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각 가정의 냉동실에 꼭 들어가 있는 식품이 뭔지 묻는다면 '냉동 만두'다.

간편하게 에어프라이기에 굽거나 전자렌지 전용 용기에 물을 조금 넣고 몇 분 돌려 찌거나 라면이나 국에 넣고 끓여 먹을 수 있는 '냉동 만두'는 오래 보관해둘 수 있고 간편하게 다양한 조리가 가능한 만능 식품이다.

대형 마트 냉동 만두 전용 냉동고에 즐비한 만두는 세상의 거의 모든 식재료들이 들어가 있어서 입맛과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고기만두, 김치 만두 같은 '기본' 만두는 반드시 냉동고에 쟁여 두어야 하고 이외에도 새우만두, 깻잎만두, 김말이 잡채 만두,고추 잡채 만두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만두를 냉동고에 가득 채워 놓아도 손 만두 맛이 그리워 질 때면 만두 전문점을 찾는다.

집에서 구운 냉동 만두와 비교 할 수 없는 맛이 나는 손 만두는  가게마다 비법이 있고  각 지역마다 고유의 만두 종류가 존재하기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밀가루나 쌀가루에 다양한 속재료를  넣어 가지각색의 만두를 만들어 먹고 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음식점들이 즐비한 영국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만두 전문점들은 중국과 타이완, 홍콩 출신의 요리사들이 운영하는 곳들이다.

건물 전체가 딤섬 만 파는 곳이 있고 영국 시골 어디에 가도 있는 중국 요리점에서 다양한 만두를 팔고 있기 때문에  영국인들에게 만두는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속 재료가 들어가는 만두는 소량 포장이 가능하고 한 끼 식사로 먹기에 부담 없는 가격에 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먹는 음식이고 영국인들에게 피자나 햄버거보다 만두가 비교적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기숙사 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이 사 먹은 것은 만두였지만 막상 냉동만두를  냉동고에 쟁여 둔 적은 없었다.

 기숙사 옆 방에 살았던 친구들이 타이완 출신들로 이들은 영국에서 파는 만두가 너무 맛이 없다면 자신들이 직접 장을 봐와서 기숙사 주방에서 만두를 빚었다.

타이완 친구들은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서 다양한 소를 넣고 빚었는데 밀가루 반죽의 발효 유무에 따라 만두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조리법이 달라졌다.

밀가루에 효모를 넣어 발효 시켜 반죽한 후 찐 빵과 같은 형태로 만든 만두는 형태는 찐 빵이여도 속재료가 들어가지 않아 볶음 요리나 다른 요리들과 곁들여서 먹었다.

이렇게 만든 만두에 속 재료를 넣으면 한국의 찐 빵이 되었고 밀가루 반죽을 발효 시키지 않고 얇게 밀어 다진 고기나 채소 등 소를 넣고 속 재료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주름을 잡아 만들었다.

기숙사 공용 주방에는 인덕션이여서 후라이팬을 달구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장시간 동안 굽고 지지는 요리를 하지 말라는 공동 사용 지침이 있어서 타이완 친구들이 만든 만두들은 찌거나 삶아 먹었다.

타이완 친구들이 만두를 빚을 때 가끔씩 함께 만든 적도 있었는데 서양인 친구들이 만두를 빚을 때 모양을 잡아 가장자리에 주름을 잡아 주는 걸 신기하게 생각했다.

영국인들이나 다른 서양 국가 출신들에게 만두는 덤플링(dumpling)이나 교자로 통용 되었지만 타이완이나 중국 본토에서 온 친구들은 만터우(Mantou)라고 불렀다.

신기하게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나 터키에서 온 친구들에게 만두를 의미하는  만터우(Mantou)나 한국의 만두라는 단어가 전혀 낯설지 않았는데 이들 나라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만들어 먹는 것의 명칭도 만투(Mantu) 또는 만티(Manti)라고 불렀다.

만터우가 한국에 들어와서 만두가 되고 다른 아시아권 국가로 전파 되어 만투와 만티가 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국적 출신들이 모여 살았던 기숙사에서 '만두'라는 음식 하나로 서로 비슷한 문화로 연결 되어 있다며 각자 자신들이 좋아하는 속재료를 넣고 만두를 빚어 먹곤 했다.

당시에 만두를 빚을 때 모양도 균일하게 하지 않았고 단지 속 재료들이 조리 할 때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가장자리에 주름을 잡았을 뿐이였다.

한국의 식품 회사가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만두의 특정한 주름 모양에 대해 디자인 특허를 받자 중국에서 자신들의 전통 음식에 한국 기업이 특허를 냈다며 맹비난을 하고 있다.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한국 식품회사가 특허를 낸 만두는 만두 전체 특허가 아닌 만두를  대량생산할 때 끝 부분이 깨지는 현상을 해결하는 디자인에 대한 특허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중국인들은 김치도 만두도 모두 자신들의 나라 음식이라고 주장 하고 있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고 만나본 친구들 중에서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대부분은 만두와 유사한 음식이 있었다.

구전처럼 전해지고 있는  만두에 얽힌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제갈량이 남만의 반란을 제압하고 귀환하는 길에 험한 강 물살에 발이 묶여서  물살을 잠재우기 위해 사람 머리 49개와 염소, 소를 바쳐야 한다는 점술가 말에 사람 머리 모양으로 빚은 만두를 대신 바쳤고 이로 인해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일 뿐이고 밀이 많이 생산되는 이탈리아나 터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도 만두와 유사한 음식이 있다.

따라서 만두의 기원과 유래가 어떤 나라에서 시작되었다는 확실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다만 한국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는 《고려사》에 ‘만두를 훔쳐 먹다가 벌을 받았다’라는 기록이 나오고  고려가요인 《쌍화점》은 만두의 일종인 ‘상화’의 음차라고 배웠기 때문에 아마도 고려 시대 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만두를 먹었을 것으로 짐작 된다.

사실, 만두는 평안도와 개성이 중심인 이북 지방과 강원도 등지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다.

북쪽으로는 메밀이나 감자가 풍부해서 주식으로 먹어서 밀이 아닌 메밀이나 감자 전분으로 만두피를 만들어서 꿩 고기나 배추,생선살을 소로 넣었다.

특히 추운 지방에서 겨우내 얼려두고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 끓여 먹던 것이 만둣국이다.

 쌀이 많이 나는 경기도 지역과 남부 지역에서는 가래떡에  뜨거운 육수에 넣어 먹는 만두를 넣거나 서울에서는 주로 여름 철에  소고기, 오이채 등을 미리 볶아서 얇은 만두피에 감싸고 짧은 시간에 쪄내는 만두나 물만두 같이 냉국에 띄워 먹는 만두를 빚어왔다.

한반도에서는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에 만두는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지만 밀가루가 수입되면서 만두는 전국민의 음식이 되었다.

안 오르는 게 없는 고물가 시대에  라면·만두·스팸마저 한국인의 밥상 물가 기준을 넘었다.

뉴스마다 얼굴을 도배하는 정치인들 중에서 만두 가격 상승을 걱정 하는 이들은 없는 것 같다.

이것 저것 으깨진 재료들로 속을 채워 넣고 모양을 빚기도 전에 굳어버린 반죽에 너무 많은 재료를 쑤셔 넣어 속살이 터진 것 같은 권력자들의 머리 모양 대로 만두를 빚어 본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오늘의 만두 


만두에 관해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두의 속에 관해.

 삶아도 쪄도 구워도 속은 그대로인 소스를 첨가하거나 첨가하지 않거나

 하지만 이것은 무국적 반달, 움직여요, 

사연이 움직여요. 분석하고 눈감고 이유를 버무려요. 사건이 빚어져요. 

누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사연들. 

구름 속에서 달이 빠져나오듯 흐르는 구름과 구름, 습기를 빨아들이는 하얀 만두피(皮) 피를 흘려요.

 사건이 종료되지 않아요. 

한입 크기의 어둠, 알맞은 크기와 온도로 제도화 되는 것들. 

오늘 만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러운 만두, 감춰지고 부풀려지는 진실과 거짓,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서정의 내부』 ,예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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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재료와 섞여도 훌륭한 맛과 풍미를 내는 양파는 전 세계 국가 요리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향신료 겸 채소다. 

생으로도 먹고 기름이나 버터에 볶고  삶고 지지고 튀기는 등 모든 조리법에 어울릴 뿐 아니라,  피클이나 장아찌로 만들거나 생즙을 내어 마시기도 한다.



양파는 수선화과의 부추에 속한 식물로 여러 개의 겹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 개의 뿌리에서 나와서 백합과로 분류하기도 한다.

양파의 원산지는 서남아시아와 지중해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야생종이 중앙 아시아에서 자라서 그 지역 일대에서는 수 천년 전부터 재배해서 식재료로 이용했고 유럽으로 전파 된 양파는 이란에서 자생했던 야생종인 알리움 케파(Allium cepa)라는 학명으로 불리는  종이다. 

영어로 양파는  garden onion, bulb onion, shallot이라고 불리는데 onion은 프랑스어'oignon'에서 유래가 되었다.

프랑스인들이 17세기 미 대륙으로  건너가 식민지 개척을 했을 당시 현재 미국 중서부의 시카고 땅에서 보라색 꽃을 피는 수선화 군락을 대거 발견하게 된다.



1673년 탐험가이자 지도 제작자인 루이 졸리에와  예수회파에 속하는 자크 마르케트라는 프랑스인 신부를 대동하고 미 중서부 지역인  ‘시카고’(chicago)에 도착한다.

미시간 호수를 끼고 있는  ‘시카고’(chicago) 땅은 수 세기 동안 인디언들의 거의 모든 의식주를 해결 할 수 있게 해준 천혜의 땅으로 짐승의 가죽을 벗겨서 모피와 양탄자를 만들고   각종 식재료를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면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해 왔다.

지도 제작자 루이와 시카고 일대를 탐험하던  자크 마르케트 신부는 보라 색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는 이 꽃을 줄기 채 뽑아 보니 어른 주먹 크기의 구군이 줄줄이 엮여져 나왔다.

향도 식감도 유럽에서 먹었던 양파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 프랑스 인들은  '하나로 묶인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 "unio"의 어원에서 유래한 'oignon' 이라 불렀고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발음에 맞춰 알파벳으로 onion이라 불렀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 중서부 도시  ‘시카고’(chicago)가 영어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시카고’(chicago)라는 단어는 미 대륙의 인디언들이 쓰는 언어 중 하나인 알곤킨족(Algonquian) 언어에 속하는 단어로 그 의미는 ‘강한 향기’다.

미 대륙 인디언들이 수 세기 전부터  ‘시카고’(chicago) 땅에서 가장 잘 자라는 양파를 대규모로 심고 경작해 왔는데 잘라내면 즙이 나오면서 눈을 시큼 거리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코를 찌를 정도로 강한 향을 가진 양파들이 대규모로 자생하는 이 땅을  ‘강한 향기’ 즉, ‘시카고’(chicago)라 불렀다.

유럽 땅에는 본 적이 없는 보라색 양파의 구근들을 채취해서 본국으로 보낸 지도 제작자 루이와 자크 마르케트 신부는 태양왕 루이 16세에게 모피와 황금이 나오는 보물 땅이라 보고 하고 곧이어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개미 떼가 꿀단지로 모이듯 시카고로 몰려 왔다. 

한 손에 성경과 십자가를 품은 백인 이주민들은 수 백 년 동안 시카고 땅을 점령하면서 5백만에서 1천2백만 명에 달하는 인디언들을 죽였다.

백인 이주민  기독교 인들이 인디언들을 살해 한 이유는  인디언들이 신의 피조물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혼이 아니라, 결핍 되고 사악한 영혼에 의해 창조 되어서 짐승처럼 영혼이나 양심을 갖지 않은 피조물이라는 살인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단 몇 십년 만에 살육의 전쟁으로 인디언들을 모조리 말살 시킨 백인 이주민들은 노동 인력이 부족해지자  아프리카 대륙에서 포획한 아프리카 인들을 노예로 삼아 버렸다. 

1837년 노예들의 잔혹한 노동력 착취로 미 대륙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이루며 철도가 부설 되고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이 건설 되어  10년도 안 되어 그 면적이 16배로 확대되었다.

미 대륙 최초로 '도시(City)로 명명 되어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된  ‘시카고’(chicago)의 백인 토박이들은  도시 이름이 양파에서 유래 된 걸 모르고  오래 전 인디언들이 오대호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라는 의미의 '시카고'라 불렸다고 알고 있다.

현재 시카고는 미국의 다른 대 도시와 구별 되는 것들이 아주 많은 도시로  그중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피자와 햄버거 맛이 미 대륙 최고를 자랑 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시카고에서도 미국의 다른 도시의 햄버거 가게처럼 주문자의 취향에 따라 빵의 종류와 들어가는 재료들 그리고 고기 패티의 양을 선택 할 수 있다.

햄버거의 맛은 불맛과 소스 맛으로 사이드로 곁들여 주는 슬라이스 레몬의 생즙을 뿌리면 그 맛은 온 몸의 혈관을 타고 흘러 갈 정도로 환상의 맛이다.

한 개만 먹어도 끼니를 건너 뛸 정도로 든든한 이 햄버거를 주문할 때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양파를 빼 달라는 이들이 아주 많다.

햄버거에서 반드시 빠지면 안되는 식재료 중에 하나는 양파다.

 오랜 시간 가열해서 수분을 날려 양파의 고유의  단맛을 와인과 발사믹 식초를 넣고 졸여낸 이 재료가 고기 패티와 곁들여 먹으면 맛과 풍미에서 최고의 조합이 탄생한다.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매장에서 먹는 그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햄버거는 사 먹는 것이 더 맛있다.

 십대 시절 햄버거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미국 친구들은 햄버거에 들어가는 양파가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 오는 식재료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 메뉴에서 항상  제외 시켜 버렸다.

몇 주 전 미국 콜로라도 주의 맥도널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고 식중독 증세를 일으킨 사람들이 속출 했다.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진 식중독의 원인은 햄버거 안에 들어간 양파로 미국 최대 식품 서비스 공급업체인 테일러 팜스에서 공급 받은 것이였다.

이 양파는 피자와 타코스를 파는 프랜차이즈에도 공급하는데 시설의 위생 불량으로 인해 오염된 대장균이 양파에서 발견 되었다.

한국 맥도널드 매장은 이미 작황이 좋지 않아서 물량 공급이 어렵다며 토마토를 빼고 양상추 양도 줄였다.

그리고 양파도 빠졌다.


양파가 한반도에 들어 온 것은 17세기 초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에  간행된 <동의보감>에 맛이 맵지 않은  자총(紫蔥·자주색 파)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서양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양파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한국 식재료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일본 가정 요리에서 널리 활용 되었고 이에 영향을 받아서 한국 요리에도 양파가 첨가 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학계에서 연구하고 밝혀진 양파의 효능은 껍질을 까도 까도 나올 정도로 수십가지다.

양파에는 혈관 벽의 손상을 막는 퀘르세틴 성분이 있어서 혈관을 청소해서 심장까지 튼튼하게 하고 각종 성인병을 예방한다.

의사들은 양파를  땅 속에 묻혀 있는 사과라 부르며 환자들에게  거의 모든 끼니마다 챙겨 먹으라 권고 한다.

양파는 껍질에 가장 좋은 성분이 많아서 고기나 생선 육수를 우려 낼 때 뿌리와 함께 넣으면 좋은 성분을 먹을 수 있고 생으로 먹어야 영양 효과를 빠르게 흡수 할 수 있지만 강한 맛과 향에 씹고 삼키기 힘들기 때문에 굽거나 지지거나 튀겨 먹어야 한다.

밤과 낮 사이 기온 차가 큰 요즘 양파 한 개로 바싹 하고 고소한 맛의 근사한  한 끼를 만들어 보자 


       인생은 양파와 같다. 

  한 번에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때때로 눈물이 난다. 

- 시인 칼 샌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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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 20세기를 붉게 물들인 소비에트의 지배자 ㅣ 그레이트 하모니 17
로버트 서비스 지음, 윤길순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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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6월  독일은 소련과 체결 했던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레닌그라드를 기습 공격했다.

 이듬해 여름 무렵부터 가을까지 독일군은  동부전선으로  사단 200개 이상을 투입했고 기습 공격을 당한 소련군은   연전 연패 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넉 달 뒤 독일군의 선봉부대가 모스크바 근교까지 도달하고  900일 동안 모스크바 도시 전체를 포위 하며 음식과 연료 공급을 차단한다.

 독일군에게 포위 당한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하루 배급 받았던 빵의 양은 125그램, 추운 겨울  시민들이 거리  곳곳에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시간이 흐를 수록  시신이 쌓여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덤이 되어간다.

진격을 멈추고 전력 태세를 갖춘  독일군이  모스크바 시민 전체를 볼모로 마지막 육상 통로를 차단하며 소련 정부를 압박하는 사이  재빨리 모스크바에서 퇴각한 소련군은 주요 군사 무기와 시설을 후방으로 옮겨 버린다.

9월 8일  히틀러는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함락 시키기 위해  도시와 연결된 북쪽과 서쪽 열차 선을 끊어 버리고 공중에서 폭격을 시작한다.

전쟁 역사상 가장 긴 포위 전으로 기록된 900일 동안의 레닌그라드 포위 전에서 레닌그라드 전체 시민 400만명 중에서 약 254만 명만 간신히 살아 남았다.

 푸틴의 아버지는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독일군의 포격에 한쪽 팔을 잃었고  푸틴의 둘째 형은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봉쇄 중에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1952년 레닌그라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태어났을 때 부모에게 유일한 자식이여서 넉넉한 환경은 아니였지만 응석받이로 자랐다.

1879년 차르 통치 시대에 태어난 푸틴의 할아버지 스피리돈 푸틴은 12살 때 부터 친척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주방일을 보조 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대형 호텔에 취직한다.

호텔에서 요리 실력을 인정 받은 푸틴의 할아버지는 제정 러시아 말기의 파계 수도자이자 예언자인 라스푸틴에게 극찬을 받고 황실 행사에 단골 초청을 받는 스타 셰프가 되었다.

혁명으로 재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국이 탄생 하고 나서 푸틴의 할아버지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전속 요리사가 되고 이후 세기의 악마 이오시프 스탈린 독재자의 밥상을 차려주는 특급 요리사가 되었다.



피의 숙청을 자행 했던 스탈린은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에 행여 독금물이 첨가 될 것을 두려워해서 즐겨 먹는 것을 직접 키우고 재배하는데 지대한 정성과 관심을 쏟았다.

그는 머나먼 계곡의 물을 파이프로 연결해 작은 연못을 만들어 직접 키운 잉어를 튀겨내어  크름 반도에서 공수 해온  레몬 나무에서 수확한 레몬즙을 듬뿍 뿌려 먹었다.

잔혹한 피가 흘러 넘쳤던 스탈린이 가장 좋아했던 건 과일들로 그는 매년  1헥타르에서 8톤씩 분량의  과일을 수확했고 매 끼니 마다 다채로운 과일로 배를 채웠다.

1953년 2월, 스탈린은   심복들과 고향 그루지야 특산품 포도주를 진탕 마시기 시작했다. 

술잔치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다 돌연 스탈린은 쓰러졌지만 암살될 것이 두려운 스탈린은 자신의 비밀 별장으로 데려 갈 것을 명령한다.

 스탈린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별장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것은 1953년 3월 1일 저녁, 그의 부하들은 서로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  위원회가 소집되었고 이틀이 지난 후에서야  저명한 심장 전문의 마스니코프(Alexander Myasnikov)가 독재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암살이 두려웠던 스탈린이 복잡한 미로처럼 설계해 놓은 비밀 별장에 도착한 경호원들은 그가 사망한 장소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의식불명 소식을 들었는데도 길을 찾지 못해 의료 조치를 하지 못했다.

사망하기 수년 전 부터 수차례 뇌졸증 증세를 보였던 스탈린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폭로하거나 암살할 것을 우려하여 주치의들을 고문형에 처했는데 주치의들이 고통 속에서 죽는 동안 스탈린 자신도 여러 번 발작을 일으켰지만 그의 병 상태를 제대로 치료 해 줄 의사가 없었다.

발견 당시 스탈린은 고혈압과 동맥경화에 의한 좌측 뇌출혈로 반신 불수 상태였다.

미로 같은 별장에서 독재자를 소생 시키기 위해 스탈린의 부하들은  ‘내란 음모’에 가담하지 않은 의사들을 데려 왔지만 5일 후 방부 처리 되어 레닌 옆에 안장 되었다. 

1953년 3월 5일 극악한 통치자 스탈린이 사망하자 소련 전역은 스탈린의 초상화를 태우는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고 그의 동상이 설치된 공장, 학교, 극장, 대학, 거리, 광장, 공원에서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1922년 부터 1953년까지 30년 동안 피의 통치를 했던 스탈린은 급격한 농업체제 개편 등으로 1000만 명이상을 잔혹하게 굶어 죽였고 3000만명 이상을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켜서 노역으로 병들어 죽게 했다.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KGB(국가보안위원회) 전신인 NKVD(내무인민위원회)라는 비밀경찰을 동원해 정적과 국민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출처:The Moscow Times

반 세기 전 방부 처리 되었던 스탈린이 현 시대에 러시아 땅 곳곳에서 소생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 중 상당수는 스탈린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하고 소련을 초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위대한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다. 

레닌과 스탈린 요리사의 손자 푸친은  “서방이 스탈린을 지나치게 악마화하는 것은 러시아를 공격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며 국민의 반(反)서방 정서를 자신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 곳곳에  스탈린  동상들이 세워지는 동안 국가 반역자를 색출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외신기자들을 내쫓으며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더 강화된  철권통치를 하고 있다.

러시아 땅에서 차르(황제) 시대를 제외하고 가장 긴 통치를 한 지도자는 스탈린이였다.

 1923~1924년 소비에트연방(소련) 레닌 집권기 2인자였던 스탈린은  1924년 1월 레닌의 사망 이후 1인자로 등극해 1953년 자신이 사망할 때까지 29년간 장기 집권했다.

 2000년 첫 당선 이후 지금까지 네 번째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푸틴은  2020년 7월 개헌을 통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통치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두었다.

그의 통치가 끝이 나더라도 또 다른 스탈린, 푸틴 같은 독재자가 연달아 등장 하게 될 것이다.


권력은 그 누가 행사한다 해도 그 자체에 있어서는 악이다.

 -브르크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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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에 있는 교토국제만화 박물관은 전 세계 만화 팬들이라면 반드시 둘러 봐야 하는  성지 필수 코스 중 하나다.

30 만 여 권의 만화책들이  연도 별, 주제 별로 정리 된 ‘만화의 벽'에서 뽑아낸 만화를 몇 권씩 쌓아 놓고 마음껏 읽어도 되는 만화 덕후들의 천국인 교토 만화 박물관은 2006년  교토 시와 만화를 학문으로 연구하는 교토 세이카 대학의 협력으로 탄생 했다.

  교토 만화 박물관의  상시 전시장에서는  만화의 역사와 발전에 관한 전시가 수시로 열리고 있고 매년 열리는  기획 전시에서는  세계적인 일본 만화가들의  원화 작품을 마음껏 관람할 수 있다.

만화의 성벽을 쌓고 있는 일본 만화는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영화를 비롯해 연극, 뮤지컬,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무한 확장 되는 세계 콘텐츠 시장의 원천이자 자양분이다.

 OTT 채널에서 대 히트를 친 ‘흑백요리사 : 요리계급전쟁’은 일본의 요리 만화 <식극의 소마>의 스토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주변의 인정을 받은 요리계의 재야의 고수들이 경쟁자들을 한 명씩 이겨가며 높은 곳을 향하다 정상에서 만난 ‘대가’이자 ‘스승’과 대결을 펼칠 기회를 갖게 된다.

만화 <식극의 소마>에서 스승과 흙수저들의 대결이 전개 되는 동안 승패가 갈릴 때 마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과정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 진다. 

영상으로 장기간 동안 방영된 <심야식당> <와카코와 술> <고독한 미식가> 모두 만화가 원작으로 먹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에서 느껴지는 맛의 감동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음식 만화가 원작인 이 드라마들은 별 생각 없이 화면을 응시 하다가 일본도시 곳곳의 골목을 누비며 음식 삼매경에 빠지게 하거나 음식 자체를 즐기는 혼밥 문화를 확산 시키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줬다. 

미국의 SF영화 부터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같은 영화들은 일본 만화가 없었다면 탄생 하지 못했다.

슬램 덩크, 포켓 몬스터, 데스노트, 드래곤 볼 시리즈가 파생 시킨  다양한 콘텐츠는 일본 산업의 기둥이라 할 정도로 만화는 일본 문화의  보물덩어리다.

특별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만화책은 컷으로 그려진 흑백의 그림자와 대화체로 구성 되어 있다.

독자들은 그림과 글자만 보고 종이에  그려진  음식의 맛과 냄새, 조리 할 때와 맛볼 때 나는 소리들을 상상하며 읽게 된다.

이렇게 상상하며 읽던 만화가 영상으로 재현 되었을 때는  조리 되고 차려진 음식을 먹는 연기자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음식 맛을 체험하게 된다.

펜을 쥐고 종이에 만화를 그리는  대부분의 만화가들은 영상으로 만들어질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특히 음식에 관한 만화를 작법 할 때는  대사량을 많이 넣지 않는데 매 컷 마다 음식의 맛과 식당의 분위기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   음식을 먹을 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주인공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통해 독자들이  마음껏 상상 할 수 있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화면을 틀면 어떤 채널에서든 음식을 먹고, 만들고 파는 예능들이 줄줄이 튀어 나온다.

제한 시간 내에 요리를 완성하거나, 시청자로부터 레시피 제보를 받거나, 요리 문외한에게 하나씩 간단한 요리법을 전수하거나, 미션을 주고 해결하거나,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한국 분식을 팔거나 외국 학교에서 급식을 차려 주는 예능이 쏟아지고 있다.

유툽 채널 중에서도 먹방과 미식 기행, 요리 채널이 단연 인기 순위에 올라 갈 정도로 바야흐로 세상은 온통  먹고, 요리하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나날이 치솟는 물가에 매 끼니 식탁에 올라가는 밥상 재료들은 금값이 되고 있어서 싱싱하고 갓 수확한 재료들보다 냉동 되거나 반 조리 된 식품을 선호 하게 되었다.

라면 한 봉지가 천 원이 된 시대에 한 끼를 차려 먹어도 일본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에 나오는 음식을 기여코 먹고 말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니 만화가들은 진정한 창작의 신이다.

뭘 먹는지 보다는, 누구와 먹는 지가 더 중요한 법이지

何を食べるかより、誰と食べるか. 

-심야 식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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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1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심야식당보다 맛의 달인이 더 재미있더군요.정말인지 모르지만 맛의 달인을 읽으면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는 것 같더군요.
 




기억력이 저하되는 경우 흔히 나타나는 증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말 막힘 또는 설단 현상이다. 단어 특히 사람 이름, 도시 이름, 영화 제목, 책 제목 같은 것을 생각해내려는 경우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떠오를 듯 말 듯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리사 제노바 <기억의 뇌과학> 중에서 


유툽 만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든지 원하는 곡을 찾아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더 이상 먼 거리를 오고 가며 찾아 듣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신의 취향과 기분에 따라서 유툽 속을 헤매면 그만 이다.

자신이 들었던 클래식 음악 리스트 알고리즘에 따라 듣는 것이 싫증 나면 이런 전문가의 선택 리스트를 선택 해서 음악의 깊이와 폭을 차츰 넓혀 나가면서 음악의 정수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마음의 안정도 되찾아 갈 수 있는 것이다.





2022년 5월,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연구 중에 음악이 인간의 뇌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일본 츠쿠바 대학 의학 연구팀의 실험 결과 저널이 실렸다.

츠쿠바대 연구팀은 성인 52명에게 각기 다른 종류의 음악을 들려 주며 3분 동안 음악과 메트로놈 소리를 듣기 전과 후로 나누어서 색과 단어를 얼마만큼 기억 하는지,음악을 듣기 전 후로 뇌 기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험 했다.

인체에 무해한 근적외선 분광법으로 산소포화도를 측정해 뇌의 기능을 진단하는 방법으로 배외측전전두엽(l-DLPFC)을 진단 한 결과 신나고 경쾌한 락 음악이나 랩이 섞인 팝 음악을 들었을 때 보다 클래식 음악을 들었을 때 뇌에서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돼, 배외측 전전두엽을 비롯한 뇌의 여러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어떤 음악도 듣지 않고 메트로놈 소리만 들은 그룹은 심리 상태도 우울했고 뇌의 여러 부위도 음악을 들은 그룹에 비해 활성화 되지 않았다.

수백 년 동안 연주 되어 온 클래식 음악이 뇌 기능 활성화 영향에 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실험 결과들은 이전에도 여러 번 발표 되었고 음악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고 치유 하는 경험을 해본 이들도 세상에 넘쳐 난다.

고작 몇 년 전에 대본 집 까지 챙겨 볼 정도로 감명 깊게 본 영화 인데도 불구 하고  어느 날 갑자기 그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고, 불과 몇 주 전에 갔었던 음식점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건 감각 지각 및 감정을 저장 하는 신경세포가 서서히 늙어 가고 있다는 증거일 지 모른다.

뇌 신경 세포들은 인간이 시각과 청각에서 얻은 정보를 모양과 형태 색으로 저장을 하는데 인간이 언어로 발음을 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마치 카메라가 스냅 촬영 하듯 신경세포 속에 찰칵 저장 되어 이전에 저장 된 세포들이 신경 회로를 통해 연관 단어를 통해 간 곳, 본 것들을 바로 바로 연결해서 찾아 낸다.

일시적인 설단 현상은 찾고 있었던 특정 단어와 연관된 신경 세포들이 일부만 활성화되었거나 약하게 활성화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누군가 이니셜만 알려 준다면 바로 기억해 내지만 그 다음 번의 기억의 회로는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은 채 혀 끝에서 만 맴돌다가 한 참 시간이 지난 후 머릿 속에 떠오른다.

굳이 곡 명이나 작곡가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도 첫 소절 만 들어도 뇌는 금세 그 시절, 그 장소, 그 순간에 들었던 음악이라는 걸 알아차리며 신경 회로에 신호를 보낼 것이다.

뇌 건강을 헤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건 스트레스로 이로 인해 찾아오는 우울증의 늪은 뇌의 신경 회로를 서서히 부식 시켜버린다. 우울하고 침울하고 울적한 나날이 길어 질 수록 기억력은 점점 쇠퇴해져서 정보 저장 세포 기능이 급속도로 늙어 간다.

뇌는 나이가 들수록 장미 빛 필터가 씌워진 것 처럼 기억력도 희미해져 가지만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는 방법 중에 음악이 가장 훌륭한 예방 법 중에 하나로 반복해서 음악을 들을 때 마다 뇌가 특정 정보를 시각화 해서 저장 하는 기능을 활성화 시키며 음악 선율을 되새기고 리듬의 강 약에 따라 기분을 좌우 하는 도파민이 분출 된다.

알츠하이머 중증 환자들도 음악에 반응 하며 감정의 기복을 줄여주면서 심박율과 호흡, 혈압을 정상으로 유지 시켜 주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까지 인간에게 음악은 영원 불멸한 영혼의 소리인 것 이다.

어느 날 문득 흘러 들어 온 선율에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 되는 경험을 해 보았다면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나날 속에서 음악은 한 줄기 빛이자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터넷이 연결 된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 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

음악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뇌 신경 치료제 이고 영혼의 치유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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