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하면 제일 먼저 하는 말 

" 살아있냐? , 나도 살아있다!" 

 듣기에도 살벌한 말을 하는 이사람은 소위 친한친구라고 불리는 한 여자다..ㅋㅋ  

고등학교 3년내내 같은반, 마주보고 앉는 자리에 앉아서 볼꼴, 못볼꼴 다 본.... 

가끔 멱살(?)잡이도 하고, 가끔 호박엿(?)먹이는 웃기는 불친절한 사이였지만...  

항상 외부인으로부터 변호해주고, 없는듯 있는듯 항상 곁에 와있고, 나의 행운에 묵묵한 미소를 보내는 

소중한 친구다..지내고 보니 좋은 친구더라...그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친구!!  

불친절한 말투에 주먹을 부르는 성격이지만...내가 한일, 내가 한말에 절대 비난을 내뱉지 않는 ......그런친구..  

고등학생때 내 취미생활이었던 신문스크랩을 내가 한것보다 그 친구가 해준 양이 더 많은 정도로 자기는 관심도 없으면 

나의 관심사에 열성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그런친구..

어려울때 서로 옆에 있어줬고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덜 외롭게 이겨낼수 있어던...20년지기 나의 친구는 ....... 

오늘도 묵묵히 내 생각을 읽어내며, 나를 존중 해준다. 망할년~~나 눈물나잖아.... 

그녀가 슬리퍼 찍찍 끌고, 부시시한 얼굴로 무작정 집으로 쳐들어갈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지않는 건..내 평생 한이다. 

친구들중에서 가장 멀리사는 아이!! 우스개 소리로 신랑이 속썩여서 가출하고 싶은면 두말 말고 우리집으로 오라던..... 

그래서 우리 신랑이 제일 무서워하며, 제일 좋아하는 내친구!!  

오늘도 그녀는 날 감동시켰다.. 

지난달 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던 날로 기억한다. 그날도 별 감흥없이 내 얘기를 묵묵히 그 친구...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이야기하다가.. 행사장면을 그린  정조대왕 화성능행 반차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규장각에 보관되있고, 흑판목판그림으로 남아있던걸 1994년에 채색을 했고, 세라믹 자기타일 5000장이 넘는 크기로 제작되어서 청계천 어느 다리사이에 그려져있다더라...난 서울상경했을때 청계천까지 갔는데도 왜 못봤는지...모르면 죽어야한다느니...안타깝다느니.... 예전에 한영우교수가 채색한 반차도가 출판된적이있는데...지금은 절판이라느니..그때는 왜 내가 왜 몰랐냐며..주절이 주절이 떠들고,
반환된 의궤 특별전을 하면 그때 당장 올라가느니...아니 우리꺼인데 지들이 약탈해 가놓고, 무슨 도둑놈 심보로..5년마다의 대여라는 말을 입에 담느냐며..욕을욕을 해댔던......그날의 기억이다.  

오늘 띵동띵동!! 택배왔습니다...어잉??? 비오는날 이게 왠 횡재.....근데 누구꺼야? 어? 내껀데.... 

상자를 열어보니.. 헉~~ 정조대왕 화성능행 반차도다.. 

보낸 요정아줌마한테 당장 전화하니...하두하두...시끄럽게 떠들어서..피곤해서 사서보냈단다.. 

그러면서 하는말  

" 절판은 무슨절판이야? **24에서 특별판매하더만....옛다 먹고 떨어져라!! 툴툴좀 대지마.. 

애 엄마가 왜 그렇게 징징거려? 니가 10대야? 넌 대체 언제 철들래? 데리고 살아주는 네 신랑몸에서 사리 나오겠다. 

내가 미친다..아주!!" 

ㅋㅋ, 오늘따라 징징, 툴툴,철, 데리고 살아준다. 미친다라는 욕을 먹어도 좋다. 

.이 책을 보고있자니 몇개월은 욕만 들어도 괜찮을듯하다.ㅎㅎ   

흐믓한 얼굴로 책 소개를 보자 

원래 흑백 판각화를 서울대 한영우 교수가 여러 고증을 참고하여 직접 채색했으며, 그 장대한 행렬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병풍식 책자로 만들었다. 수작업으로 제본을 마무리하여, 꼼꼼한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펼쳤을 때의 전체 길이 약 12.5m. 특히 반차도에 대한 해설과 한자 용어 설명을 영문으로 함께 써서 외국인도 행차의 내용과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 대상, 한국백상출판 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에 선정되었다

이 책은 고급 한지를 본문 용지로 사용하고 고졸한 맛을 지닌 표지와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상자에 담겨 북디자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탁월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책을 병풍처럼 만들어야 하는 제본 작업의 특성상 서울 인사동의 표구상에서 수작업으로 생산한 점을 염두에 두면 장인정신이 흐르는 듯하다. 자세하고 친절한 영문 번역으로 외국인도 행차의 내용과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빼어난 문화상품으로 정조시대 문화의 자신감과 자유분방함이 돋보이는 《반차도》는 정엄하고 당당하다. 한편, 정조의 화성행차는 TV 드라마 〈이산〉에서 재연되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럼   정조대왕 화성능행 반차도는 무엇인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버지 장헌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김홍도의 책임아래 최득현,김득신,이인문, 장한종, 허식등의 자비대령화원들이 제작한 목판화로 남아있다. 반차도는 궁중의 각종 의식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써 행사에 참여한 문무백관이 임무와 품계에 따라 늘어서는 차례를 기록한 도표를 가르킨다. 반차도는 그림이라기보다 정보전달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795년 음력 윤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동안 진행된 정조의 화성행차에는 정조의 두누이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가 동행하였고, 우의정 채제공을 비롯한 문무백관,나인,호위군사등 6000여명이 동원되었다. 정조반차도는 이들 가운데 1,779명의 사람과 말 779필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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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민강좌 제48집이 출간되었다. 반년간지라서 자칫하면 출간되었지 조차도 잊어버리는지라 

신간알리미 띵동!을 신청해 놓았다. 근데 어째 띵동 메시지가 안왔다..이상하네... 

<한국사 시민강좌>는 참 재미있다. 흥미롭고, 통념을 뒤집는 글의 초점이 참으로 명쾌하며 매력적이다.  

출간될때마다 특집 주제는 무얼까?라는 기대감에 많이 설렌다.. 

이번 48집에는 '한국 실학연구 80년'을 상반기 호의 특집기획으로 엮었다.    

 

 

 

 

 

 

 

 

 

실학은 조선후기인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당시 지배계급의 학문..성리학의 공허한 이론을 비판하며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에 관한 연구를 하던 학문으로 전통유학에서 벗어나 현실개혁적 사상체계를 말한다. 이 실학사상은 당시 조선의 사회체제를 변화시켜 새로운 개혁사회를 만들고자하는 기초였었으며, 정치,경제,언어,지리,천문,금석문등 많은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경향은 1890년대 개화사상가들에 의해 주목받았고, 1930년대에 이르러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부터 학계는 실학연구의 시발점으로 본다.해방이후 실학사상의 연구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사상체계로 인식되어 졌으며 광복후 우리의 급한 과제였던 일제의 식민사관을극복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한국사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기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민족주의적 성격과 근대지향적인 성격의 실학... 민중사회의 편에 섰던 실학... 

조선 실학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기존 성리학과 그렇게 대립관계였나?  훌융한 개혁적 태동이었으나 실패했다. 정조때에만 빛을 잠깐 본 학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실학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필요하는 없다 등등.. 

이 책의 특집기획의 초점은 실학은 반짝사상이 아니라 조선시대내내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데 맞추어져있다. 한국사학에서 활발하게 연구 된 분야의 실학...그 연구의 역사를 되짚고, 연구성과, 실학의 의미, 영향력을 정리한다.

이책을 쓴 학자들은  설명한다.  

근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할때 실학은 경제정치학의 추구되어 현실대응책으로 받아들여짐으로 조선인의 정체성정립의 학술운동, 해방이후 그 연구를 계승 식민사관극복, 그후 체계적, 심화적으로 연구되어지는 오늘을 본다. 

실학개념 논쟁..근대성과 관련한 실학의 존재여부, 실학자의 범위, 성리학과 실학의 관계, 실학의 학술용어의 적합성등의 논점으로 한국 현대사학사의 문제의식을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실학이 조선후기에미친 파급효과 

조선후기 실학의 차원에서 더욱 발달된 양상의 음운의 체계적연구에 대해 말하며,

실학은 주자학과반대되거나 대립되는 학풍이 아니라 그 일각의 특정학풍을 지칭한 것이고 조선후기 주자학의 전개과정과 연동되고 있었다. 실학이 성리학과 대립되게 규정했던것은 일제강점기 이래 성리학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원인이다.  

박규수를 거론하며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가 고종의 최측근으로 고종은 경복궁내 건청궁을 짓고 청나라에서 책을 들여와 이곳에 갖다놓았다.이는 청나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장을 북학파의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영향때문이다. 최고권력자 고종의 정치사상적 지도자였던 박규수..그의 제자들은 김윤식, 박영효,유길준등 개화사상가들이다. 고종의 개화정책이 박지원의 사상으로 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특별기획말고도 

*나의 책을 말한다에서는 <고려귀족사회와 노비>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에서는 규장각에 소장된 조선시대의 고지도를 정리하면서 시작된 저자의 고지도 연구의 경위와 성과를 자세히 설명한다. 

* 한국사학에 바란다.  

*역사학 산책등의 주제들을 만날수있다. 

 

--그동안 일년에 두번 출간된 <한국사 시민강좌> 에 특집주제를 소개한다.   

난 2007년에 알게되서 그때부터 보기 시작했다..

제40집 한국사의 15개 대쟁점
제41집 역사와 소설, 드라마
제42집 역사상 한국인의 해외 견문록
제43집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들
제44집 최신 발굴자료로 본 백제사
제45집 놀이와 축제의 한국문화사
제46집 한국사에 펼쳐진 과거제
제47집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1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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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적이고 단편적이었던 역사의 입체적 복원, 이를 통해 다시 쓰는 한국사를 표방하며 제작되었던   KBS '역사추적' 

'과연?'이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기록의 이면을 찾아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퍼즐 맞추기ㆍ숨은 그림 찾기 기법이 동원되었던 KBS '역사추적'  

이 책은 방송된 이야기중 14가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대략 방송되었던 이야기를 요약 아닌 요약을 해보자...

장금이는 요리사였을까?  장금은 조선 중종때 중종의 총애를 받은 천민출신의 의녀로 기록되어있을뿐, 출생년도,성씨나본관등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중종의 어의녀, 중종의 주치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의녀로서 기록은 실록에서 많은 사례는 찾기 힘들었는데 장금은 그 중 기록이 많아 뛰어났던 인물임과 동시에, 중종이 승하하기 전까지(1544년) 의술을 펼친것으로 되어있고, 수많은 남자의관을 제치고 왕의 주치의가 될수있다는 자체가 남성위주의 관료주의제 아래에서는 대단할 일인것이다. 큰 또는 위대한을 뜻하는 대(大)자를 써서 대장금으로 불렸으며 의술뿐 아니라 요리에도 뛰어났다고 전한다. 실록등에 보면 왕의 요리사는 숙수라 불리는 남성이었고, 여자들은 상을  차리거나 나르는 등의 간단일만 맡았다고 하는데.......

의자왕은 무기력했을까?.   의자왕은 정말 삼국사기에 전하는 대로 음란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등한시하고 간신들에게 놀아나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받고도 무기력하게 나라를 잃었을까?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해동의 증자'로 불리었던다는데...그가 정말 삼천궁녀를 거느린 호색한이었을까? 혹 승자의 신라의 부정적이고, 왜곡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역사추적팀이 최초로  예식진의 묘지명을 발견하였다. 예식진이라는 자는 의자왕과 함께 마지막까지 있었던 웅진의 예식장군이었다. 그는 백제멸망후 당나라의 무장으로 출세를 하였다는데....당나라에서의 출세가 백제의 멸망과 갚은 관련이 있는것같다. 쿠테타를 통해 주군인 의자왕을 배신하고 당을 등에 업은것이다...책에서 자세히 보자.  

또 조선시대 선비가 손자를 키울수 있었을까? 명문가 사대부 이문건은 손자가 태어나 성장할때까지 16년간 직접기르며쓴 일기, 양아록을 남겼다..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이다. 그 시대 남자아이는 일곱살이 되면 엄마품을 떠나 남자들의 공간인 사랑채로 옮겨와 생활하게 했다는데....가문의 유일한 핏줄이었던 이문건의 손자 수봉.....쇠퇴해가는 가문을 일으키려했던 할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의 기록을 보자...  

 흑산도 주민 김이수는 부당한 제도를 개선의 흑산도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고자 한양까지가서 직접 정조를 만났다고 전해지는데...그는 어떻게 정조를 만났을까? 만남후 흑산도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려 했던 정조...민중과 최고통치자의 소통의 힘은 어디서 나온것일까>? 

우리 역사속 최고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그의 옆에는 그를 도운 최강 수군들이 있었다...임진왜란 최고의 선봉장이며 돌격장인 정운, 임진왜란 첫 해전부터 최후의 노량해전의 숨은 공신 송희립, 80세의 나이로 이순신의 군사로 참전했던 해전의 명장 정걸, 거북선 건조의 핵심 책임자였던 나대용.....최강수군 전라좌수군 핵심참모들을 기억하자...  

정조는 최대정적이었던 심환지와 왜 밀통을 했을까? 2009년 정조가 쓴 편지 299통이 공개되었었다. 임금도 사람인 걸 비밀편지로 드러낸 정조, 유머러스하며 막말도 서슴지 않았던 다혈질의 정조...그는 강력한 반대세력인 노론 벽파의 심환지까지 포용하는 대통합의 정치를 추구했는데...

그외에 우리가 몰랐던 비밀, 우리가 오해한 진실, 우리가 잊었던 사람의 장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볼수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개의 눈길이 있다. 학문의 눈길은 역사에서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모색하려는 진지한 눈길이다. 상상의 눈길은 역사에서 콘텐츠를 찾고 상품을 생산하려는 현실의 눈길이다. 학문의 눈길이 이룬 성과는 우리의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재탄생했다. 상상의 눈길이 이룬 성과는 이미 ‘한류’라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었다. 역사는 지금 그렇듯이 앞으로도 콘텐츠의 보고(寶庫)로 존재할 것이다. 역사를 추적하고 추리하고, 여기에 상상력의 옷을 입힌다면, 역사는 마르지 않는 콘텐츠의 원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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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30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북한에 있는 2기의 왕릉을 제외한 조선왕릉 40기 전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릉 42기중 폐위된 왕(연산군, 광해군)은 포함되지 않았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의 이점은 해당유산의 보호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과 지원을 높일 수 있는데 있다. 한 국가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서도 작용하기 때문에 유산 소재 지역 및 국가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고취시키며 유산 보호를 위한 책임감을 형성한다.
또한 세계유산목록에 오른 유산들은 국제적 협력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유산 보호에 대한 사업들에 국제기구 및 단체들의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해당 정부의 추가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보존계획 및 관리의 수준이 향상되며 인지도가 높아짐에 따라 방문객이 증가되어 이에 따른 고용기회 및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

조선왕릉이 풍수지리사상을 바탕으로 조영되었으며, 엄격한 질서에 따라 내부공간을 구성하면서도 아름다운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주목할 만한 신성한 공간을 창출하였고, 봉분과 조각, 건축물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탁월한 사례로 동아시아 묘제의 중요한 발전단계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또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600년 이상 제례의식을 거행하면서 살아있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현재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산릉제례는 조선왕조 60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사상인 유교의 충과 효를 상징하는 예제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조선왕조가 멸망한 후 오늘날까지 왕실 후손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조선왕조는 1392년에 고려왕조가 끝난 이후 시작되어 500년 이상의 지속된 역사를 지녔다.  

조선 왕조시대에 있었던 총 27대 왕과 왕비의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조선왕릉'이라고 한다.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문화전통이 드러나는 문화유산으로 특히 ' 조상숭배'라는 유교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최고통치자의 왕의 무덤을 신성화하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죽은왕의 무덤을 웅장하게 만들고 , 참배함으로써 죽은 왕에 대한 숭배뿐아니라 현재 왕권 강화까지 시킬수 있는 1석 다조의 수단이었다.  

조선시대의 왕릉은 하나의 우주세계를 반영하도록 조영되었다. 능역의 공간은 속세의 공간인 진입공간(재실, 연못, 금천교), 제향공간(홍살문, 정자각, 수복방), 그리고 성역공간(비각, 능침공간)의 3단계로 구분되어 조성되었는데, 이는 사후의 세계관을 강조하는 것이다.

조선왕족의 무덤은 능, 원, 묘로 구분한다.  

- 능은 추존왕, 추존왕비를 포함한 왕과 왕비의 무덤. (왕릉40기)

-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의 무덤. (원 13기)

- 묘는 왕의 아들,딸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등의 무덤을 말한다. 

왕릉의 형태는 봉분의 형태에 따라 단릉, 쌍릉, 삼연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봉릉, 합장릉 이렇게 총 여섯가지로 나뉜다. 

조선왕릉이 있는 지역을 살펴보면 크게 서울시내, 서울동쪽, 서쪽으로 나눈다.  왕실의 능역을 도성인 한양을 중심으로 반경 4km밖에서 40km안에 두도록 하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 영월의 장릉, 경기도 여주의 영릉과 녕릉을 제외하고는 한양의 40km이내에 입지하고 있다.

조선왕릉이 위치한 이 지역은 지금의 서울 도심속에서 녹지를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고, 이지역은 특히 풍수적 길지이다. 조영 당시부터 계획적으로 조성되고 엄격하게 관리된 왕릉 내부와 주변의 녹지와 산림은 당시에도 주요한 생태계로 작용하여 왔으며, 특히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대 한국의 대도시 서울 주변 지역의 생태적 안정성과 종 다양성을 보장하는 주요한 생태계로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왕릉현황을 보면  서울(정릉, 헌인릉,선정릉,태강릉,의릉), 경기도(동구릉, 홍유릉, 광릉, 사릉, 영녕릉, 서오릉, 서삼릉, 온릉, 파주삼릉, 파주 장릉, 김포장릉, 융건릉) , 강원도(장릉;단종) , 북한 개성(제릉;신의왕후, 후릉;정종) 

조선왕릉 뿐 아니라 신라, 백제왕릉엘 가보면 정말 넓고 탁 트인 전망때문인지  휴식공간으로 정말 근사하다.  후손에게 남겨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주변자연환경과의 어울림이 참 좋다.

조선왕릉을 통해 조선왕조도 정리해보고, 머리도 식힐겸, 생각도 할겸 겸사겸사 5월의 왕릉 나들이 ...강추한다. 

가보기전 royaltombs.cha.go.kr  를 먼저 방문해 보는것도 좋을듯하다

 

 

 

 

 

 

 

 

 

이우상 씨가 글을 쓰고, 최진연씨가 사진을 맡았다. 

왕릉을 답사하면서 조선왕조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왕릉을 소개하고 이해시키는데는 단연 이 책이 최고인듯....역사서도 되고, 답사기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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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왕자가 꼭 공주를 구해야돼? 공주가 왕자를 구하면 안돼?

 인습적인 관념을 탈피한 공주이야기의 책이 있다. '종이봉지공주' 

왕자, 니까짓게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즉,  남성위주중심관의 디러운(?) 시선에서 과감히 탈피한 새로운 공주 이야기다.  

 

몹쓸 용이 나타나서 예쁘고 똑똑한 공주의 행복한 터전을 불살라 버리고, 신랑감 왕자는 몹쓸 용에게 붙들려간다. 결국 공주는 왕자를 구하지만, 왕자는 고마워하기는커녕 공주의 종이 봉지를 뒤집어쓴 꾀죄죄한 모습을 나무란다. 공주는 그제야 자신의 신랑감이 사람의 내부에 있는 보석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멍청이란 걸 깨닫고는 결혼하지 않는다.  

내 삶의 주인은 나야!! 너같은 건 꺼져버려..라고 외치는 당당한 딸이 있다면 같이 읽고싶은 현대판 공주 이야기!  

왕자를 잡아간 용한테 고마워하는 이야기..ㅋㅋ

옛 이야기를 확~~ 뒤집어 버린 이런이야기...너무 올바르다..ㅋㅋ 

그런데 여기 종이봉지공주의 삶을 너무 꿈꾸었을 만한 우리 역사속에  공주들이 있다.... 

그들을 끄집어 내 위로하고 싶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공주이야기는 '인어공주' - '딴 놈도 정말 많구만...쯧~

 

작년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1912~1989)라는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조국과 일본이 모두 버렸던 망국의 황녀로 비극적인 삶을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많이 끌렸다..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강제결혼을 하고 병을얻고, 딸의 죽음과 이혼후 고국에 돌아와도 정치적인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다 세상을 떠났다...  

망국의 옹주였기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옹주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처절한 삶을 살았을까?  

 

사극을 봐도 왕후와 후궁들의 서로 머리뜯는 싸움은 많이 봤어도...공주들은 깍두기로 그냥 보조출연정도???    

물론 공주에서 왕이 된 사람도 있고, 이설공주 김태희도 있지만..ㅋㅋ

최고의 절대권력자인 왕의 딸 공주.....그 호칭이 너무 부러운 공주들....그녀들은 어떤 삶은 어떠했을까?......   

부족한거 없이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많은걸 누리며 잘살았겠지.. 
  
서양의 공주들 처럼 왕의 딸들은 예쁘고, 귀여움을 한몸에 받으며, 많이 배워서 지적이고, 화려한 옷을 입고,백마탄 왕자님이 곁에 있는...  결혼후에는  시댁과 남편도 손가락 까딱하나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부귀영화,사랑과 명예의 상징일까? 

근 데....아니더라..그게 다가 아니더라,,,, 알려진게 많이 없어서 다 그렇다고 하면 안되겠지만 , 알려진 일중에 많은 공주들이 정치적 정략결혼으로 이용도 당했고, 정난등으로 신분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도 졌다.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한몫하고, 정조를 못살게 구는데 탁월한 재주를 지녔던 화완옹주, 나라의 이익을 위해 적국의 남자와 결혼해야 했던 효종의 의붓딸 의순공주  ,그리고 계유정난 후 동생 단종과 남편을 잃고 노비가 되어야했던 문종의 딸 경혜공주 등  조선의 공주들..... 많은 공주들이 권력투쟁과 정치적 음모의 인과관계 속에서 때로는 생명의 보존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곤 했다. 게다가 여성으로서 가장 행복해야 할 인생의 과정인 결혼조차 정략적 속셈에 따라 좌우되었으니, 스스로 원하던 사랑조차 이룰 수 없었던 불행한 삶을 산 여성들이다

그래도 신명호교수가 쓴 조선공주실록(7명의 공주, 옹주)을 보고나서 그래도 공주를 초큼 알게된 듯....왜 초큼(조금)이라는 말을 쓰냐하면...? 그이유는 가뭄에 단비인 책은 맞지만 왕,왕비,왕자들에 비해 공주들은 삶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도, 자료 또한  많이 부족하기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 책은 조선왕들의 35명의 공주와 77명의 옹주중에서 왕의 딸로서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던 7명의 공주,옹주만를 자세히 이야기 한다 . 

더 많이 실렸으면....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부록부분에 짤막한 설명과 함께 실어놓아서 내 아쉬움을 달랜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건 내 탓이고, 현실적인 탓이고 읽어볼만한  책 인것은 확실하다...   

조선왕조실록 과 각종 사료와 묘지명 그리고 정황 등을 샅샅이 조사했다는 저자..자료의 한계때문에 많이 어려웠다고 전한다. 저자의 말씀대로....기록조차 되지 못한 역사 속 여성들에 대한 관심과 조명이 한층 더 깊어지기를 바란다

그럼 공주(公主 )란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가? 

왕의 정실왕비가 낳은 딸에 대한 칭호,, 이 명칭은 중국의 황제가 딸의 혼인을 삼공(三公)에 맡겨 주관하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이전부터 이 명칭을 사용했다. 호동왕자와 낙락공주, 온달과 평강공주의 그 공주들 말이다. 고려시대에는 공주에게는 정1품의 품계를 주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왕의정비의딸은 공주, 후궁의 딸은 옹주라 구별하였으며 품계를 초월해 외명부의 최상위에 올려놓았다. 그에 걸맞게 공주의 남편은 부마도위, 정1품를 주었으며, 옹주의 남편은 부마, 정2품의 품위를 주었다고 한다.  

 

 주류성에 나온 공주들의 전쟁도 함께 읽으면 좋을것같다.  

왠지 기존의 희생녀 이미지의 공주의 모습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남자의 목을 비틀어버릴것같은 

공주들의 대범함,   적극적인 다른삶을 산 공주들의 이야기를 하는 책일듯하다..

미리보기도 아직없고, 어떤 식으로 서술했는지를 몰라서 더 기다려 봐야될것같다. 

조선시대 공주뿐아니라 다른시대, 다른나라 공주들도 함께 보자..

 1 . 아황과 여영공주 / 순(舜)을 만든 요(堯)의 딸들
2 . 환인가의 웅녀 / 단군왕검을 낳은 한민족의 어머니
3 . 첫 여성 파라오 하쳅수트 / “내 턱에 수염을 붙여라”
4 . 은나라 창용공주 / “나는 은나라 공주다”
5 . 두로왕국 이세벨공주 / 성서 속의 악녀가 된 모녀
6 . 두로왕국 에리사공주 / 카르타고를 세운 전설의 여인
7 . 마케도니아 올림피아스공주 /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키운 철녀
8 . 이집트 클레오파트라공주 / 세계 역사를 뒤흔든 최고의 미인
9 . 부여 사소공주 / 신라 건국신화의 주인공
10 . 인도 아유타 허황옥공주 / 남녀평등 실천한 가락국 왕비
11 . 백제 보과공주 / 국경 없는 사랑
12 . 북가야 문화공주 / 신라 최고 무사를 키워낸 공녀
13 . 고구려 안학공주 /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14 . 여성 천황 취옥희 / 아스카 시대를 완성한 여걸
15 . 신라 덕만공주 / 삼국 통일의 기틀 다진 선덕여왕
16 . 신라 요석공주 / 3일간의 사랑
17 . 백제 계선공주 / 역사에 묻힌 백제의 잔 다르크
18 . 당나라 문성공주 / 티베트의 신이 된 여인
19 . 발해 정효공주 / 백성들의 모범이 된 공주
20 . 당나라 태화공주 / 정략결혼의 희생양  

** 아이와 함께 읽는 책 

 

 『Why? 왕자와 공주』에서는 평강 공주, 안평 대군, 사도 세자, 덕혜 옹주 같은 우리 역사 속의 왕자와 공주들을 소개합니다

 

 

 

 

 ** 관심있는 책

 

<죽씨안씨대동보>에 정의공주(1415~1477, 세종의 둘째딸)가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보인다.  정의공주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명복을 위해 <지장보살본원경> 상,중,하(보물966호)를 간행하기도 했다. 

이런 정의공주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 ' 정의공주 '. 

 

 

 

** 내친김에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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