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6년 3월
구판절판


그놈은 흉기로 자주 자해를 하는 습관이 있다,
라는 문장보다는,
그놈은 뻑하면 회칼로 자기 배를 그어대는 습관이 있다,
라는 문장이 훨씬 선명한 전달력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13쪽

세속을 떠날 때가 가까워지면 대부분의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은빛 광채를 발하게 된다. 인생이 발효되었다는 증거다.-27쪽

모든 자연에는 신성이 깃들여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인간들이 신성을 무시해 버리고 가공에 집착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가공은 신성을 소멸시킨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여자들은 대부분 생머리를 간직하고 있는 나이에 첫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첫사랑에도 지고지순한 신성이 깃들여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생머리를 잃어버리는 나이에 첫사랑도 잃어버린다. 첫사랑을 잃어버리는 나이가 가공을 배우는나이다.-31쪽

육안은 얼굴에 붙어 있는 눈이고
뇌안은 두뇌에 들어 있는 눈이며
심안은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눈이고
영안은 영혼 속에 간직되어 있는 눈이다.-50쪽

물에 비친 달은 물일까 달일까.-59쪽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아주 하찮은 것들에 눈물겨워한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대개 시가 터져 나온다고 한다. 그런 시를 일컬어 오도송(悟道頌)이라고 한다. 문학은 이렇게 위대하다. 대부분의 오도송은 자연을 이야기한다. 달빛을 얘기하거나 강을 얘기하거나 산을 얘기한다. 지천으로 공짜인 것들에 대해서 아주 크게 감동한다. 그대들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진실로 소중한 것들이 어떤 것인가를 깨달아 가야 한다.-61쪽

남들과 똑같은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남들과 똑같은 사고를 하게 되고 남들과 똑같은 사고를 하게 되면 남들과 똑같은 글을 쓰게 된다. 그대가 남들과 다른 글을 쓰고 싶다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부터 가지도록 하라.-68쪽

인격과 문장은 합일성을 가지고 있다. 문장이 달라지면 인격도 달라진다. 인격이 달라지면 문장도 달라진다. 그대가 조금이라도 격조 높은 인생을 살고 싶다면 현재의 자신에서 탈피하라.-90쪽

사랑할 수 없으면 증오라도 해라. 사랑이나 증오는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사랑도 눈물겹지만 증오도 눈물겹다.-97쪽

활자의 마술이라는 것이 있다.
오자나 탈자를 교정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면 전문가들이 몇 번씩이나 교정을 본다. 그래도 책으로 나오면 오자나 탈자가 발견된다. 다시 그것을 교정해서 재판을 한다. 그래도 또 오자나 탈자가 나타난다. 최대한 신경을 집중해서 몇 번씩이나 교정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상을 출판 관계자들은 활자의 마술이라고 한다.-113쪽

단어에는 임자가 없지만 문장에는 임자가 있다. 그대가 먼저 만들어 낸 문장은 그대가 임자다. -124쪽

작가적 이중성이라는 것이 있다. 겉으로는 진정한 독자가 한 명만 있어도 자기는 글을 쓰겠노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전인류가 자신의 글을 읽고 극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작가적 이중성이다.-131쪽

그대가 진실로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사물에 대한 거부감이나 혐오감부터 몰아내 버려라. 설사 그대가 길을 가다 개똥을 밟았더라도 개똥에게 거부감을 느끼거나 혐오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개똥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라. 개똥은 다리가 없기 때문에 피하지 못했고 그대는 다리가 있는데도 피하지 못했다. 그대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물도 그대에 대한 거부감이나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대가 그것들에게 애정의 눈길을 주는 순간 그대들도 그대에게 애정의 눈길을 준다.-135쪽

은유법은 표면적 유사성보다 내면적 동일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사유를 통해 찾아낸 의미를 전달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은유법이야말로 공중부양의 지름길이다.-162쪽

모창으로 대성하는 가수도 없고 모사로 대성하는 화가도 없으며 모작으로 대성하는 작가도 없다. 대성은 오로지 자기 목소리를 가져야만 가능해진다. 자기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면 노래만 들어도 그 가수가 누구인가를 알 수가 있고, 자기 색채를 가진 화가라면 그림만 보아도 그 화가가 누구인가를 알 수가 있으며, 자기 목소리를 가진 작가라면 문체만으로도 그 작가가 누구인가를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자기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가질 수가 있다. 아직도 자기 목소리가 없는 작가는 자기 세계가 구축되지 않은 작가다. 어디서 작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 몰라도 작가로서는 아직 자격미달이다.32-249쪽

우리는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 있다. 하늘과 자신이 분리되어 있고 강물과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음미해 보라. 본디 자연과 그대는 하나다. 하나이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하다. 그대가 들판을 바라보는 순간 들판도 그대를 바라본다. 그대가 구름을 바라보는 순간 구름도 그대를 바라본다.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대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이다.-263쪽

우리의 선조들은 기감이 매우 발달해서 언어의 그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된소리인 경음이나 거센소리인 격음을 쓰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격음이 들어간 '칼'은 '갈'로 쓰여졌고 경음이 들어간 '싸우다'는 '사호다'로 쓰여졌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갈'을 '칼'로 발음하게 만들었고 '사호다'를 '싸우다'로 발음하게 만들었다. 전쟁은 그렇다. 모든 것을 척박하고 살벌하게 만든다.-26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