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구판절판


그처럼 완전한 평화 속에는 본래 슬픔이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17쪽

내 코는 새까매. 새까만 구두약을 칠해놓은 것처럼 윤기가 흐르지. 늘 축축하게 젖어 있고, 만져보면 차가워. 콧구멍은 정면을 향해 뻥 뚫려 있고, 돼지코처럼 벌렁거리지.
구멍 속을 길고 좁은데, 구멍은 밖을 향해 점점 넓게 벌어져서 세상의 온갖 냄새를 빨아들이기에 알맞아. 나팔처럼 생겼다고 알면 돼. 이 콧구멍이 위로 쳐들린 들창코는 좋지 않아. 들창코들은 머리를 숙이고 바삐 달릴 때 땅의 냄새를 정확히 맡기가 어려워. 달릴 때, 땅의 온갖 냄새를 빠르게 분별하지 못하면 길을 잃기 쉽지. 그래서 허우대는 다 같은 진돗개라도 들창코들은 바보 축에 들어.-45쪽

아이들은 언제나 한 아이가 웃으면 모든 아이들이 따라 웃는다. 다들 한꺼번에 웃어서 어느 아이가 맨 처음 웃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럴 때 교실은 별이 부서지는 것 같고, 개울물이 여기저기서 쏟아져내리는 것 같다.-119쪽

바다에서 돌아온 사내들은 드럼통 둘레에 모여서 불을 조이면서 라면을 먹었다. 그때 나무토막이 타는 불길의 냄새는 매캐했다. 나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의 냄새를 맡아본 적은 없었지만, 새벽 선착장에서 나무토막이 타는 불길의 냄새가 왠지 그 눈물의 냄새를 닮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71쪽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과 몸으로 겪은 일들이 오히려 꿈속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악돌이와 싸우던 일과 흰순이의 죽음이 그러했다.-22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