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는 떡을 준비했다. 아내가 제주도에서 사 온 떡인데 너무 많이 해동을 시키는 바람에 그야말로 ‘축 늘어진’ 떡이 되어 버렸다. 무더운 날씨라서 떡도 축 늘어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요양원에 도착했는데 마침 간식 시간이라 수박이 나왔다. 
 
 산책하기로 했는데 휠체어를 밀면서 떡과 수박을 다 들 수가 없어서 어머니의 한 손을 빌리기로 했다. 나는 휠체어와 떡을 책임지고 어머니는 수박을 들었다.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16년째 중풍으로 반신불수로 고생하시지만 살아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어머니와 손을 합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요양원 근처에 있는 작은 정자에 도착했다. 지붕 아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찌는 듯한 더위인데 그늘진 곳에 바람까지 살포시 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다. 바라보는 풍경은 조명이 잘 된 수족관처럼 아름답고 선명하고 눈부시다. 
 
 한 시간 남짓 지나자 어머니께서 고개를 떨구며 조신다. 졸음이 오냐고 여쭸는데 손을 내 저어 신다. 졸리지만 자식과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떡과 수박을 떠 드렸다. 행복하고 아늑하다. 초등학교 시절 한 장면이 생각난다. 가정환경 조사를 했는데 내 조부님이 생존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너는 참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신다고 딱히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고 살았으니 말이다. 
 
 지금에야 그 선생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겠다. 아마도 그 선생님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일찍 여의셨다 보다. 주섬주섬 남은 음식을 챙겨서 내려오는데 몇 해 전 아버지 산소를 찾았을 때 봉분에 외롭게, 다소곳하게 피어 있던 들꽃과 똑같은 것이 어머니 옆에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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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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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맡은 학생부장은 모든 교사가 기피하는 업무다. 역설적으로 나에게는 천직이다. 학교에서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 맡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호통판사로 알려진 천종호 판사가 8년 만에 소년 법정을 떠나면서 “삶의 기쁨이 통째로 사라진 기분”이라고 말했을 때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나쁜 행동을 한 소년들을 엄단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소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이 의아했다.


학생부장을 하면서 왜 모든 교사가 이 업무를 기피하는지도 더 잘 알게 되었고, 천종호 판사의 심정도 이해가 되더라. 학생부장은 학교에서 경찰, 검사, 판사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한다. 학생부장의 주요 업무인 학교폭력사안의 처리과정을 살펴보면 경찰, 검사, 판사의 업무 처리 과정을 큰 틀에서 보면 거의 같다. 사안을 조사하고(경찰), 재판에 회부할 것인지 검토한 다음(검사), 판결을 내려야(판사)한다. 


워낙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문제가 많으니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예 폭력사안을 처리하는 절차를 경찰, 검사, 판사의 업무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세 직업의 업무처리 방식을 따라야 하는 학생부장의 고충이 오죽하겠는가? 업무처리 절차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적, 법적 책임도 면하기 어렵다. 늘 ‘오늘도 무사히’를 염원하는 것이 학생부장의 운명이다.


학생부장 업무를 하면서 전에 없던 묘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더라는 것이다. 늘 학생들을 단속하고, 징계하는 일을 주도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학생들에 대한 애착이 샘솟는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처벌을 한 대상을 가까이서 매일 지켜보다보니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느껴진다. 


담임을 한 학생이 학교폭력과 관련되어서 출석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그 학생의 학생부에는 학교폭력 연루 기록이 남아 있지만 내 마음에도 죄책감과 미안함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한층 밝아지고 모범적으로 변한 그 학생을 볼 때마다 대학이나 취업 처에 그 학생을 위한 추천서의 문장을 하나하나 생각하게 된다. 


천종호 판사도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소년법정에서 일을 하지 않았나는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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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5-1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속과 징계의 대상인 학생들.
그들의 잘못만이 아니란걸 알기에
연민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합니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그들을 보듬는 쌤이야말로 진정 교육자십니다.
힘내십시오^^

박균호 2018-05-18 12:32   좋아요 1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8-05-1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남성 교사의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견학하는 날에는 학생들 통솔하느라 엄청 예민했겠습니다.

박균호 2018-05-18 12:34   좋아요 0 | URL
네 남교사의 비율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 학교에서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교감 교장은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가 기피하는 학생부장은 남선생이 대부분 맡거든요.
 

세상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종종 실존한다. 선도부 활동으로 고생하는 학생 5명을 데리고 고기를 먹으러 갔다. 일부러 불러냈는데 된장찌개를 먹을 수는 없다. 삼겹살을 주문했다.

한 참 많이 먹을 나이라 마음속으로는 세 판까지는 각오하였다. 고기를 구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길 들었다. 한 아이의 말이 한 친구가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주인에게 ‘인제 그만 좀 먹지’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단다. 

마침 당사자가 일행 중에 있어서 직접 물어봤다. 무려 사실이란다. 그 친구의 말이 이랬다. 전에 한번 간 적이 있는 무한리필 고깃집에 갔는데 마침 사장이 와인을 많이 마신 터라 본인의 정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입장을 시켰다. 

4시간째 고기를 먹는데 이제야 정신을 차린 주인 양반이 어깨를 두드리며 ‘학생, 인제 그만 먹어도 되지 않나?’라며 통첩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녀석은 놀랍게도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길 듣고 나니 손이 떨리고 입맛이 달아났다. 

나라에서 정한 그날의 식사비는 4만 8천 원이다. 애써 진정을 하고 고기 대신 공깃밥과 밑반찬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된장국도 원샷을 하다시피 했다. 내 입으로 들어올 고기는 없다. 헛기침을 두어 번하고 나서 아쉽게도 5교시 수업이 있어서 나는 먼저 들어갈 테니 너희들끼리 먹고 오라고 했다. 

계산대로 가서 삼겹살 세 판분을 계산했다. 법인카드로 4만 8천 원을 내 개인카드로 4만 6천 원을 결재했다. 5교시 수업이 없으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천천히 꽃비가 내리는 면 소재지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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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5-08 1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한창 아이들에게 고기를 쏘면 정말 큰일이 일어납니다 ㅎㅎ 저도 중2때 무려 고기 두 근을 앉은자리에서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ㅎ

박균호 2018-05-08 10:51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씨름부가 아닌 것만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해야죠.

2018-05-08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8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내는 처제와 여행을 갔다. 톰과 제리처럼 다툼을 주고받는 나와 딸아이만 집에 남았다. 이제 고3이 되는 딸아이는 독서실을 오간다. 밥을 해놓고 운동을 다녀오다가 딸아이 생각이 났다. 마트에 들러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딸기와 마트 앞에 있는 노점상 할아버지가 파는 군고구마를 샀다. 딸아이는 어느새 제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금방 다시 독서실에 갔다. 딸아이를 위해서 요리를 할 자신이 없어서 딸기를 씻고 군고구마를 챙겼다. 늦은 밤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를 위해서다.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끓여준 라면이 생각난다. 45원짜리 삼양라면은 누구에게나 별미였다. 언제였나 모르겠다. 코흘리개였을 때가 분명하다. 라면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어머니는 가마솥을 동원하셨다. 부엌 아궁이에 걸린 가마솥에 불을 지펴가며 라면을 끓이셨다. 조리 도구가 여의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석유를 사용해야 하는 곤로를 사용하기가 편하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겠나. 

어머니께서 무심한 표정으로 부지깽이를 부지런히 이리저리 놀리시던 장면만 기억으로 새겨졌다. 가마솥에 끓여주신 라면을 먹었던 풍경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면 맛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일 슬픈 것은 어머니에게 라면을 권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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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3-22 0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벌써 고3이 됐군요. 어린 시절 정말 삼양라면 많이 먹었죠. 그렇게나 맛있었는데....ㅠㅠ 요즘 좋아하는 라면은 부대찌개라면입니다. 글구 어머니, 지금 혼자 사시는데 어제 어머니 댁에 가서 자고 왔어요. 늦게 가서 잠만 자고 아침일찍 나왔는데도 그렇게 좋아하시네요 ㅠㅠ 맘아파요.

마태우스 2018-03-22 0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구 이벤트 당첨축하드립니다. 주소랑 전번 알려주세요. 글구 받고픈 책도요

2018-03-22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5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울 촌놈이 아니고 진짜 촌놈이 부산엘 갔다. 택시를 탔는데 갈려는 곳이 설명하기 어려워서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자고 부탁했다. 연세 지긋해 보이는 기사분은 내비게이션을 잘 다루지 못했다. 우선 정차하면 목적지를 입력하기로 했다. 정차했는데 기사분 내비게이션은 워낙 구닥다리여서 목적지를 입력하는 것이 까다로웠다.

첫 번째 정차에서 목적지 입력에 실패했다. 두 번째 정차에서도 실패했다. 세 번째 정차에서도 실패했다. 운전 기사분은 비록 고물 내비게이션을 가졌지만 ‘끈기’도 가졌다. 포기를 모르신다. 보다 못한 내가 나섰는데 나는 기계치다. 나도 실패했다. 급기야 한 참 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내밷고 말았다. “기사님 좀 좋은 내비게이션을 장만하시지 그러셨어요” 

약속 시각은 다가오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내 휴대전화를 꺼내서 내비게이션을 검색했는데 목적지를 모두 입력하기도 전에 연관 검색어로 ‘여기 갈 거니?’라고 물어본다. 운전석 옆에 내 휴대전화를 두었다. 음성 안내를 듣고 운전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기사분은 정차할 때마다 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을 내려다보았다. 아니다. 탐독하셨다. 음성안내를 듣고 운전하는 것이 익숙하시지 않으셨다. 

어쨌든 택시는 목적지를 향해서 꾸역꾸역 다가갔다. 기사분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하는 거냐’고 물으셨다. 나는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하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운용하는 기사분이 당황스러웠다. 본인이 평소 다니는 경로와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면서 기사분은 연달아 감탄하셨다. 

차가 꽉 막히는 다른 구간과는 달리 우리가 가는 구간은 뻥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차할 때마다 내 휴대전화를 쓰다듬으면서 성능을 칭송하셨다. 아니다. 찬양하셨다. 잠시 뒤에 목적지라면서 내리란다. 요금을 계산하는데 마침 기사분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 사랑 마나님 하트 하트(원래는 도형이었는데 내가 그림으로 하트 표시를 입력할 줄 몰라 할 수 없이 텍스트로 입력했다)이라는 발신자 정보가 보였다. 내리긴 내렸는데 목적지는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 맞은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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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02-11 0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작가님 고생 많으셨네요ㅠㅠ부산 가신 건 부럽습니다만^^;

박균호 2018-02-11 05:29   좋아요 0 | URL
아...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그렇게 고생은 아니었어요. 맞아요 부산은 참 매력적인 곳이에요.

2018-02-11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8-02-11 22:36   좋아요 1 | URL
아..네 반갑습니다. 원래 웃자고 쓴 이야기 입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