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는 떡을 준비했다. 아내가 제주도에서 사 온 떡인데 너무 많이 해동을 시키는 바람에 그야말로 ‘축 늘어진’ 떡이 되어 버렸다. 무더운 날씨라서 떡도 축 늘어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요양원에 도착했는데 마침 간식 시간이라 수박이 나왔다. 
 
 산책하기로 했는데 휠체어를 밀면서 떡과 수박을 다 들 수가 없어서 어머니의 한 손을 빌리기로 했다. 나는 휠체어와 떡을 책임지고 어머니는 수박을 들었다.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16년째 중풍으로 반신불수로 고생하시지만 살아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어머니와 손을 합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요양원 근처에 있는 작은 정자에 도착했다. 지붕 아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찌는 듯한 더위인데 그늘진 곳에 바람까지 살포시 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다. 바라보는 풍경은 조명이 잘 된 수족관처럼 아름답고 선명하고 눈부시다. 
 
 한 시간 남짓 지나자 어머니께서 고개를 떨구며 조신다. 졸음이 오냐고 여쭸는데 손을 내 저어 신다. 졸리지만 자식과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떡과 수박을 떠 드렸다. 행복하고 아늑하다. 초등학교 시절 한 장면이 생각난다. 가정환경 조사를 했는데 내 조부님이 생존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너는 참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신다고 딱히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고 살았으니 말이다. 
 
 지금에야 그 선생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겠다. 아마도 그 선생님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일찍 여의셨다 보다. 주섬주섬 남은 음식을 챙겨서 내려오는데 몇 해 전 아버지 산소를 찾았을 때 봉분에 외롭게, 다소곳하게 피어 있던 들꽃과 똑같은 것이 어머니 옆에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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