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내부자도, 외부자도 아닌 나의 오묘한 위치 때문인지 어느 회사에 가든 대나무숲 역할을 맡게 된다. 직접 겪지 않은 건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 의식적으로 되뇌지만 당연히 들은 내용에 영향을 받는다. 누가 뭘 어쨌고, 누가 누굴 싫어하고, 누가 누굴 쳐내려고 판을 짜는지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나는 나의 기만적인 평화 속에서 회사에 다니고 싶다. 전에는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면 해결해보려고 했다. 도와주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함께 휘말려 부침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모르고 싶다. 알면 움직이고 싶어질 것이고 평화롭게, 안정적으로 회사에 다니기가 요원해질테니까. 그만 떠다니고 이제 앉고 싶다.
스트레스도, 체력도 한계라 어제 통크게 연차를 냈다. 8월에 부모님과 동생 부부까지 함께하는 가족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 연차를 아끼고 있는 중이다. 꼭 필요하면 반차를 낸다. 그러다 오랜만에 통으로 연차를 쓰니 와, 진짜 너무 해방감이 드는 거다. 일어나자마자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고, 망고와 오렌지, 블루베리로 호화로운 아침을 먹고, 현미밥을 짓고 양배추를 삶았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보살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직 따끈한 침대에서 한숨 더 자고,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을 보러 성수동에 다녀왔다.
금요일 오후라 비교적 관람객이 적었고, 가수 윤하의 목소리로 녹음된 작품 설명(오디오 도슨트 링크)을 들으며 느긋하게 전시관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수중 촬영을 위해 다이빙을 배웠다는 모델들은 플라스틱 비닐에 감긴 채 바닷속에 잠겨 있기도 하고, 고래와 교감하며 헤엄치기도 했다. 작가의 의도는 오늘날 해양생물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고 더이상의 파괴를 막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었다. 실천을 독려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두려움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보다는 이처럼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방식을 압도적으로 좋아한다. 무엇보다 작가의 작품에서 여성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신뢰와 지지, 애정과 연대가 느껴져서 좋았다. 가장 좋았던 사진은 앞선 촬영을 마치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 그대로 힘차게 해변을 달리는 여성들의 모습을 포착한 <Running after the Dream>이었다. 그저 함께 달린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서로를 향한 거의 완전한 신뢰의 모습은 자유로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 사진은 찾을 수 없었지만 좋았던 다른 사진들을 공유한다(나탈리 카르푸셴코 갤러리 링크).
관람을 마치고 성수동 '기미사'에 들렀다. 가장 맛있는 커피로 딱 한 잔만 마시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드립으로 "파나마 핀카과류모 마라고지페 무산소발효" 커피를 마셨다. 일단 농도가 절묘했다.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게 정확한 온도에서 정확한 시간 동안 우려낸 홍차를 연상시키는 농도였다. 처음에는 위스키에서 날법한 묵직한 향미가 느껴지다가 나중에는 잘 익은 파인애플과 백향과 향으로 마무리 된다. 혀에 남은 뒷맛에서는 라즈베리 같은 붉은 과실류의 향도 느껴졌다. 근래에 마신 커피 중에 가장 품질이 좋고 만족스러웠다.
커피를 마시며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를 읽었다. 저자는 철학과 문학을 교차하여 삶의 '마지막 어휘'가 될만한 개념을 건져낸 뒤 이를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책 전체를 통해 보여준다. 그는 사람들이 삶의 문제에 직면할 때 철학을 떠올리더라도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를 철학이 상정하고 있는 '보편성' 때문으로 보고, 플라톤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자신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과 달리 철학에는 그런 주인공이 없으며 굳이 주인공을 찾자면 그건 보편적인 인간인데 '서구 남성 백인 지식인'이 아닌 대다수는 당연히 그들의 삶에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승인 리처드 로티와 마찬가지로 제자인 저자 이유선 역시 이런 면에서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문학이 철학보다 더 큰 효용을 낼 수 있다고 본다.
(12) 철학은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궁극적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편성, 합리성, 객관성에 집착하기보다는 삶의 우연성, 구체성, 유한성을 기꺼이 감수하고 거기서 나름대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문학은 그런 일들을 잘 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뜻밖에 매천 황현에게 관심이 생기고 말았다. 아마 이번달 <정희진의 공부>에서 이완용 이야기가 나와서가 아닐까 싶은데. 이완용과는 달리 그는 애국도 매국도 하지 못한 채 장르 불문 목적 불문의 망국기록일지 <매천야록>을 남기고 합방령이 반포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어떤 글을 써야겠다는 계획도 목적도 없이 그저 쓸 수밖에 없었을 마음을 알 듯도 해서. 아, 이 사람 대체 어떤 사람이지? 궁금해졌다.
한편으론 책을 읽고 있어도 책을 읽고 싶어하는 마음을 간파당해서 뜨끔하기도 했다. 저자는 슬라보예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를 가져와서, 지젝이 현실과 실재의 경계에 관해 실재를 허구로 바라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는 하나, 그런 허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허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욕망이 충족될 때가 아니라 계속해서 유지될 때 인간은 "삶을 확인하고 쾌락을 얻는다"는 것이다. 즉, 나는 실제로 책을 읽고 있을 때(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지금 읽고 있는 책말고 다른 책, 다른 상황(의무도 책임도 없는 며칠의 연휴 동안 햇볕 잘 드는 곳에서 몸 컨디션 최상일 때 혼자서 커피마시면서 읽고 싶다), 다른 환경(지하철 말고 회사, 회사 말고 집, 소파 말고 침대)을 계속 꿈꾸면서 욕망의 대상을 의도적으로 '착각'하고 욕망의 목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한창 통역을 하던 때 통역에 환상을 품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나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라고 못을 박곤 했는데, 그건 어쩌면 그 누구도 아닌 나의 환상이 비대해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욕망했던 일을 직접 했을 때 "별 거 없네" 싶었던 게 정말 많았다. 구체적 상상의 형태로 화했던 나의 오랜 욕망 중 하나는 광화문에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쥐고 바쁘게 걸어가는 커리어우먼(이때 복장은 반드시 깨끗한 셔츠에 H라인 스커트여야 한다)의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그냥 점심시간에 쫓겨서 급하게 복귀하면 딱 그 모양일 거였다(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 매번 깨끗하게 빨아서 잘 다린 셔츠를 입기는 지나치게 번거롭고, H라인 스커트는 막상 입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숨도 잘 안 쉬어진다). 맛집 탐방이나 여행, 특정 물건에 대한 욕망도 다 이런 식인 것 같다.
(20) 욕망하기 위해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현실에서 이미 욕망이 실현되어 있다는 것을 은폐하는 것이다. 실재가 욕망이 실현된 세계이고 현실이 그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해야 하는 세계라면, 실재는 환상이고, 현실 속에서는 이미 욕망이 실현되어 있으므로 현실은 이미 실재가 된다. 왜냐하면 욕망의 실현이란 사실은 욕망의 재생산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실현된 욕망이란 끊임없이 멀어지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삐딱하게 본다'는 것은 똑바로 보면 존재하지 않는 욕망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우리가 세상을 똑바로 볼 때 욕망의 대상, 곧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이것은 곧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거기에는 공허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순간 욕망은 중단되며 쾌락은 막을 내린다. 이것은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우리가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삐딱하게 보지 않을 수 없다. 삐딱하게 봄으로써 실재는 현실과 구분되고 삐딱하게 볼 때에만 존재하는 그 왜상적 대상을 욕망하면서 우리는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욕망을 놓지 않고 매번 또다른 욕망을 품으며 삶을 이어나갈 때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현실이 기다리기도 하고 예기치 못했던 기쁨을 누리게 되기도 한다.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운 책들, 끝나는 게 애석한 순간들은 '어차피 실망일테니 애초에 바라지도 말자'는 태도로는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나의 욕망들을 긍정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욕망을 재생산할 것이다. 실망하고 실패하더라도 또다른 환상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