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관한 눈썰미가 좋은 아내가 몇 해 전 장만한 꽤 비싼 패딩을 입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칠순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유심히 아내를 바라보더란다. 심지어 아내가 걸음을 재촉하는데 아내를 거의 따라오다시피 하더라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그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약간 쑥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입은 패딩이 너무 예뻐서 내 손녀에게 사주고 싶은데 혹시 브랜드를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알라딘에는 성별 연령별로 구매자 분포를 알려준다.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고전>은 당연히 40~50대 여성이 80%를 차지한다. 십 대 자녀를 둔 엄마가 자식을 위해서 사주는 책이란 뜻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60대 이상 남성 구매자가 7%의 비율을 차지한다. 처음에는 귀여운 손자, 손녀에게 주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샀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을 70대 중반으로 밝힌 한 독자님의 서평을 읽고 나는 이 7%가 실제로 본인이 읽으려고 한 구매도 상당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따금 공공도서관에서 고전에 관해 강연하는데 청중의 대다수가 50~70대이시다. 왜 그럴지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일찍이 책을 오래 읽다 보면 나이가 들다 보면 결국 고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70대 중반 독자님의 품격 넘치는 서평을 읽다 보니 존경심이 저절로 든다. 책을 구매하시기 전 내 글에 댓글로 구매하신다고 하셔서 애들이나 보는 책인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는데 배움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씀하셨다. 나야말로 고루한 사람이고 이 어른이야말로 청년보다 더 청년으로 사시는 분이다. 내 책을 산 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70대 중반에 청소년을 위한 책을 기꺼이 즐겁게 읽고 서평을 남기신 어른이라니! 내가 언제 이분처럼 열정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요 며칠간 출근하면서 역시 70은 훨씬 넘으신 신호수(信號手)분이 지나가는 모든 차를 향해서 각이 제대로 잡힌 거수경례를 하며 마치 손주를 보는 것처럼 정답게 손을 흔드시는 장면을 본다. 차에서 저절로 꾸벅 인사를 하게 된다. 이 모두 존경스럽고 참 멋진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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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9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입니다.

2025-12-19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