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조경란의 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표지의 저 슬픈듯한 요리사의 표정에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선 읽었다. 이 소설은 연애의 종말인 헤어짐의 가슴아픈 과정을 요리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요리사인 주인공이 다른 여자와 떠나가버리는 남자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다소, 우울하고 비온 뒤 진흙탕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랄까. 장마철에 어울릴 법한 분위기가 곳곳에 나온다. 사랑의 아픔을 겪은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_- 감정몰입은 잘 안됐지만, 다른 여자와 떠나버린 남자를 원망하는 분노라는 감정과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심리를 잘 다룬 것 같다. 그외에도 알콜중독자인 삼촌과 자신을 키워줬던 할머니, 그리고 폭식증이었던 친구 문주의 이야기를 하면서 시종일관 '요리'로서 그들을 치유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잠자고 있는 우리의 미각을 건드리게 된다.  

1월부터 7월인가로 구성되어있고 각장의 첫단락 정도는 다른 책에서 나오는 요리에 대한 지식, 인용, 사유등으로 시작된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의 줄거리보다는 요리에 대한 사유가 주를 이루는 에세이같은 느낌이 더 나는 것 같다. 이 점때문에 나는 이 책을 꽤 좋은 느낌으로 읽었다. 남녀관계때문에 얻은 아픔때문이 아니라, 살다가 어떤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그때 내가 음식을 대했던 행동들이 주인공의 행동과 어딘지 모르게 너무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경란이라는 작가를 검색하다가 그녀가 데뷔후 12년 동안 집필활동을 했던 옥탑방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작은 옥탑방을 보고 나니 어쩐지 이 작가에서 더 신뢰가 생겼고, 한문장 한문장도 건성으로 읽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다른 작품들도 천천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품절


내 혀의 돌기들, 수천 개의 미각유두들이 하나둘씩 깨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미각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들 중에서 가장 많은 쾌락을 주는 감각이다. 먹는 즐거움은 시각이나 후각같은 다른 감각들, 쾌락들과 뒤섞일 수 있으며 다른 쾌락들의 부재를 달래줄 수도 있다. 오직 먹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먹는 것만으로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시간들. 스콜이 시작되려는지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테이블 위로 떨어진다.-145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파피필름 2008-01-0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직 먹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순간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마음이 아팠던 사람이라면 그 이유가 떠나간 사랑때문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을꺼라 생각한다.
 
<영원히 사라지다> 서평단 알림
영원히 사라지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나는 추리소설을 별로 읽은 것이 없다. 그나마도 작년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처음이었다. 영화도 좀 추리를 해야하는 것을 볼때면 이해력도 부족하고  수많은 복선도 놓치기 일쑤이고 급기야는 같이 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네이버에서 찾아본다. 한마디로 머리가 나쁜가보다 -_-; 이 책을 어제 서평단 도서로 받고 오늘 하루종일 방바닥을 누비며 다 읽었다. 거의 오백페이지가 되는데 궁금해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곳곳에 숨어있는 반전들이 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든것 같다. 우리의 평범한 주인공이 감당하기에는 슬픈 일들이 연이어 읽어난다. 형이 사라지고, 사랑했던 애인이 살해된다. 그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면서 마지막에 사건의 실마리가 술술 풀린다. 여러개의 장면장면이 마치 영화를 보듯 교차되어 서술되어 매우 속도감있게 느껴지며 추리소설의 특성이 그래서 인지 서사위주의 군더더기 없는 묘사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이 소설의 큰 반전이라면 죽은 실러가 윌이 사랑했던 그 실러가 아니라는 것과 마지막에 형이 수많은 사람을 죽인 범인임이 밝혀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넋놓고 읽다가 한마디로 오랜시간을 독서를 하면 오는 증상, 정신은 멍해지면서 눈이 글씨를 그냥 쫓고 있는 상황에서 실러의 장례식 부분을 지나치고 계속 읽고 있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 열페이지를 뒤로 넘겨 다시 읽고 나서야 첫번째 반전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는 자책을 스스로했었다. -_-; 이 쯤되면 증세가 심각하다 할 수 있겠다. 마지막에 케이티가 진실을 폭로하는 장면에서는 좀 어거지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게 할런 코벤의 특징이라고 하니 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의 배신, 거짓말 처럼 아픈게 또 있을까. 유년기의 아버지의 원시적인 사랑때문에 비뚫어지게된 형의 인생과 그 형을 단지 형이라는 이유로 미워할 수 없는 윌의 고통이 전해져왔다. 사랑하는 여인 실러의 죽음뒤에 그녀의 과거를 알아가면서 느꼈던 갈등을 통해 '배신'이라는 큰 화두도 독자들에게 생각해보도록 한 것 같다. 물론 배신이라고 생각했으나 뒤에 그 실러가 다른 인물임이 밝혀졌긴 하지만..

진실이 진실이 아닐수도 있음을 이제는 잘 알겠는데 그러다보니 늘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제 누구도 잘 믿지 못하겠는 어른이 된 것인지..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초반의 많은 증거들도 늘 의심을 해야하는게 맞는데 현실세계의 의심은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지, 이 쯤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신문기사에서의 범인이 형인거지 라고 물어보면 돌 날라올까? 그래서 형이 영원히 사라진건가? 아.. -_- 이 표정이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조일성(好鳥一聲)

                                                    신석정 




갓핀
청매
성근가지
일렁이는
향기에도
자칫
혈압이
오른다.

어디서
찾아든
볼이 하이얀
멧새
그 목청
진정
서럽도록
고아라.

봄 오자
산자락
흔들리는
아지랑이,
아지랑이 속에
청매에
멧새 오가듯
살고 싶어라.

 

----------------------

정민 선생님의 스승의 옥편을 읽다가 본 시다. 청매의 향기에 혈압이 오른다. 아, 표현 참..

아직 한겨울 이지만 이 겨울도 길지 않을 것임을, 곧 2월이 오고 3월이 올 것임을. 안다.

올 해는 좀 덜 읽고 좀 덜 생각하고 대신 몸이 많이 바빠지는 한해가 되도록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생각은 진짜일세." 그가 말했다.

"말도 진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진짜일세.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설령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알게 되지.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전부일지도 몰라, 시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말일세."

간혹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상상하다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때는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어 내가 혹시 남들은 가지지 않은 예지력을 가진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던 기억도 있다. 이런 소재를 다룬 소설이,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폴오스터가 썼다니 새해 초부터 책선정감이 좋다.

이 소설에는 여러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연히 사게된 파란공책에 닉 보언의 이야기를 적어가는 것이 하나이고, 그 이야기를 적는 주인공과 아내 그레이스, 그리고 그녀의 대부인 존 트로즈와 그의 아들 제이콥의 이야기, 그 외에도 미발표된 원고들이나 책들의 이야기들이 아무 관련없이 등장없는 것 같지만 모두 연관성을 가지고 전개된다. 나는 닉 보언의 이야기가 매우 재밌었는데 아쉽게도 보언이 방사선 낙진 대피소로 만든 지하방에 갇히게 된 이후에 우리의 주인공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막히게 되어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바람에 아쉬움이 너무 컸다.

폴 오스터가 거의 모든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삶의 우연성'이 이 책에서도 등장한다. 이 작가만큼이나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뚜렷한 작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운명앞에 무기력한 작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존재. 그 인간이 삶을 살아나가는데 유일한 의지가 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닐까 한다. 아무 관련성 없어보이는 잡념이라든가 공상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것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운명의 밑바닥에 어떤 보이지 않은 흐름이 되어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문득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는 걸까.

옮긴이의 말에서 황보석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적어본다.

"폴 오스터는 우리가 현재에 살고 있지만 미래는 우리의 내면에 있으며 그 미래는 바뀔 수 있는 것인 동시에 불변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내면에 있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두고 올한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