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둘만의 파리 자유여행을 꿈 꾸었다. 에펠탑, 세느강 주변에서 돗자리 펴고 커피랑 맥주 마시며 현지인처럼 즐기자고 다짐했다. 날짜는 10일정도 생각하고 추석 즈음에 떠날 생각이었다. 얼마후 사회 초년생인 딸은 10월이면 바쁠거라고 일정 빼기 어려울거라는 말로 흐렸다. 그리고 많이 바빴다. 매일 혼자 남아 야근하면서 점점 지쳐갔다. 같은 부서 주임 두명이 연달아 그만 둔 이유가 컸다. 사기업은 직원을 해고도 하는군.
나는 "많이 힘들면 그만 둬! 목숨 걸고 일하지 마!" 그녀는 사직서를 내도 회사는 아쉬워하지 않을거고,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줄을 섰다는 말로 버티고 있었다.
덜 바쁜 날은 7월 말이라 했다. 눈치를 보니 자유여행은 불가능하겠고, 지인이 예약했다는 베트남 패키지 여행에 합류하기로 했다. 자유여행을 생각한 딸은 난감해 했지만 '엄마가 여행비 전액 부담, 지친 딸을 위한 힐링 여행'이라는 유혹에 넘어갔다. 달랏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우리는 3주전에 예약했고, <해시태그 달랏> 책을 읽었다. 처음 코스는 달랏만이었는데, 출발 2일전에 나트랑까지 가기로 결정한건 황당했지만 나트랑도 좋았다.
1일.
7월 26일, 청주에서 출발하는 아침 8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달랏으로 향했다.
달랏공항은 청주공항보다 작았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트랑으로 향했다. 패키지는 식사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어야 한다. 하루 한끼는 한식을 주는 이유가 뭘까? 다행인건 부드러운 상추와 무제한 삼겹살, 된장찌개는 유난히 맛있었고, 낙지볶음도 맛있었다. 물론 이름이 어려운 베트남 음식들도 맛있었다.
달랏에서 나트랑 가는 길은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가는 길처럼 구불구불했다. 시간은 공항 출발이라 3시간 30분정도 소요되었다. 왼쪽에는 산, 오른쪽은 절벽이지만 완만했다. 가끔 산 꼭대기부터 폭포가 흐르고, 커다란 성모상이 보이는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했다. 비행기 5시간 및 버스 3시간 30분 탑승은 피곤한 여정이다. 저녁식사후 전신마사지를 하고 나트랑 해변이 보이는 호라이즌 호텔에서 1박했다.
2일.
이른 새벽 호텔 창가로 비치는 햇살이 찬란하다.
다행히 오전 10시까지 자유시간이다. 이른 조식부페를 먹고 인근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이 걸어서 3분이라니...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라는 슬픈 역사지만, 유럽스타일의 성당은 아름답고, 우아했고, 정갈했다.
아쉽게 성전으로 들어갈수는 없지만 창문 틈새로 내부가 잘 보인다. 햇빛에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쨍하다.
그 와중에 아이는 배달 어플로 '반미 샌드위치'를 주문했고, 우린 성당 벤치에 앉아 맛있게 먹었다.
바게트 빵에 듬뿍 들어있는 치즈, 소고기, 야채들...도 그리울거야.
패키지도 자유여행처럼.
나트랑 해변길 인근에 'beach house'라는 예쁜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고, 달달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행복했고, 충분히 힐링했다. 나트랑은 이 카페에서의 추억이 오래 기억될거야.
물론 오전에 들른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포나가르 사원에서 들었던 전통 악기 연주도 좋았다.
인도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인도스러운 느낌이다.
다시 달랏으로 이동.
안개 자욱한 랑비앙산. 햇빛 쨍쨍한 날의 랑비앙산이면 참으로 좋았겠지만 달랏은 현재 우기이니 햇살 비출때 많이 봐두어야 한다. 아기자기한 포토존, 고지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내 전경도 좋을텐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빗방울이 세차다.
참고로 달랏의 기온은 봄의 도시 답게 영상 19도에서 21도 사이. 비오는 날엔 가디건을 입어야 한다.
(얼굴이 흐릿해 올렸어요. 저 입니다만)
달랏 야시장은 인산인해다. 나혼자 산다에서 팜유가 먹었던 길거리 음식인 얇은 빈대떡 같은 '반짱느엉'이랑 아보카도 우유 '껨보'도 맛있다. 구박 받으면서 구입한 짝퉁 버버리 스카프(라고 하기엔 두꺼운)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3일.
다딴라 숲에서 탔던 알파인 코스터(루지와 유사)는 2인 1조인데 스릴 넘.쳤.다. 앞에서는 손잡이만 잡고, 뒤에서 브레이크와 악셀을 밟는 구조다. 스릴을 좋아하는 딸내미는 직진한다. 나는 '스톱!, 천천히!'를 외치다 목이 쉬었다. 잠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바람돌이님의 적극 추천으로 탔는데, 전 겁쟁이라구요!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딴라 폭포는 시원했고, 우린 다시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수국의 도시 답게 가는 곳마다 수국이 많이 피었다.
소수민족이 사는 꾸란마을은 지프차를 타고 이동했다. 몇십년은 된 지프차는 계곡을 따라 물을 가르며 거침없이 달렸다. 무언가 오지탐험같은 느낌이랄까. 기분 좋은 액티비티 체험이다.
꾸란마을은 마치 시골 동화마을 같은 느낌이다. 넓은 잔디밭에는 말이 거닐고, 줄넘기 등 민속놀이 체험도 가능하다. 사람들 표정이 해맑다. 입구에서 구입한 고구마는 참 달고 맛있었다. 다시 생각나는 맛이다.
오후에는 인스타 감성 '호라이즌 카페'에서 아이스 코코넛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길거리에는 오토바이가 참 많았다. 신호등도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가이드 옆에 바짝 붙어서 건.넜.다.
4일.
도자기, 유리조각, 생활자기 등 버려진 것으로 만든 '린프억 사원'은 규모도 크고, 아름다웠다.
사진으로 보았던 가우디의 구엘공원 느낌도 조금 난다.
생각보다 소박했던 달랏 기차역엔 소소한 기념품을 팔았다.
평범했던 플라워가든에 라벤더를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졌다.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살았던 여름 궁전은 청남대를 걷는 느낌도 들었다.
현지 음식인 큼지막한 새우가 들어있는 반쎄오도 맛있다.
3박 5일은 꽉찬 3박 4일이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장소, 마지막 오전을 날려버린 의무 쇼핑때문에 패키지 여행을 후회했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에 데려가고, 식사시간에 세팅된 장소에 편하게 앉아 밥 먹었다. 특히 매일 사이공 맥주 한캔과 먹었던 저녁도 좋았다. 우리나라에선 먹기 힘든 과일 망고스틴이랑 두리안도 재래시장에서 구입해 맛있게 먹었고, 조식 부페에서 먹었던 패션후르츠, 잭푸르트, 레드 용과도 신선했다.
매일 회사에서 야근중인 친구가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기에 "편하게 제주도 갔다 와!" 했더니,
우리나라는 다녀오면 하루, 이틀만 행복하지만 해외는 어디라도 다녀오면 한달은 행복하다며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이제 이해하겠다.
다음에 또 훌쩍 떠나게 된다면 하롱베이랑 호치민 가고 싶다. 베트남도 충분히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