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어렸을 때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다. 언제나 잘 시간이 되면 내 옆에 누워 이야기를 졸랐다. 이야기의 종류는 다양했다. 나 어렸을 적 살았던 시골 이야기, 어디 책에서 읽은 자투리 이야기, 심지어 군대 이야기까지.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모두 열광했다.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내 이야기 창고는 금방 바닥이 드러났고 나는 매일 머리를 쥐어짜며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영특한 딸아이는 오늘 한 이야기가 전에도 했던 것이며, 때로 몇 가지 이야기는 짜깁기한 것임을 금방 알아차렸을 텐데 그래도 손뼉을 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들었다. 심지어 내 말솜씨가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는데도, 신기한 마술이라도 구경하듯이 이야기마다 열중했다.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심지어 노래 경연대회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참가자가 주목을 받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소설에 비유하는 것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본능에서 비롯한다. 세상 사람들은 결국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소설은 가장 공을 들여 만든 정교한 이야기이다. 게다가 단순히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다. 작가가 소설에 자신의 삶을 녹여내면서 동시대 사회의 역사, 사건, 문화, 생각을 모두 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아주 풍성하고 생생하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가 연구한 몇백 년 전 사회의 모습보다 당대의 소설가들이 묘사한 사회의 모습이 더 생생한 이유다


소설은 문학 장르로써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품는다. 이렇게 재미난 소설에 나이 오십이라는 경륜이 더 해지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서사가 태어난다. 우리는 누구나 소설 같은 생애를 살아오지 않았는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라는 소설의 눈으로 청년 시절 읽었던 소설을 읽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기 마련이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급하게 삼켰던 청춘의 독서를 되새김질하기에 좋은 시절이다. 새로운 소설을 만나는 것도 즐겁지만 빛바래고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는 옛 책을 꺼내놓고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설렘과 감동을 추억하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줄거리를 따라가기 급급해 미처 살피지 못한 소설에 얽힌 뒷이야기, 배경 이야기를 파헤치고 찾아보는 것은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러고 보면 소설은 당대의 사회문화의 특징적인 요소가 총집결된 결정체가 아닌가. 소설은 단순히 줄거리로만 읽기에는 아깝다. 좋아하는 드라마 주인공이 입은 옷과 가방이 어느 회사 제품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는 것처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이 어떤 배경을 통해서 탄생했는지 알아가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에서 다룰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예로 들어본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로쟈의 범죄와 처형이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 사회와 인간의 심리를 다룬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주인공의 하숙집, 거리, 다리 등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주인공 로쟈를 추적하는 예비 판사의 수사 기법은 오늘날 경찰에게도 좋은 참고 자료다. 그뿐인가, 마치 소설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경험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살인자의 심리가 생생하고 뛰어나게 묘사된다.


우리의 국민 소설 춘향전도 읽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한다. 춘향전에는 춘향과 이 도령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사회의 공고한 신분제도에 반발하는 민중의 분노가 담겨 있고, 벼슬아치의 행태도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히 느껴진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는 추리를 해가며 읽어야 하는 탄탄한 전개도 재미나지만, 작가가 즐긴 음악과 책이 끝도 없이 등장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글 속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보면,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즐거움에는 텍스트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루키가 영위했던 낭만의 시대를 공유한다.

 

이렇듯 소설은 이야기를 누리는 즐거움과 함께 역사, 사회, , 종교, 그리고 한 시대를 관통한 문화를 읽는 즐거움도 누리게 해준다. 좋은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뛰어난 인문학 서적 여러 권을 읽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런 경험을 소설 인문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이야기를 접하는 즐거움이 소설 인문학이다. 인문학도 따지고 보면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20권의 소설에는 당대 사람들의 세상살이가 생생하게 녹아 있다. 그 이야기와 함께라서 나는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한 인문학책들도 재미나고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 그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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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15 1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용하셔서 이때쯤 또 책을 내시지 않을까 했는데 맞았네요.ㅋ
하지만 이렇게 소설 인문학을 내실거라곤 상상 못했습니다.
소설은 비록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맞아요. 나이 50이 넘으면 소설도 다르게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흥미로운 책 같습니다. 찜했다가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2022-07-15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20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7-15 1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책 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목차 보니까 익숙한 책이 많아서 반갑네요. <해변의 카프카> 이야기는 완전 공감이 가네요 ㅋ 책에 나온 음악들도 갠적으로좋아하는 음악이어서 더 재미있었던거 같습니다~!! 10판 인쇄까지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박균호 2022-07-15 20:11   좋아요 3 | URL

네 고맙습니다. 익숙한 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캐내는 것이 이 책의 콘셉트 입니다..ㅎㅎㅎ

감은빛 2022-07-15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에서 새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축하드리고 널리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아직 오십이 아니라 패스 하겠습...... 농담입니다. ^^

박균호 2022-07-16 05:36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패스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페이스북 친구라니 누구신지 궁금하네요 ^^

감은빛 2022-07-16 06:43   좋아요 3 | URL
페이스북도 감은빛입니다. ^^

mini74 2022-07-15 2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군대이야기 좋아하는 딸이라니 ㅎㅎ 복받으셨습니다 *^^* 새책 출간 축하드려요. 오십 ㅠㅠ 그렇지요. 뭔가 ㅎㅎㅎ 저도 관심이 갑니다. 하루키이야기 좋아요 *^^*

박균호 2022-07-16 05:36   좋아요 2 | URL
하루키 매력적인 작가이지요. 딸아이는 저에게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귀여워요 ㅎㅎ

서니데이 2022-07-15 2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상품페이지에 나오는 간략한 소개도 좋지만, 이렇게 자세한 내용도 좋은 것 같습니다.
책을 읽기 전 어떤 내용이 될 지 상상해보게 되니까요.
새 책 출간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이번 책도 베스트셀러 되시면 좋겠습니다.
박균호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22-07-16 05:37   좋아요 3 | URL
그런가요?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 !!!

2022-07-21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2-07-21 18:00   좋아요 0 | URL
아...그런 애로점이 있었군요 ㅠㅠㅠ 모쪼록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래요 !!!

2022-07-24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2-07-24 20:02   좋아요 1 | URL
네네 언제나 즐거운 오십대가 되길 바랍니다 ^^
 

작년에 나온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이 3쇄를 찍게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2천부씩 찍는 출판사라 제법 많이 팔린 셈이다. 그다지 주목을 받는 다는 흔적이 전혀 없어서 어디서 누가 사는지는 잘 모르겠다. 


=========



오늘 직장에서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시집에 일을 하러 간 며느리에게 그 집 여자 어른이 이런 소리를 했단다. “시집을 왔으면 이 정도는 배워왔어야지” 딸자식 가진 아빠로서 피가 거꾸로 솟는 망언이다. 그런데 그 망언을 들은 며느리의 일성이 통쾌하다. “저는 시집을 온 것이 아니고 결혼을 한 것뿐이에요” 이 말을 투척한 후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단다. 


곰곰이 내 딸아이를 생각해봤다. 시댁에 가서 저런 망언을 들으면 저토록 통쾌한 한 방을 먹였으면 좋겠다. 며칠 후 딸아이가 본가에 왔는데 잘 됐다 싶어서 딸아이를 곁에 앉혔다. 내가 들은 사연을 그대로 들려준 후 네가 그 상황이면 ‘시집을 온 게 아니고 결혼을 했을 뿐이다’라고 반박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딸아이의 나지막한 대답이 이랬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래야 내 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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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9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력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연습도 시켜야 함요. 그 시댁은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가 없는거예요. 그거 받아주면 한도 끝도 없다는게 제ㅠ생각이에요. ㅠㅠ
그래도 박균호님 책 3쇄 출간 축하드립니다. 졸은 책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균호 2022-06-29 22:32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

stella.K 2022-06-30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스! 맞아요. 결혼했지 시집 온거 아니죠.
그래도 따님 막상 안 그럴걸요? ㅎ
축하드립니다!^^

박균호 2022-06-30 13:20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오랜만이에요 ^^ 공감도 감사합니다!

다섯 2022-07-15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간 출간하셨더군요. 주문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박균호 2022-07-15 10:52   좋아요 1 | URL
앗...어케 아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 - 포르쉐 UX 디자이너가 들려주는, 2023년도 세종도서 교양부문 추천도서
박수레 지음 / 책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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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제목이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라고 해서 자동차 디자인 전공자나 실무자를 위한 교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변천사로 돌아보는 인간 중심 디자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부제를 미처 살피지 않고 이 책을 지나친다면 당신은 인간의 운전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리하게끔 백 년 이상 치열하게 연구해온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 역사를 모르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디자이너를 위한 책이 아니고 모든 운전자를 위한 책이다. 아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자동차야말로 현대의 문명과 기술이 총 집결된 결정체니까. 책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계에 달린 수십 가지의 유틸리티가 어떤 취지에서 개발되었고 어떻게 발달하여 왔으며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알려준다.

자동차라는 생활방식의 가장 흥미로운 보고서
 


ⓒ 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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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이면서 공간이고, 도구이면서 생활 방식인 자동차가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지고 볶아온 흔적을 추적하고 자동차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이게 왜 여기에 붙어 있는 건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구해온 결과가 바로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다. 굳이 자동차광이 아니더라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다.

이 책의 저자가 하는 일은 '자동차 UX 디자인'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알겠는데 자동차 UX 디자인은 무엇일까? 잘 모른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2015년 소셜 미디어 링크드인에 의하면 부모에게 설명하기 불가능한 직업 TOP 15 중 1위가 바로 이 직업이니까.
 
만약 당신이 자동차 UX 디자인을 한다면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자동차 핸들에 들어가는 버튼은 몇 개가 좋을까? 와이퍼 스위치는 오른쪽이 좋을까? 비상스위치는 어느 정도 높이에 달리는 게 맞을까? 볼륨 조절은 몇 단계로 나눠놓는 것이 가장 편할까? 그러니까 UX 디자인은 운전자가 보고 만지고 조작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심미적, 기능적, 상징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이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에는 글러브 박스, 컵 홀드, 창문, 사이드미러, 에어컨, 시트 조절 스위치, 시가잭, 계기판을 비롯한 운전자가 조작하는 유틸리티에 대한 흥미로운 탄생과 진화 과정 그리고 속사정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당신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언제나 동고동락한 존재는 부모나 배우자가 아니다. 바로 여러분의 자동차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자동차의 소소한 도구들이 우리의 편리함과 안락함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뒤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인가?
 
자동차 안에 생화를 꽂는 꽃병이 있다?

그럼 글러브 박스부터 시작해볼까? 우선 차량 수납공간을 왜 글러브(장갑) 박스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마차와 비슷하게 생겼던 초기 자동차를 모는 운전자는 시린 바람에 덜덜 떨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바람막이(앞 유리창)가 생겨났는데 찬바람에 손이 시리면 운전 자체를 하기가 힘드니 방한 장갑을 하나씩 꼭 챙겨야 했다.

또 파워스티어링이 아니었던 초기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방향을 돌리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고 손에 굳은살이 박이기도 했을 테니 장갑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자동차의 대표적인 수납공간인 글러브 박스가 처음부터 조수석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시트 밑에서 출발해서 운전석으로 갔다가 또 다른 장소로 유목민처럼 이사한 것이 글러브 박스였다. 그러다가 1933년 클로슬리 모터스가 최초로 자동차에 라디오를 장착했는데 이를 계기로 대시보드의 중앙에 라디오, 운전석에는 계기판, 조수석에는 글러브 박스가 자리 잡은 오늘날의 익숙한 레이아웃이 완성된다.
 
전기자동차가 미래형 자동차로 주목받지만 따지고 보면 전기 자동차가 내연 기관 엔진보다 더 먼저 나왔다. 1832년에 로버트 앤더슨이 원유 전기 마차를 만들었는데 내연 기관 엔진은 1800년대 후반에야 나왔다. 당시 전기자동차는 구조가 간단하고 운전이 쉬워서 여성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이 주로 애용하는 전기차에 여성의 취향을 저격해서 자동차 전용 꽃병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에는 참으로 많은 운전자가 자동차에 꽃을 꽂아두고 다녔다. 그리고 이 꽃은 전기자동차의 특성상 달고 다니는 배터리 냄새를 없애주는 방향제 역할도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꽃보다 훨씬 효력이 강력하고 편리한 방향제가 많으니 '차 속의 생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1957년식 폭스바겐 비틀에는 개인이 원하는 꽃병을 차에 달았다.
▲  1957년식 폭스바겐 비틀에는 개인이 원하는 꽃병을 차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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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이미 파워 윈도 기능이 있었다?

군생활을 할 때 우리 부대의 전승기념관에서 선배들이 한국전쟁 때 탈취했다는 김일성의 승용차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승용차의 모델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놀란 것은 그 차에 무려 파워 윈도 기능이 장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1990년대 후반까지 수동을 창문을 여닫아야 하는 소형차를 몰았다. 이미 그 당시에도 웬만한 차는 파워 윈도가 장착되어 있어서 내 차를 타는 사람이 '아니, 창문을 직접 손으로 올려야 해요?'라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 왠지 모를 굴욕감을 느꼈더랬다.

그런데 북한의 김일성은 이미 1950년대에 파워 윈도 기능을 사용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는데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읽고 그 궁금증을 해결했다. 파워 윈도 기능은 이미 1940년식 '패커드 180'이라는 자동차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니까 1950년대에 몰았던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일성의 자동차에 파워 윈도가 장착된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파워 윈도가 장착된 1942년식 패커드 180
▲  파워 윈도가 장착된 1942년식 패커드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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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돌출된 형태의 파워 윈도가 일반적이었다가 지금은 당기면 올라가고 아래로 누르면 내려가는 방식의 파워 윈도로 바꿨다. 나는 후자 파워 윈도를 사용하면서 돌출형 형태를 그리워했다. 왜 자동차 인터페이스가 퇴보를 하는가 싶어서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이 창문 사이에 목을 내밀고 기어오르다가 실수로 돌출형 파워 윈도를 발로 밟아서 생기는 인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동차는 호위무사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애쓴다. 변속기만 해도 그렇다. 변속기가 P에 있는 줄 알고 착각하고 내렸다가 화를 당하는 운전자를 막고 그 밖에 다양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위아래로 밀고 당기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식에서 탈피해서 기어 변경마다 일종의 턱을 만들어 놓는 스텝 게이트 변속기가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기어 변경이 단번에 빨리 되지 않고 덜컥거린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스텝 게이트가 없는 변속기(좌)와 스텝 게이트가 장착된 변속기(우)
▲  스텝 게이트가 없는 변속기(좌)와 스텝 게이트가 장착된 변속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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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은 우리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이지만 운전을 하는 재미 자체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테슬라는 '차 문을 열면' 전원이 들어오는 전기 자동차를 진즉 개발했지만, 엔진을 시작하는 신성한 행위 즉 시동 버튼을 누르는 행위 없이 차를 움직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운전자를 위해서 '시동'버튼을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내연 기관처럼 우렁찬 소리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슈웅~'하는 효과음 정도는 잊지 않았다.
 
누가 소장 가치가 있는 추천 해달라면 나는 가장 먼저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즐거움과 안전을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 속에 숨겨진 인류의 흥미로운 역사를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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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청주 신항서원에서 5회에 걸쳐서 강연하게 되었다. 청주 미사도서관에서 8회에 걸친 줌 강연을 악전고투 끝에 마쳤고 이젠 코로나 사태도 진정이 되어서 내심 대면 강연을 기대했지만, 아직 대면 수업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대면 강연을 하기로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겠다. 흥미로운 사실은 가르치는 일을 25년간 해온 나는 여전히 비대면 강연이 낯설고 힘든데 청중들은 이제 줌 강연의 편리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된다고 해도 줌 강연은 살아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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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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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를 마치고 신용카드를 빼려는데 주유소 직원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다행히 내가 목표물은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내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문득 후방거울을 보니 아뿔싸 주유 뚜껑이 혀를 내민 것처럼 열려있었다. 급하게 차를 세우고 닫으려는 순간 주유구 마개가 자리를 비운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주유를 마치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느라 미처 주유구 마개에까지 내 빈약한 주의력이 미치지 못한 것이리라.

다시 유턴해서 주유소로 돌아가는 몇 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뚜껑을 찾지 못하면 내가 방금 피 같은 돈으로 넣은 금싸라기 같은 기름이 공중으로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또 주유구 마개를 잃어버렸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비싸도 좋으니 살 수 없느냐고 자동차 공업사를 찾아갈 생각을 하니 그 자체로 머리가 아득해졌다.

되돌아간 주유소 구석에서 나뒹굴고 있는 마개를 발견한 순간 나는 집 나간 자식을 다시 찾은 것처럼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사소한 물건은 하찮은 물건이 아니다. 사소한 물건이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마땅히 추앙받아야 할 존재다.


이재경 작가가 쓴 <설레는 오브제>는 평소 우리가 우리의 가장 사소한 용도와 필요에 종사하는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물건들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와 깊은 통찰로 가득한 책이다.

사소한 물건이지만 거대한 역사를 가졌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하지만, 모두가 공감하게 되는 통찰로 귀결되며, 무명(無名)의 존재로 시작한 물건이 유명(有名)의 존재로 부상하는 경험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얻게 된다.

가령 오직 꿀을 뜨기 위해 탄생했고 존재하는 '꿀뜨개'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통찰을 발견한다.
 

다용도를 내세운 물건의 합체는 불가피하게 물건의 변형을 부른다. 그 변형은 장식적 변주에 그치지 않고 원형을 깬다. 더는 그 물건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그건 물건이 애초에 생긴 목적을 무시하는 처사고, 그건 결국 기존 질서에 대한 거부다. 물건의 변형만큼 시대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도 없다. 때로는 꿀뜨개 같은 것들을 일상에 추가한다. 시간에 휩쓸리면서 가끔 붙잡고 쉬어가는 말뚝을 박듯이.

 
집주변을 할 일 없이 산책하는 행위에 대한 이런 통찰은 또 어떻고.
 

알다시피 주거지의 면적을 늘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도 동물처럼 산책으로 영토를 넓힐 수 있다. 공적인 장소에 사적인 의미를 심는 일은 나를 확장한다. 거기서 먹이처럼 시적 단상을 모을 수 있다. 매일 경로가 다져지고 샛길이 번지면서 내 서식지가 늘어난다. 그곳은 나만의 감상과 집착과 미련이 묻어 있어서 다른 누구도 복제할 수 없다.


아내가 실론티를 사 왔는데 차 통이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 예쁘다. 나는 평소 출근을 하면 봉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며 차는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슬쩍 아내가 사 온 차 통을 보고 브랜드를 기억한다.

그리고 잽싸게 서재에 들어와 아내가 사 온 차를 주문한다. 사무실 내 책상 위에 올려두면 뭔가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설레는 오브제>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사람은 어쩌면 '웰빙'보다 웰빙의 느낌'에 돈을 쓰고 그 기억을 산다. 그게 내용물이 없어진 후에도 용기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 같다.
 

 
그리고 차에 얽힌 중국과 영국의 애증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이재경이라는 작가는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 사람이고 사람에 대한 통찰도 매우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다. <설레는 오브제>가 한 사람이 쓴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 한 권의 책은 사소한 물건에서 시작해서 인류의 역사와 인류에 대한 통찰이 끝없이 이어진다.

귀퉁이마다 기둥이 있고, 그 위에 천장처럼 덮개가 있는 침대를 그냥 부잣집 여자의 플렉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설레는 오브제>를 읽다가 이 물건의 이름이 사주 침대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인데 사주 침대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과 역사를 읽게 되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다(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이재경 작가는 책 모서리를 접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든 책에 표시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마땅히 <설레는 오브제>에 그 어떠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감동하고 공감을 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열심히 핸드폰 사진에 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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