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살고 보고 듣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도피나 휴식으로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나마 읽는 일은 나에게 위로를 주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차마 읽어나가기 힘든 내용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면 그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때로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읽으려 했다.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려고도 했다. 누가 읽으라고 숙제라고 종용하는 것도 아니니까 멈추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도저히 멈추지 못하고 계속 괴로워하며 끝까지 밀고 나갔다. 이 차마 전하기도 힘든 슬픈 가족의 유랑기와 그것의 그 비참한 말로를, 그것도 그것을 직접 겪은 막내 아이가 자라나서 회고하는 목소리는 구슬픈 만가였다. 비단 그 아이의 사형수 형을 중심으로 죽고 흩어지고 사라져 버린 가족의 회고담이 아니라 이것은 결국 인간이 가족, 정의, 질서라는 외연 아래 숱하게 놓쳐 버리고 왜곡하고 묵과하고 외면해 버리는 것들이 가장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슬픈 예증이다.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는 그런 죽음이 되풀이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기 위해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 마이클 길모어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독실한 몰몬교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 여자는 아버지뻘의 정체가 불분명한 사기꾼 남자를 만나 미전역을 유랑하다시피 다니며 아들 넷을 낳는다. 늙은 아버지는 습관처럼 아들들을 때리고 그 앞에서 아내를 폭행한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서 선물 포장 리본을 풀며 따뜻하게 익은 칠면조 고기를 먹는 헐리우드 영화 속의 행복한 아이들과는 달리 길모어 집안 아이들은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친구를 때리고 마약에 중독되고 감옥을 드나든다. 아버지가 육십이 넘어 태어난 막내 아들 마이클은 유일하게 감옥을 드나들지 않아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이 책의 저자가 된다. 사실 마이클은 길모어 집안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태어난 막내이기에 위에 세 형들이 겪은 그 비참한 경제난과 아버지의 학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감이 있다. 그래서 때로 그는 그들의 이야기에 포함되지 않는 소외감을 느낀다. 특히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형 게리는 감옥에서 출소하여 자신에게 새출발의 기회를 주려 했던 몰몬교 외가가 있는 유타주로 돌아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 사형 집행을 종용하여 1977년 부활된 사형제에 의하여 잔인하게 총살을 당하게 된다. 저자 마이클은 <롤링 스톤>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언론인으로 졸지에 살인자이자 사형수의 동생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미 이러한 과정은 노먼 메일러의 <사형집행인의 노래>에 묘사되었다. 십수 년이 흐르고 연락이 끊겼던 맏형과 재회하고 그에게서 숨겨진 잊혀진 가족사를 찬찬히 짚어가며 마이클 길모어는 가슴 깊이 가라앉아 있던 숱한 상처와 눈물의 기록을 하나 하나 꺼내어 놓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때로 경직되고 보수적이고 가차 없는 몰몬교의 피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남편에게 학대받고 아들 둘을 먼저 죽음으로 떠냐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걸핏하면 떠나고 때리고 외면하고 체념하는 데에 익숙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매를 맞으며 증오와 복수심을 배워야 했던 형들의 이야기가 마침내 살의와 만나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결말로 치닫는 비가다. 남아있는 형제들 마저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가족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악운과 저주의 늪에서 끊임없이 허우적댄다. 맏형 프랭크와 막내 마이클은 그렇게 남아 가족의 이야기를 복기하는 마지막 생존자가 된다.
불확실성의 세상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한다. 인간이란 연약하기 짝이 없는 허울 밑에서 선량해지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악행들을 사랑에 이르는 지름길을 택하기 위해 시도된다.
-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 떠올랐다. 그도 가족사를 통하여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흐르는 악한 본성의 극복 가능성에 그가 돌연 갖다 놓은 '사랑'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응답받지 못했던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마지막 말은 이 무모한 사랑의 언어와 또 만나고 만다. "그래도 아버지란 존재는 늘 남아 있겠지."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은 하나의 삶을 완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말 두려운 일이다. 문이 닫히면 그 안에서는 한 생을 직조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일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