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과 젊은 그들 - 아나키스트가 된 조선 명문가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인간의 존재를 표준으로 내세워서 이 세계를 안과 밖,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하지 않았고, 사물과 풍경에
함부로 구획을 설정하지 않았으며...(중략)...그의 마음은 모든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과 친화할 수 있었고,
친화로써 비밀에 닿았고, 그 친화의 힘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통로를 열었고... 
                                                                                                               -김 훈의 <공무도하>

<공무도하>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물은 여주인공 노목희가 작업했던 역사기행서의 저자 타이웨이 교수였다. 그에 대한
묘사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김훈의 천착과 그것을 담은 절제되고도 유현한 그의 문체가 어우러져 빛나고 있었기에 안구
속에 꾸욱 꾸욱 눌러 담고 싶은 것이었다. 

타 이 웨 이 교수를 나는 만났다.
여섯 명의 정승과 두 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대명문가의 후예로서 1910년 한일합방후 지금가치로 대략 환산하여 600억 이상의 자산을 일시에 처분하고 가문전체가 중국 망명길에 올랐던 이회영 일가.
환갑이 훌쩍 넘어서도 조국을 위한 무장투쟁을 하겠다고 영국 선적의 제일 밑바닥 4등 선실에 몸을 웅크리고 떠났던 사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진부한 수식으로 그를 가두고 싶지 않다. 어떤 지향을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 쉽진 않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세속의 잣대로 추앙받는 가진 것들을 모두 내던지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극복해야 하는 터라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그것을 해내고 비참하게 빈민가를 떠돌다 마침내 산화했다.  

국사에서 근대사는 유난히 간략하고 불친절하다. 학창시절 정력적이었던 국사 선생님도 근대사는 암기할 대목만 짚고 가버렸다. 이해와 공감이 빠진 근대사 공부는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 정도만 가까스로 남기고 도망가 버렸다. 지금에서야 통탄한다. 독립운동사는 사실 민족적 자각과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의 결정적인 매개의 지점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현대사는 객관적이기 힘들다는 명분을 가지고 온 식민사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지 유난히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 소흘해 왔다. 지금은 이미 독립운동가들이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복원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고 한다. 어제를 연구하는 것은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예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피를 따라 흐르는 선조들의 역사의식과 투쟁의 유전자를 확인하고 재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한 너무나 기본적인 전초작업이다. 

이 책은 아나키즘(자유연합주의)의 대동사회를 꿈꾸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죽어간 이회영 일가와 더불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배계층의 독립운동사를 복원하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성취를 이루었다. 양반 사대부 계층은 대체로 전근대적이고 기회주의적이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복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비단 이회영 일가뿐 아니라 이상설, 이건승, 홍승헌 등 수많은 이들이 가진 것들과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극빈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이국만리에서 조국의 해방도 보지 못하고 최후를 맞는다. 그들은 일제강점하의 고국에 자신들의 시신을
반장하지 말라고 유언한다.

당시 독립운동은 민족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이라는 세 가지 이념으로 분열되었고 이는 해방후 결국 분단으로 치닫는
하나의 촉매가 된다. 이런 이념의 구획은 극한 상황에서의 처절한 투쟁을 버티게 하는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필요불가결했지만 이 구획의 언저리에서는 동족을 불신하고 배신하고 죽이는 비극의 불꽃이 점화되었다. 슬픈 대목이다.
오늘의 굶주림을 참기 위해 머리 속에 채워넣어 가슴으로 끌고 내려가야 하는 그 허위의 도식에 대한 집착은 인간 본연의
한계가 아닐런지.

또한 아나키즘이 단순히 무정부주의이며 허무주의적 색채가 강하다고 회의했던 나에게  철저한 아나키스였던 그가 주장한 지방자치주의, 무상 교육에 대한 선구자적 자각은 지금의 시점에서 봐도 놀랍다. 민중이 민중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되어
차별없는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그 이상주의적 이념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과 연대에 대한 희망이 본령이다.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염원, 하나의 꿈, 하나의 희망이다.

입을 옷이 없어 산책가자고 하는 지인의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쌀이 없어 시아버지 밥을 못지어 슬퍼하는
며느리 앞에서 퉁소를 불며 시름을 달래는 비장한 낭만을 아는 사람, 숱한 일제의 고문 앞에서도 함구하고 결국 비참하게 간 사람. 그의 삶이 외형적으로 찬란하지 않았고 오히려 동정받을 정도로 전락한 것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비루한 인간사에서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의의 지향을 위해 투신한 이의 삶을 듣는 것은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람은 아름답다. 삶은 찬란하다. 또다른 한 켠에서 벌어지는 그 그악스럽고 던적스러운 삶이 있음을 알지만
그것만으로 고결한 가치로 열려 있는 삶의 가능성 전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민족주의 태내에서 무정부주의의 성장, 그 사상적 투쟁단계 그리고 전시의 전투체제로 전환 등의 과정을 우리는 우당이란
한 사람의 생에에서 읽을 수 있다. 우당의 최후는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장렬한 산화였다.
-하기락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설기 같은 눈에 폭폭 발을 담그며 만나러 간 고등학교 동창들의 눈에는 이제 더이상 열망이 없었다.
대신 피곤체념이 버무려진 눈동자가 각자의 고충과 애환들을 드러낼 때만 형형했다. 

난 전세계에서 터졌을 어마어마한 양의 불꽃들을 상상했고, 내가 옛날에 헛되이 쏘아올렸던 마음의 불꽃들을
생각했다. 내 것이 아니었던 열망들에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하고, 난 돌아섰다. 안녕. 무모했던 날들이여.-p.230

에메랄드빛이 바랜 타자기가 잿빛의 물빛을 머금고 오롯이 놓여 있는 표지는 왠지 바랜 열망들과 꿈들을 상징하는 대유로
보여 마음이 끌렸다. 책을 읽다가도 몇 번이나 표지를 다시 넘겨보고 그 타자기를 쓰다듬어 보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표지와 가볍고 화려해 보이지 않는 속지의 재질들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물리적인 책의 외형만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이었다. 북디자인이 가지는 무게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가벼운 책은 소박한 내용에 맞춤한 옷 같았다. 

한국에서 여류전업작가로, 게다가 시인으로, 독신으로 살아나가는 것에 대한 쓸쓸한 고충들이 서른에 끝난 잔치 타령으로
상처받은 그녀의 입에서 절절하게 나온다. 사실 나부터도 그냥 그 시 제목에 같이 흥청댔던 당시의 기억 속에
그녀를 도발적인 팜므파탈 정도로 찍어 넣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그 소비지향적 이미지에
더하여 더이상 시가 소비되지 않는 역설의 시대에서 자기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 모습이 낯설고 슬펐다.  

그 해 여름, 나는 비를 막느라 비닐포장을 두른 슬레이트 지붕아래 러닝셔츠 차림으로 누워 생각날 때마다 시를 썼다. 매일
쓴 게 아니라 매시간 썼기 때문에 시를 쓸 때마다 옆에다 쓴 시각을 적어놓을 정도였다.-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시인은 닮았다. 가난하다. 김연수가 시인이 아닌 소설가로 방향을 틀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도, 조정래가 아내 김초혜를 시인이라 더 예우해 주는 대목도 결국 시는 삶이 아닌 천상의 가치와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시인들은 생활인으로는
서툴 수밖에 없다. 

그녀가 끝까지 시인으로, 그리고 당당한 여류전업작가로서 이제는 뒤로 했다는 열망을 다시 앞으로 끄집어 내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 생이 반드시 먹고 호흡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로 연결될 수도
있음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달래 2009-12-3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작품은 책만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네요.
당장(!) 읽어야겠다는 다짐이.. ㅋㅋ

저도 대문 글 보면서 뭔가(!) 느끼고 갑니다. ^^;;

blanca 2009-12-30 20:55   좋아요 0 | URL
빨리 읽어 보세요. 책장이 잘 넘어간답니다.^^ 그리고 저 벌써 오늘 하루 3잔 마셔버렸습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노이에자이트 2010-01-0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종종 들러서 댓글 남겨도 되죠?

blanca 2010-01-01 16:39   좋아요 0 | URL
고맙죠ㅋㅋㅋ 노이에자이트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노이에자이트를 줄여 노자라고들 하시던데 사람 이름을 딴 건지 궁금하네요. 오타날까봐 두번이나 되뇌었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1-01 16:44   좋아요 0 | URL
'새로운 시대'의 독일어랍니다.
 
꿈엔들 잊힐리야 - 상 박완서 소설전집 1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박완서는 완독을 목표로 했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다. 소설 사이 사이로 숨고르기처럼 내는 에세이의
구수함은 말할 나위 없이 좋다. 최근의 '친절한 복희씨'에서 그녀의 작품은 천천히 노년문학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년의 이해받지 못함에 대한 쓸쓸함과 그것에 단초를 제공하는 자식 세대들에 대한 섭섭함이
형상화되어 있다. 작가의 작품은 작가와 함께 걷는다. 전업주부였다 마흔에 등단한 그녀만큼 작품들은 하나같이
서두르지 않고 조곤조곤 얘기한다. 그 결 사이 사이에 스미는 여성의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유현하다. 

그녀의 작품을 대부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와중에 '꿈엔들 잊힐리야'가 왔다. 여느 그녀의 다른 작품들의
그 아기자기한 재미와 구수한 입씨름 대신 구한말에서 육이오 이전까지의 시대적 격랑의 틈바구니에서 고뇌와 번민으로
가득찬 인간 군상의 처절한 삶이 개성의 풍속과 어우러져 드러난다. 예전 '미망'으로 드라마화되었던 작품이다.
개성의 거상 전처만의 돈에 대한 계율과 이부제 동생 태남을 물려받은 태임이라는 여인의 파란 많은 일대기다.
몰락한 양반의 자손이자 할아버지 전처만과 애증으로 얽힌 집안 머슴 종상이와의 결혼을 감행하는 그녀는
청상과부였다 역시 집안의 사내종과 부정을 저질러 태남을 낳고 우물에 몸을 던진 그녀 어머니의 이율배반의 삶에
저항하듯 자신의 삶을 스스로 쟁취하고 이끌어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자신과 유독 닮았으나
두번째 부인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는 딸 여란 앞에서 결국 좌절하고 만다. 시대와 인습, 운명의 그 불합리와 부조리에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투항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얘기는 인간의 그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에 성공하면서도 카리스마를 구현하는 데에는 약간의 마이너스를 감수하는 모습이다.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절대적으로 강인한 인간형을 여기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녀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은 그녀가 갖고 있는 것을 터무니없이 미화하고 과장하고 싶은 경쟁심을 불러일으켰다.
                                                                                                                                      -p.355(중)
개성만의 특색있는 풍속을 묘사한 장면들이 생생하고 재미가 진진하다.
태임이와 종상이의 혼례 장면은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풍속의 묘사가 그 생동감 있는 필체 앞에서
꽃처럼 생글거리며 피어난다.  

태남이의 독립자금을 대다 결국 발각되어 죽은 남편 종상이의 소년 시절을 떠올리며 죽어가는 태임의 모습이
얹힌 결말은 아릿하면서도 너무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또한 그의 임종을 결국 지키게 되는 태남이와의 그 일상적인
대화가 오히려 더 절절하다. 이 결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아퀴를 제대로 짓는 법을 작가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예술성과 서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한데 잘 어우러지게 묶은 그녀의 손속이 돋보였다. 

천상 이야기꾼인 그녀가 늙어가 더이상 그 보따리를 풀어 놓지 못할까 초조해질 따름이다.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달래 2009-12-3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완서 선생님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아직이네요.
마흔에 데뷔했다고.. 자기가 그 동안 논 게 아니라고 한번 화를 내셨단 얘기를 들었어요. ㅋㅋ

blanca 2009-12-30 20:57   좋아요 0 | URL
그 동안 논게 아니라고 ㅋㅋㅋ 저도 단편 위주로 읽어서 최근에 읽었어요. 참 재미있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분권된 책들을 한 번 시작하면 생활이 피폐해져서. 정말 시간적 여유 있을 때만 읽으려구요.
 

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줄 거예요!
두둥.  두 돌 딸아이는 문화센터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열린 문에서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어설프게 뒤집어쓴
산타 복장에서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황급히 백에서 작은 쇼핑백을 빼내어 딸아이 앞에서 선생님께 건네었고(이것부터가 무성의했다.)
선생님은 그 쇼핑백을 옆의 산타학생에게 건네었다.
솔직히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내가 쇼핑백에 성의없이 집어넣은 것은 선물이 아니라 딸아이의 작은 눈사람 인형이었고
아직 뭘 잘 모르거라는 단견은 딸아이가 의외의 장소에서 자신의 것을 만나서 되레 반가워할 수도 있을 거라는
비겁한 자기기대였다.
나와는 달리 다른 엄마들은 준비가 호사로웠다. 특히나 딸아이가 한창 빠져있는 뽀로로 관련 장난감들이 전문 포장인의
손길을 빌린 듯 화려한 옷을 입고 아이들에게 건네졌다. 그 때마다 딸아이는 고개를 쭈욱 빼내어 자신이 누릴 기쁨과
미리 비교해 보는 듯했다. 이윽고 어색하지만 열심히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산타학생이 건넨 쇼핑백에서 자신의 눈사람을
발견하고는 딸아이의 얼굴에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슬픈 표정들이 지나갔다.
예쁜 드레스를 갖춰 입고 값비싼 뽀로로 장난감을 안고 있는 친구들과는 달리 하필이면 치수도 안맞는 길거리표 청바지
속에 싸여 있던 작은 아이는 얼굴 가득 실망감과 무언가 속았다는 듯한 느낌을 안고 있었다.
나는, 나의 아이를 나처럼 감정과 인격을 가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못했다.
그저 눙치려 들면 다 속고 넘어가 주는 어린 나의 부속물 정도로 여겼나 보다.
 

엘리베이터 안에 하필 값비산 뽀로로 장난감과 에디 인형까지 안고 같이 탄 사내애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딸아이의
표정은 더없이 우울해 보였다. 그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간 출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작은 나의 아이는
집에 가려들지 않았다. 대신 울먹였다. 자신의 감정을 또박또박 표현할 수 없는 그 한계 속에서 나의 아이는
울음으로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다 알고 있어. 엄마는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나의 장난감으로 나를 속이려 했어.
집에 오는 길에도 딸아이는 계속 뽀로로 트럭 타령을 했다.
아빠가 사줄거라고 다둑거리자 기사는 여자아이는 트럭 같은 거 가지고 노는 거 아니라고 한 마디 거들어 주셨다.
아파트 입구의 경비실에는 아이들의 선물 보따리가 쌓여 있었다. 혹시나 해서 택배 온 거 없냐고 확인하는 와중에
딸아이는 자신의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고 드디어 길바닥에 드러누워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큰 울음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그 당시도 나는 딸아이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이 부끄러운
상황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우격다짐으로 아이를 끌고 왔다. 집에 와서도 아이는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부모는 때로 자식을 존중하지 않고 부리려 한다. 유년시절 너무나 아꼈던 뽀송이라는 원숭이 인형을 헤졌다고
우리 자매에게 얘기도 안하고 버린 엄마에게 복수를 다짐했던 기억은 이미 저 한켠으로 밀린 듯 나는 그런 어른의
배려없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떤 것은 목숨만큼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몫은 부모의 것일테다.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을 갖고온다는 그 기대로 몇 달을 산 아이에게 자신의 장난감을 대신 건네준
엄마는 어쩌면 어른이 되서도 용서가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가득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정말 미. 안. 해.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12-2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5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12-2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삼남매에게 이거 읽어주며 울었어요.
우리 애들도 '너.무.해' 라고...

blanca 2009-12-25 22:41   좋아요 0 | URL
정말 너무하지요?--;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순오기님과 삼남매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계시나요? 여기는 펑펑 눈이 내려서 딸애를 안고 눈구경을 시켜주었답니다. 눈을 보더니 "조오타~"고 하네요 ㅋㅋㅋ 예쁜 선물로 용서를 빌어야 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12-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blanca님도 마음이 많이 쓰이셨겠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부러움을 느끼며 살아가기 마련이니,
한편으로는 유년때라도 온전한 기쁨을 주어야지 싶기도 하다가,
그걸 이길 힘을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blanca 2009-12-28 12:59   좋아요 0 | URL
살다 보니 생명 하나를 온전한 사회의 성원으로 제대로 키워내는 게 참 얼마나 힘들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참 벅차다는 생각을 해봐요. 저도 어린 시절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고 그 속에서 오히려 얻은 것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엄마 역할이라는게 공부하듯히 일하듯이 일단 최선을 다해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휘모리님 일본 여행기 구경갑니다. 휘리릭~

진달래 2009-12-3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넘 속상한...
아이의 마음도 그걸 보는 엄마의 마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하지만 댓글을 보니 아이가 금방 마음을 푼 모양이군요.
넘 다행이네요. ^^;; 행복하세요~

blanca 2009-12-30 20:57   좋아요 0 | URL
진달래님의 댓글만으로 벌써 행복해졌답니다. 감사합니다.
 

박완서의 '미망'을 읽으며 간간이 질러 놓은 책들은 각종 사정으로 더듬더듬 집을 찾아 오지 못하고 있었다. 
판매자의 사정으로, 혹은 배송폭주로, 이제 '미망' 下권을 집어들며 백만년 만의 홀가분한 일요일 외출에 동행할 책인
'롤리타'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폭발하고 말았다. 

분명 22일 그렇게나 위무도 당당하게 연거푸 두 번이나 문자로 오늘 배송될 예정 어쩌구 저쩌구 하며 설레발 치던
그 위용은 간데없고 오후에는 급기야  경비실로 갔다고 그러더니 이틀에 걸쳐 경비실이며 택배사한테 전화도 하고, 심지어 소화전까지 열어보며 그 책의 행방을 모색했는데 간 곳이 없었다. 평소 택배 기사 욕하는 재미로 스트레스 푸시는 경비아저씨께서는 심지어 택배기사 훈련좀 시키라는 말까정 하시며 혼자 열이 올라 괜히 신이 나시고. 남욕할 때는 왜 있잖은가. 갑자기 의욕충천하여 생동하는 그 느낌. 그래서 뒷담화는 계속되나 보다.  

약속시간 강박 같은 것이 있는 나로서는 항상 약속장소에 홀로 당도하기 마련이라  텅빈 시간을 우두망찰 허공에 혹은 사람들에 시선을 던지며 분침이 스치고 가는 그 허무한 공백으로 가슴까지 뻥 뚫려 버리는 듯한 느낌을 못견뎌하다 결국 십분이나 혹은 삼십 분 정도 늦는 친구들의 지난 날들 나를 서운하게 했던 일까지 더듬게 되는 병폐를 가장 못견뎌한다. 약속 늦는 친구들만 그것도 심지어 한시간 늦고도 되레 큰 소리 치는 배짱이 두둑한 아이들로만 선별해서 그러안고 있는 나의 인간관계도 그닥 평범하진 않지만, 고로 책이 꼭 있어야 한다. 책 없이 길을 나서다 보면 더불어 자꾸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혹은 흘려 버리게 된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악취미까지 있으니.  이런 나에게 위의 두 책은 심부름 보낸 다섯살 사내아이처럼 이리 저리 참견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엉뚱한 짓만 하다 빈 손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아니, 그마저도 아닌게 오지도 않고 있으니 나를 부대끼게 하고 있다. 자꾸 오지 않은 녀석들을 더듬다 보면 새로 불러들일 녀석들이 괜히 치일 것 같아 주춤주춤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역시 안왔다. 남한테 항의하는 것에 울떡증이 있어 잔뜩 날선 각오까지 하고 고객센터에 전화하자마자 괜히 막 흥분하여 단어들 지들끼리 막 서로 엉키는 와중에 "고객님, 주소가 서울시 동작구........ 맞으시죠?"에 뻥 터졌다. 거기는 나의 친정집 주소다. 그렇다. 배송지에 떡하니 친정집과 부재시 엄마 이름까지 써논 주소를 선택하여 입력해 놓고 안온다고 난리난리 치며 괜히 택배사들의 배송날짜 맞추기 강박의 희생자인 것처럼 스스로를 불쌍하게 만드는 연극 무대에서 내려오며 나는 자아성찰을,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이 솔직히 두번째다. 롤리타는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천대 받으며 웅숭그리고 있겠지. 아놔, 나 어떡해야 되는 거얌? 그리고 제발 토요일까지 최영미의 책만큼이라도 왔으면 싶다. 그리고, 연말이 가기 전에 되도록이면 참으려고 했는데 다시 책을 한 권 더 사야 될 명분을 얻었다. 친정 부모님보고 '롤리타' 들고 오시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나저나 자기 계발서로 책장 한 칸을 다 채우고 뿌듯해하시는 아버지가 나의 '롤리타'를 펼쳐 보시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김영하가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는 원전을 뛰어넘는 재미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것을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에 빚진 바가 크다. 그의 번역은 원전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남이 써 놓은 이국의 언어들을 자신의 언어에 맞춤하게 대응시켜 펼쳐내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이다. 고통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다.

이덕일의 '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엄청난 재력가 집안에서 거의 재산 전부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써버리고 여섯 형제들까지 바친 드라마틱한 얘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천상의 별처럼 누군가는 그 별에 손을 뻗쳐 그 눈부심을 움켜쥐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처럼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언제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위 두 권을 연말 마무리용으로 데리고 와야 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09-12-24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군요.
아 잘어울린다. 이젠 나이든 김영하지만 그의 문체는 젊음과 잘 어울리는 짝인듯해요. 저도 가지고 싶네요.

blanca 2009-12-24 22:40   좋아요 0 | URL
오늘 한겨레21을 보니까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가 재미없게 읽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나오네요. 그렇담 그만큼 번역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니까 기대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