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로마인이야기2>와 김영하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같이 읽게 되었다.
시칠리아가 두 책에 모두 나와있어-과거와 현재의 모습으로- 신기한 기분이다.
마치 고고학자가 된 듯이 이미 누가(시오노 나나미가) 잘 정리해놓은 것을 나만이 발견한 역사적 사실인양 밑줄그어 가며 신나게 읽고 있다.
김영하는 시칠리아를 2007년에 방문했다.
2007년 겨울, 나는 시라쿠사와 타오르미나에서 한동안 기시감에 가로잡혀 먹먹해지는 마음을 다잡느라 애를 먹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 그리스식 극장 때문이었다. 20년 전의 그 노천극장이 거기, 시칠리아에 있었던 것이다. p.87
시칠리아의 어떤 거리가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에서 묘사한 오랑의 거리처럼 보였을까..
이십대의 나는, 자연이 만든 것보다 인간이 만든 것에 더 끌린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고 다녔다. 나는 미술관들을 돌아다녔고 인간이 그린 그림과 인간이 지은 책과 음악, 건축물에 매료되곤 했다. 자연?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요.
p. 109
아마 나도 그랬지 싶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자연풍경보다는 그림감상이 더 좋고 사람들이 만든 예쁜 물건 구경이나 거리 구경이 좋다. 공원도 좋아하는데, 공원같은 것은 자연일까 인공물일까. 자연이 만든 것에 언젠가는 마음이 더 기울겠지. 아직 젊나보다.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힘겨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시칠리아를 식민지로 삼았다. 제 1차 포에니 전쟁의 결과였다. p.172
지금은 제 2차 포에니 전쟁, 즉 한니발 전쟁을 읽고 있다. 무지 재밌다. 다음 여행지는 스페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스페인어 책도 샀다. 공부하려고...) 이탈리아 특히 시칠리아를 가보고 싶다.
에리체를 거쳐간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오디세우스가 있다. 알다시피 율리시즈는 오디세우스의 라틴식 이름이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율리시즈는 이 트라파니 앞바다를 지나다 유명한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와 마주쳤다. 키클롭스족은 큰 몸집을 가진 거인으로서 키클롭스라는 말은 '둥근 눈'이라는 의미인데, 이 거인들은 이마의 중앙에 눈을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p.184
돌아보면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여행하기에 가장 안전한 시대였다. 민간 항공기가 출현했고 해적이나 산적, 마적은 거의 사라졌다. 나라와 나라 간의 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단했다. 기축 통화인 달러의 가치가 안정돼 있어 달러만 가지면 어느 나라에서든 밥을 사 먹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이제 서서히 저물고 있다. 위험 지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우티스들도 부유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을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다. p.192
아.. 내가 여행할 수 있었던 20세기는 매우 안전한 시절이었구나 21세기인 지금 해외여행이 안전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된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종 바이러스들이 출몰해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거나 우티스(이름없는 자, 아무도 아닌 자)들이 잘못된 신념으로 불특정 다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저 운이 좋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심지어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사는 것이 안전하다고 우스개로 말하지 않던가. 나는 좋은 일이나 안 좋은 일이 여행 도중 일어나는 것은 운명이라고 말하며 아마도 가볍게 여행을 떠날테지만, 이제 여행이 한가득 설렘으로만 가득차기에는 2%정도의 걱정은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식도락이야말로 순간의 즐거움이다. 그것은 사진으로 찍어 남길 수도 없고 잘 보존하여 간직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어느 한 순간 최고의 행복감을 주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천천히 사그라진다. 몇 줄의 문장으로 겨우 남을 뿐이다. p.239
물론 요즘 사람들은 식도락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정말 젊은 사람들은 젊은이의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라 젊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젊게 생각한다는 것은 늙은이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로든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 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p.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