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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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캐롤의 이상한 나라에 다녀왔다.

분명 아주 평범한 이야기로 시작했을 뿐인데 술술 넘어가는 책장에 다다른 결론은 내가 웃음의 나라에 다녀왔다는 다소 판타지스러운 느낌의 섬?함이다. 이런 내용의 영화를 본것 같기도 하고, 아니지 가만.. 이런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읽었던 것일까. 동화적인 느낌이었는데 마지막에 다르면 앞의 내용들이 섬?함으로 바뀐다. 무섭다 무서워. 호옥시 마지막에 번역자의 감상을 읽어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책의 마지막장에는 이 책을 네명 이상에게 권하지 말라고 되어있는데 네명이상에게 권해도 좋을 만큼 재밌었다. 주인공 애비는 영어교사로 마셜 프랜스라는 작가의 광팬이다.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색스니 라는 여자와 마셜 프랜스의 전기를 쓰려고 게일런 이라는 마을에 도착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사실은 그 일들이 마셜 프랜스가 써놓은 대로 일어난다는 것! 그러나, 여기까지는 별로 놀랍지 않은 내용이다. 마지막 10장 정도에 이 소설의 엽기적인(?) 반전이 숨어있다. 그것이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직접 보시길..

독특한 소재외에 내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게일런의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아온 동안 했던 일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그야말로 단순히 사라질 뿐 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의 행복 자체에 더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다 알고 있다. 이 두가지를 나도 알고 있다면 쓸데없는 걱정들의 상당수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게일런이 웃음의 나라일수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끝까지 다 읽어보면 그 웃음의 나라도 진정한 행복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세계를 창조한 마셜 프랜스를 다시 살려내려는 사람들의 이기심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의 행복이란 웃음의 나라가 아닌 내 자신의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일까. 토마스 애비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와 안도하게 된 것 처럼 말이다.

판타지 느낌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마지막까지 이 소설이 그런 느낌이라는 것을 거의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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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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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루키를 굉장히 좋아하는 독자가 그 작가의 행적을 마치 곁에서 이야기 해주는 것 같이 씌여진 글이다. 전기의 형태는 아니지만 하루키가 등단해서 지금까지의 작품들도 조금씩 소개해주고 있고, 가벼운 일상이나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 어떤 한 작가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런 책을 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마지막에 그녀에게 하루키는 북극성같은 작가라는 말이 나온다. 오, 멋진 표현..이다. 나에게 북극성같은 작가는 누굴까. 내가 길을 잃고 헤매일때 넌지시 길을 알려줄 것만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의 글...  그런 작가를 떠올리려는데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걸 보아 아직 그런 사람을 못 찾은 듯 싶다.

이 책을 읽은 후 하루키에 대한 느낌은 의외로 그의 글들과는 달리 범생이 이미지이다. 그가 달리기를 매우 규칙적으로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일종의 '형식'이란 것을 만들어 놓고 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보통은 4시에 일어나 오전에 글을 쓴다고 한다. 글을 5시간 정도 쓰고 달리기를 하거나 중고음반가게를 둘러보고 해가 지면 일을 하지 않는 다고 하니 퍽이니 범생이 스러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것이겠지. 그런 정성들이 그의 작품들에 숨어있었구나 하는 조금의 감동까지 몰려왔다. 지금이야 일본작가의 작품들이 거의 홍수처럼 밀려들어와있지만 한참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 유행일때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세월이 참 많이 흐른 것 같다. -_-

책장에 꽂혀 있는 <해변의 카프카>를 다시 정독해볼까. 그의 담백한 문체를 오랫만에 다시 곱씹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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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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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못하는 건 우매한 일반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씀.. 모르니까 챙피하고  행여나 내가 모른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눈치챌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그만 위안이 될까.

한때 일반인들을 위한 미술관련 교양서들을 탐독했던 때가 있었다. 수십권을 읽었더니 다 그게 그 내용같았다. 현대미술은 아무리 봐도 화가의 의도를 모르겠고, 그렇다고 더 전문적인 미술서적을 읽는 것은 엄두를 못내겠고 그 이후로 미술관련책들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은 난해한 현대미술은 일반인을 우롱하는 것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대미술은 차치하고 라도 고전미술(?)만 잘 알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잘 알아서 무엇하게? 혹시 이건 늘 마음의 저편에 자리잡고 있는 지식에 대한 갈구 (강박관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지식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은 지금은 그저 내가 이런 교양서들로부터 고흐의 그림들을 보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며 즐거우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평론가들의 해석이야 그저 그들의 해석일뿐 내 느낌은 아니지 않겠는가. 사실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것은 뻔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몰라도 된다 그렇게 이해하지도 못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문제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왜 그렇느냐는 논리적인 설명이 없다는 거다.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말라는 건데 나는 그래도 이해하고 싶어 조금은 안달이 나는 사람이라는 거지. 나만 이해못하고 있으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나는 현대미술의 언저리에서 그것이 의미하는게 무엇인지 알고싶어 아직도 미련을 못버린 사람인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잇점은 그 난해한 현대미술의 수많은 작품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현대미술의 알쏭달쏭한 그림들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책의 뒷부분에 정사각형을 이용해 그린 그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순간 웃음이 났었다. 다 비슷비슷한데다가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는 네모난 그림들이 이 시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것이라는데 웃음이 났던 거다. 사실, 이 책의 지은이가 의도하는 바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재밌고, 현대미술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 시원한 기분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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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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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먹었던 과자중에 동물원이라는 과자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과자는 동물모양이었다. 코끼리도 있고 토끼도 있고 곰도 있고 앙증맞고 귀여운 동물의 세계는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그런 과자를 먹고 자란 아이는 그런 포근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동물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란 나는 키우던 개와 고양이를 너무나 좋아했고 지금도 동물원 같은 공원느낌의 장소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더 이상 그런 느낌의 존재들이 아니다.  어딘지 낯설고 수상하다 못해 비정상적이라 여겨지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동물들은 학대당하고 상처입고 괴롭힘 받다가 죽어간다. 토끼를 산채로 해부하는 어린 소년과 부러진 다리를 헝겊조각 꿰매듯 치료하는 엄마, 키우던 뱀을 죽이고 애인에게 그 뱀을 튀겨서 요리해주는 여자와 같이 폭력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에 동물들이 등장한다. 동물원의 기린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가 하면, 아내가 자신보다 수탉을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수탉을 죽이는 남편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동물 학대에 관한 책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단지, 그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표현하는데 동원된 수단일 뿐이다. 극단적으로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누구나의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이면에는 이런 폭력성이나 어두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자극에 의해 누구는 그런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치 정상적이어서 그런 폭력이라고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갈 뿐이다. 그런 폭력성을 전면에 드러내놓은 이런 소설을 읽을때면 어딘가가 불편하다. 이 책은 미스터리 추리물은 당연히 아니지만 내가 그런 책을 여태 잘 읽지 않은 이유와도 비슷한것 같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면이 존재하고 그런 것들도 모두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믿고 싶어하는 것들은 밝고 따뜻한 포근한 것이라서 일까.

맛있고 귀엽게 생긴 앙증맞은 동물모양의 과자봉지를 열었는데 기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처음의 그 과자봉지가 겉으로 보기에 그냥 단지 먹고 싶은 과자봉지였었던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작가는 그런 인간의 폭력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과자봉지를 열어서 그 안에는 일부러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에야  그걸 아예 몰랐던 시절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그 이후에 우리들의 행동이 어찌해야할지를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몫일 꺼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특이한 소재의 단편을 읽게 되어 좋았고,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내놓을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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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숨에 읽었다. 수많은 소설의 인용이 나온다. 작가가 다 읽은 책이겠거니 하며 시샘을 한다. 오호라 근데 책의 작가의 말에는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른  책을 쓰는 재미를 맛보았다 하니 더 큰 시샘을 불러 일으킨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 읽는 양도 어마어마 하다. 하루에 한두권씩 말이다. 그러면 일년에 못읽어도 500권쯤 된다는 이야기...  내가 정녕 원하던 삶이 아니던가.

모든 상황에서는 그에 적당한 소설의 인용들이 나온다. 그런 방식으로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신인작가여서 인지 구성은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지만 수많은 소설들의 인용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만족스런 소설이었다. 그런데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다. 제목으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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