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향귀주도(水鄕歸舟圖),나옹(懶翁) 이정(李禎 1578-1607)


강물의 수위가 커다란 바위 중턱까지 차 오를 정도로  불었고 키가 작은 수풀은 물에 잠겨서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좁다란 나룻배 한 척 위에 도롱이라는 비옷을 입은 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비가 더 내려서 강물이 범람하기 전에 어서 강을 건너 마을로 돌아 가야 한다.

조선 중기 화원(畵院) 화가 나옹 이정(李楨)이 그린 <수향귀주>는 여름 장마철에 내린 비로 무섭게 강물 수위가 올라갔던 한강에서 아슬아슬하게 나룻배를 저어 가는 사공의 모습이 담겨있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다섯 살 나이에 작은 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간 나옹 이정은 10살 때부터   산수·인물·불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1589년 13살 나이에 장안사(長安寺) 사찰 벽화(壁畫)를 보수 할 때  산수화와  천왕상(天王像)을 그렸을 정도로 천재로 인정 받았다. 

나옹 이정이 사찰의 불화를 그렸던  시기인  1592년    조선반도에 왜구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해서 전국토가  약탈 당하며 엄청난 화마에 휩쓸렸다.

1592년 부터 시작된 전쟁은  1598년까지 7년 동안 이어져서 조선인들 모두 왜구 세력에 맞서 싸웠다.

조선 반도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은 10여 명에서부터 수천 명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에 차이가 있었지만,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서  왜군에 대항했고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에 의해 보급로가 끊기고 1598년 노량 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 간의 전쟁이  끝이 났다.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다음해인  1599년 화가 나옹 이정은  도솔원(兜率院) 미타전(彌陀殿)에 <백의대사도(白衣大士圖)>를 그렸다.

 

화가 이정의 어머니는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금빛의 광채를 내뿜는 나한의 나타나 '너희 집안은 3대가 계속해서 불화를 수천 폭이나 그렸다. 그 공덕으로 아들 하나를 내려 주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조상들의 공덕으로 태어났지만 일찍이 부모를 여윈 이정은 10살 때 부터 금강산과 설악산을 누비며 숱한 산수화와 불화를 그렸다.

그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문장가인 최립에게 시와 서예를 배웠고 허균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이정의 뛰어난 그림 솜씨에 반한 고관대작과 중국 사신들이 그림 한 점을 얻기 위해 그의 집에 소를 끌고 갔고 금화가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갔지만 강직한 성품에 의롭지 않은 돈과 뇌물을 멀리 했던 이정은 술을 잔뜩 마시고 비단이 가득 실려 있는 수레에 고꾸라져서 잠을 잘 정도로 권세 높은 이들을 위해 붓을 들지 않았다.

이정 <한강조주도(寒江釣舟圖)> 

유유히 흘러가는 강 위에 배를 띄우고 낚시질에 열중하고 있는 선비의 뒤로  고목 나무 가지에 잎사귀가 몇 개 매달려 있다.

 저 멀리 강 건너 산능성이를 따라 드문드문 들어선 마을이 보인다.

화폭의 절반만 채운 여백 속에 등장하는 물과 고목 나무 그리고 나룻배 위에서 여유롭게 낚시에 열중하는 선비의 모습이 서서히 시간과 공간 속을 유영하듯 번지듯 스며드는 붓질에 생동감이 느껴진다.

서른 살 나이에 요절한 화가 이정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정유재란·병자호란 등의 전화와 가뭄·장마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고난의 시기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외세의 침략과 약탈에 죽거나 볼모로 끌려갔고 경작할 땅 조차 없어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7월 장마 전선의 영향으로 빗줄기가  주중 내내  쏟아지고 있다.

습한 열기로 인한 불쾌지수는 최고조로 상승하고 있고 전 세계 불어 닥친 기후 재앙과 전쟁, 그리고 원화 가치 하락까지 겹쳐서 실물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졌는데, 생활물가는 '살인적'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위험 수위에 차 올라 민심이 들끓어 오르고 있지만 국민의 혈세로 먹고 사는 권력자들은 포퓰리즘 정책만 남발하며 침수되고 범람해가는 앞 날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겠다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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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변명은 최고의 예술
사이하테 타히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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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내내 장마 비가 내리고 있다.

집안 가득 습한 공기로 가득차니  침구류들을 교체하고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거나 재활용 함에 넣고 옷장과 서랍마다  제습제를 교체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마지막 신발장을 정리하고 나면 하루 반 나절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정리하는 동안 지난 밤에 주문한 물건들이 차례 차례 도착을 하고 배송된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상자들과 포장팩, 뽁뽁이들이 한 가득 나온다.

식품을 꺼내서 각각 냉장고에마다 분류해서  정리하고 나면 플라스틱 류 포장재와 케이스가 한 가득 나온다.

 버려야 할 것들,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을 한 자리에 모아보면 마치 낙타 등에 봇짐을 탑처럼 쌓아 올리듯 천장 높이 만큼 올라간다.

송필,기억저장소,Steel, Bronze, Wood_100x100x265cm, 2017

생이 이어지고 존립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의-식-주의 양이 이 정도 라면 먹고 마시고 버리고 배설하는 양은 이보다 더 많은 양일 것이다.

치우고 버리고 정리하고 나면 또 다른 물건을 채우게 만드는 욕망, 소비의 욕망에 불씨를 지피게 만드는   고도의 자본 소비 지향 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숙명으로만 받아 들여야 할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대략 78세에서 83세 사이라고 할 때 평생 동안 웃는 시간은 하루에 단 90초 뿐으로 이를 생애 마지막 까지 계산 해본다면 고작 한 달을 채 넘지 않는다.

반면, 걱정하고 근심하고 분노하는 시간은 하루에 3-4시간 정도로 만일 80세까지 살게 된다면 걱정과 불안과 근심을 10년이나 하며 살게 된다는 의미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아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 할 때부터 무한 경쟁의 세계로 떠밀려 들어간다.

이런 경쟁에 아무리 익숙해진다 해도 학교와 사회에서 부딪치고 겪게 되는 여러 부류의 인간관계의 어려움들이 때로는 세상을 순탄하게 살아가기 힘들게 만든다.

공부와 시험의 압박, 업무의 과중함, 일과 승진에서 받는 스트레스 이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리기 위해 영상물에 심취하고 게임에 빠지거나 여행을 나서도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타인이 대신 짊어질 수 없듯이 모든 고통과 번뇌,열망과 갈망 모두 나에서 출발해서 내 안에 머문다.

신기하게도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서로 다른 소망과 욕구의 접촉 범위가 점점 커질 때마다 떠안는 스트레스의 크기도 엄청나다.

 가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한다 해도 죽는 것 조차 그리 간단하지 않고 만일 내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이라는  한탄을 해도 그나마 건강하게 살아서 존재하는 일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내가 안고 있는 걱정과 근심, 불안과 고통의 양은 얼마 만큼이나 될까.

봇짐 하나,

봇짐 둘,

봇짐 셋,

(c)KIMSOOJA / 2007. Bottari truck – Migrateurs

일상 어딘가에 좋아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너의 진정한 유언이다.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라는 존재도 훌륭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네가 소중히 여기는 샴푸통이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큰 은행나무가,

죽은 너의 영혼을 감싸고,

그렇게 조개처럼 딱딱하게 닫힌다.

영원이 시작된다.

네가 눈을 깜박이듯, 매일 한순간 사랑했던 것들과 함께. 

-사이하테 타이의 「진주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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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종교에서 인간은  오랫동안  바라고 원했던 것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집착과 욕망의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설파 하고 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인간은 배가 고프면 눈을 부릅뜨고 먹을 것을 찾아  배를 채우듯 원하는 것을 얻고 난 후에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도대체 위대한 사상이란 무엇입니까?'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한다는 것, 바로 그거야말로 위대한 사상 아니겠니?

'가장 위대한 것입니까? 정말 가장 위대한 길을 말씀하신 겁니까? 그것이 가장 위대한 것입니까?'

'매우 위대한 것이지. 그래, 대단히 위대한 거야. 그러나 가장  위대한 것은 아니다. 위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2차적인 것이며, 바로 이 순간에만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지. 사람이란 배가 부르게 되면 지난날의 일은 회상하지 않는다. 회상은 커녕 바로 그 자리에서 ,자, 이제는 배가 부릅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요? 하는 법이다. 그러니 문제는 영원히 미해결로 남게 되는 거지.'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 중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소설 <미성년>의 주인공 아르카디와는 소년의 친부 벨르실로프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본질인 욕망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기에 단순히 물질적인 충족 만으로 해결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일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원하고 욕망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삶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제도가 그 사회에 소속된 모든 인간들의 삶을 보장 해주지 못한다.

하루에 한 번 글로벌 커피체인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과 편의점의 아메리카노를 먹는 것 그리고 봉지 커피를 털어 마시는 것의 행복의 무게는 카드로 지불한 금액의 크기와 상관 없다. 

재벌도 요플레 뚜껑을 햝아 먹는다고 대답 했듯이. 이것 저것의 가격의 크기에 행복의 크기가 좌우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의 경우는 다르다. 고통은 조건과 상관 없이 우리가 수용하고 지불하는 비용의 크기가 부에 비례하기에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내가 힘겨운 고통에 빠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내가 겪는 수준만큼 고통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지.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야. 게다가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인정하는 데 아주 인색하거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중에서 

모든 고통은 절대적이고 상대적이다. 타인이 내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동체 사회에서 인간은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공유하고 연대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그 슬픔의 무게는 오로지 개개인만이 짊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진자처럼 왔다 갔다는 운명인 것이다.

인생은 빠르게 변한다. 인생은 한 순간에 변한다. 

당신이 앉은 저녁 식탁에서 인생은 끝나기도 한다.

Life changes fast. Life changes in the instant. 

You sit down to dinner and life as you know it ends.  

조앤 디디온(193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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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시작은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에서 유래 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황하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여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 하며 별의 움직임에 따라 한 해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고대 중국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돌들은 기원전 2300년 경 중국의 요왕이 아둔하고 게으른 아들의 인격 수양을 위해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많이 짓는 편이 이기는 게임인 바둑을 시작했다.

한반도에 바둑이 전해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삼국사기'에 고구려 승려 도림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 도구에서 하나의 놀이 문화 였던 바둑은  17세기  일본에서  막부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게임의 룰이 생겼고 오로지 바둑만 두고 사는 직업군인 기사제도와 본인방 같은 가문 대대로 바둑 기사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 가문이 탄생했다.

일본에서 지역별 종파별 바둑 가문 대결이 시작되면서 전 열도의 대전으로 게임의 룰이 정비 되었다.

바둑의 룰은 간단하다. 반상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놓고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많이 짓는 편이 이기는 게임이다.

한국은 20세기 초까지 흑과 백의 돌을 미리 바둑 판에 배치 하고 시작하는 순장 바둑을 두었지만 해방 후 일본에서 바둑 공부를 하고 돌아 온 조남철 9단이 일본 바둑 룰을 한국에 보급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바둑은 단 한 번에 게임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흑의 수로 중단 되는 것이 오래 전부터 지속된 게임의 룰이지만 일본 바둑은 여기에 상수(上手)에 대한 예외를 두고 일단 상대의 수를 봐 두고 다음 수를 다시 바둑이 재계 되는 시기까지 천천히 고심해서 대국이 중단될 때까지 마지막 수를 봉할 수 있는 규칙으로 변형 되어 왔다.

이렇게 자잘한 규칙과 예외, 만일에 대비한 비책까지 바둑의 현대 룰을 확립한 바둑 기사는 일본의 명인이라 불리는 혼인보 슈사이다.

일본의 메이지와 다이쇼, 쇼와 시대에 걸쳐 50년 동안 불패의 기록을 세운 바둑 명인 혼인보 슈사이는 상대 바둑 기사를 선발 하는 데만 일 년 반이 걸릴 정도로 만만치 않은 상대와의 게임에서 궁극의 승자가 되는 바둑을 즐겼다.

대국 조건도 각자 제한 시간 40시간에 각 대국 간격이 나흘 일정에 대국 중에는 줄곧 숙소에 머무르면서 승부가 날 때까지 바둑을 지속했던 명인은 결국 마지막 바둑 경기를 앞두고 숨을 거둔다.

제 21대 혼인보 슈사이(本因坊 秀哉 )명인은 1940년 1월 18일 아침, 아타미에 있는 우로코야 여관에서 죽었다. 세는 나이로 예순 일곱살이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 중에서

1938년 6월26일부터 12월4일까지 장장 6개월에 걸쳐 세기의 바둑 대전이 벌어졌다.

 14회나 계속된 이 경기는 65세의  바둑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대국 경기로 그는  경기 중반에 병으로 쓰러져서  11월 중순까지 석 달 동안 경기가 중단 되었다가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자 마자 겨우 제개 되었다.

하지만 50년 간 이어온 '불패의 명인'이라는 기록이 30세의 젊은 신성에게 깨지고 결국 대국이 끝나고 나서 1년 후 1940년 명인은 원래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을 쓰지 않는 날이면 항상 바둑판을 펼쳐 놓고 바둑알을 만지작 거리며 바둑판에 흑색과 흰색 기보를 두고 읽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38년 6월부터 12월까지 약 반년 동안 치러진 바둑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마지막 대국을 직접 참관하는 동안 신문에 총 64회의 관전기를 연재하며 일본 열도를 바둑의 열풍으로 몰고 갔을 정도로 바둑 애호가 였다.

일본의 바둑 역사는 약 300여년으로 [명인 名人]이라는 호칭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엔 모든 걸 다 차지할 수 있는 직위일 정도로 바둑 판에서 승자의 자리에 올라가면 막강한 세력을 과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나서 부터 바둑계의 승자인 명인들이 누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명예뿐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에 실존 명인 혼인보 슈사인는    1914년 마지막으로 명인 名人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명인의 하얀 부채가 얼음물을 얹은 검은색 칠(漆) 쟁반에 비치어 움직이는 고즈넉함. 관전은 나 혼자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 중에서

50년 동안 바둑의 명인이였던 혼인보 슈사이는 삼십 년 동안 흑을 쥔 적이 없었다.

그는 이인자가 없는 일인자였고 살아 생전 후진 가운데 8단도 없었다.

동시대 활동 했던 바둑 기사들 중에서 그의 지위에 견줄 자가 없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십 년 동안은 일본 바둑계에서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승부를 넘어선 기사도 나타나지 않았고 계승자도 없었다.

흑과 돌의 집짓는 게임을 '도道'의 예술로 끌어 올려 기와 예절을 갈고 닦는 명인 바둑 기사를 탄생 시킨 곳은 일본이였지만 일본의 바둑의 기예를 누른 상대는 한국의 바둑 기사들이였다.

한국 바둑의 명인 계보는 한국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9단이 터를 닦기 시작해서 김인 9단-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그리고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거둔 이세돌에서 현재 2000년생 신지서 9단으로 이어진다.


2019년 1월부터 2026년  현재 까지  세계 1위인 신진서는 14억 중국의 최고 기사(棋士)들을 줄줄이 무너뜨린 무서운 20대 신진서 9단은 엄청난 인해 전술 전략을 펼치며 만리 장성 같은 바둑 게임 판을 키우고 있는 중국 바둑 기사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상대다.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바둑 기사 다섯 명이 신진서 9단에게 달려 들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다.

 한 해 동안 82국을 소화하는 신진서 9단은 상대가 강할 수록 묘수가 떠오르고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날 수록 정신이 집중 되어 강자들을 꺾을 때 마다 자신감이 붙어 마지막 승자 자리에 올라가는 바둑 인간  알파고다.

5일 동안  이어지는 결승 대국이 시작될 때는 신진서 9단은 혼자 다섯 명의 중국 바둑 대표들을 상대 할 때는 게임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40분 부터 저녁 6시간 까지 경기에 임하고 중간 휴식 시간에 식사와 주변 산책을 하며 마지막까지 온전히 바둑판과 혼연 일체가 된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복기를 하고 복기가 끝나면 새로운 상대인 인공지능 바둑을 연구 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청파로 한국경제TV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2국에서 현존 최고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카타고(KataGo)를 상대로 290수 만에 한국의 천재 바둑 기사 신진서 9단이 흑 4집반승을 거뒀다.

세계 최정상급 기사라도  알파고(2016년) 등장 이래 비약적으로 발전한 인공지능을 상대로  두 점을 깔고 이기리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0년 생이 혼자 중국과 일본의 바둑 기사들을 제압하고 인공지능 카타고를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건 지속적이면서 일률적인 습관 덕분이였다.

신진서 9단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오전 9시 기상

-식사 전 기보, 두 개 

-오전 11시 전 까지 아침 겸 점심 식사

-인터넷 바둑 공부

-오후 시간 동안 기보/기보/기보

- 오후 3시 쯤 간식과 휴식

-인터넷 바둑(이길 때 까지 게임을 지속한다.)

-저녁 6시 까지 기보/휴식/기보

-늦은 밤 이기면 산책을 나가고 지면 이길 때 까지 기보/기보/기보

박진감 넘치고 실감 나는 3D게임이 넘쳐 나는 시대에 흑과 돌을 만지작 거리며 몇 시간에 걸쳐 반상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올려 놓은 게임은 과거 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지만 이 바둑판을 현실 세계에 옮겨 놓는다면 야생 정글과 같은 조직 사회 이고 그리고 죽음을 무릎 쓰고 영토를 지켜 내야 하는 전쟁터가 된다.

전쟁터에서 무장을 한 인간은 기계와 1대 1로 붙으면 죽을 확률이 99.9 퍼센트다. 따라서 맞서 싸워서 파리 목숨이 될 바에 최대한 시간을 끌어 저항해서 공략 틈새를 노리거나 적당한 시기에 타협을 해야 한다.

전투냐, 타협이냐’를 놓고 가장 오랜 시간 장고에 들어 간 신진서 기사는 순응하지 않고 저항을 하면서   바둑판 중앙의 천원 바로 위에서 상대의 돌을 끊는 강공을 시도하다  승률이 흔들려 97% 밑으로 떨어졌고 집 차이도 4집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신진서는 카타고와 수 싸움에서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고, 마무리까지 충분하게 남은 시간을 활용하면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치열했던 중앙 전투 전에서 신진서는 카타고의 수에 반발하고 공격하고 싶었던 순간이 수없이 많았지만 참고 인내하다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중앙으로 나와 끊어버리는 강공을 선택했다.

평생 동안 바둑판만 응시한 채 1년 365일 손에서 바둑 알을 쥐고 사는  명인은 바둑판을 벗어난 세상의 온갖 협작과 질투,교묘한 술책이나 속임수, 눈속임에 크게 개의치 않아야 하고  그런 시선과 모함에 휘둘릴 시간도 없을 것이다.

명인의 하루 일과는 바둑 알을 쥐고 바둑판을 바라보며 시작되고 하루의 마지막도 바둑 알을 손에서 내려 놓아야 끝이 나고 한 번 승부가 펼쳐 지면 끝장 날 때까지 승부를 보는 근성으로 인생의 모든 걸 바둑에 건다.

바둑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게 명인의 삶은 이해 불가다.

기껏해야 바둑이고 이기고 지는 승부의 게임이지만 바둑 판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놓고 서로 집을 지으려 다 보면 경계선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이렇게 흑과 백이 맞붙는 과정에서 흑과 돌의 대결은 마치 온갖 처세술이 난무 하는 세상의 축소판 처럼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이 바둑 판 위에서 펼쳐지는 오묘한 게임이다.

대륙 굴기로 최첨단 기술과 풍부한 인적자원 그리고 천연 자원으로 자력 강생하고 있는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아 나가듯이 중국 전역에 인공지능 칩을 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치 사회 경제 모두 혼돈의 도가니로 펄펄 끌어 오르고 있다.

지난 세기 중국이 만리장성을 쌓아서 세계에서 자신들이 최고라 여기고 있을 때  한반도의 엘리트들은 기득권과 당파 싸움에 몰두 해서 세계 정세에 뒤쳐지는지도 몰랐다.조선의 기득권층과 달리 일반 백성들은 뛰어난 지능과 손재주로 당대 세계 최고의 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의궤를 제작했다. 서구보다 앞선 인쇄와 세공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들 끼리 정쟁하며 국민의 삶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책 결정자들은 자신들 배만 불리는데 골몰하고 있다.

각자 도생의 시대다.

 인공지능과 공생 공존 하는  시대에 인간은 더이상 학교 선생도 전문가들의 조언도 백퍼센트 신뢰 하지 않게 되었다. 학습하고 기획하고 추진하고 해결하는데 인공지능은 손 안에 폰처럼 언제 어디서든지 호출 할 수 있다. 집을 구하고 계약을 하고 무언가를 찾아 헤맬 때도 인공지능은 내 안의 비서이고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의 심장을 부착 할 수 없듯이 인간의 뇌에 칩을 심더라도 인간은 기계처럼 사고하고 움직일 수 없다.

어떤 선택과 전략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이겼다고 믿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잡념은 교활하다. 이겼다고 생각해 방심하는 순간이 자신이 파고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임을 알고 있다. 목표가 눈앞이라면 그때야말로 조심해야 한다. 그때가 가장 큰 위기일 수 있다.

-신진서 9단의 <대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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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2019

어디서든 구입 할 수 있는 은색 테이프로  전시장 벽에 붙여둔 바나나 한 개

이 작품의 제목이 <코미디언>이라는 걸 확인한 관람객들이 대체 이 바나나가 무슨 의미일까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이에  20대 대학생이 아침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며 테이프에 붙여진 바나나를 먹어 치웠습니다.

관람객이 먹어 치워 버려서 더 유명 해진 이 작품은 어떤 예술적 철학이나 진지함도 없이 오로지 미디어적인 소란과 관심을 유도한 코미디 같은 작품으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현재 이 작품은 동시대 예술 작품과 나란히  전시장 벽에 붙어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렸고 교과서를 비롯해 각종 미디어나 광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생각하는 사람 형상을 조각한 사람이 로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미술에서 가장 상징적인 예술가로 앤디 워홀이 미국 슈퍼 마켓 어디에서나 팔고 있던  캠벨 수프 깡통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 법 한 예술품, 흔히들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 중에서 대체 이 작품이 전시장에 왜? 라며 의문을 갖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전시장을 찾을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나 그림이나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생소한 작품이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작품 ,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그려진 작품들과 마주 할 때면 "이 정도라면 나도 만들 수 있어. 그릴 수 있어"라든가 "이것도 예술이라고?"라는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소수의 내부 관계자들에 의해 선별 된 작품들이  예술 시장에서 살아 남는 건 극히 드문 일이고 저평가 되었던 작품이 어느 날 걸작으로 평가 받아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로 낙찰 받는 경우가 비일 비재 합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포름알데히드로 채워진 수족관에 갇힌 상어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서로 다른 오브제와 재료로 완성한 두 작품 모두 현재 유명 미술관에 영구 전시된 작품입니다.

 예술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었을까요? 아니면 세상이 예술을 바꾸었을까요?

@Scott-MoveableFeast 채널 영상에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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