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고 깜짝 추위가 간간이 오긴 했지만 갈피짬에 봄바람이 들어온다. 자연은 그 도저한 순환의 고리를 어떤 예외 상황에서도 잊지 않나 보다. 다행이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는 이제 어느덧 서른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벌써!) 큰딸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들이 엄마 공지영의 간단 요리 레시피와 함께 버무려져 있다. 때로 그녀의 행동이나 언사가 논란이 될 때가 있지만 내가 정말 힘들 때 펼쳐져 있던 그녀의 에세이에서 함께 공감한 고통의 시간들로 정이 들었다. 뻔한 이야기들 같지만 솔직한 자기 경험에 덧붙여진 삶의 조언들이 와닿아 옮겨 적게 된다.
물론 엄마도 가끔 질 낮은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들을 막 때우고 싶은 때가 있단다. 그게 특별히 먹고 싶어서라면 모르겠는데 그냥 귀찮아서 말이야. 잘 생각하면 바로 그 때가 실은 엄마의 생 전반의 기력이 떨어지는 때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지. 음식은 그런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그럴 때 엄마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노력한단다. 이 식사가, 이 식사의 앞과 뒤가 내 인생의 많은 모자이크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중
세 끼의 지엄함을 엄마가 다 챙겨주던 시절에는 사실 절감하지 못하다가 이제 내가 그것을 챙겨야 되는 입장이 되니 이 단순하고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식사 준비와 설거지에서 깨닫는다. 식재료를 사서 다듬고 메뉴를 고민하고 차려내고 먹이고 치우고 그릇을 닦고 다시 정리하는 몸을 먹이는 일은 때로 참으로 고달프고 영 별 의미 없는 것 같지만 때로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몸을 먹이는 일은 별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정말 별 거이기도 하다. 그녀의 말이 맞다. 너무 힘들 때에는 밥을 건너뛰고 커피만 연거푸 마셨다. 몸을 대우하지 않게 되는 것은 삶의 조각들에게도 통용된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들에 때로 가장 큰 생의 저의가 있다.
공지영의 요리 레시피는 그냥 책 속에 삽입된 명분이 아니라 정말 실질적이어서 눈에 쏙쏙 들어온다. 재료도 과정도 다 간단하고 무엇보다 몸을 고려한 그 배려가 좋다. 그래서 하나 하나 조그마한 요리 레시피 수첩에 옮겼다.

삶이 공평하지도 평화롭지도 행복하지만도 않다,는 그녀의 계속되는 이야기는 사실 친정 엄마가 후렴구처럼 읊는 "산 넘고 산이다."라는 이야기처럼 별로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정말 평화롭고 고느적하고 안심어린 시간은 막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무언가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단조롭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물론 자주 잊어버리지만 이렇게 또 되새기게 된다. '더운 양상추'라니 , 당장 해먹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