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동생을 만났다가 알라딘 중고서점 종로점에 가보려 한다니, 101번을 타고 종로 2가에서 내리면 된다고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정말 지독한 길치라 낯선 길에는 본능적으로 겁쟁이가 된다. 정말 여기서 타는 게 맞냐? 거꾸로 가는 건 아니냐? 고 재차 확인하고 정말 백만 년 만에 제대로 된 외출을 하게 되었다. 봄날은 눈이 부셨다.
그.러.나. 나는 역시 잘못 내리고야 말았다. 그리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참고로 예전에 회사에서 외근 나갔다 수원에서 버스를 거꾸로 타는 기염을 토해 퇴근 시간에 울상이 되어 겨우 회사에 들어오니 다들 미루어 짐작해 왜 늦었냐? 고 묻지도 않았다는-종로 3가에서 내렸다. 잠시 멍해졌다 네이버 지도 어플을 켜고 차근 차근 지오다노 매장을 찾아 가니 올레! 드디어 알라딘 중고 서점 입성!
흥분을 가라앉히고 입구 복도에서 셀카를 찍었으나, 역시 아줌마의 얼굴은 자신의 것인데도 사진 보고 확 기분이 나빠졌다.
매장 안에는 근처의 대형 서점보다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이를테면 어떤 책이 눈에 들어와 그 책을 확인하려면 반드시 누군가를 통과해 가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이들 책은 좋은 책들이 많아 예전에 큰 딸 만할 때 흥미롭게 읽은 <홍당무>를 골라냈다. 그러나 의외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눈에 띠지 않았다. 민음사나 문학동네 전집류도 거의 없었고 여하튼 내가 기대했던 책들의 풍경은 아니었다. 똑같은 책이 여러 권 나와 있는 것도 좀 아쉬웠지만 아무래도 중고책이라는 게 처분을 매개로 한 것이다보니 정말로 갖고 있고 싶은 책은 안 나오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문학의 경직된 틀을 깨려는 시도가 신선하기도 하지만 여기에 또 지나치게 무게중심이 실리면 좀 어렵다. 소설가 배수아의 작가 인터뷰는 언제나 챙겨 읽게 되는데 이장욱 작가는 어렴풋이 단편 한 편 정도 읽은 기억이 나서 잘 아는 작가라 하기는 힘들어 아무래도 몰입이 좀 어렵긴 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다 문학이란 접점에서 만나니 아무래도 대화가 깊이가 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독자 입장에서의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이 접근 자체를 좀 어렵게 하는 면도 있다. 문학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수긍이 가면서도 안타까웠다. 후반부에는 작가들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임솔아의 <선사인 샬레>를 재미있게 읽었다. 여행자들의 숙소를 '샬레'라 부르고 그곳을 청소하고 그들의 시중을 드는 '나'의 이야기는 건조하고 담담한데 투숙객 들과의 그 소통되지 않는 관계가 과장되지 않고 현대의 관계를 묘하게 오버랩시키는 면이 있었다. 그들이 묵는 방을 실험실의 '샬레'를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지칭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글로 차마 옮기기 힘들었던 많은 일들. 그 전과 후가 같을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젊어지더라도 눈부신 햇살을 통과해 걷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할 도리는 없다. 그 때는 너무 많은 경험의 주체가 되었기에 그것들로도 충분히 바빴지만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늙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통과해야 하는 것인지 조금 알아서 정말 다르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