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써놓고 보니 흘러간 유행가 제목이다. <존재의 이유>

 가끔 일본소설을 읽는 이유는 지루한 독서에 가벼운 재미를 주고 싶어서이다. 대게는 너무 가볍다고 생각되지만 (가령 결별한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온다리쿠...마저..) 자잘한 일상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본소설의 매력은 그 어떤 곳에서 발견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해보라 하면 한번쯤은 있음직한 이야기들이 이 소설에 들어있다. 헌책방에 판 책을 세계여행하는 곳곳에서 마주치는 이야기, 단골책방의 할머니 이야기, 동거했던 애인과 헤어지면서 책을 분리하는 과정의 이야기 등등.. 이건 뭐 내가 써도 쓸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어디 소설은 아무나 쓰는 건가. 여튼 쓰겠다고 생각하고 쓰는 사람들이 소설가인것을.

 책이 굉장히 얇아 금방 읽을 수 있다. 나는 <불행의 씨앗>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좋았다. 불행의 씨앗이라 여겨지는 책 한권을 소유하면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다. 헤어진 애인의 새로운 여자친구에게 그 불행의 씨앗이 어찌하여 넘어가게 되고 정말 불행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책을 불행의 씨앗이라 여기지 않는 극복(?)의 이야기.. 여튼 읽어보면 재밌다. 갖어서 행운이 될꺼야란 생각은 해보았으나 불길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건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책장의 책을 다시 한번 훑어보게된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삶의 균형을 잃을 때 마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아주 오래전 <아버지>란 소설이 유행할 때 일부러 읽지 않았다. 왠지 뻔한 내용일 것 같아서.. 그런데 엄마를 부탁해란 이 소설은 누군가의 리뷰와 신경숙이라는 이름만 보고 주문을 했다. 읽는내내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주기도문을 외우듯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맘이 계속 불편했다. 왜였을까.

 소설 속의 엄마의 모습은 사실 우리 엄마의 모습과는 별로 닮지 않았다. 나름 시골에 살지만 밭뙈기라곤 없는 우리집은 무얼 심고 기르고 하질 않으니까. 따라서 소설속에서 한없이 보여지는 엄마로서의 희생의 모습은 우리엄마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희생이란 것이 다른 형태로 내게 와 닿았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가는 가족의 모습과 그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없이 생각했어야 할 엄마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그 모습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세뇌당한 듯 알고 있는 희생, 헌신의 모습이다. 사실 나는 이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는 왜 항상 이런 모습으로 그려져야만 하는가. 사실 우리 엄마가 그래서 그 모습이 싫어서였을까. 그런 것도 아닌 것도 같다.

 하지만, 이 한 문장에 나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삶의 균형을 잃을 때 마다 나 역시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하곤 했으니 말이다. 엄마는 내가 균형을 잃을 때 마다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었으니까. 저자의 말을 읽으니 저자에게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이해가 되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우리 엄마에 대해서 길게 글을 써볼 수 있을까. 소설을 읽다가 맛보는 오랜만의 감정이입이었다.

나도 시작한다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완전판)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그렇다. 이 책 벼르고 별렀다. (벼르긴 뭘 -_- ) 추리소설, 일년에 다섯권정도 밖에 안읽는 내가 겨울을 맞이하야 애거서 크리스티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뛰어들었다 하기엔 꽤 늦은 나이..  그런데 오늘 잡은 이 책 정말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라는 표현만큼 그 책이 재밌다는 표현이 또 있을까. 병정 섬에 각각의 이유로 모여든 열명의 사람이 차례차례 죽는다. 물론 핵심은 누가 죽였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일단 그 열명중에 범인이 있다. 아니다. 그 외의 다른 사람이다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론은? 직접 읽어보시고요..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이야기.. 혹시 나 이 책 예전에 읽은 걸지도 모르겠다. 책의 글씨체도 어쩐지 고전스럽고.. 많이 옛날책이라고 생각하니 약간 유치한듯 하면서도 빨려드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판사와 의사가 대충 핵심인물이라고 하면 너무 배운 사람들만 똑똑해보이는거 아냐..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더랬다. 이 책에서는 이 두 인물이 중요하므로.. 약간의 추리를 요하는 영화는 안면인식장애(?)때문에 잘 못보는데 확실히 텍스트로 읽는 것은 나은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은 범죄에 대한 뒷부분의 자세한 해설이 있어 왠지모를 안심을 준다. 그래, 나머니 전집들도 다 독파해줄테다!

신화를 읽으면서 영어 어원을 알자!

[영어 뇌를 키우는 그리스로마 신화 1] 서평단 알림

영어 뇌를 키우는 그리스로마 신화 1 - 하늘의 왕이 된 제우스
김경윤 글, 이경택 그림, 고규녀 영작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단어를 외울때 더 잘 외우는 방법 중에 하나가 어원을 통해 가지를 치면서 외우는 방법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수준에 맞게 그리스 로마신화를 쉽게 설명하면서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중심으로 어원을 소개하고 있다. 또, 접두사, 접미사를 통해 여러가지 단어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서 pro는 먼저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에서 epi는 나중의 뜻을 갖고 있다. 앞에, 앞선의 뜻을 지닌 pre, pro를 설명하면서 predict, propose, prescription등의 단어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읽을 때 마다 새로운 것 같다. 유명한 이야기들만 기억되고 수많은 신들과 등장인물이 나와서 대게는 잊어먹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용이었지만 그림을 보는 재미로 그런데로 괜찮게 책을 봤다. 다만, 제시되는 단어들이 초등학생에게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하긴 요즘 초등학생은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와는 달리 영어를 잘 하니까. -_-) 주변에 초등학생이 있다면 이 책으로 한번 실험(?)해 볼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사이더 하우스 1
존 어빙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가끔 소설을 왜 읽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식을 주는 것도 아닌 가상의 이야기를 시간을 들여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인상적인 내용이 아니면 대게는 기억의 저편으로 물러가버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 책 재밌어 혹은 재미없어 정도의 말만 해줄 수 있을 뿐인 소설을 말이다. 1,2권으로 되어있고 좀 두꺼운 이 책을 오늘 다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나 혼자 찾은 진리를 발견한냥 흐뭇했다. 함부로 말하기 꺼려지되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에 대해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소설만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고아인 호머 웰즈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다. 이 소설은 성석제가 표현하였듯 삶의 아주 낮은 부분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임신, 낙태, 섹스에 대하여 시종일관 거침없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것 같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닥터 라치가 만든 규칙대로 처음엔 거부하지만 결국엔 고아원에서 낙태시술을 담당하는 닥터 스톤으로 변신하게 되는 호머의 이야기는 때론 서글픔으로 때론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캔디와 월리, 그리고 앤젤로 이루어지는 기묘한 가족의 형태는 그곳이 고아원이 아니라면 정말 이상하겠지만 그들의 삶의 배경을 알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삶의 또 다른 규칙이 아닐 수 없다. 호머에게 션사인이라는 호칭을 지워주고 자신을 떠나버린 호머를 찾아 평생을 헤매는 멜로니의 일화도 재밌게 다가온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을 고아원아이들에게 밤마다 읽어주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데이비드 코퍼필드>나 <제인에어>를 찾아 읽어야 할 것 같다. 그 밖에도 바다가 보이는 과수원인 오션뷰에 등장하는 수많은 재미난 캐릭터들이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규칙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되지만, 스스로의 규칙이 없는 방탕한 삶을 사는 것도 죄가 된다는 것이 이 책의 교훈이라면 교훈이 될까. 닥터 라치가 죽고 그의 뜻대로 닥터 스톤이 되기를 받아들이는 장면에서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왔다. 전개가 굉장히 빠르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재밌고 무엇보다 표지까지 맘에 드는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자신의 '규칙'을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