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개정증보판이란 무엇인가?
<전쟁의 역사 / 버나드 로 몽고메리 지음 / 승영조 옮김/ 책세상 / 2004년 4월>가 다시 나왔다. 이 책은 지난 1995년 두 권으로 분권되어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된 적이 있다. 나는 두 권으로 분권된 책을 가지고 있다가 동생이 사학과에 진학한 바람에 큰 맘 먹고 몇 권의 역사 관련 서적들을 동생에게 넘기면서 이 책도 함께 넘겼다. 예전에 이 책에 대해 알라딘에 독후감을 한 차례 쓴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엔 알라딘 독후감 글쓰기 분량에 제한이 있어서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이 좀 남아서 다시 한 번 글을 쓰게 되었다. 어찌보면 같은 책에 대해 두 번의 독후감을 하는 셈이다. 어떤 이는 왜 같은 책을 두 번 사는가? 혹은 출판사에서 개정증보판을 내는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출판이란 맥락에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보면 출판 판권란에 보면 "판과 쇄"란 말이 나온다. 이때의 "판과 쇄"란 말은 과거 인쇄의 주종이 "활판인쇄"이던 시절에 생긴 말이다. (요사이 출판작업은 대개 맥킨토시 컴퓨터를 이용한 옵셋인쇄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활판인쇄라는 건 쿠텐베르크가 서구적 인쇄술을 발명해낸 뒤 줄곧 이용되어 오던 방식으로 활자를 식자공이 일일이 골라내 판을 짜고, 동판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대고 일정한 압력을 가해 인쇄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에 비해 옵셋 인쇄라는 건 오늘날 평판인쇄라고도 하는데 물과 기름의 반발 작용을 이용해 인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활용된 방식이다. 그래서 그 이전에 나온 책들을 만져보면 활판 눌린 자국이 있어 글자들이 약간 오톨도톨한 느낌을 주는데 반해 요새 책들은 이런 반발력을 이용한 것이라 매끄럽다. 압력을 가하지 않기 때문에 옵셋인쇄를 통해 갓 나온 책의 인쇄된 부분들을 지우개로 지우면 잘 지워진다.
활판 인쇄는 편집자가 지정해준 대로 활자 급수와 모양를 식자공이 활자를 골라 판을 짜고, 옵셋인쇄는 식자공 대신에 출판디자이너가 활자 서체와 기타 디자인을 DTP프로그램을 통해 판을 짠다는 차이가 있다.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아무리 공을 들인다 하더라도 오식이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작가가 수정보완할 필요를 느끼기도 한다. 어느 책의 판권란에 "1판 25쇄" 라고 적혀 있다면 그 책은 초판을 출판한 뒤에 25번 인쇄했다는 뜻이다. 물론 초판에서 오탈자가 있다면 25번 인쇄되는 동안 교정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앞서 말한 대로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다시 인쇄했다면 2판이 된다. 만약 어느 책이 2판 4쇄라고 판권란에 적혀 있다면 그 책은 초판을 낸 뒤 수정보완작업을 거쳐 4번째 인쇄한 책이란 뜻이 된다.
그러나 열악한 우리나라 출판환경에서 대개의 책들은 초판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편이고, 설령 인기가 좋아 초판 판매가 끝난다 하더라도 이를 수정보완해서 책을 만드는 건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쉽게 재판작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출판 사정상 재판이라는 건 모 유명작가들의 장편 소설을 출판사를 바꿔 출판할 때나 하는 일처럼 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수정증보판을 만드는 건 독자들에 대한 일종의 리콜 서비스와 같은 것이지만 우리에겐 이것이 일반화되지 못한다. 난 그런 의미에서 수정증보판 책들을 특별히 사랑한다.
(리뷰로 올리려다가 독후감은 따로 쓰고 이 이야기는 별도로 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