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양의 남산 자락 초가집에 살았던 가난한 선비 허생은 뼈 속에 스며드는  추위와 천장에 고드름이 매달린 방안에서 오로지 글만 읽었다.

바느질로 겨우 굶주림을 참고 견뎌내던  아내는 어느 날 남편에게 글만 읽지 말고 도둑질이라도 해서 배불리 먹자 라며 방안에서 내쫓아 버린다.

결국 아내의 등살에 책을 덮고 거리를 나온 허생은 행인들에게 '한양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 누구인가" 라고 묻자 지나가던 행인들 모두 '변승업'이라고 대답한다.

허생은 곧장  한양 제일 거부 변승업에게 찾아가 대뜸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집이 가난한데, 조금 시험해볼 일이 있어서 그대에게 만 냥을 빌리러 왔소.”

거부 변승업은 허생에게  “좋소!” 라는 말을 하며  주저 없이 만 냥(현재가치로 약 36억원정도)을 빌려주었다.

남루한 차림새의 선비에게 거금을 빌려 준 변승업에게 놀란 하인들이 

“어찌 누군지도 모르는 자에게 만냥이나 되는 거금을 빌려주십니까?”라고 물으니, 변승업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의지를 거창하게 떠벌리고, 자기가 믿을 만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낯빛은 비굴하여 같은 말을 반복하기 일쑤다. 한데 이 손님은 비록 차림새가 남루 하지만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눈빛이 당당하며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가 재물이 없어도 만족하는 자임을 뜻하는 것이니, 그가 시도한다는 방법 역시 범상치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부산 왜관에서 일본 담당 역관으로 일했던 변승업(1623-1709)은 당시 중개 무역을 통해 조선 제일 부자 자리에 올라섰던 인물로 집안에 돈만 쌓아 두지 않고 그 돈으로 쓸만한 인재들에게 투자했다.

변승업에게 거액을 빌린 허생은 이를 밑천 삼아 '쩐'의 세상으로 뛰어 들어 엄청난 부를 손에 쥐고 변승업에게 10배 가까운 이자를 붙여 돌려 준다.

 
 

변승업이 죽기 전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빌려 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 긍긍하며 앞당겨서 빌려 준 돈을 회수 하려 하자 병환 중에 누워 있던 변승업이 이 사실을 알고  벌떡 일어나  더 많은 돈을 한양 사람들에게 빌려 주며 거의 모든 재산을 탕진해 버린다.

변승업은 이렇게 돈을 뿌려야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식들끼리 돈 때문에 다투지 않게 될 것이고 사대문 밖에 주민들이 굶어 죽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보건대, 권세가 있거나 재물을 모은 사람 중 삼대를 넘기는 이가 없었다. "

중인 출신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돈으로 사버린 인맥과 연줄로 상류층 자리에 올라갔던 사돈 집안이 참혹하게 몰락한 모습을 지켜 봤던 변승업이 한양 일대에 서민들에게 뿌린 돈은 50만 냥(현재 가치로 천 오백억원) 정도로 이 돈을 절대로 회수 하지 말라는 유언을 지킨 후손들은 후에 불어 닥칠 가문의 화도 막아 냈다.

돈의 가치와 쓸모를 제대로 알았던 변승업,지금 시대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인물이다.

 

유리 지갑을 가진 서민들은 숫자 하나에 손을 덜덜 떨며 최저가 상품, 할인 이벤트 행사를 쫓아 다니는 동안  서민들을 상대로 이자 놀이에 빠진 현대 금융산업은 소리 소문 없이  자신들 만의 보너스 잔치를 벌일 것이고 정책과 제도는 눈 가리고 아웅 정도의 세금 혜택을 던져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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