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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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십남매 중 '중간 서열'로 항상 걸어가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열여덟살 여자다

그때, 열여덟살 때, 나는 일촉즉발인 사회에서 자랐고 이곳에서는 신체 폭력이 없는 한, 명백한 언어적 모욕이 가해지지 않는 한, 눈앞에서 조롱당하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기본 원칙이었으니, 그러니 일어나지 않은 일에 피해를 당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항상 그랬듯이 책을 읽으며 길을 걸어가던 어느날 한 남자가 흰 승합차를 세우고 나의 가족을 아는 척하며 말을 건넨다.

 이남자는 주변 사람들이 '밀크맨'으로 부르는 41살의  우유배달부다.

하지만 실제로 북아일랜드 무장 독립투쟁 조직의 주요 인사로 지역사회에서 명망의 두터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 밀크맨은 저수지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 '나'를 언제 어떻게 따라 왔는지 나란히 옆에 뛰며 내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출근할때 몇시에 버스를 타는지 알고 있다면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이 밀크맨은 내가 저녁에 프랑스어반 수업을 마치고 나올때도 자신의 차를 타라며 친절을 베푼다. '나'는 밀크맨이 언제 어떤 장소에서든 말을 걸면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것도 싫었고 그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열여덟살인 나는 ‘웃고 다정하고 친절한‘ 것을 보면 바로 경계심이 솟았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나와 밀크맨이 내연의 관계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더니 엄마와 언니들은 나에게 행실을 똑바로 하고 다니라며 그와 어떤 사이인지 다그치기 시작한다.

대로변에서 폭력과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했던 그시절 밀크맨은 나에게 어떤 언어적 폭력이나 행동을 한적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어떤 음란한짓이나 말을 건넨적도 없었고 신체적 접촉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가족과 이웃에서 멀어져 스스로 고립되어 무기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 가슴을 총으로 찌르고 고양이 같은 년이라고 하면서 나를 쏘려고 한 날이 밀크맨이 죽은 날이었다.' 

가장 믿었던 친구 어쩌면 가장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 친구마저 나의 태도를 탓하고 나의 모든 행동과 말투때문이라고 몰아부친다.

거리에 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길 건너 건너편에 사람들의 폭력과 죽음의 울부짓음이 땅과 하늘을 굉음처럼 뒤흔든다. 이렇게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폭력과 죽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나를 향한 폭력 이곳에 홀로 내던져져버린 '나'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믿었던 집과 가족 친구,연인으로 부터  버림받게 만든 '밀크맨' 그는 도대체 왜 '나'에게 접근했을까?

그는 나를 이런 폭력의 고립상태에서 구해줄수 있는 사람인가?

 

'둔감하게 있지 않고, 상황을 인식하고, 사실을 알고, 사실을 받아들이고, 현재에 존재하고, 어른이 되는 일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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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1-03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절한 사람을 보면 경계심부터 가져야 한다면 슬픈 일입니다만, 그렇게 해야 안전한 건 사실이죠.

어른이 되는 일이란... 저는 아직까지도 어른답게 처신하는 게 어려운 1인입니다.
어른이 될 준비를 못하고 살다가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scott 님, 좋은 일 가득한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scott 2020-01-03 19:40   좋아요 0 | URL
저도 어른답게 굴지 못하는 1인입니다.
우리모두 00이 될 준비를 못한채 시류에 이리저리 휩쓸리는것 같아요.
이렇게 독서라도 해서 스스로의 위치 사회적 책무 등등을 되새겨보는것 같습니다.

페크님도 2020년 새해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