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집 - 책들이 탄생한 매혹의 공간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이세진 옮김, 에리카 레너드 사진 / 윌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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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 집은 우리를 볼 줄 아는 눈과 마음과 혼이 있었다. 그 집에는 합의, 요청, 깊은 공감이 있었다. 그 집은 우리의 일부였고 우리는 집의 신뢰를 얻어 은총과 축복의 평화 속에 살았다. -마크 트웨인 p.128  

죽어있는 사물의 틈새 마다 삶의 숨결을 불어넣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물이 살아서 삶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는 그래서 집을 예사롭게 보고 지나갈 수가 없다. 특히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것의 역사를 부려 놓는 서재에 대하여 가지는 그 소망과 애정의 깊이는 한정없다. 아름답고 특별한 서재를 가진 이들의 사연과 더불어 그것을 염탐하는 재미는 황홀하다.  

『보그 이탈리아』의 편집장을 지냈던 저자의 글과 『엘르 인터내셔널』등에 사진을 싣는 작가의 사진이 만나 이루어낸 공동성과는 아슴푸레한 추억의 그리움이 감싸는 반짝이는 사연들의 향연이다. 버니지아 울프, 마크 트웨인,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을 제외하면 생소한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독특한 서재와 각각 말미에 실린 작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만나는 지점에 서는 것은 안온하고 유쾌했다. 더불어 새로 알아가는 작가들의 생애와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축약된 그들의 저작에 대한 관심은 부록으로 얻는 셈이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서재가 인상에 남는다. 바다를 면한 통유리창 앞에서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봄직하다. 하지만 그의 서재가 뇌리에 박힌 것은 친구 파졸리니와의 '두 집 살림'덕택이다. 

두 친구는 집을 반쪽씩 차지했다. 파도의 리듬처럼 이해,우정,애정이 갈마드는 짧은 시기가 시작됐다.-p.446 

연인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친구와 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영역과 인생을 존중해 주는 일은 특별한 지향처럼 받아들여진다. 나의 절친한 친구와 각자의 연인을 둔 채 함께 읽고 쓰고 한다는 것은 각자의 인생이 평행선처럼 나란히 놓여지며 때로 교차하는 일이라 어렵고도 특별히 충만된 삶이다. 모라비아는 이 친구 파졸리니의 죽음으로 비극을 맞게 되지만. 

항상 하늘색 종이에 글을 썼다는 버지니아 울프와 한 때 그의 동성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집,서재를 같이 놓고 비교해 보며 읽는 재미도 가질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의 배경이 된 카사카무치의 집 사진을 같이 펼쳐 놓고 작품의 배경을 받아들인다면 생생하고 절절한 독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들이 가고 남아 그들의 펜끝에서 흘러나오던 수많은 이야기들의 마침표 만큼 허전하고 아쉬울 그 공간은 때로는 연인이, 때로는 자식들이 남아 그들의 삶 자체로 갈무리하고 있다. 과거로 흘러간 이야기들은 언제나 한 겹의 환상이 덧씌워져 꿈처럼 아득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삶이 꺼지고 남은 그 잔영이 드리워진 그들의 서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서재에서 시작하고 끝났을 그들의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사랑이 전해져 와 그들의 문장들을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 없게 된다.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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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외국 작가들의 집, 책들이 탄생한 매혹의 공간이라니 관심이 확 쏠리네요.^^
서해문집에서 나온 '작가의 방'에서는 우리나라 대표작가 6인(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의 서재를 보여주지요.

blanca 2010-02-06 23:5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이 얘기하신 비슷한 책을 읽었던 것도 같은데 작가 이름들을 보니 다른 책이군요. 솔깃합니다. 이런 류의 책은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괜히 흐뭇해져요. 언젠가는 저도 아담한 서재를 꼭 가지고 싶어요.

순오기 2010-02-07 16:56   좋아요 0 | URL
작가들의 서재는 정말 부러움의 절정이지요.^^
 
독이 되는 부모
수잔 포워드 지음, 김형섭 외 옮김 / 푸른육아 / 2008년 10월
구판절판


우리는 가족의 규칙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역자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나 정치적 이상, 종교에 대한 충성심은 가족에 대한 충성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충성심을 갖고 있다. 이 충성심은 가족체계와 부모,부모의 신념에 우리를 종속시킨다.-182쪽

독립된 인격체가 되는 걸 허용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킴과 같은 어른들은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남의 인정을 갈구하게 된다.-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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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니앤 2011-11-29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겨서 사보앗는데 실제, 그다지 잘 읽히지는 않는 책이엇어요~ ㅎㅎ
 

" 너 어떻게 이런 말을 일기에 쓰니? 동생보고 이런 용어를 쓰고. 너 정말 혼나야 되겠다!" 

초등학교 2학년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일기때문이었다. 갓 태어난 남동생에게 집중되는
관심에서 소외되는 것이 서운해 과격한 용어를(사실 그 의미도 잘 모르면서 주목을 받고 싶은 욕심에) 동원해
동생을 저주하는 일기였던 것 같다. 중년의 넉넉한 체구의 담임선생님은 그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되바라진 나를 한껏 성토했다. 한참을 야단맞고 돌아선 나는 이미 너무 상처받아서 그 순간을 기억 속에 영원히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울었던 것도 같고 아니었던 것도 같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원했던 반응 대신 돌아온 호된 질책은
여덟살의 가슴에 너무나 깊은 생채기를 냈다는 것이다. 나는 동생을 정말 미워했던 것이 아니고 나도 좀 봐달라고 나도 좀
쓰다듬어 달라고 간곡하게 애원하는 서툰 표현을 내뱉은 것 뿐이었다. 그 일로 나는 아주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몹쓴 아이처럼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책에 아주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다만 그녀의 담임선생은 나의 담임선생과는 백팔십도 달랐다. 초등학교 오학년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저자는 일기에 온갖 과격한 욕설은 다 동원하여 자신의 분노와 우울을 토로했다. 신규발령을 받아 부임한 담임선생님은 되레 그 일기장에 꼬박꼬박 상을 주었다고 한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내가 적었던 그 모든 욕이 실은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은 사랑에 대한 분노'여서, 거칠게 단순화시켜 말하면 그 욕들은 "제발 나를 좀 사랑하고 보살펴줘요"라는 외침이었다.  

만약 그 때 선생님께서 내가 쓴 일기에 대해, 일기 쓰는 방식에 대해 단 한마디라도 야단을 치셨다면 소심하고 위축되어 있던 그 시절의 나는 그 후 단 한 줄도 일기를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기를 쓰지 못했다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쏟아내는 길을 찾지 못해 반항된 행동이나 폭력으로 그 억압들을 분출했을지도 모른다. 험악한 욕으로 점철된 일기장을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선생님의 용인과 격려 속에서 나는 아마도 생각과 감정을 저어함 없이 표현하는 글쓰기 방식을 훈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때 그 선생님이 가슴 저리도록 고맙게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김형경 <천 개의 공감> 중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참으로 슬펐다. 물론 그 당시 담임선생님이 어떤 악의적 감정을 가지고 나에게 야단을 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처지에 있었다고 가정해도 담임선생님 만큼은 아닐지라도 김형경의 담임선생님 같은 묵묵한 관용을 베풀 수 있었을 거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누군가가 특히나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여과없이 분출할 때 우리는 과도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 감정 속에는 우리 자신의 거부하고 싶은 감정들의 찌꺼기와 아이다움에 대한 기대가 붕괴하는 충격적인 순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그 감정 자체를 부정하라고 그 감정 자체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라고 강요하기 쉽다. 그러나 감정은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부정해야 하는 당위의 대상으로 건져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나쁜 것이며 , 그런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적 견해에 따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드러난 행위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판결을 내릴 수 있지만, 마음속의 행위에 대해서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감정에 대해 판결을 내리거나 , 상상을 검열하는 것은 자유로운 사로와 정신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 하임 G. 기너트 <부모와 아이 사이> 중 

 

수잔 포워드의 <독이 되는 부모>는 자녀 교육서라기 보다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나의 심리치료서 같은 느낌이다. 어떤 형태로든 부모에게 과도하게 종속되어 있는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일보전진을 독려하는 책이다. 알콜중독자, 성적/정서적/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극단적인 부모유형들의 제시가 가슴깊이 와닿지 않을 수는 있지만 부모에 대하여 느끼는 솔직하고 적나라한 감정에 대한 직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깊다.누구나 부모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심리적인 억압기제를 발동시키는데 이게 후일 성장하여 대인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 더 무서운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돌아와서 솔직한 것이 미덕이 아닌 사회 속에서 은연중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의 표현을 미리부터 억압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 감내하고 자신을 속이는 기술을 미리부터 연마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인지. 
 

그 때 그 선생님이 " 그래. 지금 당장은 동생이 태어나 너한테 관심이 오지 않아 슬프고 화가 나지? 당연히 그럴 거야. 하지만 그런 화나는 감정을 그런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니까 그런 표현은 쓰지 말자. 알았지?" 이렇게만 얘기해 주셨어도 나는 마치 얼음땡 놀이에서 누구도 땡을 해주지 않아서 움직이지 못하고 추운 데에 그렇게 오래 서있는 듯한 그 무서운 소외감을 오래 간직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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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6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5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2-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동 관련 서적을 보면 꼭 저를 뒤돌아보게 되요. 지금의 나도 다시 보이고. 그래서 더욱더 탐독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보면, 어른은 하찮게 스쳐지나가는 그 감정들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생사가 걸린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그나저나 독이 되는 부모'표지, 정말 무섭습니다. 저 저렇게 무서운 표지는 처음 봐요. 그래서 더더욱 보관함으로.

blanca 2010-02-05 20:51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은 저를 바로잡기 위해서^^;; 읽다 보면 저의 어린 시절을 많이 되돌아 보게 되고 뒤로 짚어 나가면서 저를 치유하는 느낌이랄까. 그렇죠. 표지가 조금--;; 자꾸 들여다 보게 되고 야단치는 엄마보다 방관하는 아빠의 차가운 눈빛이 더 가슴아픈 느낌이 드네요. 이 책 표지를 자꾸 딸아이가 유심히 보고 모라고 중얼대는데. 치워놓아야 될 것 같아요.

저절로 2010-02-0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어기요~땡!!!!

blanca 2010-02-05 20:52   좋아요 0 | URL
에파타님의 땡! 고마워요! 지금 생각해도 사실 참 서운해서요. 어지간히 제가 상처를 받긴 받았나 봅니다.

라로 2010-02-0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거 읽으면 뭐해요? 실천이 안되는 一人 여깄습니다.ㅠㅠ

blanca 2010-02-05 20:54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이런 책 열심히 읽고 오늘 하루만도 딸아이한테 몇 번이나 소리지르고. 참.... 매일 반성하는 일기라도 적어서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꿈꾸는섬 2010-02-05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심히 읽으려고는 하는데 실천을 잘 못해요.ㅠ.ㅠ

blanca 2010-02-06 15:00   좋아요 0 | URL
읽는 동안은 그래도 두 번 화낼거 한번 화내고 그렇게 되긴 하더라구요. 그래서 육아서도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02-0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 씨가 팬싸인회에서 "자녀들을 옭아매지 말라"고 말한 것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그냥 상투적인 효도 타령보다 신선해서 눈에 들어왔어요.

blanca 2010-02-06 15:01   좋아요 0 | URL
대부분 의식하지 못하면서 자녀들을 옭아매게 되는 것 같아요. 장성해서도. 그러지 않으려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되는데 참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제한된 공간 안에 넘쳐 나는 책들.
마음 같아서야 나도 신경숙 처럼 드넓은 서재 안에 나름대로의 분류철칙까지 세워 가며 책들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지만, 실상은 다 옆으로 구겨넣고 심지어 바닥에 층층탑을 만들고. 

그러니 처분을 해야 했다.
결혼하기 전에 구입한 책들은 친정에 모셔놓고(그러나 아버지가 자의적으로 처분하셨다. 대체 처분의 기준이 뭔지.)
이사 오기 전에는 한 박스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고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한 박스 팔고
한동안은 도서관을 이용하다 다시 책꽂이 칸막이 위 틈에 불쌍하게 누워서 앙앙거리는 책들 신세도 처량하고
내가 박대하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기에 직접 거래에 나서게 됐다.(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최대한 좋은 상태의 책들만 올려 놓고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집에 있던 허접한 상자들로
성의없는 포장을 한 후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한편 나도 중고책들을 사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 몇 가지 감동받은 사례들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2주이상 지연되어 책을 발송하는 판매자도 있었고,
받아 보니 책전체에서 시큼한 냄새가 물씬 풍긴 경우도 있었고(대체 정체가 뭔지 지금도 의문)
표지가 헌책이라고 온몸으로 호소하는 책, 책 속에 온갖 메모가 즐비한 책 등 기분좋지 않은 사례도 있었지만
총알배송에 꽤 된 책인데도 도저히 헌 책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책(감사)도 많았다. 

이왕 받고 나서 기분좋은 거래가 되었으면 했고
골드셀러분들은 무언가 달라도 항상 달랐다는 데에서 나는 투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총알배송. ㅋㅋㅋ 그리고 포장재까지 구입했다.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면서 입구를 다리미로 눌러주어
정말 알라딘에서 배송하는 것처럼 봉해서 띠지까지 넣어 보냈다.(웬 정성?) 그러고 괜히 좋아서 괜히 상쾌해서 막 웃었다.
이러면 한 몇 십권 팔아치운 고수처럼 보일 테지만 열 권도 등록 안하고 한 여덟권 팔았나? 

중고거래라는게 생각보다 사람 간의 기본 예의가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처음 중고거래를 한 것은 반값에 나온 아이의 자연관찰 전집이었다.
판매자의 그 예의바른 목소리, 꼼꼼한 포장, 깨끗한 책의 상태로 두고두고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
그 분은 나에게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 사실 상태가 좋지 못한 각종 육아 물품을 염가로 중고시장에 내어 놓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건 예의도 아니고 경우도 아니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것도 나의 첫 중고거래 덕택이었다.
만약 상태도 좋지 않고 배송도 느린 경험을 했더라면 그리 중고거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그 작고 섬세한 배려가 더 많은 배려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성의없이 포장한 책 받으신 몇 분들께는 정말로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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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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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야망이 빈약한 배경과 만났을 때 인간은 때로 극단적으로 잔인해질 수 있다.
재능과 야망에 성적매력까지 가진 남자가 출세를 위하여 상류층 부인들의 속되고 무른 감정을 희롱하고 이용하는 이야기.
게다가 해피엔딩이기까지 하다. 

모파상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갈라져 있다. 유려한 묘사도 섬세한 감정의 속살의 드러냄도 없는
그저 툭툭 거친 붓으로 캔버스에 보이는 대로 단조롭게 그려갈 뿐이다. 
솔직히 이 점이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처음부터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그리고 그 나쁜 놈을 훑고 가는 수많은 단상도 다 같은 색깔로 도열하고 있다.
인간의 그 연약한 가변성과 복합적인 감정의 다채로운 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가 뛰어드는 언론계의 추악함도 그 부정성이 지나치게 비대하게 부푼 느낌이다. 
 

인간이 이용가치로만 저울질당하고 애정도 하나의 약점으로서만 작용하는 그 세계가 거북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현실을 눈감아버리고 싶어만지는 나의 미성숙함때문인지 재미있고 술술 읽혔던 소설의
해피엔딩이 자못 거슬린다. 인간의 비열함과 비루함이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해피엔딩으로
읽히는 기괴함이 있다. 권선징악적인 그 위선적이고 단순유치한 도식에도 손을 들어줄 수 없지만
결국 인간과 삶을 긍정할 수 없는 그 결말에도 찝찝한 뒷맛이 과히 좋지 않다. 

모파상의 견고한 현실은 긍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빡빡했다.
대작가이지만 당시의 자연주의적 사조는 사실주의적 배경에 과장된 인간형이 얽혀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그래서 <벨아미>를 닫고 나오는 길은 조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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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아미는 못 읽은 책이라 모르겠고,
적과 흑, 위대한 개츠비~ 도 같은 부류의 책이 아닐런지...

blanca 2010-02-03 15:31   좋아요 0 | URL
다 비슷 비슷한 부류 같아요. 개츠비만 사랑을 위해 출세를 이용했고. 저는 자꾸 청춘의 덫의 이종원 생각이 나서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2-0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파상의 소설은 인간을 너무 적나라하고 비관적으로 그려서 싫다는 사람이 많아요.이문열 씨도 <비계 덩어리>에 대한 감상을 그렇게 쓴 적이 있지요.그런데 저는 모파상,특히 비계덩어리는 몇 년에 한 번씩 꼭 반복해 읽어요.굳이 표현을 찾자면 섬뜩한 유머라고나 할까요.블랙 코미디라는 단어로 부족하니까요.

blanca 2010-02-06 15:03   좋아요 0 | URL
아....제가 놀란 건 결말부분이었어요. 벨아미를 냉소하는 건지 옹호하는 건지 모호하게 그의 마음 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마치 당연한 상념들인마냥 나열해 놓고 끝내버려서. 참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보통 이런 인물들에 대한 냉소가 없어 좀 거북했나 봐요. 비계 덩어리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