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정치학 교수 칼 외만의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에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저작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몇십 년 내 일부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사망자 계정이 산 자의 계정보다 더 많아질 거라고 한다. 이 책은 내가 온라인에 흘리고 다니는 디지털 정보 조각이, 혹은 내 가족이나 친구, 지인의 그것이 죽은 이후 남아 거대한 '디지털 유해'가 될 때, 결국 누가 책임 지고 윤리적, 정치적, 경제적 난제들을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다. 


이 '포스트모털' 상태는 누구나 결국 당면할 수밖에 없는 난관이다. 죽음을 앞두고 내가 인터넷에 쓴 글, 가입한 SNS를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유족들에게도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이 데이터들을 소유한 영리 기업들에게 망자의 프라이버시와 권리를 존중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영리적으로 이용하는 생태계다. 깨어나 자신의 권한을 주장할 수 없는 망자들은 경우에 따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세르비아 작가 다닐로 키슈의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라는 단편 소설이 소개된다. 제목만큼 흥미로운 이 이야기는 최근에 아버지를 잃은 딸이 지인의 소개로 방문한 왕립도서관에서 아버지의 세월을 낱낱이 기록한 백과사전 형식의 전기를 읽게 되는 이야기다. 이 백과전서는 놀라울 만큼 시시콜콜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사소한 일들과 스친 인연들의 방대한 목록이 나온다. 이 책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빠진 것이 없이 한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화자인 딸은 아버지의 아름다운 소년 시절부터 측량 기사로 국경선을 그렸던 청년기, 전쟁을 겪고 가부장으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던 장년기를 거쳐 지난 삶에 대한 회한과 불만으로 그득했던 노년기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그 덧없고 사소한 일들의 총체를 미주알고주알 알고 보고 느끼게 된다. 딸은 이미 이 삶을 떠난 망자의 삶을, 그 데이터의 총합을 수기로 다시 읽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을 딸은 그의 전생애를 통해 비로소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요즘이라면, 이 백과전서는 온라인으로 어마어마한 데이터의 바이트로 남을 것이다. 유족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망자의 흔적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닌,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조각들의 어긋남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정보가 영리기업에 의해 상업적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데 유용한 빅데이터로 활용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은 "모든 인간 피조물은 반복불가능하며 모든 사건은 유일무이하다고 주장하는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 편찬자"들의 편집과는 거의 대척점에 놓인 셈이다. 작금의 데이터 경제에서 대상화되는 모든 인간은 마치 대체 가능하며 모든 사건은 반복되는 듯한 환영을 준다. 우리의 사소한, 덧없는 일상사는 이용 가치가 없으면 하나의 잉여로 치부된다. 죽은 자들의 그것은 더하다. 


우리는 사라지고 나서도 사라질 권리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떠나가고 남을 이야기에 대한 편집 권한도 없다. 나의 동선과 기호, 관계가 온라인에 모두 포집되고 남는 시대에서 고민해야 할 거리가 무엇인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타이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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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의 소설이 AI 대필 의혹으로 공쿠르상 1차 후보에서 제외된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AI 탐지기의 신뢰성에 관한 논란뿐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AI 활용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간의 글쓰기 창작 활동만큼은 끝까지 사수해야 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하나 같은 논의를 촉발하는 지점이다. 


회의록도 광고도 심지어 드라마도 AI로 만들고 감상하는 시대에 우리는 유난히 '글쓰기'의 '인간 저자'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셈이다. 이는 인간이 사고하는 존재로 그 사고를 언어화하는 예외적인 존재라는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을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인간이 언어로 사고하고 문자로 기호화하여 표현하는 것만큼 인간을 가장 인간적인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다른 행위가 있을까? AI가 사실은 거대언어모델로 이 표현의 영역에서만큼은 인간만큼, 어쩌면 인간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벌써 현실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사람이 아닌 AI에게 소통의 욕구를 채우고, AI로 블로그 활동을 하고, 심지어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이메일에 답장한다.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서툰 글과 유예의 지점이 과연 언제까지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기술철학의 권위자인 마크 코켈버그와 데이비드 J. 건컬의 공저인 이 저작은 말 그대로 LLM으로서의 AI가 가지는 의미를 인문학적, 철학적, 역사적인 시선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 책에 따르면 가부장적인 저자의 절대적 권위는 생성형 AI의 발달로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바르트와 푸코는 이미 이런 저자의 절대적 권위와 기능이 조만간 사라질 것임을 예견했다. 소크라테스의 '테크네'로 명명한 글쓰기의 기술은 플라톤식 실재 대 형상이라는 이분법과 로고스 중심주의를 내려놓고 독자와 상호 접촉하는 가운데 생성되는 의미화 과정으로 무게추가 옮겨가고 있다. 이 와중에 출현한 LLM이 가지는 현상으로서의 의미는 "다르게 사유하고 다르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작가가 자신이 AI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활용했는지 정정당당하게 밝힐 수 있다면, 이 과정은 AI와 "텍스트 및 텍스트성의 창조와 창발에 함께 참여하는 의미화 과정"을 글쓰기 과정으로 새로 해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조만간 인간과 비인간의 협업 과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읽는 게 일상이 되는 날이 오게 되는 걸까.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씩 잠식당하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게 달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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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 ㅣ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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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와 솔직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에세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어느 누가 읽어도 맞닿아 있는 공감의 지대에서 위로 받는다. 그가 쓴 모든 논픽션을 따라 읽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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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대 중반 아버지는 이제 자주 사후 당신이 묻힐 곳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린다. 사후 당신의 영혼이 안식을 찾을 곳을 찾아 헤매며 육신의 죽음을 넘어선 그 이후 흐를 시간을 당연한듯 전제하는 모습에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종교가 없는 아버지는 그럼에도 영혼과 넋에 대한 믿음이 있다. 고인을 기리고 추억하며 각종 의례를 지내는 일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죽음 이후라는 가정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도 내 죽음을 떠올리면 아득한 두려움이 몰려오지만, 그 공포를 잠재우는 건 산란한 일상 빼고는 없다. 즉, 나는 내 호흡이 멈추고 육신이 부패하고 남을 그 뼈의 운명에 대해 불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 남는 것이 있다면, 죽음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답을 영영 알지 못한 채 나는 죽음으로 건너갈 것이다.



이 도발적인 제목은 누구나에게 공명하는 한탄이기도 하다. 과연 누가 알겠는가? 종교적 믿음이 신실하다고 해도 죽음 너머 남을 뼈의 운명을 확신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17세기 의사이자 산문 작가였던 토머스 브라운은 영국 노퍽주 들판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것으로 추정한 수십 개의 유골 항아리들을 시작으로 죽음과 장례, 매장, 화장 풍습들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결국 삶에 익숙해지며 결코 적응하지 못할 허무한 결말인 죽음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러니임을 설파하는 브라운의 문장은 버지니아 울프의 경탄과 닿아 있다. 그는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설교자"이며 동시에 독자를 "비범한 사색의 비상으로 이끈다." 허무론자 같으면서 동시에 삶의 찬란한 불꽃을 찬탄하는 그 아이러니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삶은 순수한 불꽃이며, 우리는 내면의 보이지 않는 태양에 의지해 살아간다. 살아생전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작은 불씨 하나면 충분하지만, 죽음 뒤에는 아무리 거대한 불길도 인간의 허영을 채우기엔 늘 부족해 보인다.

-pp.124


그의 사후 벌어진 웃지못할 해프닝은  그 자신이 쓴 이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에 덧붙여질 텍스트가 된다. 19세기 중반, 근처 무덤 작업 중 드러난 브라운의 두개골이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출되어 병원에 전시되었다 다시 원래 무덤에 안치된다. 그의 뼈는 만인의 전시 대상이 될 운명이었을까? 그 정도로 아무도 우리 사후 벌어질 일에 대한 통제권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방증 같기도 해서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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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8 1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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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8 15: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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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이시다 센 지음, 서하나 옮김 / 1984Books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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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다양한 시점으로 묘사한 에세이집인데 마치 단편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책속 "오늘이 일생이야!"라는 문구처럼 이 평일의 풍경은 아름다운 일생의 농축된 버전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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