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의 뜻을 찾아보니 인생의 가장 찬란한, 아름다운 '순간'을 뜻하는 말이다. 이승환의 뮤직 비디오를 보니 그의 화양연화는 지금 이 순간인 듯 그를 꼭  닮은 할아버지 보컬의 밴드가 회고하는 현재의 이승환의 모습이 빛난다. 가사는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그리움인 듯 하지만 그 안에는 사실 우리가 보내버린 찬란한 젊음, 흘려버린 찰나들의 은유가 보태어져 있는 듯하다. 동명의 영화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대신 장만옥이 가장 외면적으로 빛났던 순간들의 이미지들이 떠돌아 다닌다.

 

 

 

 

 

 

 

 

 

 

 

 

 

 

 

 

 

플로베르의 '화양연화'의 단서는 여기에 있다. 카프카가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꾼 꿈은 놀랍게도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을 큰 소리로 읽으면, 그 소리가 벽에 부딪혀 반향되는 것이었다고 한다.(제프리 월의 서문 참조) 1840년, 갓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프레데릭 모로가 홀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플로베르의 평생을 지배하다시피 한 연상의 귀부인에 대한 첫사랑이 강렬하게 투영되어 있다. 근대 파리에서 청춘이 어떤 치기, 무모함, 어리석음의 조류에 흔들리며 권력, 명예, 돈에 물들어갈 때에도 결국 프레데릭을 가장 매혹하고 힘들게 한 것은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그녀였다.

 

솔직히 <감정교육>의 주인공인 프레데릭 모로는 내가 지금까지 봐 온 남자 주인공들 중 가장 비호감인 면이 있었다. 양다리는 기본에, 심지어 문어발까지 서슴지 않으며 '내 맘을 나도 몰라'란 무책임한 언사에 매춘부와 동거까지 하면서도 권력이나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에는 젠틀한 척하며 참석하고 부르주아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향유하며 민중의 편에 선 듯한 가식적인 행태들은 역겨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어쩌면 지금까지 소설 속에 등장한 사람들 중 가장 사실적이고 그렇기에 가장 덜 매력적인 인물일런지도 모른다. 꿈꾸는 인물은 이야기에서 난무했지만 정작 난무하는 사람의 모습은 그러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누구나의 마음 속의 가장 못난 구석들이 청춘과 만나면 빚어지는 형상이 플로베르에 의해 그려진 이 사내일까. 지나치게 사실적인 이야기들은 때로 역겹게 느껴진다. 주춤, 주춤, 프레데릭 모로와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하며 힘겹게 그의 비속함, 비열함에 동행한다.

 

마침내 그러나 다행히 왜 카프카가 이 이야기를 낭독하는 꿈 속에 헤매었는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프레데릭이 '만물이 수렴되는 빛의 중심'으로 여겼던 아르누 부인과의 늦은 재회. 그녀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버렸다. 이 재회는 프레데릭의 청춘의 출발점에서 이미 예정된 결론처럼 담담하지만 더없이 낭만적이다. 일종의 체념, 회한이 훑고 간 자리에서 프레데릭은 자신과 함께 가기도 하고 때로 어긋나기도 했던 절친과 함께 둘의 삶을 회고한다. 그들이 정작 '화양연화'로 추억한 시점은 흥청망청 쾌락과 권력과 명예에 탐닉했던 청춘이 아니라 모호하고 미진하고 순수했던 소년 시절의 작은 일탈의 공모의 순간이었다. "그때가 제일 좋았지!"라는 이제는 늙어버린 친구들의 회고는 어쩐지 눈물겹다.

 

어리석음에 무모함에 대한 회한이 남지 않는 과거는 이미 늙어버린 과거다. '화양연화'에는 그래서 반드시 실패와 좌절과 아쉬움이 남아야 제맛이다. '현재'를 미래의 시점에서 '화양연화'로 만들어 버린 이승환의 뮤직 비디오가 근사하게 느껴지면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그것은 반드시 과거의 환영 속에 모호함 속에 돌이킬 수 없음의 휘장을 걷고 걸어 나와야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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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17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젊은 주인공도 <감정 교육>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유사해요. 시대적 배경도 비슷하고(두 소설 다 프랑스 19세기 중반일 겁니다) 속물적인 인간들이 등장해요. 주인공도 어떻게든 부르주아 사회에 편승해서 자신의 야망을 펼치기 위해서 부정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플로베르가 발자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19세기 프랑스의 어두운 사회상을 잘 표현했어요. 소설이 오래돼서 지루할 법한데 재미있어요. 씁쓸하지만 소설 속 프랑스 사회의 모습이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니까요.

blanca 2015-03-18 10:08   좋아요 0 | URL
아, cyrus님, 저도 발자크 <고리오 영감>이 떠올랐어요. 미처 시대적 배경의 유사점은 몰랐었는데, 음, 그렇군요. 모옴의 <인간의 굴레>도 비슷한 구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감정교육>은 이상할만치 플로베르 자신의 이야기의 고백처럼 느껴졌어요. 어떤 느낌, 감정보다는 주인공의 행동들, 그 행동을 둘러싼 주변 정황에 치중하는 게 마치 좀 자신의 내면을 얘기하기에는 멋쩍어서 그런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착각일 수도 있지만요. 맞아요, 사실 이런 속물성은 인간인 이상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다락방 2015-03-1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별로 관심갖지 않았었는데 말이에요. 블랑카님이 말씀해주신 프레데릭은 모파상의 벨 아미와 겹치는 것 같아요. 캐릭터적인 면에서요. 하아- 세상엔 읽을 책이 너무나 많군요. 저 오늘 읽던 책 다 읽을 것 같아 새로운 책도 한 권 챙겨가지고 왔는데, 그것들 다 치우고 이 책을 읽고 싶네요.

blanca 2015-03-18 10:1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벨아미>는 저도 너무 좋아하는 책인데, 이 책은 뭐랄까, 지극히 사실적이라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푹 담기는 맛이 좀 부족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대목이 너무 좋아서 모든 단점을 상쇄했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뭉클했어요.

아, 다음 읽을 책이 없으면 항상 초조해요. 저는 요새 왜이리 책이 더디게 읽히는지 모르겠어요.