양질의 지식과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보자고 결심한다.

(C)Penguinbooks

1935년 우아한 연미복을 입고 뒤뚱 거리는 귀여운 걸음걸이의 날지 못하는 펭귄이 서점계에 등장하자마자  소수를 위한 무겁고 비싼 장식품이던 책을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며 즐길 수 있는 손 안에 책 한 권 시대가 찾아 왔다.

1930년대 영국의 출판시장은 고전문학이나 당대 주목 받는 작가들의 책을 가죽 커버로 탄탄하게  장정한 방식으로 제작되어서 부유한 이들이나  집안에 별도의 서재 방이 있는 상류층이나 학식 있는 사람들이 주로 구매 했다.

도서관 조차 이용하기 힘든 일반 서민들과 하층민들은  신문에 연재 되는 코믹이나 통속적인 스토리에 빠져 있거나 값싼 종이에 한없이 가벼운 내용들만 채워진  낮은 수준의 책들만 겨우 구매 해 볼 수 있었다.

 전혀 인간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남극 생태계 먹이 사슬의 중간 쯤에 위치한 온순한 조류 펭귄이 커버에 새겨진 책을 기획, 출판한 앨런은 가볍고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중적으로 출간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양질의 책을 구매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부담 없는 가격에 문고본 펭귄 책의 등장은  ‘책’의 개념을 뒤 흔들어 놓은 출판 혁명의 상징이 되어서  주머니나 가방 속에서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이 대 유행이 되었다.

1940년 독일 루프트바프 공습으로 런던 도시 곳곳에 무시 무시한 폭격으로 불에 타올랐던 나날 속에서도 런던 시민들은 방공호에서 라디오에 귀 기울이면서  책을 읽었다.

런던 시민들은 낮과 밤으로 대 공습이 점차 격렬해져서 한 밤중에 폭격을 피하기 위해  등화관제가 실시 되는 동안에도  폭격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서 불타 버린 책들을 찾아 읽었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 재학 당시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에 참전한 샐린저는 4년 동안 군복무를 하는 동안  펭귄 문고본을 군복 속에 넣고  전쟁터에 나갔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죽음의 그림자를 떨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읽었다. 

한국 전쟁 발발 당시  폭격기를 몰고 한반도 상공을 날았던 공군 조종사 출신의 작가 제임스 설터는 비행에 앞서 펭귄 문고본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고 지상으로 내려 왔을 때는 작가의 꿈을 키우며 글을 썼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 했던 작가 조지 오웰은 '만일 사람들 손에 5실링이 있다면  책은 한 권만 사고 남은 돈은 영화 티켓을 사 버릴 것'이라며 펭귄 문고본은 곧 폐간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작가 오웰의 예측과 달리 1935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와  애거사 크리스티의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첫 출간 하기 시작한 펭귄 북은 첫 번째 발행에 약 300만권을 판매 하며 폭발적인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출판 디자이너 에드워드 영에게 런던 동물원에 직접 가서 펭귄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관찰해 스케치로 기록한 뒤 로고 디자인에 반영하라고 지시한 앨런 레인의 출판의 첫 번째 목표는  ‘저렴하고 질 좋은 책’을 출간 하는 것이였다.

런던이 독일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불에 타오르는 순간에도 매년 600권의 책 출간을 강행 하며 세계 고전 문학을 추려낸 펭귄 클래식 시리즈부터  과학·철학·역사·사회학 등 분야별 교양을 다루는 임프린트 ‘펠리컨 북스’,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펭귄 스페셜’까지 다양한 장르와 전문적이면서 심도 있는  시리즈를 출판했다.

대형 쇼핑 온라인 몰 아마존의 등장으로 종이책이 사양길에 접어 들었어도 펭귄북은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출간하며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수천 년간 살아남은 펭귄처럼 소수를 위한 무겁고 비싼 장식품이던 책을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며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바꿔 놨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한 손에 들어가는 문고본보다 하드커버에 화려한 띠지와 양면이 컬러인 종이 커버까지 씌운책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출간되고 있다.

OTT채널 한 달 구독료 보다 책 한 권이 비싸고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선호 하는 시대에 다양한 종류의 양질의 시리즈를 꾸준하게 출판하는 출판사가 있다.

민음사 출판사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간 하기 시작한 세계문학전집은 1998년 첫 열 권의 책으로 출발해서 2026년 500번째 책이 출간 되었다.

세문집의 500번째 책은 1946년 독일에서 출간돼 현지 교과서에도 실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로  식민지 시기 조선을 떠나 독일로 건너간 작가의 자전적 삶이 투영된 작품이다.

“새로운 기획, 새로운 번역, 새로운 편집”을 모토로 내걸고 출판한 민음사의 세문집은  당시 출판계에 흔했던 일본어 중역과 무단 번역을 배제하고  원전 번역과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책 뒷 표지에 명시에 두었다.






민음사 세문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국 책 출판계에서 보기 드문 책 판형이다.

세로로 길죽한 판형이여서 배낭을 제외하고 평균 사이즈 가방에 들어가지 않아 에코백에 넣어야 한다.

가격도 착하지 않다.

만 원 이하의 책은 중편 소설 그 중에서도 저작권이 소멸된 고전 작품에서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품을 제외하고 저작권이 소멸된 작가의 작품 모두 만 원이 넘고 장편 소설은 두 세 권으로 쪼개서 출간 되고 있다.

어떤 출판사든 오타와 오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민음사 세문집 출간 모토인 [새로운 기획, 새로운 번역, 새로운 편집]이라는 선언에 어긋나는 책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다.

<파리 대왕>의 첫 문단 원문과 민음사 번역본을 대조 해 보면 

CHAPTER ONE

The Sound of the Shell

The boy with fair hair lowered himself down the last few feet of rock and began to pick his way towards the lagoon. Though he had taken off his school sweater and trailed it now from one hand, his grey shirt stuck to him and his hair was plastered to his forehead. All round him the long scar smashed into the jungle was a bath of heat.

민음사 번역

금발의 소년은 몸을 굽히듯이 해서 이제 마지막 바위를 내려와 초호 (礁湖) 쪽으로 길을 잡아 조심스레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복이었던 스웨터는 벗어 한 손으로 질질 끌고 있었고 회색 셔츠는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풀칠이라도 한 듯 이마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정글을 후려친 소년 둘레의 흉터 자국은 온통 열탕 (熱湯)처럼 무더웠다. 

첫 문장부터 원문과 대조 해서 읽어 보면 원문에서  All round him the long scar smashed into the jungle was a bath of heat.이라는 부분을 "정글을 후려친 소년 둘레의 흉터 자국은 온통 열탕(熱湯)처럼 무더웠다." 라고 번역했다.

1)가장 먼저 이 번역은 문장 구조를 완전히 잘못 파악했다. 이 문장에서 정글을 친(smashed) 주체는 소년이 아니라 비행기 추락으로 인해 생긴 '긴 흉터 자국(the long scar)'이다. 

즉, "정글을 가르고 들어가 불시착 흔적을 남긴 긴 흉터 자국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곳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로 번역해야 맞다. 하지만 번역본은 느닷없이 소년이 정글을 후려친 것처럼 주어를 오인했다.

2) 원문 and this cry was echoed by another 문장을 민음사 번역본은"이어 다른 고함소리가 이것을 받았다."라고 번역했다. 뒤이어 나오는 대사(“Hi!” it said, “wait a minute!”)는 고함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수풀에 걸려 다급하게 부르는 피기(Piggy)의 목소리다. 

원문에서 'cry'는 새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인간의 외침을 연결하는 단어인데, 민음사 번역은  '고함소리'로 번역해서 인물의 상태(뚱뚱하고 숨 가빠하는 아이)와 어울리지 않는 공격적인 뉘앙스를 담았다.

3) 원문에서  with an automatic gesture that made the jungle seem for a moment like the Home Counties. 부분을 민음사 번역은 "그 동작이 아주 익숙해서 마치 거기가 정글 속이 아니고 런던 주변의 주(州)이기나 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로 번역했다. 원문에서 automatic은 '익숙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반사적인 동작을 뜻하는데 영국 문명사회(Home Counties)에서 늘 하던 습관(양말을 치켜올리는 행동)이 몸에 배어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다. '익숙해서'라는 표현은 맥락상 다소 비껴 나갔다.

4) 원문에서  “I got caught up”를 민음사 번역본은 "난 온통 걸려 있어."라고 번역했다. 소설 속 상황에서 소년이 덩굴 같은 것에 옷이나 몸이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나 (덩굴에) 걸렸어" 혹은 "단단히 묶였어" 로 번역해야 자연스럽다. 

5) 원문에서  a bird, a vision of red and yellow, flashed upwards 민음사 번역은 "붉고 노란 환영(幻影)인 듯한 새 한 마리가 홱 날면서"라고 번역 했다. 이 문장에서 vision을 사전의 1차적 의미인 '환영(유령 같은 느낌)'으로만 해석했다.

원문에서  vision은 정글의 칙칙함 속에서 강렬하고 눈부시게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채의 잔상"이나 "황홀한 광경"을 뜻하는 것이다.

뉘앙스를 온전하게 살리지 못한 번역문을 읽으면   '환영인 듯한 새'는 다소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어 원문의 시각적 선명함을 반감시켜버린다.

6) 원a greasy wind-breaker.라는 문구를 민음사 번역본은 "기름 때 묻은 재킷"으로 번역했다. 이 문구는 앞서 등장한  피기(Piggy)의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다. greasy는 진짜 기름 때가 묻었다기보다는, 뚱뚱한 피기의 체질상 땀과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바람막이 점퍼를 의미한다. '기름때 묻은'은 단순히 지저분한 옷으로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에 원문에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은 첫 문단부터 교복 스웨터- 스타킹을 올리는 행위-번들거리는 옷 같은 인물의 상태나 행동 묘사를 통해 문명과 야만의 시각적 대비를 주며 작품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단서다.

하지만 번역은 이를 온전히 살려 내지 못하고 사전적 의미의 직역으로 해석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을 지라도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첫 문단의 핵심인 '비행기 불시착으로 처참하게 찢긴 정글(scar smashed into the jungle)'의 주어를 오독하여 문장을 꼬아버린 명백한 오류를 범했다.

영국 노동자 하루 임금의 20분의 1에 불과한 권 당 6펜스 가격표가 붙었던  문고본 펭귄북스는 20세기 급진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친노동자 성향의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데 기여하며 1960년대 계층의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사회 혁명의 중심축이였다. 

 가방 속에 책은 없어도 스마트 폰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시대에 책은 주머니 속 사치품으로 전락한 것일까?

'책은 소장품 아닌 읽는 것'이여야 하고  출판사는 독자들에게 원문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린 번역본을 읽을 수 있게 노력 해야 종이책의 생명력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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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1월 19일 82세에 접어든 톨스토이는 전날 밤 자신의 일기장에 아내의 잔소리와 폭언에 더 이상 집에 있지 못할 정도로 견딜 수 없다며 죽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다음날 새벽, 가족 모두 깊은 잠이 든 시각에 홀로 침상에서 일어난 톨스토이는 하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살그머니 집을 나선다.

대문호의 발길이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자신의 대 저택에서 꼬박 반나절을 걸어야 도착 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아스타포포 기차역으로 82세의 톨스토이는 추위에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져 심장 발작으로 숨을 거둔다.

급히 달려온 톨스토이의 주치의 마코비츠키는  사망을 확인하고 마지막 머리맡에 단 한 권의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올려 놓았다.

살아 생전 톨스토이는 “세상에 있는 책 모두를 불 질러버리더라도 도스토옙스키는 남겨 놓아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를 흠모했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는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 부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세상으로 부터 존경과 대 문호로 추앙 받고 있었던 톨스토이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시베리아 유형지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박장을 전전하다  간질환으로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성 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난 도스토옙프스키

일평생 족쇄 같은 운명과 맞서 싸웠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장 24절) 

 

자신의 모든 소설에는  신앙에 대한 고뇌를 깊이 깔아 놓은 도스토옙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가 남긴 작품들 중에서 가장 밀도 높게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를  ‘기독교 소설’로 분류하지 않는다. 

종교와 언어, 국적과 사상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소설이 된 이유는  ‘죄와 벌’ 즉,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든 일에 있어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 작풍에는  5명의 문제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장 먼저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탐욕스럽고 방탕한 노인이고 큰아들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닮아 음탕하면서 한편으로 고결함을 동경하는 순수함을 품고 있다.

 둘째 아들 이반은 대학을 졸업해서 주변에서 인텔리겐챠로 불리는 지식인으로 “천국행 입장권을 반납하겠다”고 말하는 무신론자이자 허무주의자다. 

 셋째 아들 알렉세이는 수도원에서 신앙의 길을 걷는 매우 종교적인 인물이다.

표도르와 백치 여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스메르자코프는  간질을 앓고 있다. 

스메르자코프는 속마음을 숨기며 말 수가 적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자신을  사생아로 태어나게 한 아버지 표도르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를 품고 있다.

음흉한 아버지 표도르가  장남 드미트리의 연인  그루센카라에게 연정을 품으면서 부자 사이에 증오심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 가던 중   표도르는 죽은 채 발견된다.

"신이 만든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이반의 말에 세뇌 된 스메르자코프가 아버지를 죽였지만 그는 간질 발작 때문에 혐의에서 벗어난다.

대신 평소에  아버지와 크게 반목 했던 장남 드미트리가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무신론자인 이반에게 영향을 받은 스메르자코프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하고,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증오했던 마음의 죄를 인정하듯 순순히 20년 형을 선고 받는다.

선과 악의 구도가 선명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작품은 단순한 집안 싸움처럼  보이는 줄거리 구도 속에 늙음과 젊음, 사랑과 애욕, 치정과 불륜 그리고  무신론과 유신론 등 서로 대립하는 가치들 간의 갈등이 속속들이 아로 새겨져 있다. 

"지금 이 순간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점 만은 마음 속으로 감히 비웃지 못할 겁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대 대 문호로 불렸던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걸  여러 가정의 서로 다른 삶의 양상을 통해 보여줬지만 도스토옙프스키는 평생 운명과 싸운 작가 답게  작품 속에서 이렇게 외친다.

“내 일평생에 대해 스스로를 응징 하노라. 내 일생을 벌하노라.”

스스로를 응징 하겠다면서도 모순된 삶을 살며 죄를 저지르는 우리 인간

이 세상 누가 욕망과 고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SNS 세상에서는 잘 먹고,잘 놀고, 즐겁게 삶을 영위하는 이들로 넘쳐 나고 한 편으로 나날이 치솟고 있는 물가에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고 있는 서민들의 유리 지갑 속은 텅 비어 가고 있다.

가난한 하급관리와 고아가 된 불쌍한 소녀의 애처로운 정신적 사랑과 비극적 결말을 편지 형태로 엮은 도스토옙스키의 데뷔작이자 사실주의적 휴머니즘의 정수를 담은 <가난한 사람들>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누가 책에 뭐라고 쓰든 가난한 사람의 인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왜 이전하고 같을 수밖에 없느냐고요?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들을 옷을 뒤집어 보이듯 세상에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가난한 사람들>중에서 

 지난날 방탕하고 절제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뉘우치며 스스로 엄격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기 욕구와 절제를 갖고 끊임없는 반성으로 자기 성찰을 유지했으면서도 가족의 삶은 철저하게 외면했던 톨스토이는 빈손으로 집을 나가   아스타포보 정거장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장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난 내가 조금씩 산을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고 있었던 거야.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발밑에서 진짜 삶은 멀어지고 있었던 거지.”

-1910.11.19 톨스토이(1828-1910)

모순적인 인간의 삶 이것은 곧 모두의 한계이자 우리가 신앙 앞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면서    대 문호가 마지막 곁에 두고 싶었던 그 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가 영원한 고전이 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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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양의 남산 자락 초가집에 살았던 가난한 선비 허생은 뼈 속에 스며드는  추위와 천장에 고드름이 매달린 방안에서 오로지 글만 읽었다.

바느질로 겨우 굶주림을 참고 견뎌내던  아내는 어느 날 남편에게 글만 읽지 말고 도둑질이라도 해서 배불리 먹자 라며 방안에서 내쫓아 버린다.

결국 아내의 등살에 책을 덮고 거리를 나온 허생은 행인들에게 '한양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 누구인가" 라고 묻자 지나가던 행인들 모두 '변승업'이라고 대답한다.

허생은 곧장  한양 제일 거부 변승업에게 찾아가 대뜸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집이 가난한데, 조금 시험해볼 일이 있어서 그대에게 만 냥을 빌리러 왔소.”

거부 변승업은 허생에게  “좋소!” 라는 말을 하며  주저 없이 만 냥(현재가치로 약 36억원정도)을 빌려주었다.

남루한 차림새의 선비에게 거금을 빌려 준 변승업에게 놀란 하인들이 

“어찌 누군지도 모르는 자에게 만냥이나 되는 거금을 빌려주십니까?”라고 물으니, 변승업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의지를 거창하게 떠벌리고, 자기가 믿을 만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낯빛은 비굴하여 같은 말을 반복하기 일쑤다. 한데 이 손님은 비록 차림새가 남루 하지만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눈빛이 당당하며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가 재물이 없어도 만족하는 자임을 뜻하는 것이니, 그가 시도한다는 방법 역시 범상치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부산 왜관에서 일본 담당 역관으로 일했던 변승업(1623-1709)은 당시 중개 무역을 통해 조선 제일 부자 자리에 올라섰던 인물로 집안에 돈만 쌓아 두지 않고 그 돈으로 쓸만한 인재들에게 투자했다.

변승업에게 거액을 빌린 허생은 이를 밑천 삼아 '쩐'의 세상으로 뛰어 들어 엄청난 부를 손에 쥐고 변승업에게 10배 가까운 이자를 붙여 돌려 준다.

 
 

변승업이 죽기 전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빌려 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 긍긍하며 앞당겨서 빌려 준 돈을 회수 하려 하자 병환 중에 누워 있던 변승업이 이 사실을 알고  벌떡 일어나  더 많은 돈을 한양 사람들에게 빌려 주며 거의 모든 재산을 탕진해 버린다.

변승업은 이렇게 돈을 뿌려야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식들끼리 돈 때문에 다투지 않게 될 것이고 사대문 밖에 주민들이 굶어 죽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보건대, 권세가 있거나 재물을 모은 사람 중 삼대를 넘기는 이가 없었다. "

중인 출신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돈으로 사버린 인맥과 연줄로 상류층 자리에 올라갔던 사돈 집안이 참혹하게 몰락한 모습을 지켜 봤던 변승업이 한양 일대에 서민들에게 뿌린 돈은 50만 냥(현재 가치로 천 오백억원) 정도로 이 돈을 절대로 회수 하지 말라는 유언을 지킨 후손들은 후에 불어 닥칠 가문의 화도 막아 냈다.

돈의 가치와 쓸모를 제대로 알았던 변승업,지금 시대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인물이다.

 

유리 지갑을 가진 서민들은 숫자 하나에 손을 덜덜 떨며 최저가 상품, 할인 이벤트 행사를 쫓아 다니는 동안  서민들을 상대로 이자 놀이에 빠진 현대 금융산업은 소리 소문 없이  자신들 만의 보너스 잔치를 벌일 것이고 정책과 제도는 눈 가리고 아웅 정도의 세금 혜택을 던져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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