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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날 그 사람이 술에 취해 난데없이 찾아오더니 이 책을 내밀었는데,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정말 읽고 싶었어. 얘 책은 거의 안 읽어봤거든..."
'얘'라는 말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술 취한 와중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 사람이 몇 살인데 '얘'가 뭐냐면서 심하게 나무랐다. 임금 없는 자리에선 임금 욕도 할 수 있지 않냐며 나름대로 항변을 해봤지만 그의 대답은 더 걸작이었다. 김훈은 사람 사이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임금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남자의 일생을 알게 될 거라는 미묘한 말도 덧붙이고는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사람 사이에 있는 작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사람 사이에 있어서 징그럽기까지 한 냄새를 맡았다. 사람 냄새, 웃음 냄새, 눈물 냄새... 들창코가 아닌 썩 괜찮은 코를 갖고 태어난 진돗개 '보리' 덕분에 그 냄새는 잔인할 만큼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축농증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기만 하면 상상 속에서는 코가 뻥 뚫리리라. 생전 맡아보지 못했던 눈물 냄새가, 선착장에서 피우는 매캐한 나무 연기 냄새와 비슷할 거라는 가르침도 받았는데 냄새 뿐 아니라 인생도 덤으로 배운 느낌이다. 고맙다.
우연인지, 얼마 전 읽은 책이 이외수 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이다. 사어가 아닌 생어를 써야 글이 팔딱팔딱 살아 움직인다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만히 놔두면 온갖 냄새로 진동을 할 만큼 생명력 있는 놈이다. 남자의 일생도 이렇게 생명력 있게 팔딱거린다면 난 그 남자한테 완전 올인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