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처제와 여행을 갔다. 톰과 제리처럼 다툼을 주고받는 나와 딸아이만 집에 남았다. 이제 고3이 되는 딸아이는 독서실을 오간다. 밥을 해놓고 운동을 다녀오다가 딸아이 생각이 났다. 마트에 들러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딸기와 마트 앞에 있는 노점상 할아버지가 파는 군고구마를 샀다. 딸아이는 어느새 제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금방 다시 독서실에 갔다. 딸아이를 위해서 요리를 할 자신이 없어서 딸기를 씻고 군고구마를 챙겼다. 늦은 밤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를 위해서다.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끓여준 라면이 생각난다. 45원짜리 삼양라면은 누구에게나 별미였다. 언제였나 모르겠다. 코흘리개였을 때가 분명하다. 라면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어머니는 가마솥을 동원하셨다. 부엌 아궁이에 걸린 가마솥에 불을 지펴가며 라면을 끓이셨다. 조리 도구가 여의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석유를 사용해야 하는 곤로를 사용하기가 편하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겠나.
어머니께서 무심한 표정으로 부지깽이를 부지런히 이리저리 놀리시던 장면만 기억으로 새겨졌다. 가마솥에 끓여주신 라면을 먹었던 풍경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면 맛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일 슬픈 것은 어머니에게 라면을 권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