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전기가오리에서 들은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고여 있다. 공부모임의 주요 내용은 아니고 곁가지로 살짝 언급되고 넘어간 것으로 다음 문장이 정확한 인용은 아닐 수 있다.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할 때 그게 개별 남성에 대한 비판인지, 남성이라는 사회종에 대한 비판인지, 남성 중심적 제도나 문화에 대한 비판인지 그 층위를 구분하고, 유연하게 그 사이를 왔다갔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자기 자신도 주위 사람도 미워하지 않고 논의를 앞으로 진전시킬 수 있다고.
이 말을 들을 당시에는 곧장 납득이 되었다. 탈코르셋 논의에도 불구하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나, 가부장제하에서의 효과적인 착취를 위한 학습의 결과라는 이성애 관계에 대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이성애 관계에서 삶의 기쁨과 안정감을 느끼는 나, 기존 체제가 요구하는 삶을 살며 그렇게 살지 않는 나를 바꾸려고 드는 주위 사람들을 그와는 별개로 아끼고 사랑하는 나. 그러니까 층위를 넘나드는 건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이미 자연스레 하고 있는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장을 곱씹을수록 의문이 든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면 바람직한 일인가, 여기에 함정은 없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내 손에 쥔 게 너무 없다. 그래서 일단 이 문장을 이곳에 매달아두고 판단을 유보하려고 한다.
그리고, 집 안에도 밖에도 꽃이 가득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