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채널에 매 시즌 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의 장르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들 모두 "서바이벌' 장르다.
몸 근육을 쓰는 것 부터 노래를 부르는 오디션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다 경쟁하는 한국인들에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생존 경쟁을 담은 서바이벌 서사에 열광한다.
짧은 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하고 탈락을 피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요리 서바이벌의 살벌한 전쟁터를 생생하게 보여준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다양한 예능 방송 출연하는 셰프는 인기 연예인 못지 않는 예능인으로 거듭 나고 있고 다양한 요리를 방송에서 선보이면서 파인다이닝에 대한 대중적 관심까지 높아졌다.
현재 한국에서 전 세계 유명 맛집과 프랜차이즈점들이 들어서서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었지만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식은 중국 음식이었다.
특별한 날에 먹는 중국 음식에서 오랫동안 한국인들에게 짜장면과 짬봉은 최고 인기 메뉴였고 지금까지도 중국 음식점 메뉴판을 볼 때면 짜장면 아니면 짬뽕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때가 많다.
짜장면도 짬뽕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중국 음식점에 갈 때면 군만두만 먹었다.
부모님은 막둥이가 검고 시뻘건 색깔 때문에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지 않는다고 생각 하셨는지 군만두를 주문 할 때면 울면을 시켜 주셨다.
처음 울면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울음도 그칠 정도로 맛이 기가 막힌 면요리라 생각했다.

다양한 해물과 돼지고기, 닭고기 채, 버섯과 채소가 들어가는 울면은 매운 맛이 없고 순한 국물에 녹말을 풀어 걸쭉한 국물을 내어서 한 그릇만 먹어도 속이 든든한 요리다.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난 외할아버지는 전쟁 발발 이전까지 짜장과 울면이 가장 인기 메뉴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때 중국 음식점은 '청요리'로 불렸는데 경성의 유명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파인다이닝에서 식사하는 것과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저렴하게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중국 음식은 대륙에서 넘어온 중국 노동자들이 포장마차에 차린 호떡과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겨낸 유타오라는 일종의 꽈배기, 그리고 따뜻하게 데운 콩물을 팔았다.
그릇에 담긴 면 요리나 탕수육은 서민은 물론이고 중상층도 1년에 한 번 먹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고가의 음식이었다.
1930년대 중국 베이징과 북동부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급 국수는 북경(베이징)식 짜장면(검은색이 아닌)과 다루멘(打滷麪) 또는 지역 사투리로 원루멘(溫滷麪)이었다.
녹말을 풀어 하얗게 된 국물의 빛깔이 마치 염전에서 소금이 엉긴 소금물 같다는 뜻인 따뜻할 온(溫)과 , 소금밭 로(滷)의 원루멘의 한국식 한자 독음인 '온로멘'이 발음의 변화를 거치면서 울면이 되었다.
근대화 이전에는 녹말을 대량으로 제조하기 어려워 녹말을 많이 쓰는 요리일수록 가격이 높아서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었지만 개화기 즈음 공장에서 대량으로 녹말을 생산하는 기술이 생기면서 예전의 고급 요리들이 상대적으로 먹어볼 만한 가격이 됐고 이 때문에 울면과 탕수육의 인기가 높아지게 되었다.
중국인과 화교들에게 고향의 맛인 울면은 단연 인기가 높았지만 녹말을 풀어내어 끈적하게 입 속에 머무는 국물이 낯설었던 한국인들 중 부유한 계층은 녹말을 풀지 않은 맑은 국물의 일본식 우동을 더 선호 하게 되었다.
전후 경제 부흥기 시절에 청춘을 보냈던 아버지의 기억에 의하면 짬뽕이 처음 나왔던 때가 1970년대이고 시뻘건 색깔의 짬뽕은 1970년대 후반에 등장 했다고 기억하고 계셨다.
짜장과 짬뽕이 한반도에 등장 하기전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밥과 된장, 간장을 먹는 식문화를 1000년 이상의 지속 시켜 왔다.
반면 지금처럼 밥보다 빵과 면을 주식 처럼 먹는 것, 된장국보다 된장찌개를 더 자주 먹게 된 것, 조선간장이 아닌 공장제 간장을 먹게 된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매운맛을 가장 좋아 하는 한국인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양고추가 개발된 것은 1983년이고 이 매운 고추가 널리 퍼진 것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다.
그전까지 한국 요리의 매운 맛은 청양고추가 아닌 일반 붉은 고추의 고춧가루와 후추가 들어갔다.
다양한 식재료에 청량 고추를 넣어 먹기 시작 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그전까지 한국인에게 매운맛의 대명사는 신라면이였다.
청양고추보다 더 매운 음식이 잔뜩 쏟아져 나온 것은 마라탕이 밀려 들어 오면서 불닭볶음면이 유행했을 때 즈음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 식탁에는 맵지 않은 음식들이 지금보다 많았고 다양한 식당가에서도 순한 맛, 맑게 우러 낸 재료 본연의 맛의 음식들을 쉽게 찾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중국 요리점에서도 울면과 중국 우동 외에 닭고기와 닭뼈 육수에 가늘게 썬 닭고기 고명이 올라가는 기스면도 인기 메뉴였다.
볶음밥을 시키면 따라 나오는 국물의 경우도 미리 만들어 둔 짬뽕 국물이 아니라 시원한 중국식 고기 육수에 보드랍게 계란을 풀고 파와 참기름을 띄워 주는 계란국까지 순한 맛의 국물들을 지금 보다 더 다양하게 맛 볼 수 있었다.
짜장과 짬뽕을 고민 하지 않는 나는 울면을 앞에 두고 1937년에 출간된 채만식의 장편소설 '태평천하'에서 주인공 윤직원(윤참판)이 춘심이와 중국집에서 우동과 탕수육을 먹고 기생들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거라는 대목을 찾아 본다.

윤직원 영감은 쿨럭 갈앉은 큰 배를 슬슬 만집니다. 춘심이는 그 속을 모르니까 뚜렛뚜렛합니다.
"아뇨, 왜요?"
"배고푸다머넌 우동 한 그릇 사줄라구 그런다."
"아이구머니!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저런년 주둥아리 좀 부아!"
"아니, 이를테믄 말이에요……! 사주신다믄야 밴 불러두 달게 먹죠!"
"그래라. 두 그릇만 시키다가 너허구 한 그릇씩 먹자!"
"우동만, 요?"
"그러먼?"
"나, 탕수육 하나만……."
"저 배때기루 우동 한 그릇허구, 또 무엇이 더 들어가?"
"들어가구말구요! 없어 못 먹는답니다!"
"허! 그년이 생부랑당이네! 탕수육인지 그건 한 그릇에 을매씩 허냐?"
"아마 이십오 전인가, 그렇죠?"
윤직원 영감의 말이 아니라도 계집애가 여우가 다 되어서, 탕수육 한 접시에 사십 전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삼남이는 이 소리를 마치 중이 염불하듯 외우면서 나갑니다. 사실 삼남이한테는 그걸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루 세 끼 중에 한 끼를 잊어버리지 않음과 일반으로 중요한 일이어서, 그만큼 긴장과 노력이 필요하던 것입니다.
-채만식의 태평천하 중에서
식문화는 가장 바뀌기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바뀔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