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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하는 미국 - 뿌리 깊은 문화적 균열의 연대기
콜린 우다드 지음, 김주헌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10월
평점 :
1763년 정치적으로 내분에 휩싸인 영국이 통치 제도를 바꿔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시작하자 식민지인 미 대륙과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미 대륙인들 사이에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나라의 왕과 의회에 대한 회의와 불신감은 서서히 쌓여 갔다.
특히 영국 정부가 식민지의 통치권을 미국인들이 손에서 빼앗아 왕의 하명 아래서 영국 의회의 다수 표결로 결정해 버리자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혁명의 불씨는 싹트기 시작 했다
13개 주 미대륙 식민지 땅에 넓게 퍼져 살던 대다수 미국인들은 군주제 정부로 부터 관대한 통치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였다.
미국인들은 유럽의 바다를 장악하고 있던 대영제국의 지배 하에서 자신들의 피와 땀방울이 스며 있는 토지와 재산에 대한 안전한 자치권 보호를 받기 원했을 뿐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반면 방대한 식민지 영토를 통치 하는데 막대한 군비 자금과 항해 운송비를 감당 하기 힘들었던 영국은 미 대륙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단 세 척의 군함으로 미국을 전멸 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775년, 영극 해군은 미국 렉싱턴과 콩코드로 함대를 밀고 들어 가 전투를 벌인다.

영국 측은 미국의 반란이 단순히 "끊임 없이 이어지는 봉기'일 뿐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노예들의 노동 착취로 부를 축적한 남부 지주와 거부 그리고 정치인들만 포섭 하면 미 대륙의 13개 식민지 주는 단숨에 정복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지형과 드넓은 자연 환경의 미 남부 지역은 휘그와 토리 보수파 정치인들이 선발한 국왕파 민병대들의 아둔하면서 느슨한 행동과 전략으로 전투 현장에서 맹 활약을 벌여서 영국 부대를 전멸 시켜 버렸다.
몇 달 동안 배를 타고 미 대륙으로 건너온 영국군은 본국에서 군비 물자가 제 때 보급 받지도 못했고 지형도 낯설어서 첩보 파발마를 보내도 단 한번도 목적지에 도착 하지 못하니 영국 측 지휘관은 전쟁 전황 소식을 보고 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농장 일을 하다가 영국군으로 부터 땅을 지키기 위해 모인 남부 대륙군 민병대들은 살기 위해서 군에서 이탈 해서 먹을 것을 찾아 곳곳을 누비다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국 군을 생포하거나 군 부대를 습격해서 영국군은 골머리를 앓게 된다.
소소한 전투에서 영국군이 승리를 해도 승전보가 국왕까지 도달 하기 전에 미대륙 민병대들이 차단 시켜 버려서 영국은 미 대륙에서 영국군의 독립 전쟁 전선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제대로 된 전선 소식을 듣지 못한 영국 귀족들과 의원들은 미 대륙군을 악의적인 반란자들이라고 치부 해 버리고 영국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미 대륙의 남부 지주들과 정치인들이 함께 싸워서 빠른 시일 안에 진압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드넓은 대륙의 전선이 넓게 퍼질 수록 전쟁은 지루 할 정도로 지연 되었고 지연 될 수록 미 대륙군은 오합 지졸에서 질서 정연 하게 훈련 받는 용맹 병사들로 거듭나게 된다.
막상 전쟁의 광풍에 휩싸이자 남부 지주들과 정치인들은 똘똘 뭉쳐서 영국 측에 전혀 협조를 하지 않았다.
미국은 빠른 시일 안에 끝낼 전투가 아니라 생각하고 강을 중심으로 주요 핵심 지역으로 전선을 넓혀 나가면서 도망치는 전략으로 영국군과 맞서 싸우기 보다 치고 빠지는 방어 전을 펼치며 쫓고 쫓기는 순간에 부대를 기습 공격 했다.

도망치는 영국군을 포위하기 위해 흩어졌던 대륙군 2200명은 버지니아 주요 진지에서 적들이 오기만 기다렸다.
대량의 사상자를 낸 영국군 만큼 미 대륙군들의 사상자들도 높았던 독립전쟁은 1779년에서 178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엄청난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자신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고 영국군에 의해 모든 재산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자 미국인들은 어떤 고통과 굶주림이 닥쳐 와도 반드시 영국에게 이 땅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다.
이들은 서로의 의복을 만들어 주었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습격해 오는 영국군을 향해 총을 들었다.
4년 동안 이어졌던 독립 전쟁 동안 정규 대륙군과 민병대들은 이 전쟁이 추구하는 목적을 자신들의 일이자 우리 모두의 미래,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총 사령관이였던 조지 워싱턴은 전장에서 현란한 연설이나 말 보다 편지를 통해 지휘관들과 병사들의 마음을 위로 하고 추스려 주었다.
'당신들의 영광스러운 대의 덕분에 독립 전쟁이 자유민 대 용병의 싸움이 되었다.'
독립 전쟁에 나선 미국인들은 자유를 위한 용기, 명예 그리고 용맹하게 싸워 승리를 쟁취 할 때 비로소 미 대륙에 평화가 찾아 오리라 믿었다.
북부주에서 백인들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몸을 혹사 당했던 흑인 노예들 중 대다수는 군복무를 통해 자유를 얻기도 했지만 백인들로 구성된 대다수 군부대에서는 노예 입대를 반대 했고 군측이 노예 민병을 고용하는 댓가로 주인에게 현금을 지불해 했다.
반면 남부 주는 북부 주 처럼 노예들이 군에 입대 하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채찍을 들고 노예를 부려 먹었던 남부의 지주들은 흑인 노예들이 전쟁이 끝나고 복무를 마치면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게 될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단 한 명의 병사라도 필요했던 정부의 압력과 길어진 전쟁으로 인해 남부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대규모로 노예 수입을 하는 것을 폐지 하는데 동의 한다.
독립전쟁이 끝난 후에도 노예제도는 사라지지 않았고 농장주의 극악함으로 신체가 절단되거나 훼손 된 노예들이 줄줄이 사살 당하자 결국 연방 의회의 제헌 회의를 통해 차츰 노예제 금지 지역을 넓혀 나갔지만 완전하게 폐지 시키지 못한다.
4년 동안의 전쟁에서 영국군에게 승리해서 정치적 합의를 이루고 독립을 해서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을 선출하고 미합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로 태어났지만 전쟁으로 막대한 국가 부채와 인력 손실로 인한 부족한 세입으로 국고는 텅텅 비어서 군대에 지급할 봉급과 공채 모집소 증권과 외국채의 원금과 이자까지 지불할 비용으로 가득 쌓여 있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신생 독립의 꿈을 이루었지만 전쟁 후 변제 되지 않은 부채의 규모를 산출 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적으로 파산하자 결국 남부 주에서 흑인 노예 착취를 내버려 둔다.
1863년 1월 1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 할 때까지 미국 땅에서 흑인과 유색 인종은 발 목에 쇠 고리가 채워진 채로 밭을 갈고 목화 솜을 따야 했다.
2024년 제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경합주인 러스트, 블루 벨트에서 상대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이로 이긴 트럼프는 서부와 동부 해안 지역을 제외 하고 미 전역에서 높은 지지율로 당선 되어 재선에 성공했다.
237년 전에 제정된 미국 헌법을 따르는 낡은 선거제도인 선거인단 승자독식제는 일반 유권자 표심과 선거 결과와 일치하지 않아서 트럼프 지지자의 89퍼센트와 바이든 지지자의 90퍼센트가 상대 후보의 당선이 국가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국민의 민심은 분열되었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정당이 얻은 표에 비례해서 권력을 차지 하지 않는 대통령 중심의 미국 민주주의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공화국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독립전쟁으로 군주제인 영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미국에 강한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신이 축복한 땅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특별한 정치 체제를 이룩한 국가라 생각 했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은 ‘공공의 것’에서 많은 사람을 배제했으면서도 특별하고 보편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고 확신하며 미국 공화국이 왕조 국가들에게 보편적인 모델이라 자부했다.
하지만 미 대륙은 건국 이전 부터 노예제로 먹고 살았고 독립을 해서 그럴듯한 법 조항으로 채운 헌법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끌고 온 노예들과 미 대륙 땅의 주인인 인디언들을 위한 인권의 자유는 어디에도 넣지 않았다.

1863년 11월 19일 13개 주 미 합중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게티즈버그에서 단순하면서 동시에 매우 심오한 문장으로 민주주의를 정의 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독립 전쟁에서 북부에게 패배한 남부는 1877년까지 북부인들에게 극심한 모욕을 당하며 굴욕적으로 땅을 빼앗겼고 노예들은 해방이 되었다.
노예 제도를 지지하는 남부는 노예를 부리는 것이 평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북부는 도덕적인 이유로 도저히 노예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북 간의 갈등 사이를 파고든 건 미국 개척 시기부터 터를 닦은 개신교로 이들은 여러 종파로 나뉘어져서 더 많은 신자들을 확보 하기 위해 백인 농장에서 도망친 흑인 노예들을 전부 받아 들였다.
이후 이민자들이 몰려 오고 세를 불린 종교계는 복음 주의를 외치며 미국을 기회의 땅, 신의 은총이 깃든 땅이라 외치며 세계의 메시아 역할을 하도록 신의 부름을 받았다며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한다.
미국은 종교적 중립을 표방하는 국가도 아니고, 교회의 기능을 민간에 이양 하지도 않았지만 새롭게 대통령에 선출 되는 모든 이들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며, 모든 연설을 공식 표어인 ‘우리가 믿는 신 안에서(In God we trust)’로 끝낸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친 트럼프의 막강한 지지 세력들은 공화당 등록 유권자의 37%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미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백인 남성들과 복음주의 교회를 다니는 백인 여성들이다.
이미 1970년대 부터 미국의 기초 산업 단지가 대규모 해외로 이전해서 조선업과 해운업, 운송업, 제조업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었고 월가의 고학력자에 아이비리그 출신의 백인 금융가들이 쳐 놓은 복잡한 금융망과 백인 부동산 사업가들의 교묘한 술수로 미국의 중산층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버렸다.
이들 백인들은 미국으로 이민 온 아시아계들과 유색 인종들 때문에 미국이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믿고 있고 백인 노동자들은 아시아계 출신의 여성들이 자신들 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에 분개 했다.
반면, 이들은 트럼프가 중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비밀문서 처리과정에서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검찰 수사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가 여성들에게 저지른 성추행, 성폭력, 성착취 혐의가 드러나도 막무가내로 지지한다.
흑인에게 니그로, 푸에르토 인들에게 쓰레기,아이티 이민자들을 향해서 가축을 잡아 먹는 야만인으로 불러도 이번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를 찍지 않고 모두 트럼프에게 몰표를 주었다.
라틴계들과 히스패닉 계들은 이민자 추방과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밀려드는 이민자들에게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80세를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에 날아 오는 총알을 가까스로 피하고 피를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를 강하고 멋진 사나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가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더라도 지지하며 트럼프가 신에게 권력을 위임 받은 강한 지도자라 믿고 있다.
수 세기 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리처드 3세>와 <헨리 6세>에서 폭군과 독재자에 대한 묘사를 이런 문장으로 서술했다.
무한 이기주의자/ 멋대로 법률 위반하기/남에게 고통을 가하며 즐거워하기/남을 제압 하려는 충동적 욕망을 갖고 병적일 정도로 자기 중심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오만한 자/자신의 자질을 괴이할 정도로 과대평가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자/명령을 내리는 것을 좋아하고/아첨 하는 자를 가까이 두고 충성 경쟁을 시키는 자/타인에게 받은 친절과 선의에 대해 고마워 하지 않는 자/남들의 감정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자/타고난 고상함도 없고 인간적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지 않는 자/법을 싫어하고 법을 위반하기를 즐기는 자/ 세상을 승자와 패자로만 구분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는 자
2025년 1월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2기 행정부 무역 적자 해소와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강력한 관세 정책을 강행 했고 국가 비상사태 선포와 군 병력 동원을 통해 전례 없는 수준의 이민 단속을 벌이며 불법 체류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및 추방 작전을 감행했다.
동맹국 한국의 파견 근로자들을 중범죄 테러 집단을 다르듯 수갑을 채우고 연행하는 장면을 전 세계 생중계를 벌이며 몇 주동안 지옥 같은 감옥에 가둬두는 인권 유린 행동의 저질렀다.
각 대학의 외국인 학생 및 저널리스트 비자 요건을 대폭 강화하여 해외 인력의 유입을 통제하더니 한국, 일본, NATO 회원국들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며 거부 시 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는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마치 19세기 강대국들이 모여 서로의 영토와 영향권을 갈라먹던 '유럽협조체제'식 권력 정치를 펼치듯 중국은 철저히 때리면서도 돈이 되면 협상하고, 러시아와는 동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판을 바꾸는 거래를 하고 있다.
2026년 11월 중간 선거 유세장에서 트럼프는 "성장률이 높고 주가가 뛰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지표상의 수치(Growth)보다 내 지갑의 현실(Affordability)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권자들은 "월급은 그대로인데 기름값과 장바구니 물가가 너무 올라 살기 팍팍하다"고 느끼고 있다.
미국과 비교 해서 한국의 대내외적 정치 외교 경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에 민주주의가 귀족정이나 군주제보다 덜 덧없고 덜 자만하며 덜 이기적이고 덜 야심 차고 덜 인색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사적으로 정부의 형태가 어떠하든 인간의 본심은 누군가에 의해 제어되지 않으면 권력을 잡는 순간 사기, 폭력, 잔인한 성향을 보이며 권력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