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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생각은 진짜일세." 그가 말했다.
"말도 진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진짜일세.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설령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알게 되지.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전부일지도 몰라, 시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말일세."
간혹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상상하다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때는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어 내가 혹시 남들은 가지지 않은 예지력을 가진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던 기억도 있다. 이런 소재를 다룬 소설이,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폴오스터가 썼다니 새해 초부터 책선정감이 좋다.
이 소설에는 여러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연히 사게된 파란공책에 닉 보언의 이야기를 적어가는 것이 하나이고, 그 이야기를 적는 주인공과 아내 그레이스, 그리고 그녀의 대부인 존 트로즈와 그의 아들 제이콥의 이야기, 그 외에도 미발표된 원고들이나 책들의 이야기들이 아무 관련없이 등장없는 것 같지만 모두 연관성을 가지고 전개된다. 나는 닉 보언의 이야기가 매우 재밌었는데 아쉽게도 보언이 방사선 낙진 대피소로 만든 지하방에 갇히게 된 이후에 우리의 주인공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막히게 되어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바람에 아쉬움이 너무 컸다.
폴 오스터가 거의 모든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삶의 우연성'이 이 책에서도 등장한다. 이 작가만큼이나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뚜렷한 작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운명앞에 무기력한 작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존재. 그 인간이 삶을 살아나가는데 유일한 의지가 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닐까 한다. 아무 관련성 없어보이는 잡념이라든가 공상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것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운명의 밑바닥에 어떤 보이지 않은 흐름이 되어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문득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는 걸까.
옮긴이의 말에서 황보석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적어본다.
"폴 오스터는 우리가 현재에 살고 있지만 미래는 우리의 내면에 있으며 그 미래는 바뀔 수 있는 것인 동시에 불변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내면에 있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두고 올한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