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먹거리 중에서 가격대비 영양가가 높은 것은 닭이 낳은 알 '달걀'이다. 

달걀은 무게에 따라 왕란(68g 이상), 특란(68~60g), 대란(60~52g), 중란(52~44g), 소란(44g 미만)으로 나뉜다. 

알을 낳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닭이 낳은 알은 초란이라고 하는데 계란 크기로는 맛이나 영양의 차이가 거의 없지만  대개 산란 후 2주 정도까지가 가장 신선하고 영양가가 높은 상태다.

우리가 먹는 달걀은 대부분 특란 또는 대란인데 흰색, 갈색 그리고 청색의 계란 알 색깔은 영양학적으로 차이가 전혀 없다.

달걀 1개에 단백질이 6~7g 들어 있어서 하루 2개 정도 섭취 하면 닭가슴살 100g의 단백질 절반 가량을 섭취할 수 있다.

달걀의 단백질은 조리 방식이 달라져도 큰 차이가 없다.

삶은 달걀의 열량은 77칼로리지만 조리 할 때 기름을 사용할 경우 200칼로리를 훌쩍 넘긴다.

삶거나 굽거나 찌거나 중탕으로 수란 상태로 먹어도 맛이 뛰어난 계란은 기름에 조리 할 때 소금과 설탕 약간만 넣어 고소한 맛을 살려서 먹어도 맛있지만 계란요리에 빠지지 않는 소스가 있다.

다양한 요리에 뿌려 먹고 찍어 먹는 만능 소스 케첩은 어느 가정집의 냉장고 문을 열면 한 두 개 정도는 있고 다양한 음식에 두루 사용되는 소스다.

미국을 대표하는 페스트 푸드인 햄버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케첩은 미국 남북전쟁 이전까지 유럽에서 부유한 이들만 먹을 수 있었던 값비싼 소스였다.

17세기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아시아 푸젠성, 광둥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사용 되었던 생선 소스와 베트남 요리에 쓰이는 생선으로 만든 간장 ‘누옥맘(nuoc mam)’을 가져와서 전파 되기 시작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아시아 생선 소스와 간장에 버섯이나 호두를 갈아 넣어서 케첩 소스를 먹기 시작했지만  비싼 아시아 생선 소스를 수입하면서 값싼 토마토를 섞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최초의 케첩의 색깔은 빨간색이 아니라 갈색이였다.

미 대륙에 케첩이 전해졌을 때도  버섯이나 자두 ,복숭아를 섞은 갈색 소스 형태로  수입이 되었다.

하지만 남북전쟁으로  농작물을 제때 수확하기 힘들어지자  빠른 시간에  쉽게 키울 수 있는 토마토를 대량으로 재배해 케첩 소스에 섞기 시작했다.

남북 전쟁 당시 토마토를 넣은 빨간색 케첩 맛에 반해 버린 미 대륙인들은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여러 업체에서 마구잡이로 만들며 불량 저질 토마토 케첩을 쏟아냈다. 

계란의 껍질을 갈아 넣거나 나무 껍질을 넣기도 했던 케첩에 부패를 방지 한다며 방부제로 포르말린을 넣고 변색 방지를 위해 아스팔트용 콜타르를 넣기도 했다.

케첩을 먹고 건강을 해치게 되자 소비자들은 외면하고 때마침 이 시기에 사업가  헨리 하인즈는 나쁜 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허 받은 투명 용기 케첩 병에 소스를 담아 팔기 시작했다.

토마토를 끓여 걸러낸 뒤 설탕, 소금, 식초, 향신료 등을 첨가해 조린 하인즈 케첩은 계피, 허브 딜오일, 마늘 같은 천연 성분을 넣어 신선도와 맛을 보존 하면서 토마토 케첩은 하인즈라는 대명사가 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소스가 된 하인즈 토마토 케첩이 투명한 유리 용기에 담기 전 1900년 경부터 일본에서는 푹 익은 토마토를 갈아 넣어서 유리 용기에 담아 먹는 소스를 먹기 시작했다.

일본 메이지 시대 때 부터 국민 브랜드 소스로 자리 잡았던 가고메 토마토 케첩은 유리병을 열자 마자 소스가 확 쏟아지거나 양 조절이 힘들고 사방으로 소스가 튀어서 그릇에 담아 먹었다.

1950년  바닥까지 깨끗하게 먹을 수 있는 비닐 튜브형 용기가 등장하면서 깔끔하게 쭉 짜서 먹게 되자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어떤 요리에도 맛과 풍미를 돋게 하는 토마토 케첩은 달걀로 만든 음식과 최상의 조합이다.

 달걀과 밥만 있으면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 할 수 있는 오무라이스에 케첩만 뿌려도 맛과 풍미가 뛰어난 요리가 된다.

원하는 재료를 넣고  밥을 볶은 후 접시에 담고 난 후 달걀을 두 개를 휘저어서  버터를 넣고 달군  팬 위에 부어서 손목으로 팬을 돌려가며 달걀을 얇고 둥글게 부친다.

가장자리의 얇은 부분은 햐얗게 변할 때 가스 불을 끄면 가운데 부분은 반숙 상태처럼 촉촉하다.

준비해둔 밥을 둥글게 부친 지단 한 가운데 넣고 긴 나무젓가락을 사용해서 양쪽을 접어서 밥을 감싸면  반달 모양이 된다.

스푼으로 가운데 뿌려진 케첩 부분 부터 잘라내면서 비벼 먹다가 부족 할 때마다 케첩을 뿌려 먹는 오무라이스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지만 이따금씩 다른 소스를 넣은 오무라이스를 먹을 때면 다음 번엔 반드시 케첩만 뿌리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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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직접적으로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이야기를 읽거나 듣거나 볼 때 무의식적으로 장소와 인물의 심리, 행동 그리고 주변의 소리와 소음, 색채를 여러 형태의 형상으로 그려 본다.

프란츠 카프카의 아주 짧은 단편 <큰 소음>에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집안 전체의 소음이 한데 모이는 곳에 있는 내 방에 앉아 있다.

나는 모든 문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다. 문들이 닫히는 소리 때문에 그 문들 사이를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부엌 안에 있는 난로 문이 찰칵 닫히는 소리까지도 듣는다.

아버지는 내 방의 문들을 마구 열어 제치고 질질 끌리는 침실용 가운을 입은 채  내 방을 가로 질러간다.

옆방에서는 난로의 재를 긁어내고 있다. 발리는 앞방을 통해서 아버지의 모자를 닦아 놓았느냐고 한 단어 씩 소리치며 묻는다. 나에게 친근해지려는 쉭쉭 소리가 대답하는 목소리의 외침보다 더 높아진다. 집 안 문들의 손잡이가 돌려지고 카타르성 목에서 나오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나서 문은 계속적으로 어떤 여인의 노래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열렸다가 드디어는 남자의 홱 밀치는 둔탁한 소리와 더불어 닫히는데 그것이 가장 난폭하게 들려 온다. 아버지는 가버린다.

프란츠 카프카의 아주 짧은 단편 <큰 소음>에서 화자인 '나'가 머무는 공간 '방'에 등장하는 '문'들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여러 소리들이 들린다.

발자국 소리, 난로문이 닫히고 열리는 소리 그리고 방 안의 사람들 보다 목소리 톤이 더 높은 아버지가 등장하고 서로 밀치고 닫히는 사이 여인의 노래하는 목소리에 뒤섞인 난폭한 소리 , 밀쳐내는 소리가 들린다.

단순히 한 공간에서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긴장감이 느껴지고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버지'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읽는 동안 머릿 속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야기의 모양과 형태를  일목 요연하게 논리적인 구조의 틀 속에서    의식과 잠재 의식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읽는 이들이 이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을 스토리텔링이라 한다.

카프카는 단순한 스토리텔링으로만 이야기를 구축하지 않았다.

인물의 심리 변화는 일어나지만 주변 상황에 극히 미약하게 반응 할 뿐 명확하지 않게 불가사의하게 현실과 비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모호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읽는 독자들은 카프카의 짧은 단편을 읽고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까?

독자가 각자의 해석을 끼워 넣을 상상의 공간까지 만들어 놓은 프란츠 카프카는 모더니즘 시대를 도래 하게 만든 탁월한 천재였다.

활자로 서사적 세상을 구축하는 천재적 작가가 있듯이 음악 세계에서도 독특한 연주 해석으로 인간의 잠재적 의식  속에 무언의 형상을 부여 하는 음악가가 있다.

음악을 듣는 동안 그 세계에 누가 있는지 어떤 일이 벌어 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음의 높낮이가 달라 질 때 마다 서서히 진폭의 강도의 세기가 달라 질 때마다 마음의 울림이 달라 질 뿐이다.

이 세상은 항상 뜻밖의 일,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 뜻밖의 것들이 날씨 일 수도 있고 어떤 위기나 위험스러운 상황일 수도 있다.

반면, 변화의 기회나 뜻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 오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사는 동안 맞닥뜨리게 되는 예기치 못한 것들을 알고 싶어 한다.

이건 무슨 의미 일까? 이런 변화는 좋은 징조 일까? 아니면 불길한 기운일까?

 사주팔자를 점쳐 보며 한 해의 운세를 미리 알아 보고 온갖 방책을 하며 주술의 힘으로  운을 끌어  모아 놓는다 해도 태생적인 것, 타고난 것을 완전하게 바꿀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이야기가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에 시작되듯 인간이 본능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는 순간은 변화를 감지 할 때다.

5월의 꿀맛 같은 황금 연휴가 끝나고 나니 2026년의 한 해의 반이 훌쩍 지나갔다.

새로운 다짐도 작심 삼일이면 흐지 부지 해져 버렸고 새로운 마음으로 기획한 것들은 지지부진한 상태에 처해 있다. 

 왜 실천 하지 못했는지 오만 가지 예를 들며 끊임없이 자신을 매수 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기대 하지 않은 채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살아간다.

늘 해오던 일만 한다면 과거에 멈춰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천부적인 이야기꾼들, 세계적인 거장들 모두 불멸의 작품 속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장치를 심어 놓았다.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꿈을 꾸며 상상을 할 수 있는 종인 인간은 헛된 망상이나 허황된 목표를 추구 하며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들이 쌓여서 한 단계씩 도약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추구할 목표도 없거나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 마저 없다면 사는 맛이 없는 우울과 절망만 남는다.

성공은 늘 변화 무쌍한 불확실성 속에 도사리고 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빈스 롬바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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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6-05-30 0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오늘 scott님 포스팅 보면서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봤던 ‘불확실성을 환영하라‘는 문장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추구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확실성들은 과감히 끌어 안고(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절에 맞게 옷을 바꿔 입듯이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인간 영혼의 밑바닥을 잔혹하게 파헤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겨울을 앞둔 11월에 꺼내 읽고 삶의 의미와 진실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톨스토이 작품은 차가운 공기와 눈이 내리는 겨울에 꺼내 읽는다.

무덥고 습한 공기가 짓누르는 계절에는 따스한 시선으로  다양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체홉의 단편을 읽기 딱 좋다.

안톤 체홉이  1896년에 발표한 짧은 소설 <다락방이 있는 집>에서 화가인 주인공이 어느 날 지주 벨로쿠로프의 영지에 머물렀던 몇 년 전 일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잘못하여 나는 낯선 어느 사람의 저택에 무심히 들어갔다. 해는 이미 기울어질 때였으므로 꽃이 핀 호밀 위에 황혼의 햇살이 길게 비치고 있었다. 좁아서 답답할 만큼 두 줄로 빽빽이 심어진 몹시 키가 큰 늙은 전나무가 빈틈없는 두 개의 벽처럼 줄 지어서 어둡고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이루고 있었다.

-안톤 체홉의 '다락방이 있는 집' 중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을 잘 못 들어 선 화가는  어느 저택에 우연히 들어 가게 된다.

저택의 주인이자 지주인 벨로쿠로프는 뜻밖의 손님이 자신의 집에 찾아 오자 가족들이 식사하는 자리에 함께 먹자고 제안한다.

화가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지주 벨로쿠로프의 두 딸을 만나게 된다.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고 활달한 성격에 언변이 뛰어난 큰딸 리자와 대화를 하던 화가는 길게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떤 대화든지 논쟁으로 이끄는 학창 시절 버릇이 불쑥 튀어나와 버린다.

화가는   혼자 흥분하며 지루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다가 그만 식탁 위에 있는 소스 통을 옷 소매로 쳐서 넘어뜨리는 실수를 하고 말지만 두 자매는 이를 못 본 척 넘어간다.

처음 만난 화가와 열띤 토론을 벌이는 언니 리자와 달리  동생 제냐는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들을 뿐 대화에 저녁 식사 내내 끼어들지 않았다.

두 자매의 서로 다른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보던 화가는 지적인 아름다움이 넘치고 활달한 성격의 언니 리자 보다 조용한 성품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제냐의 매력에 끌리게 된다.

'나는 그녀에게 잘 보이지 못했다. 그녀가 나를 좋아 하지 않는 이유는 내 그림이 풍경화이고 그림 속에 민중의 가난함이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깊이 믿는 것에 대해 내가 무관심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주와 격이 없는 사이가 된 화가는 막내 딸 제냐와 우연이라도 마주치기 위해 집으로 가는 길에 일부러 벨라코프 영지를 지나간다.

화가는 언니 리자와 늘상 의견대립을 해서 논쟁에 휩싸이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는  동생 제냐와는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는 제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제냐는  가족들이 허락하면 받아들이겠다 라는  말을 하고는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한 달의 시간이 흘러  화가는 제냐가 어머니와 함께 외국으로 가기 위해 숙모집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언니 리자에게 듣는다. 

'저는 제 고집으로 언니를 슬프게 하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행복하시기를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와 어머니가 얼마나 애처롭게 울고 있는지 알아주셨으면...' 

그 날 이후로 화가는 제냐의 소식은 듣지 못하고 언젠가 크리미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지주 벨로쿠로프를 만나 두 자매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리자는 여전히 셀코프카에서 생활하며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차차 자기에게 공명해 주는 사람들의 서클을 만들어 그들 만의 강력한 당을 결성하여 지난번 선거와 같이 군 전체를 손아귀에 넣고 있던 발라긴을 밀어냈다고 했다. 제냐에 관해 벨로쿠로프가 알려 준 것은 그녀가 이미 집에 있지 않다는 것과 현재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화가는 차츰 두 자매가 살았던 그곳, 다락방이 있는 집을 잊고 살다 아주 가끔 그림을 그릴 때나 책을 읽고 있을 때 문득 그 시절 그 다락방 창문에 비친 녹색 빛 등불 아래서 책을 읽고 있던 제냐(미슈스)를 떠올린다.

언제나 무위도식 하는데 대한 변명 거리를 찾는 나 같은 사람에게, 대 저택의 여름날 휴일 아침은 특히나 매력적이었다. 아직 이슬에 촉촉이 젖은 초록색 정원이 온통 햇빛을 받아 반짝일 때, 집 주변에 자라난 목서초와 서양협죽도의 향기가 풍길 때, 그리고 교회에서 방금 돌아온 젊은이들이 정원에서 차를 마실 때, 모두가 아름답게 옷을 차려 입고 흥겨워할 때, 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배부른 사람들이 긴긴 여름 내내 빈둥 대리라는 사실을 실감할 때, 모든 인생이 그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지금도 나는 똑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정원을 거닐고 있다. 일도, 목적도 없이 온종일, 여름 내내 그러고 싶었다. 

-안톤 체홉의 <다락방이 있는 집> 중에서

사방에 꽃들이 만발한 5월의 마지막 주,  기차에 올라타서 체홉의 단편을 설렁 설렁 넘기기 딱 좋은 날씨다.

미세먼지가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서 살랑 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5월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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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유럽에서 액체 저장용기로 제작되어 고급 소비재로만 판매 되었던 유리병은 1783년 영국의 슈웹스(Schweppes)가 세계 최초로 유리병에 담긴 탄산수를 대량 생산하며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1858년 영국 런던에서  위생적인 관리를 위해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처음 판매하면서 본격적으로 상업적인 용도로 유리병이 제작 되기 시작했다.

1899년 미국에서  콜라는 유리병에 판매 하면서 다양한 용도의 유리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1915년 미국 코카콜라 회사는 시장에 넘쳐 나는 코카콜라 유사품과 차별화 시키기 위해  어둠 속에서도 모양이 느껴질 뿐 아니라 깨지더라도 그 원형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디자인의  유리병을 세상에 등장 시켰다.

 1915년 인디애나 루트 유리 공장의 알렉산더 사무엘슨과 얼 알 딘이 코코아 열매의 울퉁불퉁한 세로 선과 독특한 윤곽(Contour)을 참고하여 제작한  유리병은 1950년 소비재로서는 처음으로 TIME지 커버에 등장한 최초의 상품으로 낙점될 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1960년 미 특허청에 상표가 정식 등록되면서 코카-콜라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상징이된 코카콜라 유리병은 특유의 아이코닉함으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뮤즈로  널리 사랑 받으며 소비자 상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유리병의 상징이 되었다.

코카콜라의 유리병이 소비자 상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칭송 받고 있지만 이보다 몇 세기 전인 12세기  세계인들을 매료 시켰던 병은 한반도에서 생산되고 있던  고려 청자였다.

10세기 무렵 중국에서 도자기 제작 기술이 도입 되기 전인 삼국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흙으로 모양을 빚어 냈던 시절 부터 불투명하고 투박하면서 화려한 색감에만 치중한 중국 도자기와 차별화된 디자인의 그릇을 빚어 왔다.

나팔처럼 벌어진 입, 긴 목, 골이 파이고 양감이 있는 몸체, 주름치마 같은 굽이 만들어내는 유려한 곡선에 고려만의 독특한 미적 기술과 입체적 기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청자 병은  현대인들이 대량 생산하는 공장형 유리병과 비교 할 수 없는 예술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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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유물을 재치 넘치는 감수성과 미적 감각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는  뮤지엄 굿즈라는 의미의 뮷즈로 불리며 시즌 별 한정 출시라는 희소성과 함께 SNS를 통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민화에 등장하는 까치는  마그넷으로 사용할 수 있고 와인마개에는  호작도가 그려져 있고 조선 달항아리는 양초로 만들어져서 불이 켜질 때마다 유물멍에 빠져 들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문화적 자부심’과 ‘일상 활용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국중박 뮷즈는 현 시대에만 제작 되었던 것은 아니였다.

일찌감치 우리 조상들은 일상의 소소한 물건에 한국적인 美와 기능성을 두루 갖춘 굿즈를 만들어 왔다.

고려청자 제작 기술이 결집된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는  향을 피웠을 때 연기가 이 구멍을 통해 자연스럽게 퍼질 수 있게 정교하게 공 모양의 원형으로 제작했는데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칠보 문양'을  음각 기법으로 뚫어서 새겼다.

고려 도공들은 단순히 동그란 모양이 아닌  여러 개의 연꽃잎을 첩화 기법(따로 붙이는 기법)으로 겹겹이 피어나는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향로의 받침은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세 마리의 토끼가 등으로 떠받치고 있게 만들어서 이 향로를 제작 할 당시 어떤 국가의 도공들도 시도하지 못했던  독창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향로를 고려 도공들은 세계 최초로 생산 제작했다.


국보 청자 사자모양 향로를 자세히 관찰하면 어딘지 모르게 사자의 얼굴이 좌우 완벽한 대칭이 아니고 눈도 짝짝이다. 자칫 실패작으로 보이는 사자모양의 향로는 여러 번 볼 수록 다양한 표정의 사자의 얼굴이 보이는 신기한 매력을 갖고 있다.

고려 장인들은  완벽한 사자의 조형이 아닌 사자의 갈기나 발등의 주름과 같은 선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서 사자 본연의 모습을 살림으로써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오래도록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은 우리 유물들의 진정한 가치는  다양한 뮷즈로 만들어져서 전 세계 널리 퍼져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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