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엄 있고 당당했다. 어린 시절처럼 나의 주인은 나였다.
무슨 말과 행동을 하건 그것은 나의 영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자기 꼬리를 먹는 뱀처럼 나는 저녁이 되면 태양과 함께 죽었다가 아침에 다시 태어났다. 우리가 어디로 향했느냐고? 안개와 우울의 땅도 아니고 피와 연기의 땅도 아니였다. 그런 곳이라면 이미 볼만큼 봤고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세상을 헤매는 영혼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바다에 머물며 계속 항해했다.
결국 남성의 힘으로 눌러 버린 메두사는 현 시대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세기 동안 권력을 가진 여성 또는 권력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은 탁월한 싸움꾼 또는 표독하고 악랄한 모습의 메두사에 비유되어 왔다.
기존의 신화에서 메두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다 아테나의 저주를 받았고 그녀를 단칼에 제거해버린 페르세우스는 신화 속 영웅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 부터 몸 속에 운명의 지도가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 질까?
신의 선택에 의해서? 아니면 우주 만물의 신묘한 기운을 받아서?
아니면 마치 로또 당첨의 행운의 숫자를 뽑듯이 경이로운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나서?
어떤 능력을 갖고 태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그저 태어난 순간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갈 운명으로 신의 아들과 딸 그리고 권력자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도 죽음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연 신화의 결말처럼 작가 제시 버튼이 다시 쓴 <메두사>에서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 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