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줄 거예요!
두둥.  두 돌 딸아이는 문화센터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열린 문에서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어설프게 뒤집어쓴
산타 복장에서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황급히 백에서 작은 쇼핑백을 빼내어 딸아이 앞에서 선생님께 건네었고(이것부터가 무성의했다.)
선생님은 그 쇼핑백을 옆의 산타학생에게 건네었다.
솔직히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내가 쇼핑백에 성의없이 집어넣은 것은 선물이 아니라 딸아이의 작은 눈사람 인형이었고
아직 뭘 잘 모르거라는 단견은 딸아이가 의외의 장소에서 자신의 것을 만나서 되레 반가워할 수도 있을 거라는
비겁한 자기기대였다.
나와는 달리 다른 엄마들은 준비가 호사로웠다. 특히나 딸아이가 한창 빠져있는 뽀로로 관련 장난감들이 전문 포장인의
손길을 빌린 듯 화려한 옷을 입고 아이들에게 건네졌다. 그 때마다 딸아이는 고개를 쭈욱 빼내어 자신이 누릴 기쁨과
미리 비교해 보는 듯했다. 이윽고 어색하지만 열심히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산타학생이 건넨 쇼핑백에서 자신의 눈사람을
발견하고는 딸아이의 얼굴에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슬픈 표정들이 지나갔다.
예쁜 드레스를 갖춰 입고 값비싼 뽀로로 장난감을 안고 있는 친구들과는 달리 하필이면 치수도 안맞는 길거리표 청바지
속에 싸여 있던 작은 아이는 얼굴 가득 실망감과 무언가 속았다는 듯한 느낌을 안고 있었다.
나는, 나의 아이를 나처럼 감정과 인격을 가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못했다.
그저 눙치려 들면 다 속고 넘어가 주는 어린 나의 부속물 정도로 여겼나 보다.
 

엘리베이터 안에 하필 값비산 뽀로로 장난감과 에디 인형까지 안고 같이 탄 사내애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딸아이의
표정은 더없이 우울해 보였다. 그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간 출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작은 나의 아이는
집에 가려들지 않았다. 대신 울먹였다. 자신의 감정을 또박또박 표현할 수 없는 그 한계 속에서 나의 아이는
울음으로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다 알고 있어. 엄마는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나의 장난감으로 나를 속이려 했어.
집에 오는 길에도 딸아이는 계속 뽀로로 트럭 타령을 했다.
아빠가 사줄거라고 다둑거리자 기사는 여자아이는 트럭 같은 거 가지고 노는 거 아니라고 한 마디 거들어 주셨다.
아파트 입구의 경비실에는 아이들의 선물 보따리가 쌓여 있었다. 혹시나 해서 택배 온 거 없냐고 확인하는 와중에
딸아이는 자신의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고 드디어 길바닥에 드러누워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큰 울음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그 당시도 나는 딸아이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이 부끄러운
상황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우격다짐으로 아이를 끌고 왔다. 집에 와서도 아이는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부모는 때로 자식을 존중하지 않고 부리려 한다. 유년시절 너무나 아꼈던 뽀송이라는 원숭이 인형을 헤졌다고
우리 자매에게 얘기도 안하고 버린 엄마에게 복수를 다짐했던 기억은 이미 저 한켠으로 밀린 듯 나는 그런 어른의
배려없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떤 것은 목숨만큼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몫은 부모의 것일테다.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을 갖고온다는 그 기대로 몇 달을 산 아이에게 자신의 장난감을 대신 건네준
엄마는 어쩌면 어른이 되서도 용서가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가득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정말 미.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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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5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12-2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삼남매에게 이거 읽어주며 울었어요.
우리 애들도 '너.무.해' 라고...

blanca 2009-12-25 22:41   좋아요 0 | URL
정말 너무하지요?--;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순오기님과 삼남매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계시나요? 여기는 펑펑 눈이 내려서 딸애를 안고 눈구경을 시켜주었답니다. 눈을 보더니 "조오타~"고 하네요 ㅋㅋㅋ 예쁜 선물로 용서를 빌어야 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12-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blanca님도 마음이 많이 쓰이셨겠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부러움을 느끼며 살아가기 마련이니,
한편으로는 유년때라도 온전한 기쁨을 주어야지 싶기도 하다가,
그걸 이길 힘을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blanca 2009-12-28 12:59   좋아요 0 | URL
살다 보니 생명 하나를 온전한 사회의 성원으로 제대로 키워내는 게 참 얼마나 힘들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참 벅차다는 생각을 해봐요. 저도 어린 시절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고 그 속에서 오히려 얻은 것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엄마 역할이라는게 공부하듯히 일하듯이 일단 최선을 다해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휘모리님 일본 여행기 구경갑니다. 휘리릭~

진달래 2009-12-3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넘 속상한...
아이의 마음도 그걸 보는 엄마의 마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하지만 댓글을 보니 아이가 금방 마음을 푼 모양이군요.
넘 다행이네요. ^^;; 행복하세요~

blanca 2009-12-30 20:57   좋아요 0 | URL
진달래님의 댓글만으로 벌써 행복해졌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