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많은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했다. 아침에 지나치는 버스창문 밖의 운동장엔 만국기가 휘날렸다. 그저께엔 비맞은 만국기를 봤는데... 여튼 날씨가 좋았고 운동회는 시작됐다. 정말 많은 아이들. 운동장도 좁았고. 시끌시끌. 교육청에선지 어디선가 꽤나 높은 인사가 온 모양이다. 쓸데없는 자랑을 해대고 있다. 그 많은 아이들 중 하나에게 음료수를 건내주고 쓰러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늘을 피해 돗자리를 깔고 먹는 점심. 십여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 식구는 교무실 바로 앞의 잔디가 듬성듬성난 곳에서 대개 점심을 먹었다. 우리집 김밥을 조금 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친구들의 김밥을 맛보기. 그 때 난 친구가 있었나 보다.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거의 전종목에 참여를 해야 한다. 계주 정도를 제외하곤 말이다. 얘네 매일 연습만 하나 보다. 공부는 언제 할꼬. 헌데 나도 예전엔 그랬다. 훌라후프를 들고 곤봉을 들고... 꾸미기 체조는 잊을 수 없지. 몸집이 작고 가벼웠던 나는 삼단 쌓기의 가장 위에 올라가 있었다. 조심스레 아이들의 어깨를 밟고... 연습할 때 맨위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기마전도 있었구나. 동네 아주머니가 찍어준 사진이 아직 남아 있는데 꽤나 필사적인 얼굴이다. 온갖 인상을 찌뿌리며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있던가... 이겼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그래도 꽤 오래 버텼으리라.
중학교의 운동회는 참여할 것이 없었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의 중복 참여. 난 그냥 응원이나 하면 됐다. 아니면 뒤에서 친구들과 놀던지. 중3때의 우리 반은 꽤나 운동을 잘해서 거의 전종목을 휩쓸었다. 덕분에 졸업앨범의 그해 운동회의 사진에는 대개 우리반 아이들이다. 물론 난 또 어디선가 렌즈 밖에서 놀고 있었을 테고.
계속 유지할 수 있을거라 여겨졌던 고등학교의 체육대회는 전원 100미터 달리기가 있었다. 안 뛸 수가 없었다. 뭐 기대도 안하니까. 점수가 되지 않는 꼴등을 면한 적이 없다. 깃발 아래 모여 앉은 1,2등들은 점수화 됐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는 그대로 지정 좌석으로. 뭐 그것만 하면 되니까. 나머지는 역시 응원이지. 줄다리기도 하긴 했지만 항상 약한 편이니 맨 뒤에서 길다란 꼬리를 남긴 채 줄을 잡아 당겼지. 내가 쓴 힘에 비해 항상 몸에 남는 상처는 컸다. 목소리는 엄청나게 쉬어버리고. 그 다음날의 나는 가장 열심히 체육대회에 임한 학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늘에서 아이들과 장난치며 놀던 내가.
대학은 더해간다. 학부제로 인한 희박한 소속감. 두군데의 학과를 응원하러 다니는 일. 그냥 수업을 빠진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응원하러 가자고 하곤 그냥 멀뚱히 구경만 했다. 재미가 없었다 정말. 그나마 볼만한 건 발야구 동아리까지 갖춘 여학생들의 발야구 시합일까. 축구든 농구든 고등학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이제 체육대회가 있다고 해도 가지 않는다.
가족이 함께하는 운동회. 친구들과 함께하는 운동회. 동기들과 함께하는 체육대회. 가을에 만국기가 휘날리는 운동회의 아침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꼴찌는 항상 맡아두지만 그래도 긴장감도 지니고 있었고. 아, 넘어져 본 적도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