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동네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지 않는다.
그냥 집에서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할테지.
대보름날이 되기 한달전부터 쥐불놀이를 준비하던 예전 우리들의
모습이 그립다.
깡통은 주로 분유통이었다. 너무 크지 않은 주먹이 두개정도 들어갈만한 크기의
분유통을 나는 선호했었다. 너무 크면 무게도 무겁지만 그 안에 넣어야 할 나무의 양도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경우엔 돌릴 때 볼품이 안나는 것도 피하는 이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렇게 깡통을 구하고 나면 이제 바람이 잘통하도록 구멍을 뚫어준다.
빈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뚫게 되면 그다지 힘이 없는 겉은 찌그러져 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깡통의 둘레보다 약간 작은 통나무의 끝에 깡통을 끼운 후에 못질을 한다.
못은 좀 큰 녀석으로 해야 공기가 잘 통해서 나무가 잘 탈 수 있게 해준다.
간격은 한 8mm정도로 촘촘히 둘레와 밑부분에 구멍을 내주면 된다.
가끔 오래된 깡통으로 하게 되면 작은 충격에 그냥 쉽사리 찌그러지게 마련이니 1년 이내의 것으로 마련하자. 못구하는 녀석들이 종종 작년에 쓰던 걸 다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정도 괜찮긴 하지만
일단 한번 쓰인 녀석들이라 부식을 막아주던 겉 페인트가 다 녹아버린 상태에서 1년 동안 비바람이라도 맞았다면 역시 몸상태가 안좋을 수 밖에 없다. 게으름피우지 말고 새거 구해 오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구멍을 다 뚫은 깡통에 적당한 길이의 철사를 끼워야 한다. 한줄로 하면 끊길 염려가 있으니
두줄로 해서 적당히 꼬아서 쓰면 튼튼하다. 길이는 사람마다 다른데 나의 경우엔 발로 깡통을 붙들었을 경우에 철사줄의 끝이 내 턱까지 오는 정도였을 것이다. 너무 길면 돌리다가 자꾸 땅바닥하고 뽀뽀한다.
이제 연료를 마련하자. 내가 가장 전성기 시절에 썼던 것은 소나무 껍질과 바이올린몸체로 쓰고 남은 나무
였다. 집에 창고를 지을 일이 있어서 소나무를 쓰게 됐던건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여튼 껍질을 벗겨 놓은게
상당히 많았다. 송진도 잔뜩 묻어 있었으니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손도끼로 깡통에 넣을 수 있을만한
크기로 열심히 자르다가 잘못해서 손을 찍기도 했다. 상처는 여전히 내 왼손가락에 남아 있다지.
그렇게 만든 게 비료포대로 한포대 였던가... 하지만 얘네는 부재료 였다. 껍질이었으므로 금새 타버릴 수 밖에 없었으니 주재료로 쓰일 나무가 필요하다.
그당시 옆집에 바이올린을 만드는 공장에 다니시는 분이 사셨었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만들다
잘못된 자재들을 땔감에 쓰라고 우리집에 가져다 주셨었다. 모두 동남아쪽 수입산이었다.
나무도 가볍고 잘 말라 있었다. 결에 맞추어 도끼질만 하면 어찌나 그리 잘 잘려 나가던지,
소리도 경쾌해서 그 때 도끼질을 엄청 했었다지. 워낙 많이 해놔서 쥐불놀이를 하고 난 뒤에 남은 것들은
소여물을 만들 아궁이 땔감으로 쓰였다.
결전의 대보름날. 대충 8시무렵에 장비들을 챙겨서 동네 앞 공터로 나갔다. 거의 일찍 나가는 편이라서
우리 보다 먼저 나와 있는 아이들은 얼마 없었다.
참, 나가기 전에 미리 깡통에 불을 피워야 하는데 아궁이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숯 몇개를 나무들과 함께 넣어두고 마당에서 몇번 돌려줘야 한다. 그러면 슬슬 연기를 내며 타오르는데 그때부터 빙빙 천천히 돌리면서
공터로 나간다.
열댓명의 아이들이 붕붕- 깡통을 돌리는데 간격을 어느 정도 둬야 한다.
보름달은 떴지만 그래도 돌리다 보면 자신의 깡통에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아이들과의 간격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고 재수가 나쁘면 깡통에 머릴 맞게 된다. 아니면 깡통끼리 부딪히거나.
부딪히게 되면 안좋은게 안에 숯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왠만해선 다시 불을 살리기 힘들다.
몇몇 노하우 있는 아이들만이 제대로 잘 살려내는데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을 경우 그 노하우를 지닌아이들에게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은 아이들은 꺼져가는 깡통을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불씨를 살려낸다.
참고로 머리 많이 맞아 봤다-_ -;;
가져간 나무를 거의 다 쓰고 이제 마지막 장식을 해야하는데 소원을 빌면서 있는 힘껏 돌리다 깡통을
던지는 것이다. 빨간 원만 계속 그려지다가 갑자기 하늘로 길다랗게 혜성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자면 여전히 돌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대보름 며칠전부터 말로만 쥐불놀이 해야지라고 하고 다니기도 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깡통을 너무 잘만들다 보면 그냥 던져버리고 가기가 아까워 진다. 보관만 잘하면
내년에도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소원을 빌어서 던진건데 다시 들고 오자니 소원이 안이루어질 것 같고...갈등 무지 했었다. 그다음날 그곳엘 가보면 내 깡통이 사라지더라. 그리고 그다음해에 누군가 낯익은깡통을 돌리고 있더라.
우리동네에선 쥐불놀이라고 하기보다 '망우리 돌린다'라고 했었다.
나중에 티비에서 '망우리 공동묘지'가 나오기에 무슨 관계일까 고민했었던 적도 있다.
여태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다. 지역마다 다른 이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또 해보고 싶다!! 충청도던가 볏짚마을이라 불리는 곳에선 행사처럼 한다는 것 같던데
무척 부럽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