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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영업합니다 - 온라인서점 MD의 읽고 파는 이야기
구환회 지음 / 북바이북 / 2025년 11월
평점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쓴 책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독서가에게 서점 주인, 사서, 작가, 출판사 직원이 쓴 책이 재미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독서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은퇴 후에, 동네에 조그마한 서점을 하고 싶어 하고, 죽기 전에 한 권의 책은 내고 싶어 하고, 사서가 되어 좋아하는 책 속에 묻혀 살고 싶어 하고, 출판사를 차려 도저히 번역이 안 되는 명작을 직접 번역·출판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직업들은 책을 좋아하다 보면 한 번쯤은 어렵지 않게 대면할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책의 유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우리 독서가들에게 도무지 눈에 띄지 않는 직업이 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빨리 신간을 접하고(간혹 책을 쓴 작가보다 빨리), 작가와 출판사보다 더 간절하게 책이 잘되길 바라며, 작가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직업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마치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포경선 선원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만드는 고래기름이 없다면 고귀한 양반들이 촛불조차 켤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없으면 출판계는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이들이다.
그들이 바로 인터넷 서점 MD들이다. 그들은 너무나 소수이고 대외적으로 노출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출판계를 움직이는 엔진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가깝다. 작가인 나도 서점 MD를 단 한 번도 알현한 적이 없다. 그런데 책을 내다보면 그들이야말로 책의 성공을 좌우하지는 않지만 좋은 책을 찾아내는 신통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대체 그들은 어떻게 일하고 책을 어떻게 바라볼지 언제나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이 나라의 최고 노른자 땅에 돈 안 되는 서점을 운영하여 수많은 독서가로부터 존경받는 교보문고 MD 구환희 님의 <독서를 영업합니다>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독서를 영업합니다>를 읽다 보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서점 MD의 세계와 실상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마치 염라대왕처럼 36개의 계단 위 옥상에 앉아 고개를 잔뜩 숙이고 처분을 기다리는 출판사 직원들 앞에서 책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그들도 작가나 출판사처럼 아니 더 간절하게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출판계의 수레바퀴였다. 일찍이 MD가 ‘뭐든지 다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들은 바는 있지만, 그들이 오프라인 행사도 주관하면서 모객을 어떻게 하면 더 모을지 고민하고, 몰려드는 책더미가 무너지는 ‘책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책 쌓기 아트’를 수련하는 고달픈 직업이라는 것도 알겠다.
참 이상한 일이다. 무게를 못 이겨 무너질 정도로 많은 책이 모였다면 이제는 책을 비우거나 서가에 꽂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책 쌓기 기술에는 MD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다시는 너를 무너지게 두지 않겠다’라는 신념을 불태우며 MD는 온 힘을 다해 책 탑을 복원한다. 사실 일이 많아 바쁘므로 예술혼을 빙자해 책을 방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예상한 바 있지만 신간이 나오고 책을 홍보하려는 출판사 직원과의 미팅이 분 단위로 쪼개지고, ‘잠깐 책만 전해주고 갈게요’라고 말하는 출판사 직원이 왜 공포스러운 존재인지도 몰랐다. 그렇다. 그들은 책의 재판관이 아니라 책을 팔아야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책과 작가를 누구보다 아끼는 사람들이라니.
책을 파는 MD에게 저자만큼 중요한 사람은 없다. 모든 MD는 저자가 쓴 책을 팔고, 모든 독자는 저자가 쓴 책을 읽는다. 1차 직업 주체인 저자가 집필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MD 같은 2차 직업은 사라진다. (작가님 덕분에 월급을 받습니다...) 따라서 업무 때문에 책을 말해야 할 때 비판이나 비난은 잘 하지 않는다.
이제 이 책의 금싸라기를 말할 차례가 되었다. 대체 서점 MD들은 어떤 책을 주목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이야기야말로 독자, 작가, 출판사 직원 모두에게 귀한 조언이자 가이드가 될 것이다. 서점 MD야말로 가장 다양하게 그리고 빨리 읽을만한 책을 고르는 일종의 사금을 거르는 채와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첫째, 상을 받은 책이다. 그렇다고 모든 상을 다 말하는 것은 아니고 노벨상, 부커상, 전미 도서상, 서점대상, 휴고상과 같은 상을 받은 책이다.
둘째, 추천사가 뛰어난 책이다. 나는 유명한 사람의 추천사가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추천사 내용이 뛰어난 책이란다. 그러니 유명 인사를 섭외해 출판사가 쓴 초안을 그대로 싣는 것은 크게 도움이 안 되겠다. 무명작가일지라도 신형철 평론가나 황정은 작가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극찬’을 했다면 일단 귀가 솔깃해진다고.
셋째, 제목이 좋은 책이다. 호기심을 자아내거나 감각적이고 신선한 언어 사용이 인상 깊은 책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제목력이야말로 출판사와 작가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령 ‘광화문 그 사내’를 출판사가 ‘칼의 노래’로 제목을 바꾸지 않았다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그들의 운명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초대형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아무리 요리조리 변용을 해봐야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이다.
넷째, 표지가 강렬한 책이다. 나도 이 부분에 공감한다. 대체 왜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서점 MD와 마찬가지로 일반 독자들은 표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만 생각하면 되겠다. 책 좀 읽었다는 사람은 표지만 봐도 ‘자비로 출판된 책’이라는 것을 한눈에 안다.
다섯째, 첫 문단이 강렬한 책이다. 첫 문단이 강렬한 책은 웬만해서 실패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제의 띠지로 넘어가자. 독서가들은 대체로 띠지를 귀찮아한다. 오죽하면 띠지를 만든 자 지옥에나 떨어지라는 저주가 나왔을까. 그래서 독자들 사이에서는 띠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고찰이 끊이지 않는다. 구환희 MD는 띠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생각하기에 띠지는 수상 이력, 추천사를 실을 최적의 공간이며 책을 ‘버려질 위기’에서 구원해 주는 하나님이 건네준 일종의 생명의 밧줄일 수 있다.
눈치를 챈 사람이 없겠지만 이 서평은 이 책을 반만 읽고 쓴 것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 읽다가 반만 읽고 이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마치 <모비딕>에 고래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이 가득 찬 것처럼 출판, 독서, 글쓰기 등에 관한 보물이 쏟아져 나와 도저히 한 수레에 싣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읽을수록 뼈와 살이 되는 귀한 내용이 나와서 어떤 내용을 빼야 할지 내 아둔한 머리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으른 서평이라고 비판 마시라.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