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공간 안에 넘쳐 나는 책들.
마음 같아서야 나도 신경숙 처럼 드넓은 서재 안에 나름대로의 분류철칙까지 세워 가며 책들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지만, 실상은 다 옆으로 구겨넣고 심지어 바닥에 층층탑을 만들고. 

그러니 처분을 해야 했다.
결혼하기 전에 구입한 책들은 친정에 모셔놓고(그러나 아버지가 자의적으로 처분하셨다. 대체 처분의 기준이 뭔지.)
이사 오기 전에는 한 박스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고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한 박스 팔고
한동안은 도서관을 이용하다 다시 책꽂이 칸막이 위 틈에 불쌍하게 누워서 앙앙거리는 책들 신세도 처량하고
내가 박대하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기에 직접 거래에 나서게 됐다.(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최대한 좋은 상태의 책들만 올려 놓고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집에 있던 허접한 상자들로
성의없는 포장을 한 후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한편 나도 중고책들을 사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 몇 가지 감동받은 사례들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2주이상 지연되어 책을 발송하는 판매자도 있었고,
받아 보니 책전체에서 시큼한 냄새가 물씬 풍긴 경우도 있었고(대체 정체가 뭔지 지금도 의문)
표지가 헌책이라고 온몸으로 호소하는 책, 책 속에 온갖 메모가 즐비한 책 등 기분좋지 않은 사례도 있었지만
총알배송에 꽤 된 책인데도 도저히 헌 책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책(감사)도 많았다. 

이왕 받고 나서 기분좋은 거래가 되었으면 했고
골드셀러분들은 무언가 달라도 항상 달랐다는 데에서 나는 투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총알배송. ㅋㅋㅋ 그리고 포장재까지 구입했다.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면서 입구를 다리미로 눌러주어
정말 알라딘에서 배송하는 것처럼 봉해서 띠지까지 넣어 보냈다.(웬 정성?) 그러고 괜히 좋아서 괜히 상쾌해서 막 웃었다.
이러면 한 몇 십권 팔아치운 고수처럼 보일 테지만 열 권도 등록 안하고 한 여덟권 팔았나? 

중고거래라는게 생각보다 사람 간의 기본 예의가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처음 중고거래를 한 것은 반값에 나온 아이의 자연관찰 전집이었다.
판매자의 그 예의바른 목소리, 꼼꼼한 포장, 깨끗한 책의 상태로 두고두고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
그 분은 나에게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 사실 상태가 좋지 못한 각종 육아 물품을 염가로 중고시장에 내어 놓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건 예의도 아니고 경우도 아니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것도 나의 첫 중고거래 덕택이었다.
만약 상태도 좋지 않고 배송도 느린 경험을 했더라면 그리 중고거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그 작고 섬세한 배려가 더 많은 배려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성의없이 포장한 책 받으신 몇 분들께는 정말로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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