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괴이 비채 미스터리 앤솔러지
조영주 외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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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13년 전인 2011년 5월 1일 문경 폐채석장서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 괴이한 형상으로 숨진 50대 남자가 발견 된다.

다음 날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시신 부검 결과 국과수로부터 숨진 남자의 오른쪽 옆구리에 난 자창 흔적은 각도와 방향상 스스로 흉기로 찌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1차 소견을 받고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경찰이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던 가장 큰 증거는 손과 발에 박힌 못의 모양새가 서로 달랐고. 발에 박힌 못에는 못머리가 있는 반면, 손바닥을 박은 못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사건 당일 숨진 남자는 못머리가 있는 못으로 발등을 먼저 박은 뒤, 십자가에 미리 박아 놓은 다른 못에 손을 집어 넣었다고 유추 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손에 구멍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전동 드릴과 십자가 설계도면과 십자가에 매달리는 방법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김씨 자필 메모지까지 발견되었다.

만일 타살이라면 칼과 드릴 등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물건이 현장에 그대로 보존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것이 당시 경찰 측 조사 결과 였다.

2011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죽음 그대로 재현한 괴이한 사건으로 시신이 발견된 문경의 어느 채석장은 인적이 드물고 가파르기로 유명한 둔덕산이 있다. 이곳에 특이한 암석 지형의 폐채석장이 있는데, 1990년대 말 폐장된 후 방치돼 왔다.

십자가 설계도와 죽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기록한 것을 남긴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사건에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했고 시신으로 발견된 남성의 신상이 밝혀졌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택시기사로 사망 당시 58세였다.

1990년대 부인과 이혼 후 자녀들과 함께 지내다가 연락이 끊어진 후 줄곧 혼자 살았다.

그는 특정 종교 집단에 드나 들면서 부활, 영생, 유체 이탈, 재림 예수에 심취했고 교회에는 다니지 않고 홀로 성경공부를 했다.

사건이 발생 하기 한 달 전 생계수단인 개인택시를 팔고 혼자 살던 집을 정리하고 짐이 많이 들어가는 SUV 차량을 구입했다.

이후 약 2주동안 텐트를 구입하고 휴대폰을 해지 하고 마지막으로 우체국에 들러 예금계좌를 해지하고 전액 인출해서 친형 계좌로 이체했다. 다른 통장에 남은 돈은 전부 털어서 불우이웃 성금함에 넣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는 끔찍한 죽음을 실행 하기 전 몇 주 전에 구입한 SUV 차량을 직접 몰고 문경의 둔덕산 폐채석장으로 가서 인근에 텐트를 치고 죽기 전까지 지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런 형태의 자살이 가능할 수 있는지 실험까지 나섰고 혼자서 정교한 처형 장면을 재현할 수 있느냐는 것부터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는 행위를 사망한 남자가 남긴 메모를 근거로 사건을 재현한 결과 성인 남자 혼자 자살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십자가 설계도와 죽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남긴 이 엽기적인 죽음은 상상 하는 것 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 전해 질 정도이고 이런 상태를 스스로 실행했다는 것이 믿기 힘들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면봉이나 손톱, 면류관, 끈, 칼 등에서도 시신으로 발견 된 남자의 DNA만 검출돼 타살이나 제3자가 개입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실행계획서 역시 그 남자의 필적인 것으로 확인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와 여러 정황과 사망 전 남자의 모든 행적을 추적한 경찰 발표대로 이런 잔혹한 방법으로 자살을 했더라도 자살 조력자나 방조자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 할 수 없다.

혼자서 발에 못을 박고 드릴로 손을 뚫으며 칼로 배를 찌르는 등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행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인근의 양봉업자는 한국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환생'과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교리를 믿는 교회 부목사 출신으로 1999년쯤 탈퇴한 후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폐채석장 인근에서 양봉업을 하며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는 시신을 처음 발견 당시에 크게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카메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고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며칠 동안 시신 목격담과 자신이 촬영한 시신 사진을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로 죽은 그 남자와는 2008년 부터 교류를 했고 그는 이 양봉업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이기도 했다.

경찰도 이 양봉업자 용의선상 인물로 올려 놓았지만 2008년 이후 서로 만났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서 수상한 최초 목격자는 무혐의 처리를 내렸다.

의구심을 남기고 미흡하게 사건이 종결된 엽기적인 '십자가 시신'은 2024년 미스터리 앤솔로지로 탄생해서 6명의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는 6명의 작가들이 <십자가의 괴이>라는 작품집에 각자 나름대로 재 해석 해서 의문의 죽음을 파헤친다.

가장 먼저 46페이지 분량의 <영감>이라는 단편을 실은 조영주 작가는 김승옥 문학상 신인상을 받고 <환상의 책방 골목>이라는 작품으로 러시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터키어로 번역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십자가의 괴이>에 관한 앤솔로지 글을 부탁 받은 것으로 시작하는 조영주 작가의 <영감>은 특정 주제에 관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늘 찾던 카페의 사장을 만나러 간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렀는데 작가님이 쪽지를 남기셨기에 답장을 적습니다. '무진 십자가 사건'은 10년 넘게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대표적인 미제 사건입니다. 이런 미체 사건을 잠깐 생각한 정도로 진상을 알아내 소설로 적을 수 있다면, 미제 사건이 될 이유가 없었으리라 사료됩니다.

-조영주의 <영감> 중에서


사건의 배경이 문경에서 무진으로 옮겨 갔고 실제 사건의 주인공은 아들에게 신장 이식을 받고나서 가족과 연락을 끊어 버린 최씨로 등장한다.

무진에서 발생했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던 중 이야기의 화자인 작가는 한강 공원의 시멘트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자신을 간호 해 주고 있는 엄마가 내지르는 잠꼬대 부터 수시로 자신의 꿈 속에 들리는 어느 기이한 목소리들이 둥둥 떠다닌다.

부탁 받은 글을 완성 해야 하는 작가는 이렇게 떠다니는 영감을 떠오르는 데로 휴대폰으로 녹음하고 퇴원 후 10년 전 십자가에 스스로 못을 박고 죽은 그 남자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그가 남긴 메모와 죽기 전 신도로 가입했던 사이비 종교 단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 남자가 남긴 메모와 일치 한다는 걸 발견한 작가는 편집자에게 들려 주고 몇 일 후 그 편집자는 작가가 한강 강변에서 사고를 당했던 그 계단에서 발을 헛 딛고 현장에서 사망한다.

화자로 등장하는 40대 남성 추리 소설 작가의 의문의 사고와 편집자의 죽음 사이에 미스터리한 인물인 카페 주인이 등장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은 작가가 희대의 미제 사건으로 기록된 십자가의 죽음에 관한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실제 사건들의 전개와 개연성이 미흡했다.

작가는 후기에서 2023년 1월 <영감>이라는 작품을 쓰던 중에 망막 박리라는 눈 사고를 겪게 되어 수술을 받았고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입원하고 나서 자신의 겪은 경험과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연결 시켰다고 밝혔다.

총 6편의 앤솔로지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고 실제 사건 배경과 등장 인물의 모습과 흡사했던 작품은 내과 의사 출신인 박상민 작가의 <그 날 밤 나는>이다.

49페이지 분량의 <그 날 밤 나는>은 석 달 전 한강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익사한 딸의 죽음에 타살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자살로 딸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을 미흡하게 수사를 한 경찰의 수사 능력에 크게 분개 하고 있었던 남자는 분노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자살을 결심한다.

생을 포기한 남자에게 어느 날 의문의 초대장이 날아 온다.

그 초대장을 보낸 이들은 한강에서 자살로 종결된 딸의 사건을 재 수사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어느 단체였다.

건축가였던 남자는 수상한 단체의 초대장을 들고 가방에 칼을 넣고 죽을 각오를 하고 찾아 간다.

자살한 한 남자가 남긴 메모에 적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억울하게 죽은 딸의 죽음에 대한 후회와 세상을 향한 증오와 그토록 성실하게 믿었던 신을 향한 배신감에 불타 오른 남자가 하잘 것 없는 인간도 예수 처럼 숭고하게 십자가에 박혀 죽을 수 있다는 끔찍한 형상을 현실로 재현한다.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게 할 적당한 표본 인물을 모색하고 무진에서 아들의 신장을 이식 받고 아내와 이혼 후 홀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그 남자를 대상으로 삼고 숭고한 죽음을 이행할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사건 현장이 발견 되기까지 수일간 폭우가 무진을 적셨다. 빗물은 자연뿐 아니라 내가 남긴 추악한 흔적도 함께 정화해주었고 초기에 경찰은 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인지조차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나 하나 쯤이야 이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든 알 바 아니다. 유나가 잔혹한 살인마의 딸 취급을 받는 것이 살아 있는 동안 견디기 어려울 뿐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나를 예수가 언제나 처럼 자비로운 눈길로 내려다 볼 것은 자명하다.

-박상민의 <그 날 밤 나는>중에서


내과의 출신의 작가 박상민은 딸의 죽음으로 사회와 국가, 종교에 대한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고 무고한 사람을 시험 삼아 십자가의 못을 박는 엽기적인 범죄 짓을 저지르는 과정을 마치 어느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자의 심리를 현미경으로 들여 다 보듯 묘사했다.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이른바 십자가 사건은 지금까지도 사건의 진실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버려진 채석장에서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죽음 그대로 재현한 괴이한 형태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한 줄 짜리 단서 만으로도 6명의 작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해석한 미스터리 앤솔로지 <십자가의 괴이>


더 이상 이런 끔찍한 사건은 발생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잔혹한 범죄와 엽기적인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고 여전히 살인범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죄의 무게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가볍다.

범죄자들은 점점 더 교묘해졌고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불특정 대상으로 무고한 시민을 향해 더더욱 흉포해지고 있다.

선과 악의 구분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시대에 사형제 부활을 외쳐 보지만 시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보다는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급급한 권력자들의 솜방망이 처벌과 안일한 대처로 오늘도 내일도 무고한 생명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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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ros 2024-10-26 04: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츠 유행 시대에 이렇게 긴 글이라니~ 그래도 본능적 호기심에 끝까지 읽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