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에서는 용어와 개념을 익히느라 머리가 아팠고, 2장은 해외 사례라 피부에 와닿지 않았는데(전세계적으로 난리구나 큰일이네..) 3장부터는 독서 경험이 매우 다이내믹해졌다.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접 겪었고, 겪고 있는 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가 체계화되기 시작한 시점을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국민의힘 20대 대선 후보 경선부터라고 보고 있다. 이전에는 일부 남초 커뮤니티와 소수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을 공격했다면 이 두 사건을 계기로 그런 행동이 "공적 담론의 영역으로 들어와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141)"는 것이다. 거대 보수정당이 민주당의 세력 기반을 약화시키고 20대 남성을 지지 세력으로 끌어오기 위해 선거 때 백래시의 주요 이슈를 공론화하여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154) 일부 남초 커뮤니티의 안티페미니즘과 여성혐오 정서는 1999년 군복무가산점제도의 위헌판결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왔으나, 사회적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들의 오세훈 후보 지지가 '이대남 프레임'으로 규정되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대 남성들은 국민의힘과 이준석 대표, 윤석열 후보로 이어지는 대선 행렬의 강력한 지지 세력으로서 정치적 효능감을 과시했다.


(156) 20대 남성들이 불안, 분노하게 된 사회적 맥락을 따져보면 그 원인은 여성운동이나 여성정책, 여가부의 존재에 있지 않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확대되어온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에서 청년 세대는 성별에 관계없이 고용과 삶의 총체적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 이런 세대적 상황 때문에 이들을 '생존 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삶의 중요 조건들을 포기해가는 'n포 세대'로 부르며, 이런 불행은 이들이 직면한 조건이다. 따라서 청년 세대의 불안과 분노, 우울과 좌절은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여성을 포함한 청년들의 세대적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남성들은 자신의 분노를 투사할 집단으로서, 아버지 세대에는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던 여성들을 지목해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청년 남성들은 과거 세대와 비교해 특권의 상실이라는 박탈감을 느끼는 데 비해, 여성은 잃어버릴 특권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뿐(246)"이라고 진단한다. 이 문장을 읽고 너무 웃었다. 그래, 우린 다 문동은이라고. "내 몸은 이미 다 망가뜨렸고 내 영혼도 이미 부서뜨렸고 니가 뭘 더 할 수 있는데. 넌 지금부터 그냥 당하는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feat. 더 글로리)"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해 저자는 구조적 성차별이 있음을 부문별로 조목조목 입증하고, '남성 역차별' 주장과 관련해 소위 '여성우대' 정책이란 것이 차별 시정 조치임을 조곤조곤 설명한다(내내 누군가가 차별받는 동안 너희에겐 부당하게 유리했던 것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은 표를 얻기 위해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권력 유지를 위한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런 근거 없는 전략을 밀고나간다. 이 과정에서 탈민주화가 함께 일어난다. 그리고 "정치 양극화와 경제 불안이 심각한 사회에서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더욱 강력한 힘을 갖는다(214)."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239) 탈민주화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은 그 자체로 고립되어 일어나지 않는다.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제도를 무너뜨리고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사회세력이, 국가권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반여성적 공격을 해나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응 역시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만의 시각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여성주의 시각을 중심에 두되, 전 세계적 추이와 지역적 특징, 담론과 물질적, 상징적 차원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더욱이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가 전개되는 탈민주화 사회에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하층계급과 빈곤층, 이주민, 장애인 등 '그들'로 분리되는 인구집단에 대한 혐오, 차별, 폭력이 공존하기 쉽다. 그러므로 백래시에 대응할 때도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사회적 맥락을 읽고, 그 안에서 다각적 연대를 통해 조직해야 한다.


교차성과 맥락을 고려해 현실을 파악하고 더 깊고 넓게 연대하면서 민주주의도 수호하라는 소리인 것 같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


1. 여성주의 실천의 가치와 지향, 역사와 전략이 무엇인지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라.


(247) 극단적인 생물학주의나 성소수자 혐오와 같은 페미니즘의 일부 경향이 전체 페미니즘으로 확대 해석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늘어났다 (...) 페미니즘은 그 시각과 입장의 복수성을 핵심적 가치로 하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주변인의 위치에 선다는 원칙을 공유한다. 또 '젠더'라는 문제의식, 즉 성차별과 성폭력은 생물학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규범과 정치경제적 권력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한다는 이론적 사고를 토대로 한다. 이러한 젠더와 페미니즘, 여성운동 등 여성주의 실천의 문제의식과 관점, 사회적 지향을 정확히 전달해가려는 노력이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며, 이를 위해서는 페미니즘 교육을 늘리고 질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 담론과 국가 제도, 관행의 개선 역시 의식의 변화를 꾀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 여성들 간의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


(248) 여성주의 연대는 연령과 성별, 지역과 계층을 넘어서는 개방적이고 다각적인 연대를 구축해가야 한다.


3. 지역사회의 풀뿌리 여성운동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라.


(249) 지역사회 차원에서 풀뿌리 여성운동의 영향력을 유지해 나갈 경우, 정치권력의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여성운동이 유지될 수 있다.


4. 담론 지형의 전투에서 반혐오, 반차별, 반폭력 세력의 연대가 중요하다.


5. 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프레임이 달라져야 한다.


(250) 이제 성평등 정책은 안티페미니즘 세력의 반발에 항상적으로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운동의 프레임을 여성운동-국가의 양자관계가 아니라, 여성운동-반여성운동-국가(지방정부)의 삼자 관계로 수정하고 운동의 전략을 수립해가야 한다 (...) 여기서 안티페미니즘 세력은 일부 정당이나 정파, 종교집단으로 특정화될 수 없으며, 단일한 것도 아니다. 각각의 세력들, 정당이나 종교집단, 사회운동 세력은 내부적으로 온도차가 있긴 하지만 분명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 세력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런 지형은 정치사회적 변동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국가와 시민사회의 각 영역 속에 자리 잡은 안티페미니즘의 세력화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대응해야 한다.


저자가 이런 목소리를 내준 게 기껍고도 고맙다. 누군가는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실천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걸 바탕으로 더 나은 걸 만들어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성평등 운동과 정치에 필요한 또 다른 요소는 젠더 렌즈를 장착한 감응적 질문들이다. 감응적 질문이란 어떤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민감하게 던지는 질문을 말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뿐만 아니라, 무엇이 문제로 제기되지 않았는지를 동시에 고려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 방식은 정치와 정책 담론에서 중요하지만 이슈화되지 않는, 부재하는 것들을 찾아 확인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그리고 왜 그것이 문제로 설정되지 않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사회적 담론의 형성에서 배제의 과정을 드러내고 가시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미투운동이 그 전형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성폭력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는데도 그 피해를 말하고 드러내지 못했던 이유를 찾고, 피해 경험에 대해 말하며 듣는 데 집중하려는 실천이다. 위계적인 젠더관계 속에서 피해를 드러내지 못했던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말하고 범죄 행위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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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4-05 0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
우리 나라의 페미니즘에서 확장성이 떨어지는 이뉴는 연대의 부족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맥락을 정확하게 짚어주는군요. 그리고 연대가 꼭 여성이어야만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에도 공감해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단체나 비정규직 노조와도 연대를 할 수 있어야겠죠. 서울지하철 전장연의 시위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어떤 단체나 집단도 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계획에 잡힌 책이 끝나는대로 저도 읽어야겠어요. 깔끔하고 좋은 정리 고마워요. ^^

책먼지 2023-04-05 08:26   좋아요 2 | URL
어므나.. 감사합니다!!! 저도 저자가 제시하는 전략에 전반적으로 동의했어요!! (한편으론 이거 여기 알라딘에서 알라디너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잖아??? 하면서 반가워하기도 했고요!!)
어려운 개념들이 속속 등장해서 저는 따라가기만도 바빴는데.. 대디님은 훨씬 풍성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23-04-05 0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다 읽으셨군요, 책먼지 님. 다 읽고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이 책을 제가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바구니로 슝슝-

책먼지 2023-04-05 10:17   좋아요 1 | URL
저 이 책 노트에 메모하면서 공부하다시피 읽었는데도 정리가 차라락 되지 않고 돌아서면 휘발되는 느낌이예요!! 비교적 얇아서 쉽게 읽겠거니 했는데 밀도가 높더라고요!! 다락방님이 읽어주시면 또 다를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건수하 2023-04-05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점심먹고 읽어보겠습니다!

책먼지 2023-04-06 09:04   좋아요 2 | URL
점심 드시고 돌아오시겠다더니.. 아아 님은 갔습니다(털썩)

건수하 2023-04-06 09:46   좋아요 1 | URL
앗 어제 점심에 손님이 와서 정신없다보니 까먹… ㅠㅠ 얼른 읽겠습니다! 🫡

책먼지 2023-04-06 09:5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글은 막 건너뛰셔도 됩니다!! 저만 안 버리시면!!!!

자목련 2023-04-05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먼지 님의 정리로 한 권의 책을 읽은 기분입니다. 감사해요^^

책먼지 2023-04-06 09:05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이 책 더 널리 읽혔으면 좋겠어요!!!

건수하 2023-04-06 1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략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책이 드문데, 그 부분이 정말 반갑네요.

여성운동의 프레임을 여성운동-국가의 양자관계가 아니라, 여성운동-반여성운동-국가(지방정부)의 삼자 관계로 수정하고 운동의 전략을 수립해가야 한다. 이 부분도 날카롭구요.


하지만 전략 1번부터 참 어렵다고 느끼는게...

얼마전 제가 오랫동안 활동했던 여성 커뮤니티에 <제2의 성> 에 관한 글 올렸다가 (제가 보부아르 너무 똑똑하고 멋지다고 썼더니 깊은 인상을 받으신) 한 분이 ‘개인적으로 페미에는 관심없는데 ^^ 똑똑함은 느껴보고 싶어서 책 찾아보겠다‘ 고 하셔서 제가 빡침을 가누지 못하고 관심없으신게 페미니즘인지 페미니스트인지 모르겠으나 관심이 없다면 읽을 때 좀 괴로우실 것 같다고, 그러나 목적한 바를 이루시길 바란다 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좀 있다가 조용히 댓글을 삭제하고, 본인의 개인정보가 들어간 글까지 삭제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냥 좋게 달고 책 읽게 놔둘걸...

1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단 제 까칠한 성격부터 잘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인격수양 혹은 인격위장이라도...

(책먼지님 글 읽고 나니 이 책이 더 읽고 싶어지네요)

책먼지 2023-04-06 10:35   좋아요 3 | URL
수하님 짧은 댓글도 좋지만 긴 댓글은 더 좋네요🥰 역시 좋은 건 길게 봐야!!!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그 지점이 참 좋았어요!! 문제를 적확하게 지적하는 것도 물론 매우 어렵고 중요한 일이지만 거기에 대책까지 제시하는 책이 정말 드문데.. 저자가 어마어마한 용기를 보여준 것 같아서요💕

헉.. 저도 같은 댓글 받았다면 반응이 좋게 나가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이런 인간까지는 내 인생에 필요없지를 모토로 칼같이 사람 쳐내며 살아온 3n년 차 인생.. 전략 실천을 위해서는 저에게도 인격위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ㅠㅠ

저는 이 책을 사실 2,30대 남성들에게 쥐여주고 읽히고 싶은데.. (또 맨날 우리만 읽지!!!😭) 안 읽겠죠..? 안 읽을거야..

건수하 2023-04-06 10:43   좋아요 2 | URL
‘이런 인간까지는 내 인생에 필요없지‘ 으앜ㅋㅋㅋㅋ

너무 공감돼서 빵 터졌어요. 책먼지님 저랑 공통점이 좀 있는듯..

더 큰 것을 이루기 위해 작은(?) 괴로움을 감내해야 하려나봅니다.
2-30대 남성이 주변에 별로 없어서... 상사가 이 책 주고 읽으라고 하면 갑질이라고 하겠죠...?;;;

책먼지 2023-04-06 11:04   좋아요 1 | URL
후후후 수하님께 공통점 인정받아버린 저란 사람..하!! 어떻게.. 팜플렛처럼 개인책상에 좀 깔아둬볼까요..???
 


페미니즘 고전을 대신 읽고 핵심 개념을 쏙쏙 설명해준 뒤 한국 사회의 현재성에 비춰 진단과 처방까지 내려주시겠다니 이런 보석 같은 분..


1장까지 읽었고 나머지 부분을 읽기 전에 혼란스런 머리를 정돈하기 위해 밑줄 그은 부분들을 가져온다.


(36)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사회경제적 변화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분노를 투사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적 현상이다. 여기서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이 감정 전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들이 사회적 약자의 지위에 있었지만 격차가 줄고 있으며, 특히 그들에 대한 공격이 사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라는 문화적 코드와 특정 시기 민주적 변화에 대한 반발이 겹친 가운데, 사회문화적으로 공격이 용인되는 취약한 집단으로서 여성, 그리고 이 취약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페미니즘과 그것을 해체하려는 여성운동이 공격의 목표물로 떠올랐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은,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을 사회적으로 허용하거나 인정하는 정치적 맥락의 중요성이다. 이런 공격을 용인하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힘을 갖는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을 때, 즉 어떤 정치세력도 이런 공격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정치적 주장으로 승인하지 않을 때, 안티페미니스트 세력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다.


백래시의 정동에는 '르상띠망'이 있고 이러한 정동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으로 강화된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의 비대한 자아감과 그것이 실현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현실 간의 부조화는 개인에게 불안과 좌절을 야기한다. "개인은 홀로 세계의 불확실성에 맞서고 절대적인 책임을 지지만, 명목적인 개인일 뿐 실질적 의미에서 자신을 실현해갈 수 있는 힘(능력)은 갖지 못한다(36)." "심리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현실을 왜곡시켜 불안에서 벗어나고 체면을 유지해 자기를 보존하려는 무의식적 책략(36)"으로 "내면의 위협적 충동을 초자아가 수용 가능한 하위의 대상에게 분풀이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보다 약하거나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여겨지는 약자로 목표를 바꾸어, 관련 대상이 아닌데도 분노를 투사해 풀어버리는 행동(36)"이다. "나의 분노를 투사할 누군가로서,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 제공자로서 '그들'이 지목된다(11)." 여기서 '그들'은 (아니나 다를까 또!) 여성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왜 이토록 현 정권을 우려스러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 정권이 단순히 무능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걱정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기조로 재난을 방치하고, 복지를 축소하고, 근로시간 제도를 역행시키는 등 사회경제적 환경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어 개인의 고통을 가중하는 이 정권은 그러한 고통을 야기한 원인이면서 엉뚱한 곳으로 책임을 돌려 혐오를 부추긴다. 즉, 이 정권은 사회적으로 여성혐오를 승인하고 있다.


여성혐오와 백래시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성혐오는 일상적이고 미묘하게, 표식 없는 규율 양식으로 작동하는 구조화된 위계이며, 백래시에 선행한다(27)." "이에 비해 백래시는 정확하든 아니든 여성들이 일정한 성취를 이뤘다는 지각에 의해 촉발된다(28)." 백래시는 '교정적인 것'과 '선제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교정적 백래시가 여성운동의 성취가 일정 수준 달성된 상황에서 이를 무화하려는 시도라면, 선제적 백래시는 여성 운동의 성과가 가시화되기 전에 미리 제압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29)." 여성혐오 - 선제적 백래시 - 교정적 백래시 순으로 발동되는 것이다.


이때 백래시는 두 가지 양상을 띤다. "여성운동의 특정 이슈, 의제, 성과를 둘러싸고 일시적이거나 비교적 짧은 기간에 격렬히 진행되며 폭발적인 힘을 갖기도(25)" 하는 1) 일시적 반격으로서의 백래시와 2) 일상적, 지속적 공격으로 나타나는 백래시이다. "특별한 계기 없이도 여성 정치인들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 개인적인 괴롭힘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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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4-03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잠자냥님의 글에서 우끼님과 파시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어쩌면 백래시는 젠더 파시즘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선에서 성별이 나뉘어진 투표 결과를 보며 위험하다 생각했어요. 2030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며 정책을 내놓았고 그 반사이익으로 지금의 정부가 들어섰죠. 더 큰 문제는 민주진영에서도 대선 후보의 페미니즘 단체 출연 이후로 지지율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대선 후보의 출연에 대해 일명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여성 정치인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들어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있었어요. 그런 이유로 심지어 진보 커뮤니티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가 심했죠. 학교 수업시간에 성별 취업률을 가르치는 장면을 캡쳐해서 올리며 이런 식의 교육은 안된다고 반대하시는 분도 계셨고, 여성 우대 정책으로 자신의 임용이 되지 않았다며 실력이 없는 여성때문에 남성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책 내용중 백래시는 사회경제적 변화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분노를 투사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에서 지금의 우리 사회와 정치 상황을 반영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읽고 싶은 책에 넣도록 할께요. 먼저 잘 읽고 좋은 설명 부탁드려요. ^^

책먼지 2023-04-03 09:24   좋아요 1 | URL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긴즈버그님의 말씀을 가져와봅니다.. “아홉 명 정원의 대법관 중 몇 명이 여성이 되어야 충분할 것 같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난 언제나 ‘아홉 명‘이라고 답한다. 그럼 다들 놀란다. 하지만 이전에 남성 아홉명이 연방대법원을 이끌었을 때, 그 누구도 여기 의문을 품지 않지 않았나.” 성별 취업비 여성 100%가 되어야!!! 사실 문제는 이게 아니잖아요.. 그저 몹시도 취업이 힘든 사회경제적 구조가 되어 버렸고(직업 안정성이랄 게 없는 시대) 국가, 정부, 정치는 그런 구조를 오히려 강화하면서 너의 스펙을 쌓아라 취업이 안 되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다라고 개인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떠맡기고 있고요.. 저는 그들이 이 지점에 더 문제의식을 느끼고 분노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희생양 찾아서 또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있군요.. 이 책의 저자는 권력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로 권력이 이전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에서 반사적으로 현상유지를 요구하는 게 여성혐오, 더 적대적으로 현상유지를 요구하는 게 백래시라고도 설명하더라고요.
저는 일단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백래시가 맞는지도 살짝 의심하고 있어서 저자가 어떻게 설명할지 기대반 경계반입니다!!
파시즘에 관해서는 읽으면서 더 생각해볼게요!! 실제 사례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셔서 감사해요!! (게다가 제 두서없는 인용에 대한 야무진 요약까지!!) 좋은 설명..은 무리고 일단 잘 읽어보겠습니다!!!

책먼지 2023-04-03 09:28   좋아요 1 | URL
아 대디님 말씀하신 2030 여성 남성 갈라치기해서 당선된 거 트럼프 당선이랑도 병치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건 인종탄압이긴 하지만 ‘증오 투표’라는 점에서요.. 당선 이후에도 계속 갈라치기로 혐오를 조장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계속 되는 것 같아 정말 너무 걱정입니다ㅠㅠ

DYDADDY 2023-04-03 09:37   좋아요 1 | URL
적대적 현상 유지라는 부분에서 일전에 읽었던 <성 정치학>에서 나온 성혁명 반동기가 떠오릅니다.
안그래도 월요일은 힘들기에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하는데 사회의 단면을 보고 있자면 기분 좋은 요일은 없겠죠.
작고하신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해 언급하셔서 곡 하나를 추천드려요. ^^
Salem Ilese의 mad at disney (mad at SCOTUS version)
https://youtu.be/XAT0y7C3ZPw

책먼지 2023-04-03 10:44   좋아요 1 | URL
멘탈 케어 위해 브금까지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책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군요!!! 제 리스트에도 올라갑니다(하반기에 사야지!!!) 노래 노동요로 들어볼게요💕

DYDADDY 2023-04-03 10:53   좋아요 1 | URL
그 심상치 않은 책을 다락방님이 읽으시길래 저도 냉큼 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은 알라딘 페미니즘 유니버스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먼지 2023-04-04 11:37   좋아요 1 | URL
대디님 위의 노래 긴즈버그 대법관님이랑 깔맞춤해주신 거였군요ㅋㅋㅋ 발랄한 멜로디와 그렇지 못한 가사 너무 좋네요!! 알라딘 페미니즘 유니버스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4-03 10: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는 책먼지 님의 이 페이퍼를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오늘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저자가 한국 사람이군요. 한국책이었어.. 뭐 다른 세상이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한국이라면 백래시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겠죠! 책먼지 님의 이 책 관련 글들을 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책먼지 2023-04-04 11: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자님 너무 똑똑하셔서 이력을 봤더니 사회학 박사님이시더라고요!! 사회학을 전공했어야 하는 것인가!!! 지금 읽고 있는 파트에서는 미국 사례, 유럽 사례 촤라락 정리해주고 있어요 한국 파트 기대중!!! 따라가기 바빠서.. 쓸말이 생기길 바라며 읽어나가보겠습니다🔥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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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사치한 글을 읽고 싶었는데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엄청난 것을 읽어버렸다. 이건 조작되고 왜곡되고 은폐된 어느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해럴드 배너가 쓴 장편소설인 <채권>, 앤드루 베벨이 대필작가를 통해 쓰고자 했으나 미완으로 남게된 자서전 <나의 인생>의 초안, 아이다 파르텐자의 회고록인 <회고록을 기억하며>,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 <선물>. 각기 다른 화자가 각기 다른 형식으로 밀드레드 베벨의 초상을 진술하고 있다.


이 소설을 라쇼몽에 비유하는 건 게으른 선택이다. 이건 오히려 밀드레드 베벨의 진실에서 가장 먼 순서대로 배열된 이야기를 따라 진실로 가까이 다가가는 여정에 가깝다. <채권>과 <나의 인생>의 허구 속에서 일말의 진실을 발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각자의 입장에 따른 각자의 진실이 있고 실체는 모르는 것이란 식의 해석을 들이댄다면 나는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게으르다'는 언급이 그에게 주어지는 가장 관대한 평이 될 것이다. <채권>과 <나의 인생>은, 지나치게 뛰어나서 전통적인 성 역할로 도저히 가둘 수 없는 한 여성을 '미친 여자'나 '가정에 충실한 순종적 아내'로 뒤틀고 축소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각 부가 각기 다른 작품이라고 할 때 내가 매길 별점은 각각 별 2개, 별 1개, 별 5개, 별 4개가 될 것이다. 그토록 너른 스펙트럼을 보여준 에르난 디아스에게 바칠 별은 결과적으로 다섯 개가 되었다.


처음엔 1부가 소설 속의 소설인 줄 모르고 읽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기준이 되었다. 벤저민 래스크가 앤드루 베벨이고 헬렌 브레보트가 밀드레드 베벨이겠구나, 하고 읽다가 3부에서 완전히 세계관이 재편됐다. 3부에서 비로소 "세상의 원형이 뒤집혀 있다는 걸 알았고, 현실이 뒤집혀 있어도 한눈에 이해(334)"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부의 화자인 아이다 파르텐자는 앤드루 베벨이 세상에 자신만의 버전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고용한 대필작가이다. 최종 면접에 남은 후보자들을 보고 아이다는 강렬한 유사성을 느낀다. 그건 베벨이 대필작가로, 아내인 밀드레드와 유사한 사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다는 밀드레드에게 쉽게 공통점을 느끼고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래서 베벨이 아이다가 재구성한 밀드레드의 이야기를 가차 없이 편집할 때 배신감을 느끼며, 베벨이 극도로 제한한 정보 속에서 밀드레드에게 실체를 부여하기 위해 아이다가 자신의 어린시절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베벨이 마치 본인의 생각인 것처럼 이야기할 때 "기억을 표절당하는 데"서 오는 "엽기적인 폭력성(406)"을 느낀다.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베벨의 표절에는 전적이 있다. 그가 금융업계의 신화가 된 데에는 그가 쌓아올린 막대한 부도 한몫했지만,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고 한발 앞서 대응하는 그의 수학적 정확성이 더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밀드레드의 일기에서, 사실 베벨의 신화를 형성한 사업적 능력이 밀드레드의 것이었으며, 베벨이 대공황 때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재난을 유도했고 시장의 혼란을 키웠다는 게 밝혀진다. 이후에도 베벨은 티커 키보드 관리자를 매수해서 미리 시세를 알아내는 범죄 행위를 저질렀고 이 모든 과정에서 엄청난 이윤을 챙겼다. 자신이야말로 미국의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고, 금융 체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으며, 한 개인에게 금융시장 전체를 움직일 힘은 없다던 베벨의 말이 더욱 오싹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그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며, 만약 실수가 있다면 "현실을 조정하고 구부려서" 현실을 일관성 있게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소설 속 화자들이 앞서 글을 쓴 사람이 왜 그런 글을 썼는지 의도를 모른다는 데서 기묘한 틈이 생긴다. 가장 먼저 밀드레드의 일기가 쓰였겠으나 이건 공개되지 않았다(회고록을 쓰던 시점의 아이다에게 유일하게 발굴된다). 밀드레드 사후 베벨 부부를 겨냥한 배너의 장편소설 <채권>이 세상에 나온다. 그 소설에 반박할 목적으로 베벨이 자서전을 기획했고, 아이다는 50년 후 이 모든 걸 되짚어 회고록을 쓴다. 아이다는 모든 문서에 접근 가능했던 유일한 사람이지만, 본인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던 두 글에 숨겨진 의도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소설 밖의 세계에서 이 모든 글을 쓴 것은 결국 작가 에르난 디아스이다. 디아스는 이러한 소설적 장치를 통해 장편소설 <채권>을 읽고 아이다가 <채권>의 작가 배너에게 품는 의구심을 노출함으로써 독자에게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1부를 반추하고 재평가하라는 독법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독자가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준 뒤 아래와 같이 하나의 답까지 제시해준다. 얼추 그 답에 근접하게 베벨과 배너의 의도를 읽어냈던 나는 퀴즈를 잘 맞췄다는 기쁨과 동시에 작가의 손에 놀아났다는 (즉, 작가가 의도한 이상으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느꼈다.


(346) 자서전을 써야겠다는 베벨의 결심은 많은 부분 아내의 오명을 벗기고 그녀가 배너의 소설에 나오는 은둔한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어보니, 베벨은 밀드레드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보다 그녀를 완전히 특징 없고 안전한 인물로 바꿔놓는 것을 더 원했던 것 같다--베벨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당시에 읽었던 위대한 남자들의 자서전에 나오는 아내들과 똑같이 말이다. 밀드레드를 그녀의 자리로 돌려놓으려고.

어쩌면 해럴드 배너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왜 소설에 밀드레드의 망가진 모습을 그린단 말인가? 이건 <채권>을 처음 읽은 이후로 내가 자문하고 또 자문한 질문이었다. 밀드레드는 그토록 명석했던 게 분명한데, 왜 그녀를 미친 사람으로 만드나? 세월이 지나며 나는 여러 가지 답을 생각해보았지만--질투, 복수심, 단순한 악의--배너의 인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몰랐기에 늘 같은 결론으로 돌아왔다. 배너가 밀드레드의 정신과 몸을 망가뜨린 것은 단지 그게 더 나은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었다고(설령 밀드레드에게 모욕이 되고 결국은 배너 자신을 파괴할지라도, 그가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던 이야기인 것이다). 배너는 역사 전체에 걸쳐 출현한 비극적 운명의 여주인공, 자신의 파멸을 구경거리고 내놓는 그런 여주인공이라는 고정관념에 억지로 밀드레드를 끼워맞췄다. 밀드레드를 그녀의 자리로 돌려놓으려고.


디아스는 소설의 독법뿐 아니라 작법도 엿보게 해준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살짝 등장하듯 글을 쓰다 막힐 때마다 아이다는 문체나, 캐릭터나, 어휘와 배경을 얻기 위해 공립도서관으로 가서 필요한 책들을 훑고 필요한 것들을 얻어낸다.


(311) 나는 브루클린 공립도서관에서 그런 책 몇 권을 빌릴 수 있었고, 이어지는 주에는 혼란스럽고도 무계획적인 방식으로 그 책들을 훑었다. 별 체계 없이 한 책에서 다른 책으로 건너뛰며 출처를 적지 않은 채 아무 내용이나 메모했다. 나는 문서 연구에 대해서나 서지 정보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은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게 이점이었다. 나의 거칠고 타협의 여지 없이 비체계적인 접근법 덕분에 책들은 서로 합쳐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남자들 각각의 개인적인 특징은--카네기의 자족적인 독실함, 그랜트의 근본적인 품위, 포드의 딱딱한 실용주의, 쿨리지의 수사적 검양 등등--당시 내가 생각하던 그들 모두의 공통점 앞에 무너져내렸다. 즉, 그들은 모두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의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자신들의 결점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고. 그들 모두가 내 아버지에게 있던,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아이다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로 무정부주의자이다. 아이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묻힌다. 권력자인 베벨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배버의 소설과 인생이 어떻게 소거되는지 그 과정을 보면 역사를 구성하지 못한 이야기들의 면면을 추측해볼 수 있다. 역사는 당대에 그걸 주무를 자격이 있었던 자에게만 유효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서 구겨지고 버려진 조각들 속에 권력의 눈에 거슬렸던 수많은 약자들의 목소리가 숨어있을 것이다.


(291) 당시 저택은 가장 융성할 때였고, 내게 끼치도록 고안된 모든 영향을 끼쳤다. 저택은 내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나 자신이 어색하고 더럽게 느껴졌다. 뭘 달라고 하는 입장도 아닌데 거지가 된 것 같았다. 그래, 난 압도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딸답게, 나는 역겨움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저택 때문에든, 저택에 대한 나의 순종적인 반응에든.


나는 아이다가 처음 베벨의 저택에 발을 딛으며 느낀 감상을 고급 호텔의 로비에 들어설 때 느끼곤 한다. 특히 반얀트리나 워커힐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 어려운 호텔일수록 더.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난 자체가 내가 그곳을 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임을 증언하고, 언덕을 지나 마침내 호텔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비싼 외제차나, 평일 낮인데도 호텔의 야외 골프장에서 한가로이 골프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난 그걸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거지가 된 것 같아진다. 내겐 이게 역사가 우리를 배제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로도 느껴졌다. 개인의 욕망이 무관해지는 압도적이고 철저한 배제.


(267) 베벨 투자회사에서 시험과 면접을 보는 동안 나는 평생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할 기회가 생긴 한 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권력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권위와 돈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두께로 측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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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4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5-03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을 다 읽고 이 글을 크게 눈 뜨고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들 공감합니다.
이 책 읽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등장인물(화자) 모두가 좀 싫어서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심지어 밀드레드조차... 저는 음....

책먼지 2023-05-04 10:38   좋아요 1 | URL
으아 힘들게 완독하고 이 글까지 눈 크게 뜨고 읽는 서윗함.. 이 차갑지만 다정한 도시의 고양이!!
저는 이 책 오바마 대통령 추천 리스트에 있길래 읽었거든요(<모스크바의 신사> 이후 무한신뢰 중입니다) 저한테는 얼추 다 잘 맞는 것 같아요!!
화자가 다 싫으면 소설은 읽기 정말 너무 어렵죠ㅠㅠ 자냥님이 추천해주신 것은 제게도 다 좋았는데 (특히 최근의 자유죽음이요!!!)안타깝습니다ㅜㅜ
 
파운데이션과 제국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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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너 여기까지 잘 따라왔어? 네 의문은 잘 알고 있어. 그런데 내 세계관에서는 이게 맞아, 그러니까 이해가 안되면 그냥 외워? 자, 그런데 이 공식엔 예외가 있다? 네??? 열등반 학생을 데리고 심화반 진도 뽑는 아시모프님을 쫓아가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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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전기가오리에서 들은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고여 있다. 공부모임의 주요 내용은 아니고 곁가지로 살짝 언급되고 넘어간 것으로 다음 문장이 정확한 인용은 아닐 수 있다.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할 때 그게 개별 남성에 대한 비판인지, 남성이라는 사회종에 대한 비판인지, 남성 중심적 제도나 문화에 대한 비판인지 그 층위를 구분하고, 유연하게 그 사이를 왔다갔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자기 자신도 주위 사람도 미워하지 않고 논의를 앞으로 진전시킬 수 있다고.


이 말을 들을 당시에는 곧장 납득이 되었다. 탈코르셋 논의에도 불구하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나, 가부장제하에서의 효과적인 착취를 위한 학습의 결과라는 이성애 관계에 대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이성애 관계에서 삶의 기쁨과 안정감을 느끼는 나, 기존 체제가 요구하는 삶을 살며 그렇게 살지 않는 나를 바꾸려고 드는 주위 사람들을 그와는 별개로 아끼고 사랑하는 나. 그러니까 층위를 넘나드는 건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이미 자연스레 하고 있는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장을 곱씹을수록 의문이 든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면 바람직한 일인가, 여기에 함정은 없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내 손에 쥔 게 너무 없다. 그래서 일단 이 문장을 이곳에 매달아두고 판단을 유보하려고 한다.


그리고, 집 안에도 밖에도 꽃이 가득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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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3-28 1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꽃이 참 예쁩니다. 고양이가 없는 집은 저렇게 아름다운 꽃 장식도 가능하군요. ㅋㅋㅋㅋ
그런데 저는 개별 남성이 싫을 때도 있고, 남성이라는 종이 싫을 때도 있고, 남성 중심 제도나 문화가 싫을 때도 있어요. 3번째가 제일 싫긴 하지만.... 아무튼 인간이란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 ㅎㅎㅎ

책먼지 2023-03-28 12:44   좋아요 3 | URL
고양이 키우는 집은 혹시 고양이가 먹었을 때 해로울 수 있어서 식물 키우기도 쉽지 않다고 들었어요!! 저 꽃은 우리 농가 살리기로 톡딜 떴길래 저도 사고 부모님댁에도 보내고 혼자 사는 삼촌 댁에도 보내고ㅋㅋㅋ 저는 진짜 책이고 뭐고 손이 너무 커가지고..ㅠㅠ
저도요.. 셋 다 싫다.. 사실 층위를 나눈다는 거 자체도 좀 자의적인 게 세 개가 상호연결되어 있고 막 중첩돼서 나타나고 그러는 것 같아서요..ㅠㅠ 잘 끌어안아보려고 공부하는 건데.. 쉽지가 않습니다!!!

잠자냥 2023-03-28 12:48   좋아요 2 | URL
네 저희도 꽃을 좋아해서 몇 번 꽃병에 꽃을 꽂아두었더니..........!
ㅋㅋㅋㅋㅋㅋ 실제로 다 뜯어먹어서 넘나 놀라서 그 이후 꽃은....ㅠㅠ
꽃다발 받아도 빨리 당근으로 되팔고....ㅋㅋㅋㅋ
즤집에 식물이 있는 유일한 곳은 냥이들이 못 들어가는 욕실입니다. -_-;;

책먼지 2023-03-28 13:14   좋아요 1 | URL
으아 애들 입에 잘 맞았나봐요..??? 그나저나 당근으로 꽃다발도 팔 수 있군요ㅋㅋㅋ 잠자냥님 선물 목록에서 꽃 삭제, 식물 삭제(욕실용은 가능) 메모해둡니다ㅋㅋㅋ

잠자냥 2023-03-28 13:19   좋아요 3 | URL
잡사2가 꽃다발을 왕창받은 적이 있는데 고양이때문에 집에 두지는 못하고 고민하다 당근에 올렸는데!!! 그날 바로 다 나갔어요.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저렴한 가격에 호사한다고 생각하고 다들 행복하게 사 가셨다고 합니다.

공쟝쟝 2023-03-28 14:47   좋아요 2 | URL
홉스는 꽃 안건드려서 저는 한달에 한두번식 꽃 진짜 쪼끔 사서 꽂아둬요. 근데 안 좋은 꽃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니 알아보고 사야지~

잠자냥 2023-03-28 14:55   좋아요 4 | URL
튤립하고 백합은 위험한 것으로 알고 있삼...
장미는 괜찮다고는 하는데, 진짜 그런가 봄 1호가 장미 다 뜯어먹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걸 보면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28 15:04   좋아요 3 | URL
그렇구나. 튤립은 안살래요.ㅋㅋㅋㅋ 저번에 샀는데 예쁘긴 한데 머리가 통째로 떨어져서 무서웠엉. 1호는 장미를 먹는구나. 예쁜 건 먹어야죠. 음음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3-03-28 12: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연하게 오고가지 못해서 좋아했던 남사친과 멀어지기도 했는데요, 분노에 가득차있을 때 그걸 구분하고 유연해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계속 책을 읽고 사람도 만나고 글도 쓰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지금은 많이 유연해진 것 같아요. 내가 몇해전에도 유연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건 또 그 때의 어떤 일어나야 했던 일들인가보다 합니다.

함정은 없는지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가능한거냐고 물으면 일단 가능하다고 답하겠지만 그러나 모두에게 가능한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가능해지는 쪽이 삶을 살아가는데 더 안정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고요. 물론 지금의 제 생각은 훗날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분노만 가진채로 살아가다보면 분노에 잠식되어 자기 자신만 아는 인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서요. 일전에 읽었던 소설에서 ‘분노에 매달리는 건 독을 삼키는 것‘이라는 구절을 보았었는데 고개를 끄덕였더랬어요. ‘좋은게 좋은거지, 사이좋게 지내자‘ 가 아니라, 제가 싫어하는 한남문화, 남성문화, 한남민국은 비판하고 분노할지언정, 개인으로서의 저의 남사친들은 제가 애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현재 제가 찾아낸 방법이고 또 제 인생의 흐름인데, 책먼지 님이 앞으로 이것의 어떤 한계나 함정을 발견해 글을 적어 주신다면 귀기울여 듣도록 하겠습니다.

책먼지 2023-03-28 12:59   좋아요 2 | URL
저도 몇 년 전에 니가 읽은 그 페미니즘 책들 나도 학부 때 다 읽었어 하는 남성과 진짜 대차게 싸우고 절연한 적 있어요..ㅠㅠ

저는 제 자신의 분노도 검열하고 논리적으로 정당하면 표출하는 타입이라서.. 제도에 찌든 소리하는 남성이 있더라도 도를 넘지 않는 한에서는 그래, 너도 제도와 문화의 희생자다, 불쌍한 작자, 쯧쯧, 하고 넘어가는데요.. 경험적으로 유연한 오고가기를 하게 되었다보니 오히려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자기 검열이 발동해서.. 너 충분히 숙고하고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아? 이게 옳아? 하며 여기 함정이 있지 않을까, 이게 정말 맞는 건가, 두려워하는 거죠ㅠㅠ

다락방님 함께 고민해주시고 또 현재의 다락방님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공유해주셔서 진짜 감사드립니다!!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 요상한 찝찝함없이 모순을 잘 끌어안을 수 있도록 저도 치열하게 고민해볼게요!!!

우끼 2023-03-28 1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앜 이 문장은 저한테도 아직 계속 화두에요…. ㅜㅜ 이전부터 고민하던걸 전기가오리서 들어서 또 반가웠네요. 개인보다 제도가 먼저 바뀔 수 있는지, 제도가 바뀌려면 그만큼 사람이 모여야 하는데, 그 개인들은 어디서 영향받은 것일지… 저는 아직 분노와 애정이 뒤섞여서 거리조절을 어찌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관계를 맺는게 아직 스트레스지만 ㅠㅠ 언젠가는 제게 소중한 관계들을 지키면서 같이 고민할 여유가 생기기를 바라요

책먼지 2023-03-28 13:10   좋아요 3 | URL
우끼님도 그 문장에 턱 걸리셨군요ㅠㅠ 저는 가오리님이 딱 정리해주신 문장으로 듣기 전까지는 이 고민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말에 전구가 탁 켜지면서 맞아.. 나 이런 거에 발이 걸리며 살아왔어, 하고 알게 된 거였어요!! 우끼님 말씀처럼 제도가 진공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어차피 사람이 만든 거고 사람이 공고히한 거잖아요? 근데 또 이걸 바꿔야하는 것도 사람이고ㅠㅠ 그래서 우리가 계속 고민하고 화두를 던지고 하면서 작은 파문을 일으켜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ㅜㅜ 거리조절 정말 너무 어렵죠?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관계를 아예 포기하기엔 좋은 관계에서 얻는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이 또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우끼님 응원합니다!!!!

DYDADDY 2023-03-28 1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남성을 개체로 보느냐, 군집이나 집단으로 보느냐, 혹은 가부장제같은 제도로 보느냐에 따라 비판의 관점이 달라져야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요. 개체적인 남성의 예로는 고은 시인이 있겠죠. 물론 고은 시인을 비판할 때 남성 문단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도 있지만 문단 전체가 그런 성폭력을 저지르지는 않으니가요. 군집이나 집단으로 보는 것은 술자리에서 남성간의 음담패설이 가장 쉬운 예라고 생각해요. 이성을 성적 비유로 가혹하게 비난하거나 대상화하는 것은 남성 집단의 문제이니 개별 남성과는 구별되어야 하겠죠. 제도를 비판할 때에는 그 제도의 성차별이 주된 관점이겠죠. 아무래도 여성분들이 비판의 관점을 다르게 해야 부차적 피해를 받는 남성이 적어지고 그만큼 전체 남성의 반발이 작아질 것이다라는 의도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건 전적으로 제 해석입니다. ㅎㅎㅎ
저는 로티 강의를 들었어요. 로티에 대한 해석보다는 삶에 있어 철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설이 길긴 했지만 상당히 유용한 강의였어요. ^^

책먼지 2023-03-28 13:54   좋아요 3 | URL
대디님 해석이 가오리님이 의도하신 바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 같아요!! 덧붙여 사회종으로서의 남성에는 (생물학적) 여성도 포함될 수 있단 생각도 들고요..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2회차 들으셨군요!! 저는 이거 주말에 들으려고 킵해두었어요ㅎㅎㅎ 저는 본 강의보다 사설에 더 귀가 쫑긋한데.. 이번엔 또 무슨 썰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함께 듣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너무 든든해요!!!

DYDADDY 2023-03-28 14:06   좋아요 3 | URL
아.. 강의 하나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군요!!!! 다음달에 나오는 강의는 관심 있는 강의는 신청해야겠어요. ㅠㅠ 생각했던 것보다 강의가 좋아서 오늘도 오전에 일하면서 들었는데 시간날 때마다 노동요(?)로 들으려고 해요. ㅋㅋㅋㅋ 노동요로 정희진의 공부 매거진이나 두철수를 듣는데 하나 더 늘었어요. ^^

책먼지 2023-03-28 14:10   좋아요 3 | URL
맞아요!! 신청할 때 하나씩만 할 수 있어서 매번 폼 다시 작성해야하는 게 귀찮긴한데 원하는 거 다 들을 수 있어요!! 이것저것 들을수록 더 만족스럽더라고요!!!

우끼 2023-03-28 14:53   좋아요 2 | URL
와 대디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보니 구분하는 이유가 선명하네요!! 저는 구분해야한다고만 생각했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사례로 나누니 명확하고 좋은것같아요!!

책먼지 2023-03-28 18:58   좋아요 2 | URL
대디님 저 귀갓길에 로티 들었는데 역대급으로 좋네요ㅠㅠ 저는 어느 철학자나 이론을 딥하게 파는 것보다 내 삶을 꾸려나갈 때 어느 철학자의 무엇을 가져오면 좋을지 탐구하는 쪽이 훨씬 구미에 맞나봐요!! (루티의 가치 있는 삶도 약간 이런 맥락 같기도 하고요) 아이러니스트가 되겠어요!!!

DYDADDY 2023-03-28 19:13   좋아요 1 | URL
책먼지님 // 공쟝쟝님과의 필담에서 제가 생각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전기가오리님은 그 사유를 좀더 갈고 닦으신 것 같아요. 좋으면서도 진작 구독할걸 이라는 후회가 들었어요.
나의 마지막 어휘는 무엇이며 자신의 완성을 위해 마지막 어휘를 끊임없이 회의하는 아이러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어제의 로티 강의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책먼지님은 이미 아이러니스트라고 생각해요. ^^

책먼지 2023-03-29 07:23   좋아요 2 | URL
같은 거 들으니까 요약정리까지 쌱 해주셔가지고 저 완전 날로 먹는 느낌이예요🥹 어우.. 맙소사.. 대디님 마지막 한 마디에 저 지금 너무 좋아서 리액션 고장났어요

DYDADDY 2023-03-29 08:00   좋아요 1 | URL
책먼지님 // 전기가오리님이 잘 정리해주신 것을 요약한 것 뿐이에요. 페미니즘이라는 어휘를 잡고 사유를 하며 사유와 행동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하는 책먼지님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아이러니스트구나 싶었어요. 기분 좋은 출근길 되시길 바라요. ^^

DYDADDY 2023-03-29 08:23   좋아요 2 | URL
우끼님 // 그 강의를 듣지 못해 사례가 정확한지까지는 자신은 없지만 남성주의 문화를 내부에서 겪으면서 종종 욕지기가 날 때가 있었어요. 우끼님의 정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요. ^^

우끼 2023-03-29 13:11   좋아요 3 | URL
대디님, 사실 강의에서는 구분해야 한다고만 하고 사례를 말씀주시지는 않았구요. 저 역시 멀리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건 무서워서 가까운 사람을 설득하려다 실패 후에 어떻게 내적으로 정리할지 고민하면서 구분하기 시작한 거라 그 구분을 자세히 해야할 필요를 덜 느꼈던것같아요. 그래서 구분하지 않았는데 구분의 필요성, 구분의 이유를 예시로 보고나니 선명해진것같아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책먼지 2023-03-29 09:19   좋아요 3 | URL
우끼님 말씀에 보태서.. 저는 대디님 말씀이 가오리님이 남성페미니스트로서 느끼는 지점을 잘 포착해주신 것 같아서 아, 이런 의미로 그런 발언을 했겠구나 하고 착 와닿았던 것 같아요!!

공쟝쟝 2023-03-28 14: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문장을 매달아두고 판단을 유보한다니... 저 마음의 여유를 보라!! ㅋㅋㅋ
저는 좀 더 저렴한 제 표현을 하자면, 저는 묻고 또 묻다가 내가 남자라면? 어떤 종류의 남자였을까?를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건 알 수 없음.이었지만. 암튼 이미 여자라서 아무리 저렇게 괴물이 되고 싶어도 못된다.가 결론이었지만. 요는 권력을 다루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희진샘 말대로 영향력과 책임감) 그래서 푸코를 보고 싶어진 거고... ㅋㅋ
주요 민주화 인사들의 미투 사건을 보면서 인간이 권력에 도취되기는 너무 쉽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 개인 뿐만 아니라 개인을 덮어주고라도 뭔가를 이뤄내야한다는 생각도 무척 위험하게 느껴졌고. 권력이라고 말했지만 뭐랄까 어떤 무엇이죠.
저는 제가 고민하기 시작한 게 일종의 철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찬찬히 뜯어봐가면서 공부..하는 것이. 문장을 매달아두고 그 문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라고 느끼게 되었고 방법은 책읽고 독후감쓰기 입니다 ㅋㅋㅋㅋ 뭐가 문제인지 그 기준은 제 몸이예여.ㅎㅎㅎ 암튼 저는 할 수 있다(가부장제 혹은 인간의 저열함을 넘어설 수 있는 어떤 방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이 있을거라고. 놓고 고민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DYDADDY 2023-03-28 15:06   좋아요 4 | URL
현대의 철학은 진리라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쫓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심리, 몸)와 외부(타자, 사회, 제도, 국가)에 대해 사유하면서 때로는 나를 위로하고 변화시키면서 때로는 우리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눈꼽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철학적 활동이겠죠. ^^

공쟝쟝 2023-03-28 15:12   좋아요 2 | URL
제가 철학에 대해 가진 불만은 그거예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사유를 할 수 있는 건 나 같은 이상한 사람(-_-;;;)들 밖에 없... 는 상황에서 다들 본질주의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데... 생계에 매인 사람은 생각하기 어렵잖아요.... 바빠죽겠는 데.. 누구보다 철학이 필요한 사람들은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이고 .... ㅜ,,ㅜ 이렇게까지 읽어야만 하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추천할 수가 없다....는게 저의 결론... 쉽고 재밌게 알려주는 사람은 정희진과 마리루티 뿐.... 암튼 다들 방법이 있겠죠ㅋㅋㅋ 아몰랑~ 아직 모르는게 많아서 불만을 탐구열로 바꾸겠습니다 ㅋㅋㅋㅋ

책먼지 2023-03-28 15:25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 쟝님 말씀이 맞아요 시급한 문제였다면 절대, 답이 오겠지 하고 내버려두고 기다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저에게 정리가 끝난 문제고 저의 태도를 정당화할 논리가 필요한 것뿐인지도 모르겠어요.. 비겁했죠???

저도 내가 남자라면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데 쟝님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가정이란 결론에 도달했고.. 지금 내 상황과 위치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나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정말 여기에 비춰볼 수밖에 없겠네요

권력에 관한 태도는.. 민주인사나 보수인사나 결국 그걸 특권이라 생각하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그에 따르는 영향력과 책임감의 무게를 진실로 아는 사람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권력이 자격 없는 이들에게 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민주인사들이 미투를 두고 그런 작은 일에 발목잡힐 때가 아니고 어쩌고 할때.. 그건 부차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서 서로 감싸주기할 때 너무 절망했었어요

쟝님의 철학함과 낙관에 저도 기대볼래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던지면 분명 훌륭한 분들이 좋은 댓글을 달아주실 것을 알았으나 제 예상보다 더 좋네요 진짜..

DYDADDY 2023-03-28 16:27   좋아요 4 | URL
이상한 사람.. ㅋㅋㅋㅋㅋ 8년 정도 전에 ‘철학 vs 철학‘이라는 책을 읽겠다고 회사에 가지고 다닌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매일 묵직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이유를 물어서 책을 보여주었을 때 그 눈길을 기억해요. ㅋㅋㅋㅋㅋ (참고로 그 책은 950페이지 정도였어요.) 사내에 책 읽는 사람이 없어서 저만 별종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려려니 합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보통 플라톤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보니 뜬구름 잡는 것이라는 편견이 심한 것 같아요. 아직 읽고 있지만 ‘가치 있는 삶‘은 그런 편견에서 벗어난 책이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이 없어요.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28 16:45   좋아요 2 | URL
대디님 왕따래요

DYDADDY 2023-03-28 16:52   좋아요 2 | URL
집과 회사 그리고 가끔 도서관만 오가고 술도 안마시는 사람에게 무슨 친분이 있을까요. 그리고.. 남자들과 술자리에 있는거 싫어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라리 왕따로 열심히 책 읽는 것이 더 편해요. ㅎㅎㅎ

공쟝쟝 2023-03-28 16:54   좋아요 2 | URL
역시 내가 남자였다면…. 난 쓰레기가 되엇을거 같다….. 댇님 최초 인정! 굿! 역시 남자는 사회생활 안해야함!

DYDADDY 2023-03-28 17:03   좋아요 4 | URL
중독을 본인의 의지로 끊으신 분이시니 남자였어도 같은 삶을 사셨을 것 같아요. 그런 분께 칭찬을 들으니 조금은 뿌듯합니다. 담배는 아직 피우고 있어요. 커피도 많이 마시구요. 술을 안마시는 이유는 술을 마시면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에요. 책중독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끼 2023-03-28 22:22   좋아요 5 | URL
저도 동의해요 인간이 권력에 도취되기란 너무 쉬운 것 같아요. 잘못한 개인을 덮어주고서라도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건 위험한데, 한편으로는 그 개인이 그가 한 행동의 잘못때문에 고립되는 것도 경계해야하는 부분처럼 보입니다 ㅠㅠ 용서하지 않을 부분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가지고가던 의제를 놓지 않으면 좋을텐데 싶고요… ㅠ 저는 권력에 도취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권력없이 개인적으로 잘 사는 삶을 살고 싶어서 공뷰하는 중인데 참 어렵네요

DYDADDY 2023-03-29 00:06   좋아요 5 | URL
우끼님 //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지켜야할 것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윤리적인 눈을 흐리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있을 때에는 집단적으로 반발을 하겠죠.
권력이란 누가 주었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어떻게 써야하고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밤입니다.

건수하 2023-03-28 22: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먼지님이 질문을 매달아주셔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네요. 저는 개개인에게 가끔 분노하지만 구분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공쟝쟝님처럼 내가 남자라면? 이라고 바꿔 생각할 때 약간 자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나도 남자라면 그러고 싶겠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을 지언정), 부끄럽지만 나도 아내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생각도 해 봤기 때문에… 그래서 현실적으로 ‘He for she’ 같은 캠페인, 남성들로 하여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남성은 잘 구분하고 있는가? 그것도 생각해볼 문제라 생각해요. 언제나 불만이 많은 건 약자이니까…

<제2의 성>에 ‘여성은 자신이 이 세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때로는 그래서 내가 권력에의 의지가 없고 쉽게 자기만족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지만 개인의 삶보다 세계에 있어서는 쉽게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공쟝쟝 2023-03-28 22:51   좋아요 4 | URL
길다 … 🥰

건수하 2023-03-29 06:49   좋아요 3 | URL
네 저한테 이 정도면 진짜 긴거 ㅋㅋㅋㅋ 쟝님을 만족시키려면 이 정도 써야 되는군요? 자기 얘기도 써야 하고.

건수하 2023-03-29 06:52   좋아요 3 | URL
어제 이 댓글을 달고 금방 잠들어서 그런가 꿈에 책먼지님이 나왔어요 ^^;;; 왜인지 모르지만 제 본업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미술품 관련 일이었구요 -.- 일에는 냉철하지만 사람에겐 상냥한 멋진 분이셨… 책먼지님, 저 혼자 반가웠어요 ㅎㅎ

책먼지 2023-03-29 07:20   좋아요 3 | URL
수하님 저 지금 너무 좋아가지고 졸음이 싹 달아났구요..💕 출근하고 제대로 댓글 달게요!!!

책먼지 2023-03-29 09:49   좋아요 4 | URL
어제 쟝님 말씀에 비춰 생각해본 결과 나는 내가 가졌지만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의식하는가? 생각하는가? 그러니까.. 내가 어떤 권력을 가졌음을 자각하고 늘 주의하는가?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제 답은 아니오거든요.. 숨쉬듯이 당연한 건데 왜??? 아마 대다수의 남성이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본인에게 특권이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가 아닐까.. 책이나 문학작품의 순기능 중 하나는 우리의 권력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상상력이 빈곤해서 알지 못했던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헤아려보게 된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재테크와 자기계발에 몰빵하는 그들은 조금의 동일성만 위협받아도 스스로를 약자로 포지셔닝하고 막 왁왁 공격성을 드러내잖아요??? 실제로는 약자의 입장에 처해본 적도 없고 헤아려보려고 노력해본 적도 없어서 그게 개별 남성에 대한 비판인지, 남성이라는 사회종에 대한 비판인지, 제도나 문화에 대한 비판인지 구분하지 않고 일단 뭔가 하나라도 건드리면 발작 버튼 눌리는 느낌.. 수하님 말씀대로 이런 걸 다 섬세하게 구분하고, 공부하고, 더 잘 받아들여질 방법을 모색하고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게 약자인 까닭은 약자에겐 이게 실존의 문제라 늘 생각하고 자각할 수밖에 없는데 강자에겐 그냥 당연한 특권이라 의식조차 안하다가.. 그 특권이 조금이라도 침해받을 것 같으면 막 난리나는 것 같아요😭

개인적 삶에서는 쉽게 만족을 얻되 세계에 관해서는 더 많은 걸 기대하시는 수하님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저를 떠올려주신 것도 또 너무 좋고요😘💕 일에는 냉철하지만 사람에는 상냥한 저는 냉철하게 일하러 갑니다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3-29 10:26   좋아요 5 | URL
맞아요. 저도 항상 여성이라 약자라고 생각했지, 더한 약자가 있다는 것, 제가 여성 중에는 다수 (이성애자, 기혼 유자녀 여성) 라는 생각을 잘 못했었거든요. 페미니즘을 여성에 관한 것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며 오히려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전기가오리님의 강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다른 어떤 기회에 남성들도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발언을 생각할 때 그게 어떤 상황에서의 발화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라고 말씀해주셨으면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ㅎㅎ (후원자도 아니면서)

어쨌거나 전기가오리, 점점 궁금해지네요..

냉철하게 일하는 책먼지님, 남은 하루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