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은 라파엘전파부터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을 아우른다. 시대적으로는 19세기 중엽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소위 근대(modern)의 형성기를 살았던 작가들의 작품이다. 근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인간은 신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개인이 되었다. 자유롭지만 고독한 존재... 하지만 그 고독이 주는 무게를 깊게 느끼지 않으면 그저 부영하는 무리속 일원으로 표류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을 잘 견딘자들의 작품을 방안에서 책으로 감상하며 이것도 호강이구나 생각한다. 

흰바탕에 79.5cm의 검은 정사각형을 그린 말레비치의 그림의 가치가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대략 2만원 정도면 미술관의 전시를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행복한 시간 보내기도 없을 것이다. 조만간 세계가 정상화되면 이런 전시보기도 가능해겠지라는 꿈을 꿔본다.





중반이후 발베크 해변의 소녀들이 단체로 나오면서 재밌어졌다. ㅋㅋ 마르셀은 두 예술가 베르고트와 엘스티르를 만나면서 작가의 꿈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질베르트와의 사랑은 언제 잊고 봉탕부인 밑에서 고아로 자라는 알베르틴을 사랑하기에 이른다. 
4권은 인간의 젊은 시절이라는 아름다움을 마치 눈에 만져질 듯 묘사한다. 지금은 활짝 핀 소녀들이지만 언젠가는 늙어갈 소녀들의 아름다운 한 시절이 프루스트의 소설에서는 정지되어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생존경쟁으로 투사가 되어가는 얼굴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부인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우리들의 인생이 이런 것인가, 과연 이 책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녹아있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보부아르는 한없이 다시 읽고 또 읽고 싶은 작품이라고 말했다는데 나역시 시간이 된다면 무한반복으로 다시 1권으로 돌아가 읽고 싶은 기분이 든다.(벌써 이런 말을 하기에는.. 아직 5권을 읽고 있지만....)



식물을 그리는 일이라고 하면 그저 책상 앞에 앉아 말없이 조용한 식물표본을 놓고 느긋하게 하는 일이라고 상상하기 쉽다. 사람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좋을 일인가.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식물을 채집하기 위해 또는 관찰하기 위해 전국의 산을 타야하는 일부터 이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업적인 면모를 잘 알려주고 더불어 식물을 바라보는 태도, 식물에 대한 지식까지 적당하게 버무려진 책이다. 무엇보다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의 성실함이 느껴져 경건해지기까지.
나는 이소영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는데 철마다 사진과 함께 식물의 이름을 알려주어 유용하게 잘 보고 있다. 이런 성실한 책! 참 좋다.




뇌에서 친화력을 좌우하는 부위가 곧 타인에게 공격성을 일으키는 부위이기도 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무리짓는 일, 즉 다른 그룹을 배척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좀더 훌륭한 적자로서 업그레이드되면서 진화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것처럼 그 출발은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가 무엇보다 자연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기준들.... 라방에서 김영하작가가 언급했던 것 중에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다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확장시킬 것이라는 점만은 명백할 것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시 쓰기 에세이인 박연준의 <쓰는 기분>을 읽으며 글을 쓰는 것 또한 몸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일지라도, 능동적으로 몰두하는 창작 행위에는 인생을 손으로 쥐고 가는 자의 기쁨이 밴다. p.142
책에서는 인생을 을이 아닌 갑으로 사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창작을 한다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내 맘대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아무튼, 뜨개>를 읽다가 매우 공감했던 부분..
무언가를 배울 때 마음에 드는 강사, 선생님을 만나기가 참 힘들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강사를 비방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 같이 배우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이상야릇?해서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여러번이었다. 문화센터에서 처음 홈패션을 배우다가 양재로 넘어갈 때였다. 홈패션 선생님이 같이 근무하는 양재선생님을 얼마나 욕하던지 ㅠㅠ 그런데 나는 그 선생님에게 양재를 배웠는데 전혀 욕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무슨 일 ㅋㅋ
자수를 배울 때는 권위의식이 엄청한 강사에게 배웠는데 학생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수실을 들고 가면 이건 싸구려라는 둥 마음 상하는 말을 엄청 해서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캘리그라피를 배울 때는 수업 분위기가 참 차분했는데 자수를 하면서는 수다를 떨 수 있지만 글씨를 쓰면서는 집중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여든 넘으신 할머니 수강생이 참 인상적이었다. 선생님도 본인의 글씨처럼 예쁘고 단정한 사람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엇.. 글이 길어졌는데...
코로나로 인해 나의 취미사랑도 일시 중지되었다는게 많이 아쉽다. 



그렇게 험난한 일을 겪고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냐고 묻는 지연의 질문에 할머니는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나와의 접점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위로와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덮어두지 않고 들추어내 들여다보고 해결하려는 주인공들의 마음씀이 아프면서도 따뜻하게 읽혀졌다.

출간소식이 들렸을 때 바로 주문하는 작가 리스트에 최은영작가도 들어갈 것 같다.







<체스이야기>에서 호텔 감방에서 당한 고문으로 '절대고립'의 상태에 놓이는 B박사와 <낯선 여인의 편지>에서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해 온 여인 모두 편집광적으로 단 한 가지 생각에 갇힌 인간들이다. B박사는 체스교본에서 배운 기술을 자신의 상상 속에서 펼쳐보고 반복되는 과정에서 결국 체스 중독에 이른다. 궁지에 몰린 인간의 탁월한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독특한 인물 묘사 중심의 단편 둘을 읽고나니 츠바이크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전을 많이 썼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이르게 된다.







한 3일 동안 엄청나게 열심히 읽었다. 세상은 부조리하지만 그 부조리함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카뮈의 말이 가장 와 닿았다. 죽음을 긍정하고(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삶의 부조리와 대면할때마다 최선을 다해 저항하며 살았던 그의 삶에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작가수첩의 내용이 많이 인용되어 찾아 읽어봐야겠다. 마지막 미완성작인 <최초의 인간>도 궁금하다.


이 세계의 비참과 위대함: 세계는 진실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사랑을 준다. 부조리가 지배하고 사랑이 부조리에서 구원해준다. (작가수첩)


p.248 (인용된 것을 재인용)





책의 제목대로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을 두서없이 적어놓은 에세이집이다. 

<영화와 시>에서처럼 유머가 빵 터지는 지점이 몇 군데 있는데 그게 나와 코드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 금정연, 이상우, 오한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어쩌면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겠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도시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것들이 있다.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실제로 보았을 때 대게는 실망이기 쉽다. 그런데 이런 전형적인 것들을 보고 파리에서 스탕달 신드롬이 왔다는 부분에서 어, 이 작가는 내 스타일이로군, 이라며 반갑고 기쁘고 재밌는 마음... ㅋㅋㅋ 


이 책을 통해 궁금해진 인물 두 사람, 로베르트 발저, 에라스무스 




올해도 어김없이 나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오무라이스 잼잼.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책 내주세요:)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유미주의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읽은 오스카 와일드 단편들. 뒷통수를 치는 반짝하는 무언가가 소설 읽는 재미를 준다.













11월이다. 요즘 괜히 마음이 가라앉아있다. 카뮈의 책들을 검색해보다가 어떤 알라디너 분이 십년쯤 전에 쓴 페이퍼에 삶이 힘들때마다 카뮈의 책에서 희망을 본다고 써 놓은 글을 보고 마음이 애잔해져서 조용히 새벽에 공감 버튼을 눌렀다. 놀랍게도 어제 그 글을 보았는데 11월 7일이 카뮈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이 놀라운 우연... 

작은 우연이 자아내는 감탄의 순간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12월까지 열심히 읽어서 올해는 100권(알라딘 회원으로서는 소박한 목표량 ^^;;;) 독서를 채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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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08 06: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파피필름 님 오랜만에 페이퍼 보게 되었네요. 이 시간에 보게 된 기쁜 우연. 조근조근 들려주신 책 이야기 재미나게 읽었어요. 사람 사는 동네 어디든 무리를 만드는 사람 있지요. 다정함을 가장한 배척도 은연중에 나오게 되고 희생자는 생기게 마련이구요. 타인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게 그래도 좋다고 생각되어요. 이게 근데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기도 하고 계기가 필요한 것도 같더라구요. 좋은 책 소개 반가웠어요 ~^^

스파피필름 2021-11-08 07:17   좋아요 3 | URL
프레이야님 잘 지내셨죠? ㅠㅠ 얼마전 오랜만에 프레이야님 글 올라왔을 때 댓글 달아야겠다 생각하고 못 달았는데.. 그것도 벌써 여름쯤인거 같아요. 언제 어디에 계시든 건강챙기시며 잘 지내실꺼라 혼자 생각했었네요. 날씨 때문인지 조금 우울하곤 했는데 알라딘에 오면 언제나 한결같이 열심히 책 읽으며 사시는 알라디너들의 글들을 보며 마음을 잡아봅니다.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1-11-08 08: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중에 다섯권이나 읽었어요 ^^ 다 좋아하는 책들이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스파피필름님의 올해 100권 읽기를 응원합니다. 화이팅 하세요 ^^

스파피필름 2021-11-08 13:31   좋아요 3 | URL
와... 엄청난 일치율이네요 ㅋㅋ 제가 새파랑님 서재에서 본 책들을 보관함에 담아서 인 영향이 클 것 같아요^^ 연말까지 화이팅 하겠습니다!

scott 2021-11-08 11: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무라이스 잼잼은 💖 입니다!

스파피 필름님 취미 활동 이야기도 포스팅 해주세요 🖐^^

스파피필름 2021-11-08 13:30   좋아요 4 | URL
스캇님도 오무라이스 잼잼 읽으시는군요 ^^

작년과 올해는 베이킹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코로나로 하지를 못하게 되었어요. 요리를 좀 잘하고 싶은데.. 실력이 늘지를 않아요 ㅋㅋㅋ


mini74 2021-11-08 17: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4권 ~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은 읽고 있는 중입니다 1조원이라 ㅎㅎ 금방 100권 읽으실거 같은데요.*^^* 요리는 맛이 아니라 사랑으로 먹는 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ㅎㅎ

스파피필름 2021-11-09 05:22   좋아요 1 | URL
4권~~ 미니님 서재에서도 제가 책을 주섬주섬 했나봅니다. 맞아요 요리는 사랑으로... 이 명언을 잊고 있었네요 ^^;

scott 2021-12-24 2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파피 필름님!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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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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ଫ/⌒づ🎁

스파피필름 2021-12-25 07:11   좋아요 2 | URL
스캇님 메리크리스마스 고맙습니다 스캇님 덕분에 올한해 좋은 책들과 음악 알게 되었네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ㅋㅋㅋ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한해 마무리도 잘 하시기 바랍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