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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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의 서평은 스포일러가 되기 싶다. 문학성보다 흥미위주의 소설이라면 줄거리를 적거나 영화와 같은 어떤 반전이라도 숨어있는 소설이라면 더욱 그러한데, 그래서 서평을 첫부분만 읽다가 뒷부분은 일부러 읽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뒷부분에 전혀 얘기치 못한 반전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처음부터 뭔가를 기대하면서 줄거리가 어떤 방향으로 몰아갈지를 상상했다. 마지막엔 정말 사람들의 말처럼 얘기치 않은 결말이었는데, 약간 오바해서 한 페이지 한페이지를 읽는데 숨이 막힐 뻔했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영화를 볼때와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혹여나 요즘 사는게 지루하거나 뭔가 재미난게 없나 하는 것을 찾으시는 분들은 이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이야기는 대략 다섯명의 젊은 남녀들이 한집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일상사이다. 일본의 젊은 작가들의 냄새가 나는듯 가벼운 필치 감각적인 문장으로 비교적 술술 잘 읽혀진다. 구성은 좀 특이한데 다섯 명의 이름이 각각의 차례가 된다. 다섯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관점에서 서술해나가는 것이다. 즉, 화자인 나는 모두 다섯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읽어나갈수록 어떤 하루의 어떤 사건이 이 사람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서술되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또 다르게 서술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뒤의 반전에만 너무 집중해서 이렇게 읽는 맛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런 차이점들을 유의깊게 본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과연 저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인가. 또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인간은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세계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바로 이곳, 우리들의 주변이다. 이 소설은 그런 사람들의 개개인의 세계들에 관한 소설이다.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나의 자아, 그리고 그 자아의 어떤 일부를 타인에게 공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세계와 세계들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요시다 슈이치는 정말 주목할만한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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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자 캉디드
볼테르 지음, 최복현 옮김 / 아테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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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낙천주의자, 캉디드라는 제목만 봤을 때는 낙천주의자에 대한, 그래서 결론은 낙천주의자로 사는 것이 바르다는 내용의 책인줄 알았다. 소설의 끝이 잠정적으로 낙천주의를 옹호하는 듯 결론을 맺긴 했으나 이 책은 단순히 낙천주의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내용의 소설은 아니다. 소설속에는 각각 자신의 이론, 주관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세상은 선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믿는 팡글로스, 그런 스승 밑에서 세상이 과연 선으로만 이루어져있을까를 고민하는 낙천주의자 캉디드, 비관주의를 철학으로 삼고 있는 마르탱등이 그렇다. 소설의 구조는 캉디드가 여러 사람들과 갖은 고난을 겪으며 여행하는 과정속에서 볼테르 자신의 사상들을 사건이나 인물에 녹여놓았다.

세상은 팡글로스의 말처럼 선으로만 이루어져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끊임없는 고난들이 닥쳐오고 인간은 이것들을 극복하기위해 용기를 내야하며 시련을 견뎌내고 '희망'이나마 꿈꾸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의 낙천주의자가 되든지 비관주의자가 되는 것은 개개인의 주관일 것이다. 볼테르는 한 인간에게 계속되는 고난만을 주지도 않았고, 계속되는 행운만을 주지도 않았다. 캉디드는 그의 인생의 목표이기도 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퀴네콩드를 찾는 과정 속에서 낙천과 비관의 연장선상에서 헤매이며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결론은 퀴네콩드를 만나게 되고 그리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해피앤딩이 아니라 이미 추하게 늙고 못생긴 그녀를 만나게 되고, 등장인물들이 함께 모여 밭을 경작하자는 내용으로 끝나고 있다. 인생의 방향과 살아가는 자세를 선택하는 것은 개개인 각자의 몫이다. 이 한권의 철학소설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가,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할것과 포기할 것들, 그럼에도 꿈꿀수 밖에 없는 인생의 달고 씀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해볼 수 있었다. 

볼테르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팡글로스가 마지막 부분에서 캉디드에게 말하고 있는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모든 일들은 있을 수 있는 세계 중 최선의 세계에서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일세. 자네가 퀴네콩드와의 사랑으로 인해 그 아름다운 성에서 발로 엉덩이를 차여 내쫓기지 않았더라면, 종교재판에 처해지지 않았더라면,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남작을 칼로 찌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엘도라도 에서 가져온 양들을 모두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자네는 이곳에서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지 못했을 테니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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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25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계속 망설이고 있었어요.(벌써 2년이 넘은 듯..휴..)

스파피필름 2005-03-25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분량도 적고 읽을 만 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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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참 느낌표라는 TV프로그램에서 책들을 선정해서 독서 캠페인을 벌였던 때가 있었다. 이 책도 그때 선정된 책들중 하나였는데 그때는 왠지 그렇게 정해주고 읽으라는 일명 추천도서라는 게 싫어서 눈길을 주지 않았던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읽었는데 왠걸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일상속의 사건들을 물리적인 현상으로 그것도 아주 쉽게 설명해주는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과학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학문을 느끼게 해준다. 여섯명만 거치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는 얘기, 잭슨 플록과 프랙탈 이론, 머피의 법칙, 계산대의 줄이 왜 내것만 가장 느리게 가는지, 왜 내 차선만 막히는지 등 생활속의 궁금증들이 명쾌하게 밝혀지는 순간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저자의 자신에 학문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느껴지기도 한다. 대학에서 물리를 전공하고 될수 있는 길이 연구원이나 교수와 같은 제한된 분야라는 그의 걱정에 사뭇 동감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일반인들은 과학, 쉬운 것이로군이라고 느꼈을 테고 , 아직 자신의 꿈을 정하지 못한 어린 학생들은 대학에서 물리를 전공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보이지 않는 진리들이 과학콘서트 처럼 서로 조화되어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그 진리들의 아주 일부만을 알고 있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어떤 현상을 보고, 그 원인을 궁금해하고 탐구하는 정신에서 그런 보이지 않았던 진리들이 밝혀지는 것 같다. 어쨌건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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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갑산(X)-> 삼수갑산(O)
 
강병철 SK 감독은 “내일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어도 오늘은 일단 피하고 싶은 게 감독의 다 같은 마음”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스포츠투데이 02.08.19]

일단 저지르고 보자 앞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와 "삼수갑산 가더라도" 의 수식어가 치명적으로 붙는다. [중앙일보 00.11.06]
 
 
잘해야 산수갑산(->삼수갑산) 어느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었으리란 얘기였고….
 
 
"흔히'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을 꼭 해야겠다'고 할 때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꼭 해야겠다'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삼수갑산(三水甲山)'을'산수갑산(山水甲山)'으로 잘못 알고 쓰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아마도'삼수갑산'을 경치가 좋은 곳으로 잘못 알아 듣고 '산수갑산'일 거라고 생각하고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삼수갑산'의'삼수'는 한자의 '석 삼(三)'자와 '물 수(水)'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원래 '삼수갑산'이라는 말은 '삼수'와 '갑산'이라는 고장의 이름에서 온 것입니다.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은 모두 함경남도에 있는 오지로 매우 춥고 또 교통도
불편한 지역이었습니다.

옛날부터 중죄인들을 이곳으로 귀양 보냈기 때문에, 이곳은 한 번 가면 살아
돌아오기가 힘든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일신상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어떤 일에 임하려고 할 때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힘든 일을 각오하는 마당에 경치가 좋은 산수갑산에 간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삼수갑산'의 '삼'은 '뫼 산(山)'자가 아닌 '석 삼(三)'자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산수갑산'이라는 잘못된 표현은 쓰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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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25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갑니다. 몰랐어요. 삼수갑산..
 
뇌를 단련하다 - 인간의 현재 도쿄대 강의 1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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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다식에 유명한 다독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 강의 (인간의 현재)를 책으로 만든 뇌를 단련하다를 읽었다.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일단,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는 것과 이런 책을 대학생이 막 된 1학년쯤에 읽었다면 나의 지적세계의 확장이 좀더 넓고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보통 이과 학문을 하는 사람이든, 문과 학문을 하는 사람이든 자신의 학문 영역에만 관심을 보이는데 그것은 편협한 공부이고 보통 교양이나 일반적인 지식정도는 공부를 해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도에서 세익스피어의 4대 희곡을 읽어보았느냐 라는 질문과 인문학도에게 열역학 제 2법칙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을때 안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이야기다.
일반 교양을 가르쳐야 하는 대학이라는 공간은 자신의 전공에만 편협하게 공부하고 사고하도록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기 때문에 특출한 도쿄대생이라도 기본 교양 조차도 모른채 사회로 나가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물론 교양 이란 것의 정의와 과연 그런 일반적인 지식들을 모두 알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
공학을 하는 사람이면 아니 내가 공학을 공부하는데 이 정도의 과학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당혹스러움을 갖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호기심을 가지고서 지식을 탐구하는 종은 인간 뿐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이책이 주는 효용은 넓고 넓은, 그러나 은밀하고 신비스럽기도한 지식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다.
교육제도를 걱정하고 어떻게 공부하는가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러한 거물이 있는 일본이 부러지기도 한다.

본문중에 고전물리 이후 상대성 이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에 관한 책들을 좀더 찾아보아야겠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다룬 논문이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니 찾아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새롭게 알게된 놀라운 사실이다.


흔히 사람은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은 스무 살이 지나면 자기 뇌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심히 동감하는 바이다.

발레리는 정확성이라는 열병을 앓은 결과 문학도 철학도 다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확성 이라는 급성병'에 걸린 사람이라면 여러분 중에도 많을 겁니다. 머리깨나 좋다는 젊은이는 정확성이라는 급성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지요. 이 병에 걸리면 정확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사람을 모두 바보로 봅니다. 자신이 뭔가를 말해야 할 때는 철저히 정확한 것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말도 못하게 됩니다. 글을 쓸 때도 뭐든 정확하게 말하려고 하는 나머지 유보저건이 지나치게 많은 글을 써서 다른 사람은 통 알아먹지 못하는 글밖에 쓰지 못하게 됩니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꽤나 뜨끔했다.


내 경우는 그래도 내 자의로 그만둔 거니까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나 구시대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남자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나 할까, 짤릴 각오로 세게 나가고 싶을 때랄까, 그렇게 자존심을 세워보고 싶을 때가 인생에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누구나 연봉 정도의 저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도쿄대 철학과로 재입학할 것을 결심한 부분에 관한 글이다. 그렇게 어쩌면 무모한것 같은 자존심을 세워보고 싶을 때가 정말 오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행동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인생에 있어서 어떤 섬광같은 기회가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때가 나에게도 올것이다.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자신을 던져볼 수 있는 어떤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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