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촌놈이 아니고 진짜 촌놈이 부산엘 갔다. 택시를 탔는데 갈려는 곳이 설명하기 어려워서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자고 부탁했다. 연세 지긋해 보이는 기사분은 내비게이션을 잘 다루지 못했다. 우선 정차하면 목적지를 입력하기로 했다. 정차했는데 기사분 내비게이션은 워낙 구닥다리여서 목적지를 입력하는 것이 까다로웠다.

첫 번째 정차에서 목적지 입력에 실패했다. 두 번째 정차에서도 실패했다. 세 번째 정차에서도 실패했다. 운전 기사분은 비록 고물 내비게이션을 가졌지만 ‘끈기’도 가졌다. 포기를 모르신다. 보다 못한 내가 나섰는데 나는 기계치다. 나도 실패했다. 급기야 한 참 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내밷고 말았다. “기사님 좀 좋은 내비게이션을 장만하시지 그러셨어요” 

약속 시각은 다가오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내 휴대전화를 꺼내서 내비게이션을 검색했는데 목적지를 모두 입력하기도 전에 연관 검색어로 ‘여기 갈 거니?’라고 물어본다. 운전석 옆에 내 휴대전화를 두었다. 음성 안내를 듣고 운전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기사분은 정차할 때마다 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을 내려다보았다. 아니다. 탐독하셨다. 음성안내를 듣고 운전하는 것이 익숙하시지 않으셨다. 

어쨌든 택시는 목적지를 향해서 꾸역꾸역 다가갔다. 기사분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하는 거냐’고 물으셨다. 나는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하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운용하는 기사분이 당황스러웠다. 본인이 평소 다니는 경로와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면서 기사분은 연달아 감탄하셨다. 

차가 꽉 막히는 다른 구간과는 달리 우리가 가는 구간은 뻥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차할 때마다 내 휴대전화를 쓰다듬으면서 성능을 칭송하셨다. 아니다. 찬양하셨다. 잠시 뒤에 목적지라면서 내리란다. 요금을 계산하는데 마침 기사분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 사랑 마나님 하트 하트(원래는 도형이었는데 내가 그림으로 하트 표시를 입력할 줄 몰라 할 수 없이 텍스트로 입력했다)이라는 발신자 정보가 보였다. 내리긴 내렸는데 목적지는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 맞은편에 있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oonnight 2018-02-11 0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작가님 고생 많으셨네요ㅠㅠ부산 가신 건 부럽습니다만^^;

박균호 2018-02-11 05:29   좋아요 0 | URL
아...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그렇게 고생은 아니었어요. 맞아요 부산은 참 매력적인 곳이에요.

2018-02-11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8-02-11 22:36   좋아요 1 | URL
아..네 반갑습니다. 원래 웃자고 쓴 이야기 입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